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모색 (4)
질문을 받은 수연이 침착하게 답변한다.
“맞습니다. 그렇기에 「사막의 사람들」이 중개하는 밀입국은 다른 밀입국 경로들과 달리 카르텔과의 접점이 없겠죠. 카르텔로부터 몸을 피하고 싶은, 그러면서 추장이 카르텔과 거래하지 않는다는 사실까지 아는 관계자가 이용하기에 좋을 경로입니다.”
“……과연.”
미국-멕시코 국경과 가까운 원주민 부족들의 공통점 가운데 하나가 바로 밀입국 중개업이었다. 큰돈이 되진 않을지언정 없는 것보단 낫고, 심리적으로 미국보다는 중남미 사람들을 더 가깝게 여기는 탓도 있다. 원주민들 입장에서 미국은 침략자들이 세운 국가일 뿐이니.
「사막의 사람들」 부족은 대다수가 미국 영내에 있지만, 나머지 소수는 멕시코 땅에도 거주한다. 독자적인 밀입국 사업을 벌이기에 좋은 조건이었다.
나는 손끝으로 테이블을 천천히 두드렸다.
“그렇구나. 그중에서도 추가금을 내고 다른 서비스까지 의뢰한 놈들을 찾으면 어떤 식으로든 카르텔과 관계되어있었을 확률이 높겠어. 그게 좋은 인연은 아니더라도 말이야.”
“카르텔과 척을 졌다는 게, 알고 지내던 구성원 모두와 사이가 틀어졌음을 뜻하진 않습니다.”
“안다.”
한 조직 내에서도 은원관계가 복잡하게 얽혀있는 놈들이지.
그 복잡함의 원인은 시도 때도 없이 벌어지는 권력투쟁과 내부단속이었다. 숙청을 피하기 위해, 혹은 정적들의 공격을 무마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가족과 친구, 측근들을 내치는 경우도 많다.
그리고 카지노가 제공하는 ‘다른 서비스’란 신분위조, 자금세탁, 이동수단과 안전가옥 제공 등을 포함하는 것이다. 그런 서비스들을 이용하는 데엔 적잖은 비용이 필요하고, 그런 비용을 지불할 여력이 있는 시점에서 그 밀입국자는 평범한 밀입국자가 아니게 된다.
수연이 말했다.
“신용을 중시하는 추장이 고객의 정보를 팔지는 않겠으나, 연락이 닿는다는 전제 하에 본인의 의사를 확인해달라는 것 정도는 조건에 따라 받아들일 가능성이 있다고 봅니다.”
하여간 머리가 잘 돌아가는 녀석이야. 내가 가만히 바라보자 수연은 시선을 겸손히 내리깔았다.
그나저나 카르텔의 전 관계자인가…….
국경을 넘었다고 금수가 사람이 될 린 없으니, 추장의 도움을 얻어 미국으로 간 연놈들 중엔 살던 대로 살다가 인생이 고달파진 얼간이들도 적지 않을 것이었다. 그런 얼간이들일수록 제 연줄을 파는 데 거부감이 없을 터.
이건 정말 시도해볼 가치가 있겠다. 파키스탄 정보국과 엮일 위험이 있는 필리핀 반군보다야 카지노 추장 쪽이 훨씬 나은 상대이잖은가.
“그렇잖아도 조만간 미국에 다녀오려고 했는데, 그때 한번 타진해보도록 하자.”
“알겠습니다.”
습관처럼 메모를 하던 수연이 살짝 갸우뚱한다.
“조만간 다녀오려 하셨다면, 다른 용무도 있다는 말씀이십니까?”
“뭐, 용무라면 용무겠지. 거대한 것들을 내 눈으로 직접 봐두려고 한다.”
“거대한 것들……이요?”
“지구상의 모든 생물들 중에서 질량이 독보적으로 큰 것들 말이다.”
“…….”
