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삼각비행 (2)
가만히 입술을 매만지던 수연이 다시 한 번 묻는다.
“그건 사람들 때문입니까?”
난 고개를 흔들었다.
“아니. 살아있는 모든 것들 때문에.”
이 답은 질문을 한 수연도, 귀를 기울이던 경태도 당황하게 만들었다. 두 녀석은 내가 예상하는 변화의 거대함이 이제야 피부에 와 닿았을 것이다.
“마법이라는 게 인간의 전유물은 아니었나 봅니다.”
“그래. 정확히는 원시마법이라고 해야겠지만.”
“원시마법이요?”
“외견상 특화된 초능력에 가까울 거야. 대부분의 각성은 생명 그 자체의 강화와 그 밖의 지엽적인 능력들로 나타나겠지.”
마법의 구현은 마소를 돌려 마력으로 변환시킬 회로를 필요로 한다. 이 회로는 영혼에 새겨지는 것. 마소가 풍부한 환경에선, 영혼이 마소에 부대끼는 과정에서 자연적으로 회로가 트이기도 하고.
‘그러나 그런 회로가 내 것처럼 정교할 순 없지…….’
마소가 너무 많아도 문제다. 이토록 크고 거친 흐름 속에서 집적도 높은 회로를 새기기란 불가능한 일.
그러므로 원시적인 회로는 흐르는 에너지의 총량에서 나를 능가할 순 있을지언정, 그 에너지를 활용하는 측면에선 누수와 낭비가 많고 복잡성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짐작컨대 유효하게 쓰이는 에너지의 비율이 채 1%에도 못 미치는 경우가 흔할 것이다.
예전부터 마법사였던 자들과 새롭게 각성할 능력자들 사이엔 노력으로 극복하지 못할 격차가 존재하는 셈이다.
나는 이런 이야기를 두 녀석에게 풀어주었다. 천천히, 차분하게, 정리된 말들이 떠오르는 대로.
한 번 비우고 다시 채우는 잔 안쪽에 창밖의 연한 노을이 배어들었다. 평범하지 못한 내 시야에도 곱게 보이는 빛이었다.
제 잔을 멍하니 보던 경태가 머리를 긁적였다.
“에구, 대충은 알겠는데 상상은 잘 안 되네요. 사람도 사람이지만 그 뭐냐, 멧돼지 같은 게 지금보다 훨씬 더 위험해진다고 보면 되겠습니까?”
난 고개를 기울였다.
“다른 생물도 많은데 왜 하필 멧돼지냐.”
“당장 떠오르는 게 그 정도라서 말입니다. 걔들이 주택가로 자주 내려오잖습니까. 편의점으로 들이닥쳤다느니 차를 들이받았다느니 하면서 뉴스에도 나오고. 그게 막 초능력 멧돼지? 같은 거라면 여러 사람 다치거나 죽을 수도 있겠다 싶어서 말이죠. 하하.”
흠.
“맞는 말이지만, 피해의 총량을 고려할 때 더 귀찮을 놈들은 따로 있을 거다. 인간을 직접적으로 공격할 동기가 있는 생물종 말이다.”
“예를 들면요?”
“예를 들면-”
나는 세상에서 사람을 가장 많이 죽이는 동물을 떠올렸다.
“모기.”
“예? 모기요?”
“그래.”
석화를 하나 집어먹고, 샴페인 한 모금을 삼키고서 말을 잇는다.
“다소 극단적인 예시이긴 하다만, 살충제도 잘 안 통하는 모기가 방충망을 힘으로 찢고 들어오는 세계를 상상해봐라. 굉장히 X 같겠지?”
“허미.”
경태가 질겁을 했다.
“설마 그런 놈들이 떼로 나타납니까?”
“극단적인 예시라고 했다.”
“하면……?”
“각성할 확률, 그리고 능력의 강약은 그 생물의 생체질량과 살아온 시간에 비례할 거다. 모기 중에서 그토록 강력한 개체가 출현할 가능성은 희박하다고 봐야지. 종에 따른 차이도 있고.”
모기의 영혼은 작다. 작은 영혼이 작은 몸집에 깃들어있으니, 마소에 노출되는 표면적도, 그럼으로써 만들어질 회로의 크기도 그만큼 작을 수밖에.
그러나.
‘문제는 숫자다.’
꼴에 술이라고 샴페인을 마셨기 때문인지, 내 사색은 잠시 생산성이 낮은 방향으로 흘러갔다. 이 세상엔 얼마나 많은 모기들이 있을까?
이건 페르미 추정으로 계산하는 수밖에 없겠다.
