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제국사냥꾼-4화 (4/561)

#1. 삼각비행 (4)

내가 거둔 조직원들은 간부부터 말단에 이르기까지 나에게 적어도 하나 이상의 목숨을 빚지고 있다. 자신의 목숨이든, 사랑하는 사람의 목숨이든, 아니면 같은 하늘을 이고는 살아갈 수 없을 원수의 목숨이든. 도덕과 법, 그리고 신이 해결해주지 않는 문제들을 나와 내 조직이 해결해주었다. 굶주린 가족들을 내가 먹여주었고 죽을 듯이 맺힌 한들도 내가 풀어주었다. 그들은 그 대가로 자기 자신을 지불하는 데 동의했다. 목숨을 목숨으로 갚기로 한 거래다.

따라서 나에겐 부하들에게 죽으라고 명령할 권리가 있다.

수연은 유일한 예외였다.

10년 전의 여름, 사무실로 찾아와서는 죽은 오빠의 채무를 상속하겠다고 내 앞에 무릎을 꿇었을 때, 이 녀석은 어린 티도 다 벗지 못한 고등학생이었다.

좋은 인재는 드물다. 싹수가 보인다면 애라도 거두어 키워볼 법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거래가 성립할 때의 이야기. 채권자로서의 나는 그때나 지금이나 연대보증을 인정하지 않는다. 목숨의 빚이란 그런 식으로 추심할 수 있는 게 아니니까.

따라서 이 녀석이 갚겠다던 빚은 빚을 진 본인의 죽음과 함께 소멸한 것이었다. 비록 그 죽음이 병마에 의한 것이었을지라도, 죽는 순간까지 충성했으니 그걸로 됐다.

“빚이 없다……라. 그 말씀을 이렇게 오랜 시간이 흘러 다시 듣게 될 줄은 몰랐습니다.”

이렇게 말하는 수연은 착잡한 얼굴이었다.

“제게 뭔가 부족함이 있었습니까?”

“그럴 리가.”

난 모자란 녀석을 가까이에 둘 만큼 허술하지 않다.

“그러면 왜……?”

“오해하지 마라. 내치겠다는 소리가 아니야. 스스로의 거취에 대해 다시 한 번 고민해볼 기회를 주려는 거다.”

이 녀석을 처음 받아들일 때와는 상황이 많이 달라지지 않았나.

“제 대답은 이미 정해져 있습니다.”

“성급하긴.”

“죄송합니다.”

별로 죄송한 사람처럼 보이진 않는다.

“들어봐라.”

나는 손가락을 튕겨 수연의 주의를 환기했다.

“기어코 마법의 시대가 돌아오고 만다면, 스승새끼의 옛 동지들은 국가권력의 비호를 받게 될 거다. 뭐, 내가 싸울 준비를 끝마칠 즈음엔 아예 권력 그 자체가 되어있을 가능성도 농후하지. 넌 이게 무엇을 의미할 것 같으냐?”

“…….”

“그 늙다리들의 시꺼먼 심장을 파내려면 우선 영국이라는 껍데기부터 벗겨내야 할 거란 뜻이다. 군대를 흩어 놓고 치안과 행정을 마비시켜서 결정적인 순간 제국주의자들의 본거지를 무방비 상태로 만들어야 해. 그들 자신의 힘 말고는 그들을 지켜주는 게 무엇 하나 남지 않게끔. 나는 그러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을 작정이다.”

“혹시 그 방법이 테러……입니까?”

“테러 이상의 테러지. 가능하기만 하다면, 그리고 그래야만 한다면 나는 핵이라도 밀수해서 터트리겠다. 9백만 명이 사는 도시에다가 말이야.”

물론 현실성 희박한 이야기다. 허나 내 각오를 전달하기엔 적절한 예시였다. 더티 밤(Dirty Bomb/방사능 폭탄) 같은 건 실제로 쓰게 될 수도 있겠고. 사회 혼란을 유발하며 국가의 대응능력을 소진시킨다는 측면에선 가성비가 지극히 좋을 물건이다. 조달이나 제조가 비교적 용이할뿐더러, 대여섯 발만 터트려도 영국 전역에 확실한 혼돈이 빚어질 테니. 그 혼돈이 반드시 길어질 필요는 없다. 기습적으로 치고 빠질 동안에만 유지되면 족하다.

