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짐승사냥 (4)
비루먹은 들개 무리와 잘 훈련된 사냥개들 사이엔 하늘과 땅 만큼의 격차가 있다. 제국사냥을 함께할 나의 군대는 자칭 근위대 운운하는 X신들을 신속하게도 제압해버렸다. 그 과정에서 죽은 이가 없는 건 경태의 판단이었다. 카지노 추장의 의뢰를 초과달성하기 위함이다. 용케 한 놈도 안 죽이고 다 생포했구나 싶었다.
내가 창고에 들어서자 의자에 묶인 막장 인생 열아홉의 시선이 집중된다. 재갈을 물려놓은 입들이 조용하다. 팽팽하게 당겨진 침묵이었다. 유일하게 묶이지 않은 하나는 이번 일의 골칫거리인 여자. 그녀는 복면을 쓴 무장인원들 사이에 오도카니 서서 바들바들 떠는 중이다.
나 또한 복면을 쓰고 있기는 매한가지다. 그러나 사냥감들은, 분위기만으로 내가 사냥개들의 주인임을 깨달은 기색들이었다.
바닥엔 내 부하들이 두껍고 넓은 비닐을 깔아놓았다. 이제부터 여기서 사람을 도축할 텐데, 평범한 도살장처럼 사방팔방 피를 뿌려놓을 순 없는 노릇이기 때문이다.
이 와중에 발기가 수그러들지 않는 놈이 하나 있었다. 마지막 순간까지 여자와 뒹굴던 간부 녀석이다. 나는 놈의 겁에 질린 눈동자와, 그 너머 비정상적으로 확장된 동맥의 혈류를 꿰뚫어보았다.
약을 처먹었나.
꼭 투시가 아니더라도, 뻣뻣함을 유지하는 X과 발그레하게 홍조가 오른 낯짝을 보면 알 만한 사람은 다 알아차릴 일이었다. 비아그라 같은 걸 본 적도 없을 순수한 인생들이야 당연히 모를 테지만. 사타구니에 텐트를 친 사내새끼와 마주보는 건 별로 좋은 기분이 아니었다.
“……잘라버리고 싶군.”
내 말에 놈은 불그스름한 얼굴 그대로 사색이 되었다. 영어로 말했으니까.
“자를까요?”
경태의 무심한 추임새. 순서가 엉망이긴 하나, 자르고 지지면 심문에 필요한 시간쯤은 충분히 나올 것이다. 그러나 나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저 아가씨부터 먼저 해결해야지.”
이번엔 여자가 사색이 되었다.
“사, 살려주세요! 여기서 본 건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을게요! 흑, 맹세해요!”
두려움에 둑이 터지고 마는 울음.
“진정하시오.”
차분하게 달래보았으나 소용이 없다.
“그치지 않으면 죽이겠소.”
울음이 뚝 끊어졌다. 역시 이쪽이 효과가 더 좋다. 대신 딸꾹질이 시작되긴 했어도. 가만히 생각하던 나는 붉어진 눈으로 히끅대는 여자에게 한 가닥 희망을 던져주었다.
“우리의 용무는 여기 묶여있는 잡종들에게 있소. 그쪽은 예상 밖의 변수란 말이지. 무관한 일반인을, 그저 증거인멸을 위해 죽이는 건 우리로서도 달갑잖은 일이오.”
“그, 그럼…….”
“당신이 협조만 잘 해준다면 놓아주지 못할 것도 없소.”
던져진 희망을 꿀떡 받아먹은 여자는 낯빛부터 확 달라졌다.
“할게요! 히끅. 누구에게도 절대로 말하지 않을, 끅, 게요!”
“그걸로는 부족하오.”
눈치를 보던 여자가 묻는다.
“제가, 힉, 뭘 어, 어떻게 해드리면 되나요?”
“잠시 손을 줘보시겠소?”
“……네?”
