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모색 (1)
다음 날 오후, 나는 여유를 두고 대구에 도착했다. 경태가 운전대를 잡은 차는 팔공산 IC를 지나 불로교 사거리에서 동쪽으로 빠졌다.
살얼음이 언 개천을 오른편에 끼고 5분쯤 더 달리니 개발과 미개발의 경계지대가 나타난다. 듬성듬성 텃밭이 지나가는 풍경 저편에 간판 하나가 솟아있었다. 파란 바탕에 노란 글씨로 향산 환경이라고 쓰여 있다.
이곳, 봉무동 가장자리의 대형 고물상은 내가 대구에 거느린 사업장들 가운데 가장 중히 여기는 시설이었다. 군수품을 운반하는 과정에서 핵심적인 기능을 수행하기 때문. 원래는 김천 근처에 두었던 것인데, 부지가 개발제한구역에 걸쳐있었던지라 부득불 옮겨올 수밖에 없었다.
이윽고 차가 정지했다. 우리가 온 것을 알고 사무실로 쓰는 컨테이너로부터 정정한 노인이 걸어 나온다. 이 고물상을 담당하는 간부 박씨였다. 그는 차에서 내리는 나를 향해 꾸벅 고개를 숙였다.
“오랜마임니데이, 회장임요. 각제 기밸 주셔서 놀랬네예. 오실 거믄 째매앵이 일찍 연락 하시지않구……. 양키 놈 보러 바리 가실 줄 알았심더.”
“대구까지 온 김에 물건들 상태를 점검할까 하고 들렀습니다. 그동안 잘 지내셨습니까?”
“저야 머 맨날 그날이 그날 아이겠심꺼. 지하창고를 보시겠다꼬예?”
“예.”
“모시겠심더.”
나는 박 노인과 함께 한쪽이 넓게 열린 조립식 가건물로 들어갔다. 수연과 경태가 뒤를 따른다. 박 노인은 조직원들을 시켜 정문을 닫는 한편 천장에 설치된 호이스트 크레인을 가동시켰다. 지하로 내려가려면 우선 입구를 막은 석판부터 들어내야 했다.
그그그긍-
크레인의 모터음은 콘크리트 긁히는 소리에 가려졌다. 석판을 든 크레인이 횡으로 미끄러지면서 지하로 내려가는 길에 빛이 들었다. 10톤 트럭도 충분히 들어갈 크기의 경사로였다.
무기고의 커다란 방폭문은 다이얼을 돌려 여는 방식이었다. 박 노인은 금속 핸들처럼 생긴 다이얼을 돌려 8자리의 번호를 맞췄다. 문 안쪽에서 철컹 하는 쇳소리가 울린다. 손잡이를 꺾어 밀자 두꺼운 문이 좌우로 서서히 밀려났다.
전력계통이 독립되어있는 공간에 자동으로 불이 들어온다. 나는 무기고로 들어섰다. 방폭문 바로 안쪽엔 방수포에 덮인 헬기 엔진과 부품들이 있었다. 내 기억으론 출고가 이미 확정된 상품들. 그 외엔 모래마대로 천장까지 쌓은 벽을 사이에 두고 듬성듬성 늘어선 선반과 나무상자들이 있을 뿐이었다. 크기가 다양한 상자들은 겉에 찍힌 문자로 내용물과 수량, 무게, 생산연도 등을 알 수 있었다.
물론 내 눈엔 내용물도 보인다. 주차장처럼 넓은 지하를 박물관 관람하듯 천천히 돌아보았으나, 구석구석 섬세하게 조절되는 온도와 습도 덕분에 상태가 나쁜 물건은 하나도 없었다. 정전기에 대한 대비도 선반마다 철저하게 되어있다. 빈 공간이 넉넉하여 재고를 많이 들여도 무방할 것 같았다.
박 노인이 묻는다.
“어떠심꺼?”
나는 노인을 바라보며 답했다.
“괜찮군요.”
“그럴낌더. 엉가이 관리하는 기 아이이까네.”
이렇게 말하는 박 노인의 안쪽에선 긴장의 징후라곤 무엇 하나 나타나지 않았다. 중요도에 비해 자주 오지는 못하는 사업장이지만, 불시점검인데도 이 정도면 충분하다.
솔직히 말하면 물건보다는 사람을 보러 온 것이다. 빚을 질 때 아무리 필사적이고 절박했던 사람이라도 시간이 흐름에 따라 변하는 경우를 종종 보아왔으니까. 또한 목숨의 빚은 다분히 개인적인 관계다. 즉 때때로 직접 얼굴을 맞댐으로써 나와의 관계가 유지되고 있음을 느끼게 해주는 일이 중요하다.
“여긴 이만 됐으니 애들 일하는 거나 보고 가겠습니다.”