사막에도 모기가 살고 시베리아조차 예외가 아니므로, 모기는 극지방을 제외한 지구 전역에 분포한다고 보아야 한다. 그저 밀도의 차이가 있을 뿐. 그 면적은 대략 1,300만 제곱킬로미터쯤 되려나?
여기에 사막과 늪과 초원 등지의 평균을 대강 후려쳐서 5 제곱미터 당 한 마리의 모기가 있다고 치면…….
2조 6천억 마리.
각성 확률이 만분의 일이라도 당장 2억 6천만 마리의 슈퍼 모기가 튀어나오는 셈이다. 게다가 이 확률은 세대가 바뀔 때마다 반복 시행된다. 체감 상으론 훨씬 더 많게 느껴질 거란 뜻.
이게 비록 부정확한 추산이라도 시사하는 바는 크다. 마소의 범람이 조기에 해소되지 않는다면, 인류는 앞으로 그런 세계를 살아가야 한다는 것. 한낱 모기 같은 미물부터 시작해서, 생명을 지닌 모든 환경이 낯설고 거칠어질 세계를.
경태 녀석이 마른세수를 했다.
“주식을 팔아야 하나…….”
메모를 하던 수연이 미간을 좁혔다.
“뚱딴지같은. 갑자기 주식이 왜 나와.”
“향후 세계경제의 불확실성이 나쁜 쪽으로 커질 것 같아서요.”
“…….”
참 일관성 있는 놈이다.
“뭐 샀냐.”
물어보자 경태가 답한다.
“셀X리온이요.”
“이익은?”
“손해죠. 여의도 김씨 아저씨 말을 듣고 재작년 말에 20만 언저리에서 몰빵했던 거를 여지껏 들고 있다는 거 아니겠습니까……. 아저씨 말대로 30만 찍었을 때 바로 놨어야 했는데, 계속해서 올라가는 걸 보고 욕심을 내다가 그만…….”
“네가 잘못했네.”
“제가 잘못했죠.”
경태 녀석이 시무룩해졌다. 여의도 김씨는 내 국내 자산운용을 맡은 간부인데, 이 녀석에게도 투자정보를 귀띔해주었던 모양이다.
“너무 서두르지 마라.”
“예?”
“이제까지 한 말들은 마소 범람이 장기화될 때의 이야기 아니냐.”
이 현상이 단기적으로 끝난다면……. 기왕 쌓인 마소가 단번에 증발하진 않을지라도, 그렇게까지 심한 혼란은 없을 것 같다. 하락장이 올 경우 오히려 매수를 할 타이밍이겠지. 얼마 안 가 정상화될 테니.
어디까지나 예측에 불과하지만.
“결국 좀 더 지켜봐야 한다는 말씀이시네요.”
“그렇다.”
나는 두 녀석의 잔이 가득 차도록 첨잔을 해주었다. 이로써 병이 다 비었다. 금방이라도 넘칠 듯 넘실거리는 샴페인을 본 경태가 어이쿠! 하며 입을 대고 빨아들인다. 그렇게 술을 밝히는 놈이 내가 더 마시게끔 참고 있던 눈치. 하물며 수연 쪽은 말할 것도 없다.
이까짓 게 뭐라고. 비싸봤자 술인 것을.
레몬과 버터의 풍미가 진한 마들렌은 샴페인과 궁합이 잘 맞았다. 마들렌의 기름진 부드러움을 차갑게 적셔주는 샴페인의 청량감.
잔을 홀짝이는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던 수연이 신중하게 입을 열었다.
“어쩐지 형님께선 이 사태가 달갑지만은 않으신 듯한 느낌이 듭니다.”
관찰력이 좋다. 난 내 근심을 순순히 인정했다.
“맞다.”
“그럴 리가 없…… 네? 왜요?”
한 박자 늦은 경태 녀석이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을 짓는다.
“형님 인제 죽어야 할 놈들을 제물로 안 쓰고도 능력을 펑펑 쓰실 수 있는 거 아닙니까?”
“조만간 그렇게 되겠지.”
“엥? 조만간이요? 당장이 아니고요?”
“마소가 많아도 너무 많아서 그렇다.”
내가 잠재력을 발휘하려면 변화한 환경에 맞게 회로를 조율해야 한다. 그러기 전에 최대 출력으로 회로를 돌렸다간 몸이 세포단위로 붕괴하거나 폐인이 되어버리고 말 터. 마치 과전압에 타버리는 전자회로처럼. 사실 가만히 있는 지금도 가벼운 부하가 가해지는 중이다.
