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제국사냥꾼-7화 (7/561)

#2. 모색 (3)

워커를 보내고서 남은 것은, 끼니를 거르며 대기한 두 측근에게 늦은 저녁을 먹이는 일이었다. 상을 새로 내오도록 지시하자 수연 녀석이 버려질 음식들을 아까운 눈으로 응시했다. 그러나 내 보좌역쯤 되는 애들 입에 누가 먹다 남긴 음식이 들어가선 안 되는 것이었다. 불가피한 상황이 아니고서는.

난 워커를 상대하는 내내 쓰고 있던 실리콘 마스크를 벗겨냈다. 피부를 닮은 실리콘이 찌직거리며 뜯어진다. 외견상의 위장이 필요할 때마다 쓰는 물건이지만, 이 답답한 느낌엔 도무지 적응하기가 어렵다. CIA 놈들은 이걸 착용한 채로 며칠을 버티기도 한다는데 그게 어찌 가능한지 의문이다.

기다리는 시간, 경태가 따뜻한 찻잔을 감싸 쥐며 묻는다.

“형님. 아까 말씀하신 펩시는 대체 뭐였습니까? 설마 펩시맨의 그 펩시입니까?”

“맞다.”

해당 일화를 대강 요약해주니 경태가 신기해한다.

“콜라 업계에선 만년 2인자인 주제에 엉뚱한 데서 굉장했군요.”

“소련에 보드카가 부족해서 벌어졌던 일이지. 그때 안 부족한 게 있었겠느냐만.”

“엥? 원랜 콜라 값을 보드카로 냈나 보죠?”

“그래. 네가 좋아하는 스톨리치나야로.”

“아, 스톨리치나야! 맛있죠 그거! 펩시가 보드카 고르는 안목이 있었네요.”

경태는 좋은 보드카일수록 알코올향이 커피 원두향처럼 느껴지니 어쩌니 하며 스톨리치나야에 대한 찬사를 늘어놓았다. 그러는 사이 아까보다는 간소해진 상이 차려지고, 두 녀석이 식사를 시작했다. 먹는 데 열중하는 모습들을 보니 둘 다 허기가 지긴 했던 모양. 나는 둘이 배를 채우는 동안 차를 홀짝이며 가만히 사색에 잠겼다.

‘전쟁이라…….’

내게 전쟁이라도 치를 셈이냐고 물었던 워커는, 그러나 자신이 정곡을 찔렀음을 꿈에도 알지 못할 것이다. 내 각오를 알게 된다면 당장이라도 관계를 끊으려 들겠지.

이곳 대구, 캠프 헨리(Camp henry)의 무기 도둑들에겐 테러리스트와 직거래를 할 배짱이 없었다. 더군다나 내 목표인 영국은 미국의 핵심 동맹인 「다섯 개의 눈」 중 하나이므로, 걸렸다간 범죄자를 넘어 국가반역자에 준하는 취급을 받을 게 뻔했다.

물론 여기서 확보한 무기들이 영국에서 쓰일 가능성은 희박하다.

일단 가져가는 것부터가 난관이다. 테러 위협이 나날이 증가함에 따라 영국은 하늘과 바다의 경계를 강화해왔으며, 다섯 눈의 첫 번째다운 정보수집능력을 보유하고 있었다.

따라서 장기간의 항공밀수는 모험에 가깝고, 원양어선이나 화물선을 이용한 분선밀수도 상대적으로 안전할 뿐 상당한 위험을 무릅써야만 한다. 들여갈 물건을 다른 지역에서 구한다고 해도 마찬가지다. 운반할 양이 워낙 많아야 말이지.

허나, 런던의 마법사들과 싸우게 된다면 언젠가는 결국 런던을 쳐야 한다. 방어전만 치러서는 절대로 이길 수 없을 싸움이기에. 아직 벌어질지 확실치도 않은 전쟁이지만, 터지고 나서 방법을 찾으려 들면 너무 늦을 것이다.

보다 확실한 루트는 없으려나.

생각의 흐름은 자연스레 중남미 카르텔 놈들에게 닿았다.

‘놈들처럼 잠수정을 쓴다면 어떨까.’

그놈들이 마약을 채워 멕시코 만에서 출항시키는 잠수정들은 북대서양 난류를 타고 유럽까지도 간다. 크기가 작으니 엔진을 끄고 해류의 힘으로만 움직이면 영국 근해에 깔린 해저 감시망(SOSUS)도 돌파 가능하다.

