소설리스트

제국사냥꾼-17화 (17/561)

#5. 짐승사냥 (5)

“눈을 감고, 방아쇠를 당기고, 돌아서서 눈 뜨고 떠나면 끝이지.”

말은 같아도 반응은 다르다. 내가 조종하려는 여자는 권총을 쥔 손을 꼼지락거렸다. 아래로 늘어뜨린 총구가 덜덜 흔들리고는 있으되, 이는 두려움보다는 갈등과 긴장을 더 많이 내포한 동요였다. 죽인다와 죽이지 않는다의 선택지에 완전히 몰두한 것이다. 입이 마르는지 혀로 입술을 핥는다.

“비밀을 꼭 지키겠다고 약속드리는 건…… 역시 부족한 거겠죠?”

이렇게 묻는 캐런의 목엔 십자가 목걸이가 걸려있었다.

‘몸을 파는 여자가 간음하지 말라는 종교를 믿는군.’

금기의 첫째가 살인이요 둘째가 간음이다. 그러나 얄팍한 신앙이라도 신앙은 신앙이고, 믿음은 원래 논리와 거리가 멀다.

나는 고개를 저었다.

“하느님께 맹세코, 난 진심으로 당신을 해치고 싶지 않소. 그러나 무턱대고 당신을 믿을 수도 없소. 당신으로 인해 내 사람들이 목숨을 잃을 수 있으니까.”

하느님, 맹세, 진심. 그리고 내 사람들의 목숨. 마음을 움직이는 단어들.

“내가 도와드리겠소.”

장갑 낀 손으로 캐런의 눈꺼풀을 쓸어내린다. 눈썹이 바르르 경련하긴 했으나, 캐런은 시키는 대로 순순히 눈을 감았다. 나는 캐런의 어깨를 붙잡아 표적을 향해 천천히 돌려 세웠다. 힘은 과하게 주지 않는다. 머뭇머뭇 따를 정도면 충분하다. 마지막으로 캐런의 자세를 교정해주고, 손을 포개어 잡고, 권총을 천천히 위로 끌어올린다. 느릿하게 높아진 총구가 표적의 중심을 겨냥했다. 나는 손을 놓고 뒤로 물러났다.

“이제 됐소. 준비가 되면 방아쇠를 당기시오.”

쏘라는 표현은 피한다. 사소한 단어 선택에 결과가 달라질 수 있다.

표적이 된 스킨헤드는 두건 속에서 느리게 숨을 쉬었다. 혈관에 도는 자백제는 놈에게서 현실인지능력을 앗아갔다.

사수의 호흡과 신체적 긴장도를 유심히 살피던 나는, 결정적인 순간 차갑게 그녀의 이름을 불렀다.

“캐런.”

움찔!

권총의 슬라이드가 탁! 하고 후퇴 전진했다. 반사적으로 당겨버린 방아쇠. 캐런은 반동을 거의 느끼지 못했을 것이다. 장난감 소리를 들을 만큼 반동이 적은 총을 온 힘을 다해 붙잡고 있었으니까. 약실에서 튄 탄피가 팅그르르 바닥을 굴렀다. 코끝에 감도는 희미한 초연의 향기. 탄은 명치에 틀어박혔다. 아무런 무늬 없는 검은 옷이 번들거리는 액체로 젖어들기 시작했다. 그래도 즉사는 아니다. 캐런은 표적이 내는 괴상한 소리에 놀라 총을 떨어트리고 말았다.

총을 회수한 나는 캐런의 어깨를 잡아 뒤로 돌려 세웠다.

“그만 눈을 떠도 괜찮소.”

캐런이 부서질 듯 떨면서 눈을 떴다. 난 양손으로 그녀의 귀를 막아, 점차 잦아드는 표적의 숨소리를 차단해주었다. 때로는 날카롭게 새고 때로는 핏물이 섞여 부글거리는 숨소리를. 동시에 눈을 마주봄으로써 시선을 내게 고정시킨다.

‘심장이 굉장히 빠르게 뛰는군.’

