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제국사냥꾼-6화 (6/561)

#2. 모색 (2)

“반면 이쪽 동네의 바이어들은 어떻습니까.”

다섯 손가락을 하나씩 접으며 잠재적인 고객들을 나열해본다.

“공산당 따까리 노릇으로 연명하는 광둥 삼합회, 일본 안에서만 놀면서 지들끼리 죽고 죽이는 야쿠자 놈들, 필리핀 정부와 줄다리기를 하는 모로 해방전선, 인권 문제로 무기 수입에 애를 먹는 미얀마, 그 미얀마와 싸우는 각종 반군들 및 그들을 지원하는 세력들…….”

실제로는 더 많지만 이 자리에선 중요하지 않다. 내 거래처들을 일일이 다 밝힐 이유도 없었고. 나는 주먹을 내리며 질문했다.

“소령. 이놈들의 공통점을 알겠습니까?”

“……우리 정부의 관심사가 아니라는 것.”

“정확히는 우선순위가 떨어진다고 해야겠지요.”

미국의 힘이 예전 같지 않은 데 반해, 관리가 필요한 문제아는 많아졌다. 무엇보다 동북아엔 중국과 북한과 러시아가 존재한다. 이 셋은 미국의 첩보예산을 블랙홀처럼 빨아들이는 구멍들이었다. 결국 한정된 돈을 어디에 먼저 써야 하는가의 문제인 것이다.

말을 길게 하니 목이 마르다. 빈 잔을 쥐자 수연이 주전자를 들어 차를 따라주었다. 따뜻한 차를 물처럼 마시고서, 끝나지 않은 말을 이어간다.

“겸허하게 인정하도록 합시다. 우리는 진짜 화약고에서 오일 머니로 불장난을 치는 동업자들이나 지구의 암세포인 중국 공산당을 능가할 수 없고, 또 그들만큼 미국과 세계의 관심을 받을 수도 없어요. 지켜야 할 선만 철저하게 지키면 트러블을 겪을 일이 없다는 뜻입니다.”

그 지켜야 할 선이란 아마추어처럼 굴지 않는 것이다. 상품을 아무 데나 보관하지 않고, 아무에게나 막 팔아버리지도 않고, 돈을 아무렇게나 주고받지도 않는 것. 이는 밀수의 기본인데도 투자비용과 관리비용이 크기 때문에 얼뜨기들이 감히 엄두를 내지 못한다. 혹은 가능한데도 안 하거나.

어느 분야든 사고는 기본 원칙을 지키지 않는 데서 비롯되는 법이었다. 원칙을 지키면 우리도 편해지고 정보기관들도 편해진다. 나는 혹시나 싶어 경고를 해두기로 했다.

“물론 당신들도 선을 엄격하게 지켜줘야겠지만 말입니다. 내가 무제한 매입을 약속했다고 해서 근시안적인 욕심을 부렸다간, 그때야말로 본토의 뜨거운 관심을 받게 될 테니.”

너무 단기간에 대량의 물자를 유출시키거나, 건드려서는 안 될 위험한 품목을 건드리거나. 이놈들이 그렇게 과욕을 부려도 내 쪽에서 인수를 거부하면 그만이긴 하나, 그럼에도 내가 미처 살피지 못하는 부분이 있을 수 있기에 일깨워두려는 것이다.

또한 현재 나에게만 맞춰져 있는 위험성의 초점을 상대에게 떠넘기는 화법이기도 했다.

역시나 워커가 발끈하며 말려든다.

“허. 우릴 못 믿습니까? 우리는 굉장히 신중하고, 우리의 공급 능력은 치프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큽니다. 지금까진 그 물량을 소화 가능한 파트너가 없었을 뿐이지. 우리 사령부가 작정하고 물량을 밀어내기 시작하면 당신은 당신이 보장한 ‘무제한’을 후회하게 될 겁니다.”

“정말로 그랬으면 좋겠군요.”

“자신감이 과하십니다.”

“글쎄……. 당신들이 다음 연말까지 10억 달러를 바닥낸다면, 그때는 내가 패배한 셈 칩시다.”