빤히 바라보자, 여자는 흠칫거리면서도 자신의 한 손을 나에게 내주었다. 나는 그 손을 붙잡고, 남는 손으로 코트 안쪽 홀스터에서 권총을 뽑았다. 금속광에 소스라친 여자가 반사적으로 몸을 뺐으나 내게 잡힌 손은 꿈쩍도 하지 않는다. 나는 그녀의 손에 권총 그립을 쥐어주었다.
“두 손으로 제대로 잡으시오. 총구는 아래로 하고. 함부로 움직이지 않는 게 좋을 거요.”
여자는 마른침을 삼키며 그립에 느릿느릿 손가락을 감았다. 약간 헐겁긴 하지만, 그래도 떨어지진 않을 정도. 나는 비로소 그녀를 놓아주었다.
“이름이 뭐요?”
“캐런……. 캐런 윌리엄, 힉, 윌리엄스요.”
눈물로 젖은 얼굴에 애써 아첨하는 듯한 미소가 떠올랐다. 움찔거리는 입꼬리가 필사적이다. 요란한 화장을 제외하더라도 괜찮은 낯짝이었다. 잡티 없이 하얀 피부, 푸른 눈동자, 밝은 색조의 타고난 금발. 묶여있는 네오나치 새끼들이 환장할 수밖에 없겠다.
‘그래서 더 죽이기가 곤란하지.’
귀한 만큼 포주가 많이 아까워하지 않겠는가. 이 캐런이라는 여자가 사라지면 절대로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다. 제 연줄을 총동원해서 「백색근위대」를 추적할 테지.
물론 방법은 있다. 우선은 내보내고서, 미행을 붙여두었다가 적당히 떨어진 지점에서 사고나 강도로 위장해 죽이는 것.
그러나.
“윌리엄스 양.”
“네, 네!”
“우리, 오늘 하루만 공범이 됩시다.”
보다 온건한 수단이 있는데 굳이 죽일 필요까지야.
여자를 거리로 내보내면 추가로 해킹해야 할 CCTV가 생기고, 주차된 차들의 블랙박스에도 유의해야 한다. 그것들이 죄다 중국제 IP 카메라일 리는 없겠지.
그리고 핸드폰. 이건 빼앗아도 문제고 빼앗지 않아도 문제다. 어느 쪽이든 의심스러운 흔적들이 남는다. 포주는 여자가 왜 연락도 없이 혼자 움직였는지 수상해 할 터.
차라리 공범으로 만드는 게 더 안전할 수 있었다.
“…….”
캐런 윌리엄스는 눈치가 꽤 빠른 여자였다. 내 말을 듣자마자 곧바로 묶여있는 네오나치들을 곁눈질하는 걸 보면. 총을 쥔 손의 검지에도 뻣뻣하게 힘이 들어갔다. 실수로라도 방아쇠울에 넣기 싫다는 듯한 반응이었다.
나는 비닐을 까느라 한쪽으로 치워진 테이블로 다가갔다. 언제 마지막으로 닦았는지 모를 테이블엔 손때 탄 포커 패와 마약을 흡입한 자국들, 아직 개봉하지 않은 마약 봉지들, 빨대처럼 말린 달러 지폐들, 비어있는 유리잔들, 그리고 마지막으로 버팔로 트레이스 버번 한 병이 놓여있었다. 저급한 깡패들에겐 어울리지 않는 좋은 술. 나는 입술 자국이 적고 깨끗해 보이는 글라스를 골라 3분의 1쯤 술을 채웠다.
제 자리로 돌아온 나는 캐런에게 잔을 내밀었다.
“자, 쭉 들이켜시오.”
멈칫거리면서도 순순히 입술을 댄 윌리엄스는, 잔을 기울여주는 대로 꼴깍꼴깍 받아마셨다. 의외로 술을 잘 못하는지, 다 마시고서는 자그맣게 크으- 소리를 내면서 미간을 찌푸린다. 하기야 얼굴이 가산점이라 다른 요구들은 관대했을 것이었다. 팔뚝엔 주사자국도 없다.
나는 비어버린 잔을 부하에게 휙 던져 넘겨주었다.
독한 술의 효과로 윌리엄스는 딸꾹질의 빈도가 줄어들었다.
“저…….”
