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제국사냥꾼-14화 (14/561)

#5. 짐승사냥 (2)

「세탁……입니까?」

“그래. 대가를 돈 대신 무기로 달라고 해라. 아니면 형식적으로나마 돈을 받은 다음 주문을 넣는 식이어도 좋겠고.”

「…….」

3천 8백 퍼센트의 마진은, 단순하게 생각하면 총 한 자루를 서른아홉 자루와 교환할 수 있다는 뜻이다. 서로 다른 총기의 가격 차이는 감안해야겠지만.

거기다 우리가 보유한 물량을 미제에서 중국제로 세탁하고 나면, 국내에서든 해외에서든 쓰거나 팔기가 편해진다. 중국제를 운용하는 국가와 무장단체들이 죄다 제3세계에 분포하고 있어 추적이 그만큼 까다로워지는 까닭이다.

무기를 주고 무기를 받는 꼴이 우습기는 해도 충분히 성립 가능한 거래였다. 무기비축과 금전적 이익 모두를 달성할 수 있는 방법이다.

「저도 그 생각을 안 해본 건 아닙니다만, 그들이 과연 응하겠습니까?」

“왜, 자존심 때문에?”

「그렇습니다. 사정이 어찌됐건, 결국 미제에 비해 중국제를 싸구려로 취급하는 것입니다. 중국인들의 열등감이 폭발하겠죠.」

타당한 지적이다. 그러나 간과하는 부분이 있다.

“여기서도 중요한 건 형식이지. 우리의 거래 상대는 어디까지나 삼합회다. 상하는 건 삼합회의 체면일 뿐, 공산당의 체면이 아니야. 바로 네가 그렇게 만들어야 한다.”

조건만 맞는다면 협상은 끌어가기 나름인 법.

“놈들이 분개하거든 마진을 조금씩 깎아줘라. 낮아지는 대금을 보면 실무자가 누구든 욕심이 생길 테지.”

기존 제안을 받아들인 시점에서 예산은 이미 승인을 받은 상태일 테니까. 추가협상을 보고하지 않으면 이중장부를 쓸 수 있다.

「해 먹을 기회를 만들어주라는 말씀이시군요.」

“그래.”

나는 중국에 대해 한 가지 확고한 믿음을 가지고 있다. 중국이라는 나라에 부패하지 않은 구석은 없다는 믿음을. 이번 일을 담당하는 게 국가안전부 제3국일지, 아니면 총참모부 직속 행동소조(行动小组)일지는 몰라도, 나랏돈으로 주머니를 채울 기회가 생기면 절대로 놓치지 않을 것이다. 중국 공산당은 부정축재 분야에선 세계 최고의 전문가 집단이니까.

“가능하겠지?”

「해내겠습니다.」

수연의 대답엔 망설임이 없었다.

“다른 일은 없고?”

「예.」

“알았다. 나중에 보자.”

건조한 통화를 끝낸 나는 객실에 비치된 신문을 읽으며 시간을 보냈다.

그렇게 한 시간쯤 기다렸을까. 밖으로 나갔던 애들이 저마다 가벼운 가방을 하나씩 휴대하고 돌아왔다. 나갈 때나 들어올 때나 의심을 피하고자 분산해서 움직인 건 물론이다. 가방의 내용물은 절반가량이 무기와 탄약이었다.

유령 총기(Ghost gun). 일련번호가 없어 추적이 불가능한 자동화기들.

미국 법률에 따르면 시민은 면허가 없더라도 판매 이외의 목적으로 총기를 제조하여 보유할 권리를 지닌다. 또한 총기 하부 리시버의 완성도가 80% 미만인 경우, 총열을 비롯한 다른 모든 부분이 완벽하더라도 총기로 간주되지 않는다.

이 두 조항의 존재로 인해, 미국에선 미등록 총기를 구하기가 정말로 쉬운 편이었다. 필요한 건 믿을 수 있는 상인에 대한 정보뿐.

캘리포니아는 주법(州法)으로 고스트 건을 강하게 규제하고 있으나, 규제가 아무리 강력한들 단속이 여의치 않으니 헛일이었다. 모든 시민들이 잠재적인 암거래상인 마당에 무슨 수로 국토 전역을 단속할 것인가?

가장 넓은 내 객실은 한데 모여 장비를 확인하는 녀석들로 잠시 부산스러워졌다.

경태는 내 몫의 권총을 조립해서 두 손으로 건네주었다.

“동네 양아치들 상대로는 이 정도로도 충분할 겁니다. 형님께서 직접 손을 쓰실 일은 없어야 하겠지만 말입니다.”

길쭉한 권총(Ruger)엔 소음기와 광학조준기가 붙어있었다. 나는 그립을 쥐고 손목을 까닥거려보았다. 소구경이라 위력은 낮은데 무게는 보통의 권총들보다 오히려 무거운 편. 그 무게가 앞으로 쏠려있기까지 하여, 쥐는 느낌이 좋다고는 못하겠다.

그러나 이 총의 강점은 강력한 소음제어에 있었다.

경태가 창문을 가리키며 제안했다.

“한번 쏴보시죠.”