“어제 내가 원시마법을 각성할 확률은 그 생물이 살아온 시간과 생체질량에 비례할 거라고 했던 것, 기억나나?”
“아.”
감을 잡지 못하던 녀석이 이제야 탄성을 삼킨다. 내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 거대한 유기체들은 조만간 각성의 조짐들을 드러내기 시작할 거야. 어쩌면 그것들의 회로가 처음 열리는 순간을 목격하게 될지도 모르고……. 나는 그런 현상들을 관찰함으로써 무언가 가치 있는 지식을 얻을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하고 있다. 어떤 마법사도, 어떤 제국주의자도 경험해보지 못한 일이지.”
들은 내용을 곱씹던 수연이 자연스러운 질문을 꺼낸다.
“그 거대한 것들이 혹시 고래입니까?”
아마 대왕고래를 떠올렸을 것이다. 상식적인 연상이지만, 틀렸다. 고래를 볼 거면 꼭 미국으로 갈 필요가 없었다.
“고래는 가장 거대한 포유류일 뿐, 가장 거대한 생명체가 아니야. 내가 북미 땅에서 보려는 건 식물과 균류(菌類)다.”
“균류라는 건 설마…….”
“버섯이지.”
짧은 침묵이 흐르고 나서, 수연은 보기 드물게 선명한 곤혹감을 드러냈다.
“……고래보다 질량이 큰 버섯이라는 게 존재합니까?”
“한다.”
고래는 가장 무거운 개체라도 200톤을 밑돈다. 그러나 내가 보고자 하는 버섯은 균사(菌絲)를 뻗은 면적이 965헥타르에 추정중량 3만 7천 톤짜리 단일 생명체다.
확답을 듣고 입을 다무는 수연. 이에 잠자코 듣고만 있던 경태가 슬그머니 손을 들고 나와 수연의 눈치를 번갈아 살폈다.
“저기, 궁금한 게 있습니다만-”
“뭐냐.”
손을 든 경태가 장난기 가득한 표정으로 질문한다.
“초능력 같은 걸 얻을 확률이 생체질량에 비례한다고 하셨는데, 그럼 과체중인 사람이나 비만 환자가 날씬한 사람보다 빨리 각성할 가능성이 높습니까?”
“맞다.”
“세상에, 형님께서 농담을 하시는 날이 오다니. 하하하하!”
웃음을 터트렸던 경태는, 내 침묵이 길어지자 제 웃음을 느리게 거두었다.
“하하……하…….”
“…….”
“어…….”
“…….”
“혹시 농담이 아니었던 겁니까? 진짜로 체중이 많이 나가면 더 빨리 각성한다고요?”
“내가 언제 너희에게 농담하는 거 봤냐.”
“맙소사.”
충격을 받은 경태가 입을 다물지 못했다.
“와, 이거 진짜 맙소사네요. 뱃살이 두꺼워야 영혼도 살찌는 거였다니! 영혼이라는 게 그런 거였습니까? 고칼로리는 옳았구나!”
“진정해라. 정신사납다. 설마하니 영혼이 그렇게 쉽게 성장할까.”
“그러면요?”
“영이 나무라면 생체는 화분이야. 나무가 자라려면 분갈이가 필수지만, 분갈이를 해준다고 나무가 즉각 성장하진 않지. 거기엔 종에 따른 차이도 있거니와, 살아온 세월 역시 영향을 미친다고 했을 텐데.”
“아, 참. 그랬었죠.”
납득했던 경태가 다시 의아해한다.
“근데 그 말씀은 비만 환자의 빠른 각성하고 모순되지 않습니까? 아주 오래된 비만 환자라면 또 모를까.”
“그건 조금 다른 이야기다.”
나는 잠시 숙고하고서 대답을 이었다.
“영의 질량……. 이게 물질적인 개념은 아니다만, 편의상 일단 질량이라 하마. 그편이 이해하기 쉬운 비유가 될 테니.”