경태는 의아함을 감추지 못했다.
“아무튼, 예전보다 훨씬 더 강해지실 텐데 뭔가 문제라도 있습니까?”
“물론이다. 내가 강해지는 만큼 런던에 있는 놈들도 강해질 테니까.”
런던에 있는 놈들이란 내 스승새끼의 옛 동지들을 말한다.
멍 때리는 경태 옆에서 수연이 끄덕였다.
“거기까진 미처…… 생각을 못 했습니다. 일전에 말씀하시길, 세상의 그늘에서 조용히 살아간다면 죽을 때까지 마주칠 일이 없을 인간들이라고 하셨던지라.”
“당시엔 그랬지. 그 제국주의자들에게 남은 거라곤 과거의 영광뿐이었으니.”
하지만 이제는 아니다. 마소 고갈에 허덕이며 화석이 되어가던 런던의 마법사들은 머잖아 거대한 힘과 권력을 손에 넣을 것이다. 놈들에겐 놈들의 제국에 해가 지지 않던 시절, 온 세상에서 약탈해 온 지식과 유물들이 넘치도록 있으므로.
나는 가벼운 짜증을 담아 내뱉었다.
“내 스승…… 그 염병할 흰둥이가 놈들에게, 그리고 나에게 저질러놓은 짓들을 돌이킬 수가 없기 때문에……. 이대로라면 나와 런던의 충돌은 확정된 미래나 마찬가지야. 그건 아주 길고 위험하고 피곤한 싸움이 되겠지.”
과거 스승이었던 인간이 생전에 내 생눈을 뽑고 박아놓은 의안, 이른바 「황금기의 눈」은 본디 런던 제국주의자들의 가장 귀중한 유물이었다. 이 장물을 도로 뽑아 돌려주며 목숨을 구걸한다는 선택지는 내게 없다. 뽑자마자 회로 파열로 즉사할 몸이 되어버린 까닭이다.
스승새끼를 떠올리니 보육원 시절의 술 맛 떨어지는 기억들도 함께 떠오른다.
하. X 같은 놈.
수연이 묻는다.
“그 ‘런던’의 눈을 피해 숨어 사는 건 불가능하겠습니까?”
난 딱 잘라 대답했다.
“가능하더라도 행운의 영역이다.”
“…….”
“나는 그러기 싫다. 한평생 두려움에 쫓기며 도망자의 삶을 사느니, 차라리 모든 걸 걸고 싸워보는 게 나아.”
그들과 나, 어느 한쪽이 완전히 끝장날 때까지.
스승새끼가 내 머리에 남긴 기억 속엔 런던 제국주의자들의 혐오스러운 가치관과 만행들이 포함되어있다. 스승에게 그러했듯이, 그 선민의식에 찌든 놈들에게도 나는 그저 사람 흉내를 내는 유인원에 지나지 않을 터. 유인원과 진지하게 대화를 나눌 제국주의자는 없다. 놈들과의 협상이나 공존에 일고의 가치도 없는 이유다.
“그리고 장담하는데, 그놈들이 지구상에서 사라지는 편이 너희에게도, 세상 모든 사람들에게도 유익할 거다. 그냥 뒀다간 이 세상을 모조리 집어삼킬 암세포들이니.”
말을 마친 나는 감정을 다스렸다. 어느 샌가 어조가 거칠어지고 있었기에. 여간해선 감정을 과하게 드러내는 일이 없건만, 스승과 제국주의자 패거리들에 대해서는 그러기가 어려웠다.
테이블에 잠시 침묵이 내려앉았다. 바에서 틀어놓은 음악과 거기에 묻혀 알아듣기 어려운 주변의 말소리들이 귓가로 어수선하게 밀려든다.
샴페인이 반쯤 남은 잔을 만지작대던 경태가 그걸 쭉 들이켜고는 어깨를 으쓱였다.
“세상이니 뭐니 거창한 건 알 바 아니지만서도……. 저희가 할 일은 지금까지나 앞으로나 다를 게 없을 것 같습니다. 형님께서 죽이라고 하실 땐 죽이고, 죽으라고 하실 때 죽으면 되는 것 아니겠습니까?”
이 순간 내 눈은 습관처럼 경태의 뇌를 훑고 있었다. 전두대상피질과 편도체에선 어떤 거짓의 징후도 보이지 않는다.
이 녀석은 언제나 꼬리를 흔드는 개 같은 놈이다. 욕이 아니라, 문자 그대로 개처럼 충성스럽다는 뜻. 가끔은 미친놈처럼 보일 때도 있다.