사람을 아무렇게나 죽이지는 않겠다. 그러나 부수적인 피해를 줄이겠답시고 애써 낮은 승산을 감수하지도 않겠다. 그딴 데 신경을 써도 좋을 만큼 만만한 상대가 아니므로.

“나에게 진 빚이 없다는 건-”

수연에게 충분히 곱씹을 시간을 주고서 말을 잇는다.

“다른 녀석들과 달리 너에겐 열차가 폭주하기 전에 내릴 권리가 있다는 말이다. 좀 더 안전한 곳에서, 더는 손이 더러워지지 않을 역할을 맡아도 괜찮지 않겠냐.”

내 보좌역은 원래 고급간부가 되는 지름길이다. 기업에 비유하면 계열사 사장이나 부사장급으로. 그러니 이 녀석의 경우엔 정해진 것이나 마찬가지인 영전을 몇 년 가량 앞당긴다고 봐도 무방할 것이다. 그만한 능력이 있는 녀석이고.

“……무슨 말씀인지 알겠습니다만, 그래도 제 대답은 달라지지 않습니다.”

곧게 바라보는 수연의 눈빛이 공손하면서도 고집스럽다. 벌써 10년 전에 한 차례 물리도록 겪은 바 있는 강단. 몇 번을 끌어내도 조직의 ‘본사’ 앞으로 돌아와 다시 무릎 꿇던 모습이 떠오른다. 겁을 줘도 소용이 없었고 뺨을 후려쳐도 표정 하나 바뀌질 않았다.

결국 언제까지 그러고 있을까 하여 내버려뒀더니, 탈수로 실신할 때까지 물 한 모금 입에 안 대고 독하게 버티는 게 아닌가. 도리어 지켜보던 조직원들이 동요할 지경이었다. 수연의 죽은 오빠는 조직 내에서 평판이 좋았다. 유력한 차기 비서실장이었으니.

그래서 받아들였다. 내버려두었다간 정말로 죽을 녀석이었고, 이 정도의 각오라면 못 쓸 것도 없겠구나 싶어서. 오빠와 같은 피를 물려받았으면 재능이 넘칠 것이기도 했다. 실제로 이 녀석은 자신이 계승한 기대에 훌륭하게 부응해보였다.

“형님.”

짧은 정적 끝에 수연이 침착한 음성으로 못을 박는다.

“저는 형님께서 원하신다면 당장이라도 칼을 들고 나가서 눈에 띄는 모든 사람들을, 애와 어른을 가리지 않고 찔러 죽일 수 있습니다. 그러니 지금 같은 배려는 불필요합니다. 오빠가 살아서 이 자리에 있었어도 저와 똑같은 말을 했겠죠.”

“수혁이 녀석이야 당연히 그랬겠지. 하지만 동생이 이렇게 살기를 바라진 않았을 텐데.”

“……오빠는 죽은 사람이고, 저는 10년 전부터 저를 위해 살고 있습니다.”

“그러냐.”

“예.”

“알았다. 더는 이 문제로 귀찮게 하지 않으마.”

“감사합니다.”

수연이 깊이 고개를 숙였다. 나는 그 위에 대고 사과했다.

“섭섭하게 했다면 미안하다.”

“별말씀을.”

아니라고는 하지 않는다. 차라리 입을 다물지언정 거짓을 말하진 않는 녀석이었다.

대화의 흐름이 끊기자 어색한 기류가 흘렀다. 지그시 보는 내 앞에서 머뭇거리던 녀석이 조금은 부자연스럽게 화제를 바꾸었다.

“간밤에, 어제 하셨던 말씀들을 복기하면서 생각한 것이 있습니다.”

“뭔데?”

“세상이 급격히 바뀌진 않을 테니, 벌써부터 구체적인 대비를 서두를 필요는 없다고 말씀하셨지만…… 급할 때 바로 구하기가 까다로운, 그러면서 한 번에 구할 수 있는 물량에 제한이 있는 것들만은 국내에 미리 재고를 쌓아둬야 하지 않겠습니까?”