“예.”
“핵심은 같은 질량이라도 부피와 밀도가 달라질 수 있다는 거다. 영은 생명에 깃드는 것. 고로 육신이 커질수록 영이 마소와 닿는 표면적이 증가하는 셈이지. 질량과는 무관하게.”
“아하. 각설탕과 그냥 설탕이 녹는 속도의 차이 뭐 그런 거네요?”
“현상은 달라도 원리는 비슷해.”
“이야…….”
같은 맥락에서, 생체질량 대비 각성률은 곤충처럼 자그마한 동물들이 인간보다 훨씬 높게 나타날 것이다. 각각의 개체만 놓고 비교하면 당연히 인간이 압도할 테지만, 곤충은 설탕이고 인간은 각설탕이니까.
동요를 가라앉힌 경태가 진지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형님. 저 지금 미래가 보이는 것 같습니다.”
“갑자기 그게 무슨 소리냐?”
“형님은 안 보이십니까? 방구석에 처박혀 하루하루 몸무게만 늘려가던 사람들이 「드디어 내 세상이 왔다!」라거나 「나는 선택받은 인간이었어!」라고 흥분하면서 세상으로 쏟아져 나올 미래가요.”
“…….”
“요즘 시대가 시대라 그런 애들 많잖습니까. 살기는 팍팍하고 희망은 없고 해서 다 체념하고 삶 자체를 놓아버린, 정부가 실업자 통계에서도 빼버리는 친구들 말입니다.”
쓸 데 없이 현실성 넘치는 예언이었다.
“그래봐야 잠깐일 거다.”
“어째서입니까?”
“암에 걸려 죽는 녀석들이 속출할 테니까.”
“예? 암이요?”
“덜 여문 마력회로는, 마소를 마력으로 전환하는 과정에서 새는 양이 많을 수밖에 없다.”
“……새면 어떻게 됩니까?”
“정제되지 않은 마력은, 살아있는 것들에 한하여 방사선과 유사한 영향을 미친다. 완전히 같은 건 아니어도.”
“어이구…….”
마소, 그리고 마력은 영혼을 지닌 유기체에 깃들어 현실을 비틀어놓는 힘이다. 그 힘을 다스리지 못하면 가장 먼저 비틀리는 건 유기체 그 자신일 수밖에 없었다. 여기엔 세포와 유전자도 포함된다.
“능력을 쓰면 쓸수록 회로가 그 능력에 맞게 굳어가겠다만, 거기까지 이르기 전에 죽을 놈들이 결코 적은 수는 아닐 거야. 그리고 그 연이은 죽음들은 나머지 전체가 몸을 사리도록 만들기에 충분할 흉조겠지.”
따라서 새롭게 나타날 각성자들의 미래는 둘 중 하나다.
‘능력이 안정되어 법칙의 반열에 들거나, 아니면 암에 걸려 뒈지거나.’
다소 어렵겠지만, 단시간에 한계를 넘은 힘을 사용하면 암이 아니라 다발성 장기부전으로 죽을 수도 있겠고. 이런 면에선 동물보다 식물이 더 우월하겠다. 철저한 모듈화가 이루어진 생물이므로.
“불쌍한 친구들. 기껏 방에서 나온 보람도 없이 암으로 가버릴 수도 있다니……. 매미 같겠네요, 매미. 몇 년 동안 땅 속에 있다가 나와서는 한 달인가? 햇빛 보다가 죽어버리는.”
경태 녀석이 말은 이렇게 해도 유감이 깊은 표정은 아니었다.
수연이 건조하게 한마디 했다.
“매미가 낫지. 짝짓기라도 하니까.”
“아 누님. 그거는 조금 말씀이 심하십니다……. 그리고 얼마나 많은 매미들이 짝을 못 찾고 죽는지 아십니까?”
“안됐다고 하는 소리야. 우리가 경고해줄 의리는 없지만.”