당연하면서 좋은 현상이다. 교감신경이 흥분한 상태에서 사람은 자신의 감정을 쉽게 착각하니까. 사고가 하얗게 마비된 상태라면 더더욱 그러하고. 이 여자의 기억에 나는 악당이 아니라 이상적인 자경단으로 남아야 한다. 적어도 대략 한 달 가량은.

표적의 목숨이 확실하게 끊어진 뒤에, 나는 비로소 두 손을 거두었다. 여전히 맥박이 빠른 캐런은 입으로 숨을 쉬며 멍한 느낌으로 내 눈만 바라보고 있었다.

“이걸로 끝이오. 힘든 일을 해줘서 고맙소.”

“네에…….”

“당신은 당신이 살아가는 거리를 조금 더 안전하게 만든 거요.”

“네…….”

아까 무기를 쥔 채 내 말에 열성적으로 끄덕이던 장면이 찍혔으니, 악마의 편집을 위한 재료가 추가로 필요하진 않을 것이다.

“잠시 진정하고 가시는 편이 좋겠군. 저쪽으로 들어갑시다.”

나는 캐런을 사무실로 이끌었다. 그 사이에 부하들이 시체를 치울 수 있도록.

2층 높이에서 창고 전체를 내려다보는 사무실은 간부 녀석의 사적인 공간이었다. 벽엔 남부 육군기가 걸려있다. 나는 삐걱대는 창문을 열어 갇혀 있던 공기를 내보냈다. 답답한 정사의 냄새가 빠지고 차가운 공기가 들어온다. 캐런을 침대 가장자리에 앉힌 난 녹슨 석유난로에 불을 넣고 의자를 끌어다 마주앉았다. 열린 문가엔 호위가 섰다.

조금 어색한 시간이 흐른 뒤에, 캐런의 주의가 그 어색함에 기울 즈음 내가 입을 열었다.

“돌아갈 때 어떤 절차 같은 게 있소?”

“……예?”

“당신이 일하는 업소에 연락을 한다든가. 혼자 돌아다니게 하지는 않을 것 아니오?”

늦은 시간, 이런 도시의 후미진 거리에서 여자 혼자 다니게 하는 건 미친 짓이다. 남자라고 딱히 안전한 것도 아니지만.

“그, 원래는 내일 프레이저가 데려다주기로 했어요. 돈은 선불로 냈거든요.”

“프레이저?”

“저기, 바깥에 있는…….”

“아아.”

이 방에서 함께 뒹굴었던 간부 녀석의 이름인 모양이었다. 하기야 단골이면 그렇게 할 법도 하다. 포주 입장에서 한 명 실어오자고 차를 보내기도 번거로울 테니.

“차라리 잘됐군. 내 부하들이 에스코트 해드릴 거요.”

“그, 그건…….”

“사양하지 마시오.”

무언가를 더 말하려던 캐런이 우물우물 입을 다물었다. 무슨 말을 삼켰을지는 뻔한 노릇이지만, 나는 모르는 척 말을 돌렸다.

“그보다, 포주가 벌써 돈을 받아갔다고?”

“아, 네. 팁은 다 제가 갖는 조건이라서요.”

“상도덕이 아주 없진 않은 사람인가 보오.”

“예, 음, 그렇죠.”

이번엔 다소 떨떠름한 대답. 화류계에서 가슴골에 꽂힌 돈을 건드리지 않는 건 최소한의 상도덕이다. 그걸 지킨다고 해도 다른 면에선 얼마든지 X 같을 수 있었다. 그마저도 지키지 않는 놈들이 많지만.

난 자리에서 일어나 사무실 한쪽에 덩그러니 놓여있는 금고로 다가갔다. 잠긴 금고 안엔 마약 덩어리들과 개발새발 적어놓은 장부 비슷한 것 한 권, 고무줄로 묶어놓은 지폐뭉치들, 그리고 강도질로 모은 듯한 귀금속 한 꾸러미가 들어있었다.

‘기계식이군.’

기계식 다이얼을 여는 건 손쉬운 일이다. 「황금기의 눈」으로 부품을 보면서 아귀를 맞추면 그만이니까. 가끔 투시로도 구조파악이 까다로운 자물쇠가 있긴 하나, 스트리트 갱 주제에 그렇게 비싼 고급품을 쓸 리가 없었다. 난 눈을 다이얼에 두고 캐런에게 물었다.