빗방울이 부딪히는 유리 너머엔 어둑한 바다가 물결치고 있었다. 경태는 제가 창문을 열었다. 방울방울 창틀을 넘어온 비가 바닥의 카펫을 점점이 적신다. 나는 선착장 너머에서 너울대는 해면을 조준했다.

탁, 탁, 탁!

자그맣게 튀는 쇳소리. 총성은 이게 전부였다. 반동마저 미미하다 보니 쏴도 쏜다는 실감이 약하다. 희미하게 새는 연기와 바닥을 구르는 탄피들만이 조용한 사격을 증명했다. 도시 한복판에서 난사를 하더라도 소리로는 쫓기 어려울 물건.

총구를 내리자 지켜보던 경태가 말했다.

“마음에 드십니까?”

난 선선히 끄덕였다.

“정품이구나. 탄은 아음속탄이고?”

“예.”

아음속, 즉 소리보다 느린 탄은 충격파를 만들지 않기에 초음속보다 정숙하다.

나머지 팀원들의 무장도 대부분은 소구경탄(.22LR)을 쓰는 저소음 화기들이었다. 낮은 위력이 걸림돌이긴 하나 사람을 죽이는 덴 지장이 없다. 쏘는 사람의 실력이 좋다면 더더욱 그러하고.

부하 하나가 탄피를 수거하는 동안, 나는 잠시 내 권총을 바라보았다.

‘이것만 해도 총기난사범들의 애호품 아닌가.’

이 총은 학교, 우체국, 잡화점 등지에서 수많은 사람들을 죽여 왔다. 그런데도 어설프게 아는 놈들은 탄이 약하다는 이유만으로 애들이 쓰는 총이라고 비웃는다.

드르륵, 탁.

창문을 닫은 경태는 테이블 위에 지도를 펼쳐놓고 간단한 브리핑을 실시했다. 여기엔 밖에서 알아온 정보가 포함되어 있었다. 주어진 시간이 짧긴 했으나, 딱 봐도 갱 같다 싶은 놈들을 잡아서 기술적으로 고통을 주면 이 일대의 세력정보를 얻는 건 일도 아니었다.

“일단 우리가 족칠 「백색근위대」의 패션 코드인데.”

나는 옵저버다. 경태는 나를 신경 쓰지 않고 부하들을 상대로 이야기했다.

“이놈들의 색상은 적, 백, 흑이야. 나치 깃발에서 따온 색이라나 뭐라나. 검은 옷 입고 하얀 모자 쓰고 빨간 신발 신은 놈들은 백이면 백 사냥감이라고 봐도 돼. 대부분 아디다스 짝퉁이니까 알아보기 쉬울 거고…….”

미국의 길거리 갱은 집단별로 특성이 뚜렷하게 구분된다. 손짓, 춤, 노래, 구호, 그래피티, 상징적 기호, 문신, 그리고 색상과 복장. 특히 색상과 복장은 피아식별의 가장 중요한 수단이다. 현지인들이 우연의 일치로라도 이 패션을 따라할 일은 없다고 봐도 좋았다. 멋모르는 외지인이나 관광객이 아닌 이상에야.

브리핑은 길게 이어지지 않았다. 교차검증까지 마친 정보가 그리 많진 않았던 까닭이다. 길거리 갱이 그리 복잡한 사냥감은 아니기도 하고. 경태가 손뼉을 쳤다.

“일은 내일부터 시작할 거니까, 오늘은 일단 여기서 해산.”

연일 장거리를 이동하느라 여독이 쌓인 상황이다. 만전을 기하기 위해, 사냥개들에겐 충분한 휴식이 필요했다.

‘쉴 수 있을 때 쉬어둬야지.’

경태 말마따나, 제국주의자들의 첨병과 마주칠 가능성이 제로는 아니니.

“아, 참.”

인사를 남기고 나가던 경태가 멈칫 돌아선다.

“수연 누님에겐 연락해보셨습니까?”

“그래.”

“무슨 일이었답니까?”

“중국 놈들이 무기를 사겠다고 강짜를 부렸다더구나.”

설명은 이 한마디로 충분했다. 수연의 재량권은 어지간한 사안이라면 사후승인으로 처리할 수 있는 수준. 고로 내게 결재를 요청했다는 사실 자체가 거래의 규모와 난해함을 직관적으로 드러낸다. 경태는 유감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이번 출장에 누님이 합류하긴 글렀네요.”

“그렇겠지.”

“아쉽습니다. 「대통령」이 있던 숲은 놓쳤어도 나머지는 같이 보고 싶었는데.”

입맛을 다신 녀석은 이번에야말로 “쉬십시오.” 하고서 제 객실로 돌아갔다.

나는 테이블 위에 남은 브리핑의 흔적을 내려다보았다.

‘형편없군.’

오클랜드의 경찰력에 대한 평가다.

사냥터에 대한 지식은 사냥감에 대한 지식만큼이나 중요하다. 내 사냥개들이 이 도시의 치안행정 데이터를 긁어온 건 당연한 일이었다.