“10억 달러?”

얼이 빠진 워커는 잠시 후 고장 난 기계처럼 같은 말을 반복했다.

“……10억 달러? 10억 달러라고요?”

“말했잖습니까. 무제한이라고.”

“허.”

잠깐 사이에 두 번째의, 그러나 의미는 달라진 ‘허’였다.

“그 돈이면 구축함도 살 수 있겠습니다.”

나는 어울려주듯이 어깨를 으쓱였다.

“그래봤자 전성기의 펩시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지요.”

“뭐라구요? 하하하하!”

워커가 웃음을 터트린다. 내 농담을 바로 알아듣고 웃는 게 조금 의외였다.

1989년, 펩시는 소련에 약 30억 달러어치의 콜라를 공급하는 대가로 열일곱 척의 재래식 잠수함과 한 척의 프리깃, 한 척의 구축함, 한 척의 순양함으로 구성된 함대를 받아냈다. 과거 소련 해체기에 무기 밀수로 악명 높았던 칼리 카르텔의 모든 실적을 더해 본들, 규모 면에선 펩시가 체결한 이 한 건의 계약을 능가하지 못할 것이다.

“좋습니다.”

마침내 워커의 벽이 허물어졌다. 돈이 돈이라 빠른 함락이었다.

“제가 졌습니다. 10억 달러라니. 도저히 무립니다. 너무 터무니없는 금액이라 현실감이 안 느껴질 정도로군요……. 워낙 큰 건이라 이 자리에서 확답을 드리기는 어렵지만, 일주일 안으로 긍정적인 답변을 받아보실 수 있도록 해보겠습니다.”

“기대하죠.”

“그런데 말입니다.”

“뭡니까?”

이상하게 뜸을 들이던 워커가 내게 묻는 말.

“치프. 거래에 앞서 혹시 코카인을 좀 구해다 주실 순 없으신지요.”

……이 새끼들 봐라?

“당신들 설마 마약 합니까?”

그렇다면 이 거래를 재고해볼 필요가 있다. 마약에 빠진 놈들은 매사에 절제를 모르는 병신들이라 언젠가 반드시 꼬리를 밟히기 때문이다. 일단 마약에 손을 댄 시점에서 그 인간에겐 미래가 없는 것이고, 미래가 없는 인간과 장기적인 계획을 논하는 것만큼 어리석은 짓도 드물 터였다.

내 시선이 차가웠던지 워커가 얼른 손을 저어보였다.

“오해하지 마십시오. 우리도 지킬 건 지킨다고 말씀드렸습니다. 단지 융통성 없는 친구가 하나 있어서 보험을 들어두려는 것뿐입니다.”

“리스크 관리의 일환이다?”

“예.”

확신하긴 어렵지만, 생체적인 징후들을 보건대 거짓말은 아닌 것 같다. 그러나 여전히 의문이 남는다.

“마약을 약점으로 잡으면 막상 써먹을 때 부담스럽지 않겠습니까?”

“증거는 헌병이 아니라 아내와 자식들에게 보여줄 겁니다. 안전한 방법으로 말이죠.”

“과연.”

생각에 잠겨있던 내가 역으로 물어보았다.

“한 사람이 서너 차례 투약할 양이면 되겠지요?”

이에 워커는 조금 곤란한 표정을 짓는다.

“어떻게 그 한 사람만 딱 먹이겠습니까. 본토에서 약 좀 하다가 온 녀석들을 유인해 바람잡이로 써야 하니, 가급적 넉넉하게 준비해주시기 바랍니다. 바람잡이들에겐 약 자체가 보수가 될 거라서.”

“좋아요. 하지만 꼭 코카인일 필요는 없어 보이니 모르핀으로 구해드리죠. 미인가 오피오이드(Opioid) 제제(製劑) 남용 정도면 커리어를 날리기에 충분한 약점 아닙니까.”

모르핀은 중독성이 강한 편에 속하나, 그래도 코카인에 비하면 양반이다. 부작용 측면에선 특히 더 그러했다. 워커 소령의 ‘융통성 없는 친구’에게 보내는 나의 작은 호의였다.