“예를 들면?”

“예를 들어…… 무기와 탄약 같은 것들 말입니다. 이것들은 나중에 아예 구하지 못하게 될 수도 있습니다.”

과연.

“좋은 지적이야.”

경태에게 서두를 것 없다고 했던 건, 사실 심란한 마음에 깊은 생각이 귀찮았던 탓도 있다.

암시장에 한하여, 무기와 탄약은 공급이 비탄력적인 재화다. 탄약 쪽이 특히 더 그러하다. 유사시 나 자신을 지킬 수단이라는 점에서 우선순위도 높다. 별다른 일이 없을 경우 야쿠자나 동남아의 여러 반군들에게 털어버리면 된다.

특히 필리핀 반군은 정부와 평화협정을 맺고서부터 전보다 더 많은 무기를 사들이고 있었다. 무장을 반납하는 대가로 정부로부터 다양한 양보를 얻어내는 중이기 때문에, 더 많은 무기가 곧 더 많은 권리로 직결되는 상황이었다. 또 협상이 파기될 경우에 대비해 보험을 들어둬야 할 필요성도 있었다. 반납하는 양 이상의 무기가 필요한 이유.

유통마진이 워낙 높은 시장이라 어떻게 되더라도 손해를 보진 않을 것이다. 고개를 끄덕이는 내 모습을 보고 수연이 물었다.

“대구에 연락해서 약속을 잡을까요?”

“그래.”

“누구를 보내시겠습니까?”

“내가 가야지. 중요한 일이니.”

나는 조커다. 내 조직이 협상장에 내놓을 수 있는 최강의 패다. 아무리 우수한 녀석이라도 생체신호를 눈으로 보면서 교섭을 하는 나를 대신할 순 없다.

“그렇군요. 날짜는 언제쯤이 좋겠습니까?”

“당장 내일 오후나 모레라도 괜찮아.”

“확인해보겠습니다.”

내가 거래하는 국내의 무기 벤더는 미군 내 사조직이다. 다른 공급자도 있고 조직에서 자체적으로 제작하는 총기도 있지만, 단가가 가장 저렴한 건 역시 미군 놈들이다. 왜냐면 이놈들이 원가 개념도 없이 장사를 하는 데다, 거래를 내가 독점하다시피 하고 있는 까닭.

놈들과는 처음에 일반 군수품과 면세품을 빼돌리는 정도로 안면을 텄으나, 오랫동안 신뢰를 쌓은 끝에 민감한 물건들까지 거래하는 관계로 성장했다. 세탁이 잘 된 달러의 마력은 부사관과 장교를 가리지 않고 끌어들였다.

난 수연이 메모를 끝내길 기다려 손을 내밀었다.

“잠깐 보자.”

“예.”

녀석이 넘겨준 양장수첩엔 근래의 내 일정과 조직 운영 전반에 관한 사항들이 정리되어 있었다. 하지만 그 내용을 이미 알고 있는 나니까 바로 파악이 가능한 것이지, 모르는 사람이 본다면 각종 은어와 은유, 개인적인 암호와 변형된 속기술로 기록한 정보들을 조금도 이해하지 못할 것이었다.

첫 페이지엔 SNS 주소, 대포폰 번호와 함께 다른 누군가의 셀피를 붙여놓았다. 습득 시 꼭 연락 바란다면서. 난 그 사진을 보다가 수첩을 돌려주며 물었다.

“이건 네 아이디어냐?”

“……예.”

“잘했다.”

수첩을 갈무리한 수연은 스마트폰 메신저로 대구 소재의 사업장에 연락을 넣었다. 내용을 최소화한 통보였다.

이다음에는 달리 어떤 투자가 필요할지에 관한 이야기가 오갔다. 그러다 7시가 되자 경태가 합류했다. 아침운동을 마치고 와서 문자를 보내고 문을 두드린 것이다.

“좋은 아침입니다, 형님. 누님은 오늘따라 빠르시네요.”

