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제국사냥꾼-10화 (10/561)

#3. 대통령 (2)

반시간이 흘러 어느덧 해발 5천 피트까지 높아진 도로는, 빛바랜 아스팔트가 백색에 가까운 잿빛으로 얼어 있었다. 길 가장자리로 속도제한 표지판과 운행주의 경고판이 스쳐지나간다. 후자는 스노우 체인 장착을 당부하는 내용이었다. 다른 차량들이 멈춰 서서 체인을 장착하는 모습도 보였으나, 본사 현장지원팀이 준비한 차량은 4륜구동에 스노우타이어를 장착하고 있었으므로 지체할 필요가 없었다.

오래된 세쿼이아 군락이 가까워질수록 심장 뛰는 속도가 빨라졌다. 눈에 들어오는 마소의 흐름이 심상치 않았기 때문이다. 정제되지 않은 마력의 갈피도 섞여있다. 가까이에 최소 하나 이상의 각성체가 있다는 증거.

각성체의 회로는 주변의 마소를 빨아들이며, 그 빨아들이는 힘을 장악력이라 한다. 그리고 그 장악력이 발휘되는 범위는 회로역장 내지 마력장이라 부른다.

나는 입술이 마르는 것을 느꼈다.

‘근원이 보이지도 않을 거리까지 역장을 전개하는 각성체라…….’

예상 밖이었다. 이곳 세쿼이아 국립공원의 나무들이 거대하고 오래된 것들이라고는 하나, 벌써부터 회로를 개방할 정도는 아니라고 여겼다. 8천 7백 년간 균사의 영토를 확장시킨 오리건 주의 버섯이나, 최소 8만 년을 존재해온 것으로 추정되는 유타 주의 금빛 포플러 나무쯤은 되어야 비로소 가능성이 있겠다고 생각했지.

이 세쿼이아 숲을 찾은 건 어디까지나 각성 이전의 초기 전조현상을 보겠다는 이유에서였지만, 아무래도 나는 거대함에서 비롯되는 잠재력을 과소평가했던 모양이다. 어쩌면 장구한 세월을 견뎌온 영혼의 질이 또 다른 변수가 되었을지도 모르고.

내가 지닌 마법적 지식들은 기본적으로 내 머릿속에서 뒈져버린 스승새끼의 영을 소화한 결과물이다. 그 오만한 새끼는 꼴에 정말 많은 것을 알고 있었지만, 그렇다고 마법에 관한 모든 이치에 통달했던 건 아니었다. 따라서 그 지식에 기반한 나의 판단엔 오류가 있을 수 있다.

하기야, 스승새끼도 종교적 편향과 인간우월주의에 빠져있기는 마찬가지였지.

“이쯤에서 차를 대겠습니다.”

경태의 부하 녀석이 핸들을 돌리며 속도를 줄였다.

차에서 내린 나는 산책로 입구를 통과하자마자 초조하게 남쪽으로 가는 길을 찾았다. 밀착 호위로 따라붙은 경태가 당황한 기색으로 말했다.

“어, 형님. 여기서 가장 큰 나무는 반대쪽으로 가야 있다는데요. 「제너럴 셔먼」이라고.”

“안다. 하지만 내가 봐야 할 건 그놈이 아냐.”

“벌써 뭔가 찾아내신 겁니까?”

“……넌 내가 무엇을 보고 있는지 상상조차 못할 거다.”

나는 나의 역장이 쥐어짜이듯 수축하는 것을 느꼈다. 서로 다른 역장이 영역다툼을 벌일 때 벌어지는, 장악력 대 장악력의 순수한 힘겨루기. 이 주변의 마소에 대한 나의 장악력이란, 이제야 겨우 전모가 보이는 거목의 힘에 비하면 실로 보잘 것 없는 수준에 불과했다.

‘내 회로가 완전히 정상화된 후에는 어떨까?’