“윌리엄스 양. 혹시 마법을 본 적이 있소?”

“마법……이요?”

“그렇소. 마법.”

당황하는 캐런. 이 여자는 바로 눈앞에서 마법사가 마법을 쓰고 있다는 사실을 모른다. 달칵. 모든 톱니가 맞물렸다. 나는 한 발짝 비켜서서 문을 열어보였다.

“당신에게는 이게 마법이겠지.”

“…….”

금고가 열린 데 놀랐던 캐런은, 곧 금고의 내용물을 보고 그 놀라움을 잊었다.

“여기 있는 금품은 다 가져가도 좋소.”

“예?”

잠시 움직임이 없던 캐런이 눈을 크게 뜬다.

“정말로…… 그걸 전부…….”

나는 끄덕임으로 확신을 주었다.

“맙소사!”

비명 같은 외마디와 함께, 두 손으로 입을 가린 캐런이 주춤주춤 일어서서 금고 가까이로 다가왔다. 상기된 표정과 흔들리는 발걸음. 조금 전까지만 해도 남아있던 번민과 두려움은 온데간데없이 증발해버렸다. 100달러 뭉치 마흔 개엔 그 정도의 힘이 내재되어 있었다. 금고 앞에 서서 홀린 듯 돈을 응시하던 캐런이 가까스로 내게 고개를 돌렸다.

“이걸 다…… 제게 주신다고요? 제가 잘못 들은 건 아니죠?”

말보다는 헐떡임에 가까운 물음. 나는 귀찮은 내색 없이 다시 한 번 끄덕여주었다.

“제대로 들은 거 맞소.”

“진짜 괜찮으시겠어요?”

“괜찮소. 나는 돈이 필요해서 이런 일을 하는 게 아니니까.”

“세상에.”

나를 보는 캐런의 눈에 경외가 깃들었다. 마법만큼이나 강력한 돈의 마력. 그 마력에 홀려버린 이 여자에게 살인은 벌써 지나간 일일 뿐. 시간이 흘러 다시 떠오르기야 하겠지만, 그때의 충격은 시간이 흐른 만큼 줄어든 상태일 것이었다. 떠오를 기억이라고 해봐야 방아쇠를 당겼던 촉감과 잠깐 들었던 괴상한 소리가 전부인 것을.

비밀유지비용으로 40만 달러면 싼 거지.

어차피 내 돈도 아니고.

적당한 죄책감은 자기합리화의 양분이다. 이제 이 여자는 죄책감이 고개를 들 때마다 스스로를 설득할 터였다. 죽어야 할 놈이 죽었을 따름이라고. 그러지 않으면 자기가 받은 40만 달러도 정당화가 안 되니까. 자기 자신에 대한 설득보다 강한 설득이 어디에 있을까.

“감사합니다.”

감격한 캐런이 두 손을 모으고 울먹였다.

“정말로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당신에 대한 내 호의의 표현이라고 해둡시다.”

지폐 뭉치들은 사무실 옷걸이에 걸려있던 낡은 가방으로 들어갔다. 안쪽에 희미하게 하얀 가루가 묻어있는 물건이었다.

이어 나는 캐런이 귀금속 꾸러미에서 원하는 걸 고르도록 해주었다. 그냥 핸드백에 쏟아주는 것보단 이러는 편이 낫다. 반지도 끼어보고 팔찌도 차보고 하던 캐런은 때때로 나에게 조심스러운 눈웃음을 치기까지 했다. 아까보다 가깝고 부드러워진 아첨이다.

단순하기도 하지.

난 시간을 확인했다.

47분.

몸 파는 걸 제외하면 평범하게 살아왔을 여자가 사람을 죽이도록 만들고, 죄책감마저 희석시키는데 47분 걸렸다. 이 정도면 합격점을 줘도 무방할 것이다. 그 유명한 전기고문 복종 실험의 밀그램도 죄책감까지 고려하진 않았다.

‘그런대로 재미있었다.’