아예 그놈들에게 잠수정 건조를 주문해도 괜찮겠다. 운송 자체를 위탁하는 게 베스트겠으나, 녀석들이 마약 대신 무기를 싣도록 만들려면 1회당 최소 3억 달러는 지불해야 할 것이었다. 코카인을 실었을 때의 기대수익만큼은 맞춰줘야 하니까. 아무리 나라도 그렇게 막나가는 지출은 감당 못한다. 잠수정을 직접 사는 편이 낫다.

문제는 돈만 있다고 살 수 있는 게 아니라는 점.

놈들의 구형 반잠수정이 2백만 달러 선으로 추정되고, 완전 잠항이 가능한 최신형이라도 1억 달러를 넘진 않을 테지만……. 최신형은커녕 폐기 연한을 넘긴 구형조차 암시장에 매물로 나온 적이 없다.

이해는 간다. 가장 은밀한 운송수단을 무분별하게 팔아댔다간 새로운 경쟁자들이 우후죽순 등장할 테니. 보스 개인의 재산을 제외해도 최저 수십억 달러씩은 현금으로 들고 있을 주요 카르텔들이 ‘고작’ 1억 달러에 장사밑천을 판매할 것 같지도 않다.

친분도 거래도 없는 놈들에게 어떻게 접근하면 좋을까. 누구에게 다리를 놓아달라고 해야 할까. 신뢰성이 검증된 잠수정을 입수할 다른 경로는 없을까. 이런 고민들이 깊어질 때였다.

“음?”

밥 먹던 두 녀석이 손을 멈춘 채 나를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 수연이 묻는다.

“무슨 생각을 그리 깊게 하십니까? 한숨까지 쉬시면서.”

“……한숨? 내가 그랬나?”

“예.”

무의식중에 마음이 샜나보다.

이럴 때 머리를 더하는 것도 보좌역의 역할이다. 나는 둘에게 내 고민을 공유해주고서 이렇게 덧붙였다.

“당장 결론을 낼 문제가 아니니 먹던 거나 마저 먹어라. 음식 식는다.”

내가 조직의 우두머리로서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책임이 바로 부하들에게 밥을 먹이는 것이다. 먹이고, 입히고, 재우고. 그렇게 내 것이 된 목숨들의 생계를 책임져 나가는 일. 조직이 곧 삶이 될 때 비로소 지속 가능한 충성이 성립한다.

나를 알만큼 아는 두 녀석은 눈치 보지 않고 식사를 재개했다. 어느 정도 배가 찼는지 젓가락질과 숟가락질이 한결 여유로워진 게 보인다.

“아까 말입니다.”

얼마 안 가 수저를 내려놓은 수연이 물 한 모금을 마시고 입을 열었다.

“워커 소령이 말실수를 하더군요. 눈치채셨습니까?”

“‘우리 사령부’ 말이냐.”

“예.”

“전부터 심증이야 있었다만, 그런 소리가 무심결에 나올 만큼 공모자들이 늘어났다는 뜻이겠지. 어쩌면 사령관마저 가담했을 수도 있고.”

수연 녀석이 건조한 기대를 표했다.

“10억 달러는 도저히 무리라고 했지만, 그쪽 패거리가 지원사령부를 장악한 게 사실이라면 앞으로 늘어날 물량을 기대해 봐도 좋겠습니다. 본토로 돌아간 선임자들이 밥값을 해줄 때가 되었으니까요.”

한국에 붙박이로 배치된 부대라도 구성원은 계속 물갈이된다. 캠프 헨리의 공모자들 역시 예외는 아니다. 일정 연수를 복무하고 나면 근무지가 변경되는 것.

따라서 그들 사조직의 기능을 유지하기 위해선 일정 주기마다 새로운 구성원을 포섭해야 했다. 그러나 반대로, 한국을 떠난다고 조직에서 배제되는 건 또 아니었다. 아예 관계가 끊어지면 불안요소가 된다. 지난날 내가 의문을 제기하자 저쪽에서 해명한 내용. 여기에 관해서는 안심해도 좋으니, 앞으로도 오랫동안 좋은 관계를 이어나가길 바란다고 했던가?

따라서 내가 제안한 거래 확대는, 규모가 뜻밖이었을 뿐 저놈들로서도 바라던 바였을 것이다. 사람이 늘어나는 만큼 파이도 커지는 게 이상적이니까.

나는 시선을 돌렸다.

“경태야.”

“네, 형님.”

“워커는 어쩌고 있냐.”

다 먹고 배를 쓰다듬던 경태는 내 질문에 잠시 제 폰을 들여다보았다.