이 도시에선 하루 평균 열 건이 넘는 총격 사건이 보고된다. 그러나 경찰의 출동은 그 절반에도 못 미쳤다. 대응속도도 형편없기는 매한가지. 신고가 접수되었는데도 몇 시간이 지나고서야 현장을 살펴본 사례들이 수두룩했다. 총격전이 일상인 도시인 것이다. 과연 「베이비 이라크」라는 별명을 얻을 만하다.

그래서 경태는 가급적 조용히 일을 진행하되, 유사시 고화력 지원화기 사용까지도 가능하다고 보았다.

물경소사(勿輕小事).

우리가 사자 무리라면 사냥감은 쥐새끼들이다. 동네 깡패들 상대로 다소 과한 준비이긴 하나, 작은 일에 최선을 다하는 건 큰일을 망치지 않는 지름길이다.

나는 손끝으로 지도 위를 쓸었다.

총격전이 주로 발생하는 장소는 정해져있었다. 이러한 장소- 스트리트와 애버뉴들은 서로 다른 조직들의 경계(境界)를 나타내고, 총격전의 빈도와 강도는 각각의 조직들이 서로에게 얼마나 적대적인가를 보여준다. 경태는 붉은 펜으로 동그라미를 여러 번 그려놓았다.

‘가장 뜨거운 곳은 동쪽의 84번가와 헤겐버거 로드, 남쪽의 23번가, 북쪽의 맥아더 교차로, 서쪽의 항만지역…….’

항만이 최우선 수색지역이긴 해도, 여기서 성과가 없다면 다른 곳들로 수색을 넓혀야 할 것이다.

그러나 경찰의 검거기록과 거주지별 인종 및 소득분포 지도를 대조해보건대 그렇게 귀찮아질 확률은 희박해 보인다. 항만을 제외한 나머지는 죄다 흑인과 히스패닉이 치고받는 장소들.

유색인종이 지배적인 이 시궁창에서 피부 하얀 찌끄러기들이 끼어들 수 있는, 그리고 끼어들어야만 하는 장소는 역시 항만이 유일하다.

짧게는 이틀. 길게는 일주일. 스킨헤드 패거리를 말살하기까지 이보다 긴 시간이 걸린다면 개인적으로는 제법 수치스러울 터.

눈꺼풀 안쪽이 뜨겁다. 지긋지긋한 피로감이다. 나는 자료를 한데 치운 뒤, 탄을 채운 권총을 베개 아래 쑤셔 넣고는 침대에 드러누웠다. 저녁을 먹기 전까지 잠시 눈을 붙일 요량이었다. 언제나 잠이 모자란 내게 쪽잠은 불가피한 습관이므로.

창가에서 부서지는 빗소리가 단조롭다.

잠의 나락으로 떨어질 듯 말 듯, 멀어지다 가까워지길 반복하던 의식은 가까스로 깊은 곳까지 가라앉았다.

꿈.

내 삶의 가장 큰 고통 가운데 하나.

커다란 짐승의 유해와 갑작스레 마주한 나는 반사적으로 거리를 벌리며 마력회로를 활성화시켰다. 마법사의 전투태세. 그러나 짐승은 죽어있었고, 움직임을 보여주지 않았다. 살이 다 썩고 없어져 두개골 안쪽엔 공허한 어둠이 고여 있을 뿐인 뼈 무더기. 나는 그 스산한 전모를 재확인하고 내가 꿈속에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왜냐면 이것은…….

“망할 새끼.”

보기만 해도 이가 갈린다. 기억의 미궁을 헤매며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나를 쫓다가, 어이없게도 마력 고갈로 뒈져버린 나의 스승.

더불어 몸이 뜻대로 움직인다는 건 이 꿈이 평소와 같은 악몽은 아니라는 의미다. 생각이 여기에 미치자 나는 곧 울릴 알람이 아쉬워졌다. 드물게 꾸는 평범한 꿈. 얕으나마 긴 잠을 잘 수 있는 기회인데.

‘아니, 평범하진 않은가.’

이러한 몽중 자각은 스승과의 추격전이 내 정신에 남긴 부작용이다.

여유가 생기니 주변이 눈에 들어온다. 거대한 나무들로 가득한 숲. 가장 가까이에 있는 건 마력회로가 뚫린 「대통령」이었다. 평범한 꿈답게 인상적이었던 기억이 배경으로 깔린 것. 그러나 현실과 다르게, 「대통령」의 마력장은 내 마력장을 위축시키지 않았다. 꿈이기에 가능한 비현실성이겠지.

산책로의 울타리에 기대어 서서, 나는 스승새끼의 유해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정확히는, 인간의 흔적이 남아있는 두개골의 까만 눈구멍 한 쌍을.

내가 어둠을 보니 어둠도 나를 본다.

단순한 착각이 아니었는지, 어둠이 말을 걸어왔다.

「내…놓아라…….」

꿈이 빚어낸 환청인가, 내 무의식에 자리 잡은 두려움인가. 그것도 아니면 아직까지 질기게 남아있는 망령의 한 자락인가.

「내……놔…….」

나는 신경질적으로 대꾸했다.

“뭐라는 거냐. 골수까지 다 빠진 시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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