난 자기 일에 충실한 사람을 존중한다. 나에게 위협이 되지만 않는다면.

워커가 미간을 좁히는 게 보인다.

“모르핀은 약한데…….”

모르핀이 약하다니. 처방전도 없이 약국에서 마약성 진통제를 구할 수 있는 나라의 군인다운 말이다. 내가 굳이 미인가 제제라는 말을 덧붙인 이유였다.

“여긴 미국처럼 지나가는 사람 모두에게 코카인 냄새가 묻어있는 동네가 아닙니다, 소령. 저 강남의 유흥가라면 모를까, 추적이라도 당하게 되면 개 한 마리만 풀어도 서울에서 대구까지 쫓아올 수 있을 텐데 미쳤다고 코카인을 배달하겠습니까?”

과장이 심한 겁주기라도 워커에게는 먹힌다. 아까도 잠깐 말이 나왔는데, 이놈은 무기든 마약이든 구체적인 유통과정에 대해선 아는 게 별로 없기 때문이다. 코카인이 다른 마약에 비해 냄새가 오래도록 선명하게 남는 것도 사실이고.

다시금 워커가 손을 들었다.

“알겠습니다, 알겠어요. 그럼 모르핀으로 부탁드리겠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마지막으로?”

“판을 키운 다음에도 결제방식은 동일하겠지요?”

확인하듯 묻는 워커에게, 나는 품에서 카지노 칩 하나를 꺼내어 테이블 위로 밀어주었다.

“가서 설득이나 잘 해주십시오.”

세계 암시장에서 북미 원주민 보호구역의 카지노들은 스위스 은행만큼이나 신용이 높다. 실제로 일반 은행을 지점처럼 운영하는 카지노도 있으며, 나와 거래하는 카지노 역시 그런 유형에 속한다.

내가 내민 칩은 카지노가 발행하는 수표 같은 것이다. 수수료가 많이 비싸긴 하나, 원주민들이 부족 차원에서 자금세탁과 칩 위조방지에 들이는 노력을 감안하면 감수할 만한 대가다. 또한 그들의 자치권은 정치적인 방패이기도 하다. 워커는 걱정 말라고 웃으며 칩을 갈무리했다.

합의에 도달하고 나서도 대화는 한 시간쯤 더 계속되었다. 이놈이 언젠가 장군이 될지도 모를 노릇이니, 개인적인 친분을 쌓아둬서 나쁠 것은 없었다. 워커는 돈에 관한 이야기를 좋아했고, 억만장자들에 대한 부러움과 선망을 드러냈다. 그런 흐름 끝에 술잔을 여러 번 비우고는 한탄하는 소리가 이랬다.

“소령을 달기 전에 비트코인을 사뒀어야 했습니다. 17년의 그 엄청난 행운이…… 진짜로…… 내 것이 될 수 있었건만…….”

X신 같다.

“치프. 당신께선 비트코인으로 얼마나 재미를 보셨습니까?”

일단 재미를 보았다는 건 기본 전제로 깔아놓고 던지는 질문이었다. 하기야 암시장 관계자가 암호화폐에 손을 댄 적이 없다고 한다면 지나가던 개가 웃을 것이다.

“뭐, 차익이 크긴 했지요. 우리 업계에선 등장 초기부터 쓰던 결제수단이라.”

평범한 사람들은 관심도 없겠지만, 사실 암호화폐의 초기 수요를 견인한 게 바로 전 세계의 크고 작은 범죄조직들이었다.

“오!”

눈을 크게 뜬 워커가 상체를 내 쪽으로 기울인다.

“초기부터 돈을 묻으셨으면 이익률이 어마어마했겠습니다! 거래가가 얼마일 때 차익을 실현하셨습니까? 1만 5천? 1만 7천? 당신쯤 되는 분이면 역시 17년 말이었겠지요?”

17년 말은 세계적인 암호화폐 투기 열풍이 절정에 이르렀을 때다. 해외 거래소들에선 평균적으로 1만 8천 달러 안팎이 최고점이었으나 유독 한국에서만은 2만 달러를 넘겼었다.

