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제국사냥꾼-15화 (15/561)

#5. 짐승사냥 (3)

몰락한 어둠이 쇠약하게 일렁인다.

「나의 권능과…… 부활을…… 돌려다오…….」

콰쾅!

투명한 폭발이 뼈 무더기를 박살냈다. 내가 원격으로 격발한 염동(念動) 충격파다. 분노를 닮은 마력이 전신의 회로를 휘돈다. 이 압도적인 힘. 끌어올리는 대로 끓어오르는 마력으로부터 전능감이 느껴진다. 꿈이기에 가능한 일일 테지만, 지금의 나는 회로의 잠재력을 백 퍼센트 발휘하는 마법사였다. 현실에서는 최소 1년은 지나야 가능할 일.

폭발의 중심에서 다른 모든 뼈는 산산이 깨어졌으나, 치솟았던 짐승의 두개골만은 몇 번을 다시 튕겨 오른 끝에 온전한 모습으로 나뒹굴었다. 부러진 가지와 흩날리는 잎들이 그 위로 쏟아진다. 죽은 짐승은 서글프게 울었다.

「나의 것을…… 돌려다오…….」

“닥쳐!”

정면을 겨냥했던 손을 거두고, 허공을 움켜쥐며 강하게 내리친다. 그러자 강렬하게 타오르는 열선이 바람을 찢으며 굽이친다. 쐐애애액! 쾅! 이글거리는 채찍은 물리력을 동반한 열의 광란이었다. 스승의 두개골은 반동으로 지면에 처박혔다.

스스로를 변화시키는 정도가 고작이었던 과거의 스승과 달리, 나는 자유롭게 마법을 구사할 수 있었다. 이곳이 나의 정신세계이기 때문이다.

손끝이 감정에 떨린다.

스승의 망령이 흐느꼈다.

「너는…… 나의 힘과 지혜를 훔쳤다…….」

“누구를 원망하는 거냐.”

나는 끓는 속을 애써 가라앉히며 망령을 비웃었다.

“너를 죽인 건 다른 누구도 아닌 너 자신의 교만이었다. 아닌가?”

선민의식의 결정체인 이 X신 새끼가 나를 어린 황인종이라고 얕보지 않았다면, 그리고 마법사로서 처음으로 느껴보는 힘에 도취되어 마력을 낭비하지 않았다면, 초현실적 술래잡기의 결과는 완전히 달라졌을지 모른다.

애초에 이놈이 나를 골랐던 배경엔, 추적자들도 자신이 설마 황인종의 육체에 숨을 거라곤 생각지 못할 거라는 이유가 있었다. 그만큼 공고한 차별의식이 깔려있으니, 나를 우습게 여길 수밖에.

“…….”

생각을 이어가던 나는, 갑자기 내 모습이 한심하게 느껴졌다.

‘망령은 무슨 놈의 망령.’

저것을 비웃고, 조롱하고, 저것에게 화를 내며 폭력을 분출하고 싶다.

그러나 저기 있는 스승새끼는 스승새끼가 아니다. 그저 내 안에 남아있는 트라우마의 핵일 뿐. 꿈은 욕망을 반영한다. 오랜 시간이 흘렀어도 여전히 두려움을 극복하지 못한 난, 어떤 식으로든 두려움의 대상을 비웃고 싶었던 게 아닐까?

그렇다면 이것이 자위행위와 다를 바 무엇인가.

사고가 여기에 이르자 조용해진 짐승이 그 증거다. 난 늘어진 채 굉음을 내던 마력의 열선을 휘둘렀다. 쾅! 맹렬한 열압이 깨지지 않는 두개골을 후려쳐 숲 그늘 먼 곳까지 포탄처럼 쏘아 보냈다. 나는 마력을 차단해 불타는 채찍을 사라지도록 만들었다.

숲에 정적이 돌아왔다.