그래서 1억 6천짜리 샴페인도 아깝지 않은 것이다.
“그런데요, 형님.”
경태가 물었다.
“안주가 많이 남았는데 샴페인 한 병 더 시켜도 됩니까? 이제 너무 막 비싼 건 말고요.”
“마음대로 해라.”
“감사합니다!”
컬렉션 북을 뒤적이던 녀석이 한 페이지 위로 손가락을 짚어 보였다.
“이건 어떨까요?”
“뭔데?”
“폴 로저, 2000년산 뀌베 「써(Sir) 윈스턴 처칠」이요.”
“…….”
폴 로저는 윈스턴 처칠이 즐겨 마셨다던 샴페인 브랜드로, 아직까지 처칠의 이름을 붙인 제품들을 팔고 있다. 그리고 처칠은, 비록 런던의 마법사들과 큰 관련이 없지만, 사상적으로는 오십보백보로 역겨운 제국주의자 새끼다.
나와 수연이 어이가 없어서 바라보니 경태가 낄낄대며 웃는다.
“기분이 좀 풀리셨습니까?”
나는 가볍게 혀를 찼다.
“……술은 죄가 없지.”
“으하핫! 정말로 감사합니다, 형님!”
녀석은 곧바로 새로운 샴페인을 주문했다.
골초 제국주의자의 이름을 쓰는 샴페인은 백 년 전의 난파선에서 건져 올린 「미국의 맛(Goût Américain)」보다 훌륭했다. 그에 반해 디자인은 우스꽝스럽다. 진한 녹색 병에 금박으로 붙은 처칠의 낯짝이 불빛을 받아 반짝거렸다.
그 와중에 경태가 고개를 돌리더니 소리를 최대한 죽여 그윽- 하고 트림을 내뱉는다.
실소를 머금게 만드는 꼴이다.
이 뒤로는 조용히 먹고 마시는 데 집중했다. 반쯤은 의식적인 노력이었다. 펼쳐진 음식들을 착실하게 먹어 치우는 수연 덕분에 세 병째의 샴페인은 필요치 않았다.
경태가 빈 접시들을 보며 제안했다.
“여기서 더 마시느니 나가는 게 낫겠죠? 슬슬 걸어가면 라우파삿인지 뭔지 하는 야시장도 열릴 것 같고.”
처음엔 그렇게 욕심을 부리더니, 값비싼 샴페인이 들어가니까 욕구가 어느 정도 해소된 모양이다.
있는 듯 없는 듯 수시로 내 테이블을 주시하던 매니저는 계산이 이루어지고서야 비로소 긴장을 풀었다. 그는 문 밖까지 나와 우리를 배웅했다. 꼭 다시 찾아달라는 인사말과 함께.
나란히 야시장으로 가는 도중에 경태가 수연에게 물었다.
“그런데 누님.”
“왜?”
“전부터 궁금한 게 있는데 말입니다. 누님은 여잔데 형님을 왜 형님이라고 부릅니까?”
“그러고 싶으니까.”
“그렇구나.”
멋쩍어하는 경태에게 수연이 역으로 묻는다.
“그럼 형님을 오빠라고 부를까?”
경태 녀석이 멍하니 있다가 머리를 긁적인다.
“어, 그건 좀 아닌 것 같습니다.”
여기서 잠시 끊어졌던 대화는 곧 시답잖은 주제로 넘어갔다.
그렇게 느린 걸음으로 40분쯤 걸어 이 도시의 명물이라는 라우파삿 거리에 도착했다. 낮엔 도로였던 곳을 바리케이드로 막아 테이블을 깔았다는 점을 제외하면 그리 특별할 것이 없는 장소였으나, 앉자마자 맥주부터 주문하는 경태는 마냥 즐거워 보이기만 했다. 그리고 수연은 여기서도 조용한 먹성을 보여주었다.
뭐…….
이렇게 평범한 풍경도 앞으로는 보기 힘들어질 수 있으니, 나름의 의미가 있다고 해야겠지.
먹을 만큼 먹고 마실 만큼 마신 두 녀석과 호텔로 돌아온 시각은 대략 11시쯤이었다.
“쉬십시오, 형님.”
“오늘은 부디 편안한 밤 되십시오!”
앞은 수연이고 뒤쪽 농담은 경례하는 경태다. 술이 들어가 기분이 좋아진 품새였다.
“그래. 잘들 자라.”
녀석들과 복도에서 갈라져 내 방으로 들어선 나는, 희미한 빛이 드는 침대를 보며 무거운 한숨을 내쉬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