“말씀하시오.”
“……저는, 진짜로 살려주시는 거죠?”
여전히 조심스럽지만 아까보다는 떨림이 줄어든 질문에, 나는 고개를 끄덕여보였다.
“곧 죽일 사람에게 장난치는 취미는 없소.”
“…….”
“그 총은 아주 조용한 총이오. 눈을 감고, 방아쇠를 당기고, 돌아서서 눈을 뜨고 떠나면 끝이지. 당신의 기억엔 총성도, 비명도, 핏자국도 남지 않을 거요.”
다만 보험으로서의 사진과 영상은 남겠지.
“이쪽을 보고 웃어 보시오.”
흠칫 어깨를 떠는 캐런. 시선은 동영상을 촬영하는 내 부하에게 향한다.
“연습이오. 너무 억지로 하는 것처럼 보여도 곤란하거든.”
그녀는 내 지시에 따르려 노력했으나 잘 되지 않았다. 아까의 아첨하는 미소처럼, 필사적이기에 자연스러움과 거리가 멀다. 나는 담담하게 이야기했다.
“너무 어렵게 생각하진 마시오. 당신이 원래 하던 일 아니오?”
“워, 원래 하던 일이요?”
“그렇소. 나쁜 남자들에게 미소를 파는 것. 내게도 한 번 파셨으면 하는데.”
캐런의 표정이 흐트러진다. 울상 섞인 웃음이나마 아까보다는 나았다. 나는 그 얼굴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조용하게 평했다.
“화장은 좀 지우는 편이 낫겠군. 너무 번졌어.”
“……가방에 클렌징 티슈가 있어요.”
“가방은 어디에 있소?”
“저 사무실, 히끅, 안에요.”
“가져와라.”
내 지시에 부하 하나가 가볍게 뛰어가 창고 사무실에 있던 핸드백을 찾아왔다. 캐런은 자신이 백을 받으려 했으나 내가 손을 펼쳐 멈춰 세웠다. 이 여자는 지금 자신이 뭘 들고 있는지 잊고 있었다. 캐런은 권총에 고정된 내 시선을 보고서야 아! 하며 당황했다. 멋모르고 올린 총구가 나를 향하려던 참이다.
“죄송, 죄송합니다!”
“아니오.”
위험했던 건 오히려 이 여자 쪽이었다. 주변의 부하들이 총구를 내린다.
슬슬 시간낭비가 귀찮아지기 시작했지만, 다그치면 도리어 더 많은 시간을 낭비하게 될 것이었다. 백을 찾아온 부하는 자그락대는 잡동사니들 사이에서 티슈를 찾아 나에게 건네주었다. 난 한 장을 뽑아 캐런의 얼굴을 손수 닦아주었다.
흠. 생각만큼 잘 안 지워지는데.
“저, 저기…….”
“가만히 계시오. 서툴더라도 이해하시고.”
이제 와서 권총을 다시 주거니 받거니 하는 것도 모양이 빠진다. 그리고 이런 상황에선 신사적인 태도를 견지하는 게 중요했다.
총구를 내린 채 순순히 얼굴을 맡기고 있던 캐런이 머뭇거리다가 조심스럽게 하는 말.
“……선생님(Sir)께선 그렇게, 음, 그렇게 나쁜 분은 아니신 것 같아요.”
그래. 이런 반응을 기다리고 있었다.
멍청한 반응이지만, 억압적인 상황은 원래 사람의 사고능력을 제한한다. 군대에 간 신병들이 원래부터 X신이라 X신 짓을 하나?
이 여자는 생사여탈권을 쥔 나에게 필사적으로 호의를 얻으려 하고 있었다. 필사적인 아첨은, 적어도 말을 하는 순간만은 한없이 진심에 가깝다.
이럴 때의 정중한 대응은 곧 스톡홀름 신드롬의 성립요건이었다. 반응을 보아하니, 이대로 일주일쯤 시간을 들인다면 거의 완벽한 세뇌를 노려볼 수도 있겠다. 그렇게까지 공을 들일 가치가 없을 뿐. 캐런의 턱을 잡고 좌우로 돌려본 난 티슈를 한 장 새로 뽑으며 말했다.
