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하얀 추장 (1)
카지노의 추장은 애리조나 주 투손(Tucson) 남쪽에 위치한 샌 재비어(San Xavier) 원주민 보호구역으로 나를 초대했다. 과거엔 부족의 영토가 아니었으되 연방정부 및 주정부와의 거래를 통해 새롭게 얻어낸 땅. 다이아몬드 카지노 또한 이 구역에 위치하고 있었다.
우리 차량 대열이 보호구역으로 진입하자 도로변에서 대기하던 경찰이 정지신호를 보냈다. 붉은 피부를 지닌 두 경관이 비어있는 양손을 펼친 채로 다가와 창문을 두드린다. 운전석에 앉은 부하가 창문을 열자 두 경관 중 선임자가 말을 걸었다.
“안녕하십니까, 여러분. 여행하기에 좋은 날이지요?”
부하가 대응했다.
“그렇습니다. 오는 길에 비가 내린 걸 제외하면 말이죠.”
여기는 사막이다. 우기가 아니니 비 같은 건 내린 적이 없다.
경찰이 무뚝뚝한 표정으로 답한다.
“환영합니다. 추장님께서 기다리고 계시는 곳으로 에스코트해드리겠습니다.”
우리가 탄 차량의 번호를 미리 전달하긴 했으나 한 번 더 확인하는 절차였다. 차는 그대로인데 사람이 다를 수도 있으니까. 차량 번호 등의 정보와 암구호는 별개의 채널로 주고받는다.
목적지는 카지노가 아니었다. 선두의 경찰차는 빈곤한 거주지의 모랫빛 비포장도로로 들어섰다. 바퀴자국을 따라 희뿌연 먼지가 연막처럼 일어난다. 직선이라곤 없는 길과 아무렇게나 흩어져있는 목조 주택들이 황량함을 더했다.
이윽고 정지한 곳은 다른 집들과 다를 바 없는 평범한 주택이었다. 먼저 내린 경태가 의례적으로 주변을 확인한 뒤 문을 열어주었다. 차에서 내리자마자 사막의 열기가 강렬하게 엄습했다. 북쪽으로는 오래된 성당의 백색 첨탑이 보인다. 피부 하얀 침략자들의 유산이었다.
쿵. 낡은 순찰차 문짝을 세게 닫은 경관이 펼친 손으로 주택 입구를 가리켰다.
“들어가십시오.”
나는 경태에게 살짝 끄덕여보였다. 집 안에 아무런 위험이 없다는 몸짓이었다. 이렇듯 나를 경호하는 건 일반적인 경호와 성격이 완전히 다른 일이다.
집 안은 일체형 에어컨의 웅웅거림과 인공적인 냉기로 차있었다. 해묵은 필터 특유의 냄새가 난다. 실내의 모습도 전형적인 가정집인 걸로 미루어, 부족민 중 하나에게 협조를 받은 듯했다. 아니면 의도적으로 그렇게 꾸며놓은 안전가옥이거나.
앉아서 기다리던 늙은 추장이 지팡이를 짚고 절뚝거리며 일어나 나를 맞이한다.
“어서 오시오, 회장. 직접 보기는 오랜만이구려.”
“반갑습니다, 추장. 건강해보여서 다행입니다.”
“당신이야말로. 당신은 세월이 흘러도 도무지 변하질 않는군. 이마에 주름 한 줄이라도 생길 법하건만……. 아무튼 이쪽으로 앉으시오.”
자리를 안내하는 추장은 세련된 양장을 입고 있었다. 나는 그와 낡은 식탁을 사이에 두고 마주앉았다. 추장은 내게 우선 사과부터 건네 왔다.
“당신처럼 중요한 고객에게 시간과 장소를 일방적으로 통보하다시피해서 미안하오. 하지만 최근 부족 차원에서 대응해야 할 정치적인 문제가 생기는 바람에, 지금이 아니고선 따로 시간을 내기가 어려웠소이다. 오늘만 해도 새벽에야 D.C로부터 돌아온 것이고, 얼마 안 있어 다시 떠나야 한다오. 부디 양해해주길 바라오.”
“그거야 전화상으로 이미 괜찮다고 말씀드렸습니다. 당신과의 직접적인 면담은 드문 요청이기도 하고. 헌데 어떤 문제인지 알 수 있겠습니까?”