내 말에 노인이 고개를 끄덕인다.
향산 환경에 배치된 조직원은 박 노인을 포함하여 스물두 명이었다. 그중에서 얼굴을 볼 수 있었던 건 열 명에 불과했다. 비록 작은 위장 사업체이긴 하나 한 해도 거르지 않고 흑자를 낼 만큼 견실하게 돌아가는 곳이다. 전부 다 대기하고 있었으면 오히려 이상했을 것이다.
나는 군데군데 흩어져 쉬거나 작업에 열중하고 있던 그 열 명과 일일이 인사를 나누고 금일봉을 전해주었다. 녀석들은 내 등장에 다소 긴장하면서도, 내가 자신들을 기억하는 것에는 멋쩍어했다. 사실은 수연이 비서로서 미리 챙겨준 내용들이었지만.
부하들에게 있어 내 방문이 군단장의 검열처럼 X 같은 것이어선 안 된다. 그딴 건 충성심 유지에 하등 도움이 되질 않으니까.
사업장 점검을 마치고 차에 오르려는데 박 노인이 수연을 부른다.
“아야. 갱태 요즘 저지레 안 치고 회장임 쪽바로 모시드나?”
수연이 뭐라 하기도 전에 경태가 불퉁거린다.
“아, 박 사장님도 참. 저만큼 괜찮은 인재가 어딨다고 그러십니까.”
“개안키는 마. 니 전에 시무식 때도 술을 억만고로 처먹디 회장임 보시는 앞에서 홀라닥 도라내지 않았나.”
“으아아아! 그게 벌써 3년 전 일입니다, 3년이요! 글구 그때 토했던 거는 내기를 한답시고 양주를 궤짝으로 마셔서 그런 거구요, 그 담부턴 한 번도 안 그랬다니깐요? 그 흑역사 땜에 요즘은 주량의 반의 반의 반도 안 마시고 다닙니다, 제가.”
“진짜가?”
못미더워하는 노인에게 수연이 끄덕여 보였다.
“진짭니다.”
“하이고마, 사람 됐네.”
수연의 말 한마디에 바로 납득하는 노인을 보고 경태가 어깨를 늘어뜨렸다.
“……억울하다.”
박 노인이 나에게 작별인사를 건네었다.
“날 추운디 조심히 살펴 가이소.”
난 그를 바라보며 묵례로 인사를 받았다. 차가 출발하자 박 노인은 몇 걸음 따라 나오다 멀찍이 멈춰 섰다. 사이드 미러에 비춰진 그의 모습에선 아쉬움이 묻어났다. 만약의 경우, 모든 혐의를 자진해서 뒤집어쓸 충성스러운 부하였다.
워커 소령을 만나기로 한 곳은 대구 남동쪽 교외의 고급 펜션이었다. 조직 산하의 관광개발회사가 운영하는 곳으로, 폐허가 된 일제 강점기의 고급 가옥 단지를 사들여 일본 장인들의 손으로 재건축해서 쓰고 있었다. 미군 애들이 이런 걸 의외로 좋아한다. 방바닥에 앉기는 불편해하는 주제에.
먼저 도착해 차를 곁들여 애독서의 책장을 넘기고 있으려니, 약속시간을 10분 앞둔 시점에서 워커 소령이 들어왔다. 닫히는 문 밖으로 경태가 도청 감지를 위해 스펙트럼 분석기를 펼치는 모습이 보였다. 워커는 뻣뻣한 미소를 머금고 맞은편에 앉았다.
“직접 뵙기는 3년 만이군요, 치프(Chief). 오래 기다리셨습니까?”
“아뇨. 나도 방금 도착했습니다.”
여러 번 독파한 책인데도, 기다리는 동안 겨우 서른 페이지 가량을 읽었을 따름이다. 나는 책에 책갈피를 끼워 조금 뒤에 앉은 수연에게 넘겨주었다. 표지를 본 소령은 반쯤은 의식적인 호기심을 드러냈다.
“제목이 뭡니까? 한글은 아직 낯설어서.”
“침팬지 폴리틱스.”
“침팬지의 정치학이요?……하긴 정치인들이 다소 동물적이지요. 침팬지라고 불릴 법도 합니다.”
“다릅니다. 비유 같은 게 아니라, 문자 그대로 침팬지들의 권력다툼에 관한 내용입니다.”
“오.”
의아해하던 소령이 웃음을 터트린다.
“권력을 다퉈요? 침팬지가? 하하하하! 그것 참 웃기는군요! 짐승들의 원시적인 서열 싸움을 권력처럼 거창한 단어로 표현하다니!”
무식하기는. 나는 속을 감추며 부연했다.
“……재미있습니까? 동물들이 얼마나 영리한지 알면 더 재미있을 겁니다.”