“나는 객관적으로는 나쁜 사람이 맞소.”
“아…….”
“그래도 여기 있는 잡것들보다는 나은 사람이겠지. 이들이 어떤 인간들인지는 당신도 알고 있지 않소?”
“네, 네! 알아요! 아주 나쁜 인간쓰레기들이죠!”
열심히 끄덕여 나와 공감대를 형성하는 캐런. 고객에게 사적인 감정 따윈 전혀 없었던 모양이다. 다 쓴 티슈를 바닥에 버린 나는, 캐런의 턱을 놓고 가장 가까이에 묶여있던 스킨헤드의 뺨을 후려쳤다. 퍽!
“어디다 대고 눈을 부라리나.”
피와 이빨이 튄다. 근력에 마력강화가 더해진 탓. 장갑을 끼고 있었기에 타격음은 가죽 터지는 소리를 닮았다. 캐런을 노려보았던 놈은 피를 물고서 본능적으로 고개를 숙였다. 골이 울리는지 머리가 오락가락 흔들거렸다.
티슈의 보습제로 미끈거리는 장갑을 닦아내며, 나는 갑작스러운 폭력에 위축된 캐런에게 차분하게 이야기했다.
“내가 여기에 있는 건 이들이 죄를 짓고도 벌을 받지 않았기 때문이오.”
“죄라면 어떤……?”
“사람들을 죽이고 다녔지. 당신처럼 약하고 선량한 사람들을.”
“아.”
약하고 선량하다는 건 당연히 사탕발림이다. 이 여자가 평소 어떤 사람인 줄 알고.
“예컨대 이놈을 보시오.”
난 뺨을 쳤던 놈의 머리를 붙잡고 강제로 고개를 들게 했다.
“눈가의 눈물 문신은 사람을 죽였다는 상징이오. 눈물이 일곱 방울이니 지금까지 일곱 명을 죽였을 거요.”
반드시 그렇지는 않다. 이 또한 허세일 가능성이 높으니까. 실제로는 그 반쯤 되려나.
그러나 여기서 진실은 중요한 게 아니었다. 내게 머리를 잡힌 놈은 결백을 주장하듯 웁웁거렸다. 온몸에 힘줄이 도드라지도록 몸을 비틀어대면서. 먼저 죽을 돼지가 제 순서를 예감한 것이다. 내 수신호를 본 부하들이 돼지에게 두건을 씌우고 자백제를 주사했다. 재갈 너머의 우우- 하는 소리가 한층 더 답답하게 줄어든다.
내가 물었다.
“말씀해보시오, 윌리엄스 양. 이런 연쇄살인범들이 멀쩡히 거리를 활보하고 다니는 현실은 뭔가 잘못되었다고 생각하지 않소?”
“맞아요, 선생님께 전적으로 동의해요!”
“나에게 복수를 의뢰한 노인은 가족과 이웃을 잃은 사람들의 대표였소. 난 이 살인자들의 고통이 그들에게 조금이나마 위안이 되길 바랄 뿐이오.”
“진짜로 훌륭하세요.”
열성적으로 끄덕이며 공감하는 이 여자는, 지금 심정적으로 나와 같은 편에 서서 자신의 역할에 몰입하고 있었다. 그것이 자신의 생존을 보장하는 전략이었기 때문이다.
한편으로는 내가 둘러댄 명분이 이쪽 동네의 정서에 잘 맞는 탓도 있을 것이다. 자경단에 대한 묘한 동경이 있는 나라이므로. 오죽하면 쫄쫄이 입고 히어로입네 하는 인간들이 실제로도 많을까. 그것도 전직 군인이나 격투기 선수 출신들이, 진지하게.
이쯤이면 된 것 같다. 복면을 벗고 머리를 쓸어 넘긴 나는, 동그래진 캐런의 눈을 들여다보며 말했다.
“윌리엄스 양. 그 총은 아주 조용한 총이오.”
캐런의 어깨가 뻣뻣하게 굳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