질문을 받고 잠시 가만히 있던 추장은, 이내 머리를 흔들며 눈썹을 찡그렸다.
“내가 입을 다물어도 어차피 조금만 알아보면 드러날 일이니…….”
“……?”
“문제는 구리광산이요.”
추장의 눈에 분노와 짜증이 스친다.
“노천광을 파먹는 광업회사가 부족의 땅을 몇 해째 침범하고 있는데, 주정부에서 광업회사 편을 들어 수익 분배비율을 후려치려 드는 게 아니겠소?”
“그래서 연방정부와 씨름하고 계십니까?”
“말하자면 그렇소. 우리 부족정부를 음지에서 돕고 있지. 현재까진 아무런 소득이 없지만.”
“……광업회사에게 머리가 있다면 그쪽으로도 로비를 했을 테니까요.”
“이를 말이겠소.”
언제나 있는 일이다. 말이 보호구역이고 말이 원주민 자치구역이지, 그 땅에서 돈이 되는 무언가가 발견되면 어떻게든 헐값에 빼앗아가려고 드는 게 바로 이 나라 미국이었다. 내가 혐오해마지않는 제국주의적 행태.
어차피 드러날 약점이니 괜한 허세로 신뢰를 손상시키지나 말자, 라는 게 근심을 솔직히 털어놓는 추장의 속내인 듯했다.
내가 호응하듯 물었다.
“그러고 보니 일전에 아파치 족도 비슷한 일을 겪지 않았습니까? 그 사건이 아직 법정에 계류 중이라면 힘을 합쳐 한 목소리를 내자고 제안해보시지 그러십니까?”
이 또한 과거 추장에게 들었던 이야기였다. 그들의 문제도 구리광맥이었을 것이다. 벌써 몇 년 전의 일이었으나, 이런 종류의 법적 분쟁은 금방 끝나는 법이 없다.
내 말에 추장이 냉소를 머금는다.
“벌써 그렇게 하고 있소이다.”
“유감입니다.”
“연방정부 그 빌어먹을 놈들. 마약팔이들보다 신용이 없는 사기꾼들! 내 부족의 말로는 욕조차 해줄 수 없는 게 안타까울 지경이오.”
「사막의 사람들」이 쓰는 모어(母語)엔 욕설이 존재하지 않는다. 이는 북미 원주민 언어들 대부분의 공통점인데, 원주민들의 문화에선 특정 개인을 저주하거나 모욕하는 게 매우 강한 금기로 통했기 때문이다.
나는 작은 기대감이 들었다.
‘일이 의외로 쉽게 풀릴 수도.’
지금 추장에겐 정계에 먹일 로비자금이 절실할 것이다. 고객의 정보를 팔라는 것도 아니고, 우리와 거래를 할 의사가 있는지 확인이나 해달라는 요청 정도는 얼마간의 돈을 받고 받아들여 줄 법했다. 상대가 하필 중남미 카르텔이라는 게 변수이긴 하지만.
가뜩이나 추장의 사업은 전성기에 비해 이익이 큰 폭으로 감소한 상황이었다.
이유는 단 하나. 암호화폐의 등장.
암호화폐는 범죄조직들의 거래와 자금세탁, 자산은닉 등을 너무도 편리하게 만들어주었다. 최근 규제와 감시를 도입하는 국가들이 늘고 있어 추장의 사업이 바닥을 치고 반등하기 시작했으나, 그럼에도 80년대 말에서 2000년대 후반까지의 황금기와 비교하면 아직은 형편없는 수준이었다.
그래도 그게 반드시 악재였던 것만은 아니다. 추장은 고객들의 계좌 보안과 칩 위조 방지에 암호화폐의 블록체인 기술을 접목함으로써 카지노의 신뢰도를 제고하는 데 성공했다.
당장 내가 카지노 측의 자금 유용을 걱정하지 않는 이유 중 하나가 여기에 있었다. 그 블록체인 암호화는 우리 조직 내에서도 기술적 검증을 마친 상태다.
추장이 묻는다.
“더운 길을 오셨는데 뭔가 마실 것이라도 드리리까?”
난 필요 없다고 하려다가, 그의 기미를 살핀 뒤 다른 의도를 감지하곤 고개를 끄덕거렸다.