“차 안에서 상급자로 추정되는 누군가와 47초간 통화를 한 것 외엔 이제껏 특기할 만한 행동이 없었다고 합니다. 통화는 대충 내일 만나서 보고하겠다는 내용이었고……. 지금은 같은 부대의 테일러 상사를 불러내 술을 마시는 중인데, 기분이 굉장히 좋은 상태랍니다. 위치는 자주 애용하는 술집이고요.”

“기분이 좋은 건 내가 준 용돈 덕분이겠지.”

워커는 오늘 기지를 나서는 순간부터 일거수일투족을 감시당하고 있었다. 차 안에서 하는 통화조차, 창문의 진동을 감지하는 원거리 레이저 도청을 피하지 못한다. 감시팀에겐 이동 간 도청을 목적으로 개조한 특수차량까지 주었다.

경태가 우스개처럼 말한다.

“전쟁을 준비해야 평화를 누린다고들 하지만, 이렇게 열심히 준비를 하는데 막상 싸울 필요가 없어지면 그것도 웃기겠네요. 마소 농도가 지금보다도 훨씬 더 높게 치솟아서 말입니다.”

“…….”

마소의 농도는 오늘도 변화가 없었다. 흐름에 따라 일시적으로는 변할지언정, 평균적으론 옅어지지도 않았고 진해지지도 않았다.

그러나 갑작스러운 변화가 한 번으로 끝이란 보장은 없다. 그땐 싸움 자체가 성립하지 않을 공산이 높다. 문명이 후퇴하거나 붕괴하는 건 필연이며, 그런 세계에선 런던 놈들이 이 먼 곳까지 날 찾아다닐 엄두를 못 낼 테니까.

당연히 그런 상황도 대비는 하고 있다. 전쟁 준비와 재난 대비는 서로 겹치는 부분이 많아, 기왕 하는 김에 조금만 더 하면 그만이다.

경태의 말이 이어졌다.

“농도가 계속 올라 만에 하나라도 세상이 대충 망하게 되면, 비축해둘 무기의 가치가 새로워질지도 모르겠습니다.”

“무슨 소리냐?”

“제가 좋아하는 소설이 하나 있는데 말입죠. 메트로 2033이라고, 혹시 읽어보셨습니까?”

“아니.”

간결한 대꾸에 경태가 실없이 웃는다.

“역시 그렇군요. 형님께서 다른 책은 다 보셔도 소설책은 안 보시죠……. 아무튼 그 소설이 핵으로 망한 세상의 생존자들 이야기인데, 그 세계관에선 총알을 화폐처럼 쓰더라고요. 우리가 사는 현실도 그렇게 되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째선지 그게 꼭 나쁘지만은 않을 것 같단 느낌이 듭니다. 비슷한 장르의 소설들을 많이 봐서 그런가……?”

마지막 한마디는 작아지는 혼잣말이었다.

총탄은 생사를 결정하는 권력이다. 사람의 목숨을 실물자원으로 간주한다면, 총탄은 교환가치가 확실한 화폐가 되는 셈.

속에서 차라리 경태 말처럼 되기를 바라는 나약함이 잠시 고개를 들었으나, 그것도 잠깐이었다. 그런 세상에서 살아간다는 건, 사냥꾼들에게 쫓기며 사는 것과는 다른 의미로 ‘살아남기 위해서만 사는 삶’이 되지 않겠는가. 어느 쪽이든 마음에 들지 않기는 마찬가지였다.

“괜한 소리 마라. 내가 이기든 제국주의자들이 이기든, 끝이라는 게 존재한다는 점에서 개놈들과의 전쟁이 세상 무너지는 꼴을 보는 것보다 백배는 더 나아.”

“하하, 옳은 말씀이십니다.”

경태가 멋쩍은 표정을 짓는다.

옆에서 생각을 정리하던 수연이 입을 열었다.

“아까 무기 운송의 어려움을 이야기하셨습니다만, 막상 운송을 한들 그 무기를 들려줄 인원이 부족하지 않겠습니까? 우리 애들을 런던으로 투입하는 데엔 한계가 있습니다.”

맞는 말이다.

“그것도 해결해야 할 과제지.”

죽고 죽이는 싸움은 머릿수가 많을수록 좋다. 그러나 내 부하들만으로 거사를 치를 경우, 설령 승리를 거둔다 한들 정보당국의 역추적을 피할 수가 없게 되어버릴 터.

“왜, 뭔가 떠오르기라도 했나?”

내 물음에 수연이 작게 끄덕인다.

“필리핀 방사모로 반군들 말입니다.”

“그놈들이 왜?”