“하하. 뭐, 가끔 저런 머리로 어떻게 사람인가 싶은 소위가 오곤 하는데, 어쩌면 그런 소위들보다야 침팬지가 더 똑똑할 수도 있겠군요. 시간 날 때 한번 읽어보도록 하겠습니다.”
그 시간이 과연 죽기 전에 나기는 할는지.
어쨌든 상대의 무식함 덕분에 분위기가 부드러워졌다. 이 무식한 놈은 내가 제 계급에 개의치 않는다는 걸 느꼈는지, 굳어있던 어깨가 부드럽게 이완되었다.
“그럼 우리의 사업 이야기를 해볼까요?”
난 천천히 손을 들어보였다.
“뭐가 그리 급합니까? 시간상 식사도 아직이실 텐데.”
만족스럽게 배를 채우고서도 둥글어지지 않을 사람은 없다. 때맞춰 측면의 미닫이문이 양쪽으로 열리며 육류 위주의 요리들이 들어왔다. 상대의 입맛에 맞춘 식탁이었다.
워커는 배를 채우는 내내 공화당이 어쩌고 민주당이 어쩌고 하는 말들을 떠들어댔다. 나는 옳고 그름을 떠나 사실관계에서부터 오류투성이인 정치적 견해에 끄덕끄덕 그렇다고 맞장구를 쳐주었다. 시시비비를 가려본들 얻을 게 무엇인가.
그렇게 워커 혼자 즐거운 한 시간이 흐른 뒤, 나는 비로소 본론으로 들어갔다.
“사전연락에서 예고한 대로, 이번엔 평소보다 많은 발주를 넣으려고 합니다.”
워커가 반문한다.
“어떤 걸 얼마까지 생각하고 계십니까?”
나는 짧은 간격을 두고 이렇게 답했다.
“무제한이요.”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말 그대로, 여러분이 마련할 수 있는 모든 무기를 무제한으로 매입하겠다는 뜻입니다. 위력과 구경(口徑)이 큰 종류에 우선순위를 두겠지만 말입니다.”
눈을 깜박거리던 워커가 엑스자로 쥐고 있던 젓가락을 내려놓았다. 포크가 있는데도 고집스럽게 쓰던 젓가락이다.
“‘품목’이 아니고 ‘무기’라……. 어디서 전쟁이라도 치를 셈입니까?”
면세품이나 일반 보급품 따윈 제외하겠다는 뜻을 제대로 이해했다.
이제까지의 거래는 내가 먼저 품목과 금액을 제시하든, 재고를 확보한 미군 쪽에서 역으로 구매의사를 타진하든 간에 구체적인 내용을 확실히 약정하고서 진행되었다. 그러므로 지금의 내 요구에 워커가 몸을 사리는 것도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전쟁은 무슨.”
우선 이놈의 경계심을 누그러뜨려야겠다.
“그동안은 세계시장의 수요에 비해 우리의 비즈니스 규모가 너무 작았을 뿐입니다. 그리고 난 오랜 시간 내가 안전한 거래선임을 증명해왔지요. 서로의 이익을 위해, 다시 한 번 판을 키워볼 때가 되었다고 봅니다.”
처음으로 판을 키웠던 건 거래품목에 처음으로 무기를 넣었을 때의 일이다. 그때도 이놈들은 겁먹은 새끼고양이처럼 굴었었다. 워커가 수염을 매만지며 긴 숨을 내쉰다.
“이제까지의 거래가 오늘을 위한 포석이었다는 말씀입니까?”
“편의상 그렇다고 치자는 겁니다, 내 말은.”
“흠.”
“12년과 17년, 두 번에 걸쳐 전체적인 검열이 있었지만 우리는 별 탈 없이 고비를 넘겼습니다. 당신들도 경험했듯이, 내 회사의 일처리가 완벽했기 때문입니다. 당신들이 넘겨주는 물량은 바다에 뿌리는 소금처럼 세계시장으로 녹아 사라졌지요. 한데 이제 와서 새삼스럽게 겁을 낼 이유가 있겠습니까?”
“겁을 내다뇨.”
자존심을 건드리자 워커가 눈을 찌푸린다.
내가 언급한 12년과 17년은 동종업계의 아마추어들이 꼬리를 밟힌 해다.
먼저 12년도에 적발당한 고물상은 10만 달러짜리 적외선 감시장비(TOD)를 유출시키곤 그 값어치를 몰라 단돈 5만 원에 팔아넘긴 등신인데, 이 카메라가 돌고 돌아 미국 경매 사이트 매물로 올라가는 바람에 덜미를 잡혔다.
17년은 더 가관이다. 이때 체포된 고물상은 미군이 쓰던 전술차량 및 트레일러 백여 대를 비닐하우스 옆에다 줄줄이 세워놓고 인터넷에 판매 글을 올렸다.