초식동물과 육식동물의 경계는 뚜렷하지 않다. 평소 풀을 뜯고 사는 동물이라도 기회가 닿으면 고기를 먹는다. 병아리를 산 채로 씹어 삼키는 소처럼. 인간이 아는 소의 순박함은 입안에서 으스러지는 병아리의 비명에 구애받지 않는다.

‘앞으로는 그 경계가 더욱 흐려지겠지.’

이 여자는 슬슬 마무리를 지어야겠다.

“돌아가기 전에, 당신이 한 가지 명심해야 할 것이 있소.”

“네? 그게 뭐죠?”

“세금 신고요.”

“아.”

“그 돈을 함부로 쓰면 국세청에서 반드시 사람이 나올 거요. 그게 얼마나 귀찮은 일인지는 당신도 보고 들은 바가 있겠지.”

캐런이 일하는 업계에선 수시로 벌어지는 일이었다. 하물며 40만 달러면 국세청이 무장요원을 파견할 만한 금액. 그 요원은 필히 수색영장을 지참할 것이다. 겉으로 드러난 40만 달러가 빙산의 일각에 불과할 가능성이 있으니까.

“어, 어쩌면 좋죠?”

캐런의 표정이 어두워진다.

“당신 주소를 알려주면, 내가 근시일 내에 우편으로 카지노 칩 하나를 보내드리겠소.”

“카지노 칩이요?”

“그렇소. 카지노 칩. 그 칩을 가지고 애리조나 주 투손의 다이아몬드 카지노를 찾으시오. 원주민들이 운영하는 곳이지. 창구에 칩을 보여주면 그들이 당신의 용무를 묻거나 별도의 라운지로 안내하거나 할 거요. 그때 세탁할 돈이 있다고 알리시오.”

“와…….”

“수수료 부담이 크진 않을 거요. 칩 자체에도 가치가 있으니.”

칩을 가져간다고 아무나 특별한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수사기관의 끄나풀일 수 있으므로. 내가 사전연락으로 이런 사람이 찾아갈 거라고 전해두어야 한다. 대구의 미군 벤더에게 주는 코인도 그런 식으로 환전된다.

두근거리는 캐런의 심장이 보인다. 이는 두려움이 아닌, 미지를 경험하는 자의 흥분이었다.

“잊지 마시오. 애리조나 주 투손의 다이아몬드 카지노요.”

“네!”

“그래서, 주소는?”

“투손의 다이아몬드 카지노요!”

“당신 주소 말이오.”

“앗.”

주의가 흐트러져있던 캐런은 자신의 주소를 아무 저항 없이 말해버렸다. 주소가 정확한지는 에스코트할 녀석들이 확인할 것이다. 나는 다이아몬드 카지노를 열심히 되뇌는 여자를 밖으로 이끌었다.

“짐을 챙기시오. 당신을 보내줄 때가 된 것 같소.”

사무실을 나서는 순간, 그녀의 시선은 철제 계단의 난간 너머 시체가 치워진 자리를 향했다. 거기엔 빈 의자만 덩그러니 놓여있을 따름. 죽음의 흔적은 피 한 방울 남아있지 않았다.

난 부하들에게 가야할 곳을 알려주었다.

부하 둘과 함께 나가던 도중, 캐런은 미련이 남은 사람처럼 안타깝게 나를 돌아본다.

“저기……!”

“뭐요?”

“서, 선생님을 다시 만날 수 있을까요?”

……네가 날 다시 봐서 뭐하게? 나는 고개를 천천히 저어보였다.

“당신을 위해서라도 우리가 또 만나는 일은 없는 편이 좋을 거요.”

끝까지 당신을 위해서라고 포장한다.

“역시, 그런가요.”

“살펴가시오.”

“오늘은, 오늘은 정말 감사했습니다! 주께서 당신을 축복하시길!”

진심이 뚝뚝 묻어나는 작별인사. 객관적으로 보면 굉장히 어이없는 상황일 거다. 나는 눈을 마주치고 고개를 가볍게 까딱여주었다.

그렇게 조용해진 창고에서, 이제 나는 사람 가죽을 뒤집어쓴 짐승들을 마주보았다.

“오래 기다렸다, 돼지들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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