“부탁드립니다.”
“내 기억이 맞다면 술은 썩 좋아하지 않으실 테고.”
“차 종류면 뭐든 좋습니다.”
“그렇군. 마샤트!”
계단이 삐걱거리는 소리가 나더니 젊은 혼혈 여성 하나가 모습을 드러냈다. 거기에 있다는 건 진작부터 알고 있었다. 그래도 몰랐던 척 잠시 일어나 인사를 건넨다.
“손녀분도 와계셨군요.”
손녀는 내 인사를 절제된 정중함으로 받았다.
“다시 뵙게 되어 기쁩니다, 회장님.”
추장이 손녀에게 부탁했다.
“나와 손님에게 냉차를 한 잔씩 내주겠느냐?”
“네, 할아버지.”
내가 다시 자리에 앉자, 손녀는 이쪽으로 개방된 주방에서 차를 준비하기 시작했다. 추장은 먼 걸음을 한 중요 고객에게 후계자의 눈도장을 찍어두고 있는 것이었다. 늙은 자신의 신변에 이상이 생기더라도 뒤가 준비되어 있노라고. 그러니 만에 하나의 경우에도 부족과의 거래를 끊지 말아달라고.
마샤트(Mashath). 「사막의 사람들」 부족의 언어로 달을 뜻하는 이름이라고 소개받은 기억이 난다. 처음 볼 때만 해도 앳된 인상이었는데, 성숙해지고 나니 혼혈의 특색이 당시보다 훨씬 뚜렷하게 드러났다.
사실은 할아버지인 추장부터가 혼혈이었다. 그것도 1세대 혼혈이라, 외모가 백인에 가까운 구석이 많았다. 이는 건드려서 좋을 게 없는 추장의 역린이다. 수연이 따로 배경을 조사한 바로는 어느 집단에도 속하지 못하고 괴롭게 산 세월이 길었다고 한다.
차는 금세 준비되었다. 도토리로 만드는 차는 이 척박한 땅에서 자급자족이 가능한 몇 안 되는 기호식품 가운데 하나였다.
차를 내려놓은 마샤트가 물러나는 대신 가만히 서서 무언가를 기다린다. 정해진 절차처럼 추장이 내게 물었다.
“손녀가 동석해도 괜찮겠소? 잠자코 듣기만 할 거요.”
“상관없습니다.”
고객마다 대하는 방식이 달라지는 현장을 이렇게 가르치는 것이다. 내 동의를 얻은 추장은 손녀가 앉기를 기다려 입을 열었다.
“이제 진짜 대화를 해봅시다. 회장께서 날 보자고 한 이유가 뭐요? 당신쯤 되는 사람이 몸소 움직인 걸 보니 보통 일은 아닐 것 같소만.”
“사람을 소개받고 싶어서 왔습니다.”
“사람을? 나에게?”
“예.”
“어떤 사람을 원하는 거요?”
“중남미 카르텔들을 피해 당신이 제공하는 서비스를 이용한 사람. 그중에서도 출신 카르텔 내부에 연줄이 남아있는 사람. 그런 사람이 있다면, 돈을 받고 자기 연줄을 팔 생각이 있는지 물어봐주시길 바랍니다. 카르텔은 대형 조직일수록 좋습니다.”
나를 바라보는 추장의 시선에 냉기가 서린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이 나에게 마약팔이들과의 다리를 놓아 달라?”
“그렇습니다.”
내가 중요 고객이 아니었다면 추장은 이 시점에서 자리를 박차고 나가버렸을 것이다. 그러나 어려워진 사업과 부족의 형편이 그를 붙잡아두고 있었다.
여기까지 계산하고서 직설적으로 털어놓은 것이다.
추장이 노기를 억누르며 묻는다.
“설마 당신도 마약을 취급하려는 거요? 지켜야 할 선이라는 걸 아는 사람이라 믿었건만.”
“마약이 엮인 용건이면 내가 당신에게 부탁을 할 리가 없잖습니까. 나 또한 마약은 싫어합니다. 당신만큼은 아니더라도.”
“그러면? 그들에게 무기라도 팔아보려고? 아니면 인신매매? 그것도 난 도와주기 싫소.”
“역시 아닙니다. 이상한 오해를 하시는군요.”
두 번을 부인하자 서릿발 같은 시선이 누그러진다.