재미있는 사실은, 그렇게 멍청한 짓을 일삼으면서도 3년 동안 들키지 않았다는 것. 경찰은 원래 이런 데 별로 관심이 없다. 경찰이 마침내 비닐하우스 옆 공터를 찾아왔을 때, 트레일러에 실려 있던 군용 컨테이너는 내용물이 다 사라진 상태였다.
어째서 전부 고물상인가 하니, 이 모든 밀수의 중심에 미 군수국(DLA)이 운영하는 김천 잉여재산처리처가 존재하는 까닭이다. 우리도 보통은 거기서 차떼기로 물건을 받아온다. 폐기된 차량이나 컨테이너를 통째로 실어오면 그 안에 주문한 물건이 들어있는 식.
워커가 경고하듯 말했다.
“치프. 당신은 CIDC를 너무 만만하게 보고 있습니다.”
CIDC는 미 육군 범죄수사사령부의 약자다. 내겐 워커의 경고가 같잖게 들렸다.
“난 그들을 얕보는 게 아닙니다, 소령. 하지만 그들에겐 더 중요한 문제가 많을 거라는 생각이 드는군요.”
“더 중요한 문제?”
“그들을 진지하게 만드는 건 대개 국가안보에 대한 위협이잖습니까. 가령 우리가 오늘 당장 백만 발의 소총탄을 거래한다고 칩시다. 그게 미국의 안보를 얼마나 크게 위협합니까? CIDC나 CIA가 유의미한 안보위협으로 인식할 만큼 위협적입니까?”
워커는 내 질문에 쉽게 대답하지 못했다. 소총탄은 들어가는 수고에 대비하여 마진이 많이 남는 품목은 아니었으나, 무기거래의 전체 규모를 반영하는 지표로서는 유용했다.
지식은 힘이다. 나는 시장 사정에 해박한 무기상으로서 차분한 설득을 이어갔다.
“미국인에게 미국을 설명하려니 꼴이 꽤 우습지만……. 뭐, 유통 분야에 대해서는 내가 더 전문가니까, 한번 들어보십시오.”
“무슨?”
“백만 발의 실탄……이라고 해봤자 텍사스의 총포상들이 일주일 동안 팔아치우는 양보다 조금 많은 수준에 불과합니다. 공식적인 판매량이 말입니다.”
미국 국세청이 아무리 무서워도 탈세를 할 놈들은 한다. 오히려 세계 최대의 탈세 시장이 바로 미국이다. 고로 총포상의 공식 판매량은 전체 거래물량보다 반드시 적다.
“당신의 조국엔 4억 정 이상의 총기가 있고, 그 중 3억 9천만 정은 시민들이 보유하고 있어요. 정식으로 등록된 총기만 헤아려서 그 정도입니다. 동호인들끼리 모임이라도 여는 날이면 하루에 쓰는 실탄이 기본적으로 만 단위를 넘어가더군요.”
어디 만 단위뿐이겠는가. 미 서부 최대의 사격 축제는 매년 평균 350만 발씩을 소모한다. 여기에 전차와 장갑차를 끌고 오는 사람들마저 있다.
“당신네 시민들은 매해 백억에서 백이십억 발 가량의 총탄을 구매합니다. 단체를 제외한 순수 개인 구매량은 팔십억 발쯤 되고요. 이런 사실들을 알고 있었습니까?”
“……조금은.”
“그렇겠지요. 구체적으론 몰랐을 겁니다.”
미국인이 미국의 이야기에 떨떠름한 표정을 짓는다. 조금은 웃기는 일이었다.
“이제 지구본을 돌려보면…… 워커 당신도 겪은 바 있는 저 아프간에선, 좀 산다 싶은 집안끼리 결혼식을 올릴 때마다 축하한답시고 쏴 갈기는 탄이 수만 발입니다.”
그쪽 동네의 전통이 그 모양이라 미군이 곤욕을 치른다. 멀리서보면 하객들이 마치 격분한 무장단체처럼 보여서.
“알다시피 테러리스트들은 그보다 더 많은 총탄을, 당신들을 겨냥해서 쓰지요.”
“음…….”
“중국과 러시아와 동유럽……그리고 가끔은 북미와 남미로부터 중동의 암시장으로 생필품처럼 팔려나가는 무기의 양은, 아마 거래를 하는 당사자들조차 모를 겁니다. 워낙에 큰 시장이고, 너무도 많은 세력들이 활동하고 있으니까.”
한국에서야 총 한 자루에 실탄 한 발만 사라져도 난리법석을 떨지만, 미국 정보기관들의 관점에서 다른 나라에 유통되는 백만 발의 실탄은 그리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