대충 어림해본 난 내심 머리를 흔들었다. 그래도 밀린다. 회로의 밀도와 정교함만으로는 극복하지 못할 체급의 격차라는 게 있었다. 시간이 흐를수록 거목의 회로 또한 나름의 자연적인 최적화를 거칠 것이고.

끌어들인 마소를 얼마나 효율적으로 사용하느냐는 별개의 문제지만, 어쨌든 이 거목의 영역 내에선 어떤 마법사도, 어떤 원시능력자도 제 실력을 발휘하지 못할 것이다. 주변에 분포하는 마소를 최대 효율로 끌어다 쓸 수가 없으니까. 나무 자체를 파괴해버리지 않는 이상에야.

이윽고 나는 발걸음을 멈추었다. 어디선가 물 흐르는 소리가 들려온다.

비수기라 그런지, 아니면 이게 이 공원의 가장 유명한 나무가 아니어서 그런지, 주변엔 우리 일행 이외의 사람이 보이지 않았다. 당연히 우려하던 감시자도 없다. 관광객 흉내를 내는 경호팀이 멀찍이들 서서 바깥 방향을 경계할 뿐. 옆으로 온 경태가 나무 앞의 명패를 읽는다.

“「더 프레지던트」……. 대통령이라니, 이름부터 거창합니다. 이놈이 형님께서 찾으시던 그겁니까?”

난 눈도 돌리지 않고 대답했다.

“그래. 어쩌면 이 시대 최초의 자연 각성체일 거다.”

“각성이요? 그 뭐냐, 마력회로 뭐시기가 이미 뚫렸다는 말씀이시네요?”

경태 녀석은 고개를 꺾어 높고 거대한 수관을 올려다보았다.

“어이구야. 이 「대통령」 녀석, 크기는 진짜 엄청나게 크군요. 높이가 어지간한 아파트보다 높겠는데……. 나무가 아니라 무슨 절벽을 보는 것 같네.”

뒤로 갈수록 혼잣말에 가까워지는 감탄이다.

압도적인 질량의 「대통령」에게 다가간 나는 결이 거친 표면 위로 손바닥을 대보았다. 목피 안쪽, 마소와 마력의 물살이 촉각으로 느껴지는 듯하다. 그저 보기만 하는 것과는 또 다른 감각. 내부의 흐름이 급류와 폭포를 닮아있는 회로였다. 혼잡하고 비효율적이지만, 아름답다.

내 눈에 비치는 마소와 마력은 서로 패턴이 다른 광점(光點)의 물결이었다. 그러므로 「대통령」은 땅 속 깊은 곳의 뿌리로부터 저 높은 수관에 이르기까지 다채로운 색상으로 물들어있는 빛의 나무였다. 불완전한 회로를 이탈한 마력은 오로라를 닮은 빛무리가 되어 은하수처럼 밀려나간다.

나는 감탄 섞인 한숨을 내쉬며 경태에게 경고했다.

“경태야.”

“예.”

“너희는 나를 중심으로 대략 5미터를 벗어나지 말고, 저쪽에 있는 애들은 좌우로 비키라고 해라. 거긴 마력이 새는 방향이다.”

“엇.”

경태가 지시할 것도 없이, 동행한 부하가 얼른 무전을 넣었다. 슬쩍 돌아보면, 해당 방위의 경호원들이 흩어지는 게 보인다. 나는 다시 시선을 앞으로 되돌렸다.

눈어림으로 반경 5미터는 내가 여기서 장악력을 발휘할 수 있는 최대의 범위였다. 마소를 끌어들이는 장악력은, 기술적으로 이용하면 마소나 마력을 역으로 밀어낼 수도 있었다. 난폭한 비정제 마력에 피폭당하지 않으려면 나와 가까운 곳에 머물거나, 아예 자리를 피해버리는 방법밖에 없다.

그래도 겨우 5미터라니. 지금의 내가 작고 초라하여 실소가 나올 것 같았다.

물론 이게 부정적인 감정만은 아니었다. 자조감보다는 감동이 더 크다. 이 나무는 내가 이제껏 보아온 그 어떤 것보다도 훨씬 더 아름다웠다.