정신적 부하의 경감은 꿈 본연의 기능 중 하나. 이곳에서 나는 거대한 조직의 보스가 아니니,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얼마든지 추해져도 좋았을 것이다. 허상에 불과한 원수를 모욕하고, 역시 허상에 불과한 힘에 취하여 격노에 몸을 맡기는 것.

하지만 나 자신이 그런 내 모습을 용납할 수 없었다.

지금 해야 할 일은 이 드문 꿈을 기회로 활용하는 것이다. 얕게 든 잠은 아쉽지만, 그렇기에 회로를 운용하는 감각은 현실과 다를 바 없다. 훗날에 대비해 마법사로서 완전한 나의 역량을 시뮬레이션해볼 필요가 있었다.

‘누구보다도 내가 강해져야 한다.’

내 본신의 능력은 어떤 상황에서도 나를 지켜줄 최후의 보험이자, 런던을 향해 나아가는 과정에서 모든 마법적 변수에 대응할 만능의 열쇠다. 내가 제국주의자들의 예상을 벗어난 비대칭 전력으로 거듭날 때, 가장 오래된 마법사들은 진정한 의미에서 사냥감으로 전락할 터였다.

마법적 역량을 강화하고 실전경험을 쌓기 위하여 위험을 감수할 각오까지 하고 있던 참이다.

이 기이한 수면장애가 자주 찾아오기를 바라며, 나는 알람이 울리는 순간까지 치열하게 마력의 제어와 다양한 술식 연산을 시험해 보았다.

다음 날 오후. 후각이 예민하고 행동은 기민한 경호실 사냥개들은 「백색근위대」가 임대한 항만 창고를 특정해냈다. 경태는 사냥개 무리의 우두머리로서 대표로 보고했다.

“단순히 물건을 보관할 용도로만 쓰는 곳이 아닙니다. 집이 없는 놈들은 거기서 단체로 숙식을 해결한다더군요. 경비를 겸해서요.”

이 정보를 뱉은 놈은 경호팀의 차량 짐칸에 실려 있다. 때가 되면 바다 아래로 던져버릴 예정. 그 전에 죽여 고통을 덜어줄 이유는 없었다.

“작전은?”

“간단합니다. 야간에 들이쳐서 1차로 조지고, 연락망으로 허위정보를 유포시켜 그거 받고 오는 것들을 2차로 잡아 조지고, 마약이나 술에 취해 뒤늦게 흐느적대며 오는 것들이 분명히 있을 테니 그것들을 3차로 잡아 조지면 되지 않겠습니까?”

변칙적인 전략은 약자의 승부수다. 이쪽의 역량이 압도적이라면 최선은 역시 정공법이었다.

‘이것들은 특수부대급 전력이 자기네를 기습할 거라곤 상상도 못하겠지.’

고개를 끄덕인 나는 경호팀이 찍어온 사진 가운데 하나를 응시했다.

“이게 놈들의 사인이라고?”

“예. 개가 영역 표시하듯 여기저기 휘갈기고 다니는 표식입니다.”

사진 속엔 벽에 칠해진 그래피티가 있었다.

「ᛟᚱᛁᛟᚾ 14/88」

붉은 바탕에 검은 글씨. 옆에는 하얀 해골이 그려져 있다. 놈들의 상징색 3개가 다 들어가 있는 셈. 알파벳 대신 룬 문자를 쓰는 꼴이 유치하기 짝이 없다. 룬 문자로 써봤자 그 뜻은 결국 영어이기 때문이다. 낭비에 가깝게 남용된 붉은색이 천박하게 느껴졌다.

“더럽다는 점에서도 개 오줌과 비슷하구나.”

내 감상에 경태가 실소한다.

“과연 그렇습니다, 형님.”

ᛟᚱᛁᛟᚾ을 영어로 옮기면 ORION. 이는 백인 우월주의자들이 널리 쓰는 표어, 「우리의 민족이 곧 우리의 국가다.(Our Race Is Our Nation)」를 의미하는 두문자(頭文字)였다.