난 워커의 억측을 부인했다.

“아닙니다. 당시 보유하고 있던 양의 절반을 1천 달러에서 털고, 나머지도 단계적으로 현금화하다가 4천 달러 선에서 완전히 정리했습니다.”

취기가 도는 워커는 제 돈을 잃기라도 한 양 안타까운 눈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아니 왜……. 4천이면 상승세에서 중간에도 채 못 접어든 단계였는데……?”

“그건 광기였습니다, 소령. 뉴턴도 모르겠다고 한 게 버블의 광기인데 내가 그 광기의 끝을 어떻게 예측했겠습니까. 사업을 하는 사람이 요행을 바라선 안 되는 겁니다.”

“아…….”

테이블 위로 가까워지던 워커의 몸뚱이가 제 위치로 돌아간다. 1천 달러 선에서 정리한 절반만 해도 평균 매입가 대비 2천 7백 퍼센트의 이익이었지만, 이 욕심 많은 녀석에겐 너무나 소박한 행운이라 이익률을 물어볼 마음조차 안 드는가 보다.

과하게 몰입해있던 놈은 제 이야기가 아님에도 흥분이 쭉 빠진 품새로 한숨을 쉬었다.

“안타깝군요. 그럼 그 후론 손을 일절 안 대시는 겁니까?”

“아뇨.”

“하면?”

“필요한 만큼만 매입해서 굴리고 있습니다. 줄 때나 받을 때나, 추적을 회피하는 용도로는 암호화폐만큼 편리한 수단이 드물어서 말입니다.”

솔직히 금전적으론 이득을 보았어도 사업상으론 불편해진 부분이 많다. 가치 변동이 커지고 안전성이 떨어진 탓에 암호화폐를 화폐로서 쓰기가 곤란해졌기 때문.

그럼에도 여전히 암호화폐를 쓰는 이유는 대체재가 없어서다.

비판적인 사람들은 비트코인을 위시한 암호화폐들이 그저 다단계에 불과하다고 말하는데, 아니다. 암호화폐의 최저수요는 마약과 불법적인 무기 거래, 희귀동물 밀수, 밀렵, 밀입국, 뇌물수수, 탈세, 해적질, 사이버 범죄, 인신매매, 그리고 중국의 지랄 맞은 국부유출 방지정책에 의해 지속적으로 성장하고 있다. 투기꾼들이 거품을 냈을 따름이지.

이걸 누군가에게 알려준들 그렇구나! 하고 말 테지만.

워커가 묘한 아쉬움을 드러냈다.

“치프는 신중한 분이니 그렇다 쳐도, 다른 조직들은 앉은 자리에서 떼돈을 벌었겠습니다? 이를테면 중남미의 마약상들이라거나.”

“……그런 경우가 꽤 있을 겁니다. 매도와 매수를 거듭하다 손해를 본 놈들도 많겠습니다만, 최소한 내가 아는 몇몇 중간상들은 17년 전후로 굴리는 자금의 단위가 달라졌으니까요.”

“하, 부럽습니다. 진심으로 부러워요. 어쩐지 요즘 멕시코 정부가 카르텔을 상대로 맥을 못 춘다 했습니다. 그게 돈의 힘이었다니. 하하. 하긴 세상을 지배하는 건 예산이죠.”

글쎄…….

오브라도르 대통령이 범죄와의 전쟁을 포기한 건, 지난해 말 카르텔 하나를 끝장내겠다고 벌였던 총력전이 무진장한 부수적 피해- 민간인 사상자를 쏟아냈기 때문이다.

물론 그 배경엔 카르텔이 마르지 않는 자금력으로 영입한 전직 특수부대원들과 암시장에서 구한 온갖 중화기들의 활약이 있었다. 굳이 따진다면 가상화폐 시장에서 거둔 수익도 거기에 얼마간의 지분이 있긴 했겠지.

가상화폐에 투자를 빙자한 투기를 했다가 돈을 날린 사람들은, 자신이 제3세계의 치안 악화에 기여했다는 사실을 자랑스러워해도 좋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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