한편 「대통령」의 회로를 해석하는 데엔 그리 긴 시간이 필요치 않았다. 아직 회로의 복잡성이 낮은 데다, 유의미한 기능을 수행하는 회로는 거기서도 다시 일부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다만 인간의 회로와는 분명한 차이가 있었다. 이 차이는 앞으로 점점 더 확대되어 갈 것이다. 종마다 발현되는 능력의 양상이 다를 거란 가설에 한층 더 무게가 실린다.

“형님.”

겪어본 적 없는 미지를 앞두고 경태가 조심스러운 목소리를 낸다.

“그래서 이 녀석은 가진 능력이 뭡니까?”

“능력?”

“예.”

“이제까지보다 더 잘 자라겠지. 튼튼해지기도 할 것이고.”

“……그게 답니까?”

“이거야말로 생명의 원초적인 욕구 아니냐.”

단순하게 표현하긴 했어도 이건 정말 대단한 능력이다. 성장에 필요한 에너지 일부를 마력으로 대체하게 될 테니.

이 거목이 앞으로 얼마나 더 거대해질지 사뭇 기대가 된다. 생체강화로 에너지가 남아돌기 시작한 식물들은 과연 어떤 변화를 보여줄까. 그 변화가 어떠한 양상으로 나타나든, 인류 문명은 녹음(綠陰)으로 가득한 진통을 겪어야 할 것이다.

대답을 들은 경태는 어색한 표정을 지었다.

“맞는 말씀이긴 한데, 식물한테 욕구라는 표현은 다소 안 어울리는 것 같습니다.”

“왜?”

“식물은 지능이 없잖습니까.”

“누가 그러냐.”

“예? 당연한 거 아닙니까?”

“세상에 당연한 건 없어.”

“어…….”

“때로는 상식을 의심해라. 식물에겐 지능도 있고 인지능력도 있다. 인간의 것과는 원리와 형태가 다를 뿐.”

인간이 인간의 기준으로 정한 지능만을 진정한 지능이라고 믿으며 식물을 우습게 여기는 꼴들을 보고 있노라면, 자기네 문명만이 진정한 문명이라고 주장하며 온 세상을 식민지로 도배하고 다녔던 제국주의자 새끼들과 닮아있다는 생각이 든다.

나는 제국주의가 싫다. 옳고 그름을 떠나, 그냥 제국주의가 제국주의라서 싫다.

“납득이 안 되는 모양이지?”

내 물음에 경태가 도리질을 친다.

“설마요. 이 김경태에게 형님 말씀은 언제나 옳습니다. 단지 이제까지 알던 거하고 완전히 반대되는 내용이다 보니깐 실감이 안 나서 말이죠. 하하.”

“흠.”

이런 대화가 여러 번이라 슬슬 피로감이 느껴지지만, 미래를 대비할 지식이 오로지 나에게만 있는 걸 어쩌겠는가. 앞으로를 생각할 때 이놈은 머리가 깨어있어야 하는 놈이다.

지구상에 존재하는 생체질량의 99.5%가 식물이며, 이는 앞으로 등장할 각성체의 태반이 식물일 것을 예고한다.

“쉬운 예를 하나 들어주마.”

내가 입을 열었다.

“많은 수목(樹木)들은 제 친족을 알아본다.”

“와.”

“유전적으로 가까운 친족끼리는 경쟁을 하지 않거나, 하더라도 끝장을 보질 않아.”

요컨대 식물들에게도 가문이 있다. 인간 사회가 그렇듯이, 유전자를 보존하고 확산시킨다는 측면에선 당연한 행동전략이다.

“허나, 같은 종이어도 ‘혈통’이 다른 나무들 간엔 치열한 경쟁이 벌어진다. 조금이라도 더 많은 영역을 차지하려고 적대적으로 뿌리를 뻗어가는 전쟁이야. 그래서 밀도가 높은 숲에선 땅 속을 보면 그 일대에 뿌리를 내린 나무들의 친족관계를 알 수 있지.”