그리고 숫자 14/88 역시 각기 다른 표어의 상징이다. 14는 열네 개의 단어로 이루어진 문장 「우리는 우리 인종의 존재와 백인 아이들의 미래를 보호해야 한다.(We must secure the existence of our people and a future for white children.)」를, 88은 「히틀러 만세(Heil Hitler)」를 뜻한다.

수준 떨어지는 말장난들.

타격은 자정에 실시하기로 결정되었다. 부하들과 간단하게 도상연습을 마친 경태가, 부하들을 준비하라고 내보내고서 내게 묻는다.

“형님께선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어떻게라니?”

“굳이 같이 움직이셔야 할까 싶어서 말입니다. 저희가 다 제압해놓을 테니 좀 더 쉬시다가 결과만 접수하시면 되지 않겠습니까?”

“글쎄.”

이럴 때 함께 움직이는 이유는 보통 전력 분산을 피하기 위해서다. 나를 경호하는 업무가 일반적인 경호와 달리 선제적인 위협제거- 즉 광의(廣義)의 선제타격과 전장에서의 근접호위를 원칙으로 삼으며, 이에 따라 경호팀이 이름만 경호팀이지 사실상 최정예 친위대의 역할을 수행한다곤 해도, 결국 가장 중요한 역할은 나를 지키는 것. 내가 현장에 있으면 근접경호에 할당된 전력을 예비대로 활용할 수 있다. 그리고 예비대는 많을수록 좋은 것이다.

“아니. 역시 나도 가는 편이 낫겠다.”

경태는 두 번 묻지 않았다.

“옙. 그럼 그렇게 준비하겠습니다.”

그리고 시간이 흘렀다.

바다 건너 본사에 있는 현장지원팀은 낡은 창고와 창고 주변의 감시 카메라를 간단하게 해킹했다. 보안성이고 나발이고 없는 싸구려 중국제 IP 카메라들은 좀도둑을 막는 데나 쓸모가 있을 물건이었다. 아껴선 안 될 돈을 아끼는 놈들은 어디에나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내 사냥개들은 자정을 넘어서까지 현장에 돌입하지 못하고 있었다. 「백색근위대」 놈들이 변수를 만들었기 때문이다.

“작전을 하루 미룰까요, 형님?”

경태의 물음에 나는 시계를 보며 답했다.

“……조금만 더 기다려보지.”

“알겠습니다.”

세 시간 전, 웬 승합차 한 대가 창고에 와서는 육감적인 여자들을 내려놓고 떠나갔다. 야한 복장에 경박한 웃음들. 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노출이 많다. 출장을 다니며 몸을 파는 인생들이었다.

여자들까지 무더기로 실종시키는 건 바람직하지 않았다. 일이 많이 지저분해질 테니까. 일단 여자들을 파견한 업소에서 신고가 들어갈 것이고, 경찰은 이 사건을 가볍게 넘기지 않을 터였다. 집단감금, 살해, 인신매매 등. 네오나치 스킨헤드 집단이 여자들과 함께 사라진 시점에선 다른 결말을 상상하기가 어렵다.

요컨대 이 도시의 경찰이 아무리 가난하고 의욕 없는 조직일지라도 조용히 넘어갈 수가 없는 일이 되어버리는 것이다. 재수 없으면 연방 관할로까지 넘어갈 사건이다.

차에 탄 채로 대기하는 시간은 길고 지루했다. 순찰차 한 대가 바로 옆을 지나가기도 했으나, 탑승한 두 경찰의 무심한 시선은 이쪽을 스치듯 일별했을 따름이었다.

‘대충 노숙자라고 생각했겠지.’

빈부격차와 자동차의 나라인 이곳에선 차를 가진 노숙자들이 널려있다. 그리고 노숙자라고 반드시 무직자인 것도 아니었다. 대학교수와 공무원들조차 자기 차에서 먹고 자고 하는 판국이니, 경찰로선 우리를 눈여겨볼 이유가 없었다.

그렇게 얼마나 더 기다렸을까. 무전기가 울었다.