식사는 다시 룸서비스로 해결했다. 요리의 수준도 수준이거니와, 탁 트인 거실이 있는 스위트를 두고 굳이 뷔페를 이용할 필요는 없다. 이 시간에 나가봤자 문을 연 곳은 토스트 가게 정도가 전부일 터이고.

식후 차를 마시던 중에 수연이 불현 듯 떠오른 것처럼 질문했다.

“형님. 마소에 관한 정보는 어느 선까지 전파하면 좋겠습니까?”

“글쎄.”

곰곰이 생각하던 내가 대답했다.

“내 비밀을 아는 놈들에겐 다 오픈해줘. 나머지 애들은 천천히 고민해보지.”

“알겠습니다.”

조직 내에서 나의 이질성을 아는 조직원의 수는 의외로 적지 않다. 한풀이 과정에서 신비를 경험한 놈들이 꽤 되고, 무엇보다 조직의 존재목적 중 하나가 바로 최악의 상황을 대비한 안전장치였기 때문이다.

유사시 스승새끼의 옛 동지들, 혹은 그들이 보낼 추적자들을 저지해야 할 녀석들인데, 핵심 전력조차 마법에 대해 전혀 모르는 상태라면 상황이 발생했을 때 패닉에 빠져버릴 가능성이 높았다.

그러니 조직 차원에서 대비해야 할 ‘실제 상황’의 강도가 앞으로 현격히 증가할 수 있다는 것 정도는 미리 알려줘야 하지 않겠는가. 위험해졌다고 간단히 배신할 놈들도 아니다.

또 선물시장에서도 돈을 굴려야 하는데, 그러자면 여의도 김씨 같은 녀석에겐 정보를 감춘다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었다.

핸드폰 우는 소리가 들린다. 수연의 것이다. 액정을 들여다본 녀석이 고개를 눈을 살짝 찌푸린다.

“미군 측의 회신을 받았다는 전갈입니다. 굉장히 빠르군요. 그런데…….”

“그런데?”

“격이 맞질 않습니다. 책임자로 워커 소령이 나온다고 합니다. 형님께서 직접 가실 거라고 분명하게 전달했다는데도.”

“그 정도면 됐어.”

나는 어깨를 으쓱였다.

“미군 놈들 자부심을 감안하면 소령 짬으로도 괜찮을 거라고 판단했겠지. 한국군의 소령하고는 경력의 질이 다른 인력이니.”

“그래봤자 군수물자나 빼돌리는 카르텔의 자부심입니다.”

“그걸 건드려봐야 거래가 파투나기밖에 더하나?”

“…….”

“사소한 건 신경 쓰지 마. 이토록 빠르게 회신을 보냈다는 것 자체가 그쪽에서 나를 충분히 존중하고 있다는 증거다.”

정확히는 내가 가진 돈을 존중하는 것이겠지만.

무엇보다 표면적인 계급은 사조직 내의 서열과 일치하지 않을 확률이 높다. 예컨대 소령이 계급 이상의 실세일 수 있다는 뜻. 그렇지 않고서야 나를 상대하라고 내보낼까.

“아무튼, 그 친구들이 제안한 일자와 장소는?”

“내일 오후 여섯 시, 항상 만나던 그곳입니다.”

“확정지어.”

“예.”

이로써 내일의 일정이 정해졌다.

귀국하는 길에 인천에서 투숙하고 국내선을 탈 수 있다면 좋겠는데, 아마 시간에 맞는 비행기가 없을 것이다. 대구는 항공수요가 그리 많지 않은 도시니까. 하물며 싱가포르에서 대구로 가는 직항 따위가 있을 턱이 없다.

이후 두 녀석에게 공항으로 출발하기 전까지 한나절의 자유를 준 나는, 적당히 시간을 때우다가 어제부터 눈여겨보았던 국립도서관에 들어갔다. 비록 개장이 느지막하여 오래 이용하진 못했어도, 서가로 꽉 채워진 드넓은 공간은 그 자체로 심리적 안정감을 주는 것이었다.

지식은 힘이며, 어둠 속에서도 길을 비춰주는 빛이다. 이는 내가 중히 여기는 신조의 하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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