“거 신기하네요. 뇌가 없는데 그런 판단을 어떻게 내리는지…….”

여기까지 답변하자니 정보량이 너무 많다. 번거로워진 나는 길게 나와야 할 말들을 한마디로 줄였다.

“식물은 뿌리가 뇌다.”

“…….”

입을 다문 경태 녀석이 새삼스럽게 제 발 아래를 살핀다. 그런다고 평범한 눈에 표토 아래가 보일 리 없는데도.

사실 내 말은 줄여도 지나치게 줄여놓은 지식이다. 식물의 지능은 뿌리 이외의 부분에도 분산되어 있으니까.

그러나 뿌리의 비중이 지극히 큰 것만은 맞다.

그 근간이 되는 건 뿌리의 끝부분에 존재하는 근단(根端)이다. 근단 세포들은 서로에게 전기신호와 화학신호를 보냄으로써 동물의 뇌와 기능적으로 유사한 네트워크를 형성한다.

길가에 널린 들꽃들조차 천만 단위의 근단 세포를 지닌다. 눈앞의 「대통령」 같은 거목이라면? 수를 헤아리기보단 무게를 재는 편이 더 빠를 것이다. 굳이 이런 거목이 아니더라도, 어느 정도 크기가 있는 나무들의 인지 네트워크 중량은 인간의 뇌보다 훨씬 더 무겁다. 인지가 이루어지는 방식 면에서 차이가 있을 따름. 그 차이는 상호간의 교감을 거의 불가능하게 만들어놓을 만큼 크다.

그래서 나는 동물은 불쌍하니까 식물만 먹자고 떠드는 연놈들을 X신 같다고 생각한다.

‘생명을 소중히 하려면 그냥 굶어 뒈져야지.’

그 난폭한 야만인들이 내비치는 도덕적 우월감은 나로 하여금 스승과 런던 새끼들의 역겨운 선민의식을 떠올리게 만든다.

상념의 흐름을 끊은 나는 몸을 돌려 「대통령」을 등졌다.

“이 녀석은 이만하면 됐다. 다른 놈들을 둘러보러 가자.”

경태가 뜻밖이라는 표정을 지었다.

“벌써 다 보신 겁니까?”

“이제 막 열린 회로이니 당장은 더 볼 게 없어. 훗날 다시 온다면 모를까.”

마음 같아선 회로의 발달과정을 길게 지켜보고 싶지만,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일이다. 이 나무를 통째로 옮겨 심을 수도 없는 노릇이고.

최소한 인간과는 원리가 다른 생체강화 회로운용의 단초를 보았으니, 이 먼 곳까지 발걸음을 한 보람은 있다 하겠다. 프로그래밍으로 따지면 코드를 수집한 셈. 이런 식으로 코드 라이브러리를 늘려 가면 언젠가는 유용하게 쓸 날이 올 테지.

이러한 노력이 제국주의자들이 보유한 지식과 유물들을 능가하길 바랄 따름이다.

이후 나는 「상원(The Senate)」, 「맥킨리」, 「링컨」, 「프랭클린」을 순서대로 둘러본 뒤 마지막으로 이 국립공원에서 제일 거대하다는 「제너럴 셔먼」 앞에 섰다.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나무의 기준으로는 세상에서 가장 거대한 놈이기도 하다.

경태가 가까운 관광객들을 경계하며 묻는다.

“어떻습니까?”

“다른 것들보다는 발달이 좀 늦구나.”

“에이, 덩칫값 못하는 친구네요.”

생체질량이 클수록 각성 확률이 높아진다지만, 그래도 결국 확률은 확률이다. 마소의 흐름이 빛의 균열처럼 「제너럴 셔먼」 곳곳을 파고든 걸 볼 수 있었으나, 아직까진 유의미한 회로를 이루지 못한 상태였다.

“회장님.”

누군가와 통화를 하던 홍영식 차장이 나를 돌아본다.

“다이아몬드 카지노로부터의 연락입니다.”

나는 홍 차장으로부터 전화기를 넘겨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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