「차가 들어옵니다.」

창고 앞마당으로 들어오는 차는 아까 여자를 실어왔던 바로 그 승합차였다. 미국에서 흔한 포드 트랜짓이긴 해도 번호판을 보면 혼동할 여지가 없었다.

「VAGINA」

질(膣). 참 직관적이지 않은가. 포주가 번호판 구입에 돈 깨나 썼을 것이다.

승합차에서 내린 장년의 여성은 삐딱하게 서서 담배에 불을 붙였다. 그 담배가 다 타들어갈 즈음에야 그녀의 고객들이 그녀의 애들과 함께 창고 문을 열고 나왔다. 이어 장년의 여성과 스킨헤드 놈들 사이에 뭔가 이야기가 오가더니, 장년 여자가 웃음을 터트린다. 화대를 받은 그녀는 고개를 끄덕이곤, 자기네 애들을 차에 태워 떠나갔다.

한 명만 빼고.

경태가 당황했다.

“뭐야. 쟤는 왜 안 데려가?”

유일하게 남은 여자는 사내 중 하나에게 안기며 전문적인 교태를 부렸다. 그 사내는 여자의 허리를 안고 나머지 무리에게 들어가자는 턱짓을 해보였다. 딱 봐도 창고를 점거한 무리의 중심에 있는 인물이다. 간부 내지 보스쯤 되려나.

“새삼스럽구나. 상급자의 특권 같은 것이겠지.”

내 말에 경태가 한숨을 내쉬며 머리를 긁는다.

무언가의 소유나 특정한 행동에 대하여, 누구부터는 해도 되고 누구부터는 하면 안 된다는 식으로 서열을 확립하는 건 많은 조직들에게서 공통적으로 발견되는 생리다. 멀리 갈 것도 없이 옛 한국 군대의 비뚤어진 사병 간 군기가 그 예시였다.

한편으로 저건 과시를 위한 행동이기도 했다. 건달과 탕아들의 세계에서, 남성성의 과시는 다른 수컷들 위에 군림하기 위한 자격의 하나였으므로. 하룻밤에 일곱 번을 했다느니 여덟 번을 했다느니 하는 허세가 일종의 훈장처럼 통하는 것이다.

성능이 지나치게 좋은 눈으로 창고 안쪽을 투시하던 나는, 이윽고 결정을 내렸다.

“어쩔 수 없지. 이대로 진행하도록.”

“여자도 같이 묻어버립니까?”

경태의 반문에 나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건 좀 더 생각해보기로 하자.”

“알겠습니다. 1차 제압을 끝내고 보고하겠습니다.”

대답한 경태는 복면을 챙겨 차에서 내렸다.

‘마법으로 기억을 조작할 수 있다면 편했을 것을.’

그러나 그런 술식은 존재하지 않는다. 일단 뇌의 기능과 작동원리를 완전히 이해해야 비로소 가능한 일이거니와, 이해를 한다 해도 마력회로의 술식 연산능력이 그 이해를 따라갈 수 있느냐는 별개의 문제였다. 뇌만큼 복잡한 회로가 어디에 있나.

하물며, 만약 회로가 뚫린 마법사나 능력자가 상대라면?

택도 없는 일이다. 마력으로 뇌를 건드리자면 먼저 상대의 마력장부터 걷어내야 한다. 그 말은 즉 회로가 없어지다시피 한 상태여야 한다는 뜻.

나는 문을 열고 차 밖으로 나왔다. 주위에선 경태가 남겨놓은 애들, 2개 팀 8명이 누구는 벤치에 앉아, 누구는 벽에 기대어 한량인 척 사주를 경계하는 중이었다.

코트 자락이 흔들린다. 골목 사이로 부는 바람엔 외지고 빈곤한 거리 특유의 지린내가 섞여있었다. 항만의 배후지대, 공장과 창고와 주택이 뒤섞인 이런 동네에서 악취가 없을 수도 없는 노릇이지만.

내 눈엔 창고 안에서 벌어지는 일들이 낱낱이 들어왔다.

역시나, 내 사냥개들은 지나친 과잉전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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