이 녀석이 남을 함부로 비웃을 성격은 아니다. 곧 죽일 놈이라도 진지하게 죽이지.
어쨌든, 수연의 말처럼 미리 경고를 해줄 의리는 없다.
어차피 능력자들이 나타나기 시작하면 국가 단위의 관심이 집중될 게 뻔하고, 온갖 검사와 연구가 이루어지는 상황에서 비정제 누수 마력의 부작용쯤은 금세 발견될 것이었다. 그 정보가 초기에는 다소 부정확할 수 있을지라도.
경태가 자세를 바꾸며 가벼움을 덜어낸다.
“자, 농담은 여기까지 해두고……. 경호실장으로서는 미국으로 가시는 게 다소 위험하지 않은가 싶습니다.”
“런던 놈들이 나랑 같은 생각을 할까봐서?”
“예. 그 뭐냐, 요번에 브리즈번이랑 싱가포르 다녀올 때도 말씀하셨잖습니까. 이 이변을 느낀 마법사라면 누구나 형님과 같은 생각을 했을 거라고.”
“그랬었지.”
“이번에도 마찬가지 아니겠습니까? 그 버섯이 얼마나 큰지는 몰라도, 그렇게 큰 버섯이 지천에 널려있을 것 같진 않은데요. 런던 측과 날짜와 동선이 겹칠 확률이 너무 높습니다.”
타당한 판단. 그러나 정답은 아니었다.
“꼭 그렇지만은 않아. 지난 여행에서 경계했던 건 당장의 충돌이 아니라 훗날의 추적 가능성이다. 지금 당장은 놈들이 외부로 전력을 내보낼 여유가 없을 거야.”
“어째섭니까?”
“이렇게 중요한 시기엔 누구도 자리를 비우고 싶어 하지 않을 테니까.”
“어, 거기도 뭐 정치질 같은 게 있나보죠?”
“당연하지. 출신성분들이 죄다 귀족인데 계파 갈등이 없을 리 있나.”
그것도 탐욕스럽고 독선적이며 자존심이 하늘을 찌르는 제국주의자 놈들이.
“애초에 내 스승새끼부터가 「황금기의 눈」을 독차지하겠답시고 동지들을 배신한 놈 아니냐. 그놈들의 지도부인 「원탁내각」은 지금쯤 칼 차고 들어가던 영국의 옛 의회 이상으로 개판이 되어 있을 거다.”
보유한 유물 및 장서들의 접근우선권과 앞으로 구축할 질서, 그리고 그에 따른 가문의 이권 등을 두고 치열한 알력다툼을 벌이는 중이겠지.
경태가 끄덕인다.
“말씀은 이해했습니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형님의 추측일 뿐인 거죠? 바깥으로 세력을 투사할 여유가 없을 거라는.”
“일단은 그렇다.”
“뭐가 또 있습니까?”
“버섯의 크기 말이다.”
“예.”
“그거 면적이 여의도의 두 배다. 가장 큰 놈 하나만 따져서.”
“…….”
“그리고 그 일대는 죄다 산과 숲으로 가득한 국유림이지. 거기서 날 포착하려면 얼마나 많은 인력과 자원을 투입해야 할 것 같으냐? 만에 하나 그 정도의 인력이 움직인다고 치자. 과연 내 눈을 피할 수 있을까?”
“거의 불가능하겠네요.”
“그렇지?”
제국주의자 놈들은 현재의 「원탁내각」에 대한 반란모의까지 염두에 두고 있을 것이다. 공격자든 방어자든, 마법사뿐만 아니라 사병집단까지도 밖으로 내보내기 싫을 게 뻔하다. 수연에게 말했듯이, 마법사도 무방비로 총에 맞으면 죽는 건 똑같으니까.
하물며 당분간은 나처럼 회로를 조정하느라 마법을 제대로 쓰지도 못할 처지.
난 귀족 놈들의 권력욕과 생존본능을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