“사지도 않겠다, 팔지도 않겠다. 어느 쪽도 아니라면, 대체 목적이 뭐란 말이오?”
“그걸 꼭 확인하셔야겠습니까? 내 모든 신용을 걸고 맹세컨대, 당신에게 해가 되는 일은 아닙니다.”
카지노와 내 조직의 관계는 다분히 신용에 의지하고 있다. 즉 신용을 걸고 맹세한다는 건 당신과의 거래를 재검토할 수도 있다는 위협이다. 은근한 협박을 받고 흠칫했던 노인은, 이내 다시 안색을 굳혔다.
“그래도 알아야겠소. 당신이 지금 대단히 이례적인 의뢰를 하고 있다는 사실을 유념하시오.”
“…….”
여기서 의도를 노출해도 좋은 걸까 싶었지만, 궁리해보아도 노년의 완고함을 허물 다른 방법이 없었다. 이 노인이 그랬듯이, 나 또한 솔직함으로 신뢰를 사야 할 때였다.
“하는 수 없군요. 내가 원하는 건 그들이 보유한 잠수정입니다.”
“잠수정?”
내 대답을 곱씹던 노인이 일단은 납득해주었다.
“잠수정이라……. 하긴, 당신 같은 상인에겐 탐이 나는 물건일 테지. 마약팔이 놈들이 그걸로 얼마를 남겨먹는지 상상조차 하기 힘드니까.”
잠수정 한 척은 한 번의 운항에서 최대 4억 달러의 매출을 올린다. 그런 잠수정을 수십 척씩 운용하는 중남미 카르텔들은 상상을 초월하는 자금을 굴리고 있을 것이었다. 지난 세기 한 시대를 풍미했던 콜롬비아의 마약왕을 비웃을 정도로.
‘카르텔 놈들이 상장이 가능했으면 시가총액으로 애플을 능가했을지도 모르지.’
매출에선 카르텔이 애플에 지더라도 이익률만은 마약이 스마트폰을 압도할 테니까.
이쪽 바닥에서도 장사의 기본은 자리다. 세계 최대의 시장과 세계 최대의 원산지 사이에 끼어있는 환상적인 입지가 멕시코와 콜롬비아 등 중남미 지역의 마약상 놈들을 정상으로 밀어 올려주었다. 그중 최고는 물론 멕시코였다. 내 조직 역시 상당한 규모를 자랑하지만 멕시코 놈들에 비하면 손색이 있다. 어디까지나 규모만 놓고 비교했을 때.
추장이 의문스러워한다.
“녀석들이 그걸 팔려고 하겠소이까?”
“그건 당신께서 소개해줄 사람의 연줄이 얼마나 좋은 연줄인가에 달려있겠지요.”
“……차라리 해안경비대의 누군가를 매수해서 그들이 나포한 잠수정을 어떻게 빼내보는 쪽으로 알아보는 건 어떠하오?”
유감스럽게도 수연 녀석이 이미 검토해본 대안이다.
“해상순찰에 걸리는 건 죄다 잠수도 못 하는 고물들입니다. 건조 중인 현장을 급습해서 확보한 최신형도 있다지만, 그렇게 희소한 물건은 감시가 너무 삼엄해서 안 됩니다. 완성품조차 아니고 말이죠.”
“…….”
진지한 침묵 속에서 시선을 찻잔에 둔 채 숙고하던 추장은, 5분쯤이 지나서야 결심이 섰는지 나와 다시금 눈을 맞췄다.
“좋소. 의뢰를 받아들이지. 그러나 통상적인 업무가 아닌 만큼 통상적이지 않은 대가를 받아야겠소.”
“얼마를 원하십니까?”
내 말에 추장이 고개를 젓는다.
“통상적이지 않은 대가라고 했잖소. 돈 말고 다른 것을 원하오. 여기엔 협상의 여지가 없소.”
이렇게 못 박는 추장은 대단히 단호했다. 조금 불쾌감이 느껴질 정도로.
“……다른 거라면 뭘 말씀하시는지?”
“짐승들을 좀 사냥해 주셔야겠소.”
“짐승들?”
내가 되묻자 추장이 끄덕인다.
“그렇소. 잡아 죽여야 할 짐승 같은 놈들이 있어서 말이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