“우리가 거래하는 해방전선 외에 이슬람 광신도 집단이 넷이나 더 있잖습니까. 그중에서 BIFF와 그 분파를 제외한 나머지 둘, 「아부 투라이피에」와 「아부 사야프」는 잘만 다루면 중동의 이슬람 극단주의 진영으로 닿는 연락선 역할을 해줄지도 모릅니다.”

“적의 적은 친구라는 논리로 이슬람 극단주의자들에게 손을 내밀자는 거냐?”

“예. 런던이 목표라면 그들도 싫어하진 않을 겁니다. 그들이 원하는 건 IS 붕괴 이후의 주도권을 잡기 위한 유명세이고, 우리는 그딴 것에 관심이 없잖습니까.”

“흠.”

“형님께서 광신도들과의 거래를 꺼리신다는 건 알고 있지만…….”

“아니다, 아니야.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겠다고 했던 사람은 나지. 잘 말해줬다. 검토해볼 가치가 있어.”

아부 투라이피에와 아부 사야프는 같은 무슬림에게도 총질을 해대는 광신도 새끼들이다. 게다가 둘 다 머릿수가 오십 미만이라 거래상대론 매력이 없었다.

그러나 그렇게 작은 규모는, 징검다리 역할을 맡기기엔 오히려 장점에 가깝다. 백만 달러만 흔들어보여도 침을 질질 흘릴 애송이들이니까.

문제는 이쪽하고도 전혀 연줄이 없다는 것인데…….

우리의 클라이언트인 필리핀 모로 해방전선 측엔 소개를 요청할 수가 없다. 양쪽 모두와 원수지간인 까닭. 특히 아부 사야프 쪽은 놈들의 특공대인 「아장-아장」이 모스크에다 폭탄을 터트려버린 후론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너버렸다.

경태는 회의적인 의견을 내놓았다.

“누님. 전 그렇게 허접한 놈들이 소개나마 제대로 해줄 수 있을지 의심스럽네요.”

이에 수연이 즉각적으로 답변했다.

“아부 사야프는 나도 솔직히 의문스러워.”

“그렇죠?”

“하지만 투라이피에 놈들에겐 기대를 걸어볼 만해.”

“어떤 면에서요?”

“그놈들은 파키스탄 교민 사회와 가깝고, 실제로 파키스탄 협력자들을 활발하게 모집하고 있어. 납치와 해적질에 목숨을 거는 아부 사야프와 달리 활동자금의 출처에도 불분명한 부분이 많지……. 리더가 연달아 죽어나가는 상황에서 이상할 만큼 흔들림이 없는 조직력도 수상해.”

수연은 잠시 공백을 두고 결론을 내렸다.

“여러 정보들을 종합해볼 때, 난 놈들이 초창기의 탈레반처럼 파키스탄 정보부의 지도를 받고 있을 공산이 크다고 봐. 만약 그게 사실이라면, 다에쉬(IS) 출신 두목이 죽었어도 탈레반과는 여전히 확실한 채널이 존재하는 거지.”

“와우.”

또박또박 물 흐르듯 쏟아진 분석에 감탄하는 경태.

“그렇게 하찮은 놈들의 정보마저 외우고 다니시다니.”

“이게 내 일이야.”

“그래도요. 크으. 멋져요, 멋져.”

엄지를 쌍으로 세우는 경태를 무시하며, 수연이 담담한 태도로 나를 응시했다.

“한 가지 더 있습니다. 중남미 지역 카르텔에 대한 접촉은 추장님께 의뢰해보시는 게 어떻습니까?”

“추장? 다이아몬드 카지노의?”

“네.”

수연이 말하는 추장은, 내가 워커 중령에게 준 칩을 발행한 카지노의 비공식적인 주인이다. 당연한 말이지만 진짜 추장으로서 부족 전체를 대표하는 인물은 아니었다. 어디까지나 이쪽 세계에서 통하는 별명일 따름. 대부분의 원주민 부족들은 현대적인 정치제도를 받아들인 지 오래다.

의아해진 난 고개를 기울였다.

“왜 하필 추장이지? 이 세상에서 그만큼 마약상을 혐오하는 사람도 드물 텐데.”

북미 원주민 부족들은 과거 빈곤과 마약중독으로 엄청난 고통을 겪은 바 있다. 때문에 자신의 부족 「사막의 사람들(타호우너 아덤)」을 아끼는 추장은 마약상들을 극도로 싫어했다. 부족의 땅이 멕시코 국경에 접해있는데도 그가 마약 카르텔과는 일절 거래를 트지 않는 이유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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