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짐승의 발자국 (62)화 (62/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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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윤이 무릎을 꿇고 눈높이를 맞춘 채 먹음직스러운 그곳을 음험한 눈으로 훑었다.

제 눈에만 젖은 게 보이는 걸까. 확인하는 방법은 하나였다. 두 허벅지를 팔로 단단히 감았다. 그리고 그대로 서우의 치마 아래 얼굴을 들이밀었다.

“흐읍!”

엉덩이가 아래로 떨어지지 않게 단단히 받친다. 두 다리가 그의 어깨에 걸렸다. 그리고 아래에서 강태윤의 호흡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아무것도 잡을 데가 없어 서우가 잇새로 흐느끼자 조금 더 아래를 빠는 소리가 들렸다.

츠읍. 츱.

사탕이라도 빨 듯 쭙쭙, 타액으로 젖어서 입을 오므리는 감각이 보이지 않으니 더 세밀하게 제 몸을 지배했다. 종아리에 잔뜩 힘이 들어가고 발끝이 곱아든다. 몸에 잔뜩 힘이 들어갔다. 안쪽의 깊숙한 부분을 찌르는 느낌에 하마터면 의자에서 그대로 구를 뻔했다.

태윤의 얼굴이 보이지 않았다. 그저 치마 아래 불룩하게 그의 머리만 보일 뿐이다.

서우가 천장을 보면서 헐떡였다.

“…윤아, 그만.”

벗어나려 할수록 저도 모르게 허벅지에 힘을 줘서 그의 얼굴을 오히려 더 가까이 끌어당기는 형세가 될 뿐이었다. 그럴수록 아래서 들리는 소리가 더욱 커졌다. 배 아래쪽이 뜨겁고 얼얼했다.

왜 이곳에 왔는지까지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오로지 태윤이 주는 감각만이 서우가 유일하게 느끼는 것이었다.

디잉.

잡을 곳을 찾지 못한 서우의 손가락이 결국 피아노 건반을 붙잡았다.

부드럽게 울리는 소리에 태윤이 고개를 든다. 입술에 묻은 번들거리는 것을 노골적으로 혀로 휘감아 먹으며 입맛을 다셨다.

지익.

서우의 아래를 아슬아슬하게 가리고 있는 실크 원피스가 그대로 태윤의 손에 반으로 찢겨 나갔다. 아래서부터 목 끝까지 한 번에 길게 찢기는 걸 넋이 나가 보고 있었다.

“뭐, 뭐 하는 거야.”

“이건 봤으니까 됐어.”

그렇게 말한 태윤이 서우의 몸 위로 상체를 드리운다. 그의 손이 서우의 머리 옆을 짚었다. 잔뜩 웅크린 짐승처럼 그가 그대로 안은 채 깊게 몸을 묻는다.

“아읏!”

의자가 두 사람의 무게를 버티지 못하고 비명을 지른다. 두 다리가 허공에서 흔들렸다. 물기가 마르지 않아 젖어 있는 태윤의 얼굴이 보였다. 움직일 때마다 가닥가닥 젖어 있는 머리카락이 흔들린다.

희미한 시선 사이로 흥분에 겨워 있는 태윤의 얼굴이 보였다. 자신을 안을 때의 그가 이런 얼굴인지 내내 시선을 피하고 있던 서우에게 생경했다. 자신이 알던 강태윤이 아닌 것 같다. 어쩐지 몸이 오싹하고 선득했다.

서우의 시선을 느꼈는지 태윤이 느른하게 웃는다. 포식자의 것 같은 미소는 이제야 주린 배를 채운 짐승처럼 보여서 그녀가 눈가를 접었다.

“여기 봐야지, 윤서우.”

저도 모르게 턱을 돌렸는지 그가 곧장 다시 세우며 태윤이 말했다. 어쩐지 억울한 얼굴의 서우가 그를 바라보자 아랫배에 뜨거운 열이 고였다. 피아노 건반을 힘겹게 잡던 그녀의 손이 태윤의 팔뚝을 애원하듯 붙잡았다.

단단하게 뿌리를 내린 듯 자신을 끌어안는 강태윤을 붙잡아야 몸이 위로 밀리지 않았다.

아래쪽이 먹먹하다.

“네가 뭘 하든, 하, 나는 이런 상태라서.”

벗겨 놓고 이렇게 윤서우를 탐하는 게 머릿속에 든 전부였다. 어떻게 이 작은 머리로 이런 깜찍한 생각을 했을까.

태윤의 입술이 서우의 이마 위를 스쳤다. 혀가 길게 그녀의 얼굴을 핥는다. 맛을 보듯 느긋한 것과 다르게 번들거리는 눈은 조초해 보였다.

“전부 입어 봐. 밤새도록.”

“하아, 이, 아, 이렇게 찢을 거면서….”

“또 사 줄게. 응?”

아이를 달래듯 살살 달랜다. 정신없이 그녀에게 몸을 묻으면서 목소리만은 꿀처럼 달게 말했다.

서우가 크게 숨을 헐떡였다. 태윤이 무슨 말을 하는지 머리가 정확히 이해하지 못해서 무조건 고개를 끄덕이며 알았다고 했다.

그래야 빨리 이 폭풍 같은 쾌락이 끝날 것 같아서다.

쓰윽, 그가 몸을 일으키는 느낌과 함께 어쩐지 바닥으로 길게 뭔가 떨어지는 점액질의 느낌이 났다. 그리고 태윤이 기진맥진한 서우를 일으켰다.

“가, 강태윤! 아흐….”

콰앙.

피아노와 마주 보게 세운 채 서우의 손이 건반 위를 세차게 짚자마자 뒤에서 그가 붙어왔다.

엉덩이를 쭉 뺀 채 가느다란 허리를 양손으로 잡고 태윤이 웃는다. 서우의 손이 그럴 때마다 건반 위를 엉망으로 쳤다. 쿵, 콰앙, 디딩, 괴상한 음악 소리가 천둥처럼 울렸다.

“넌 피아노 치는 모습도 예쁘네.”

서우의 엉망인 소리가 태윤의 귀에 감미롭게 꽂혔다. 두 손은 있는 힘껏 피아노의 건반을 누른다.

길게 소리가 울려 퍼졌다. 서우의 풀린 머리카락이 하얀 등 위에 흩어져 있었다. 태윤이 이를 세워 그녀의 날개뼈를 꾹 깨물었다.

“아!”

서우와 동시에 그도 소리를 지를 뻔했다.

긴 여운이었다. 잠시간 서로 움직이지 못했다. 피아노에 그대로 쓰러지려는 서우의 가슴을 감싸서 제 품으로 끌어들인다.

“진짜… 너, 너….”

자신을 생각하며 골랐다는 옷을 한 번이라도 입어 주고 싶었다. 그의 마음을 알고 있는 채로 입고 보여 준 뒤, 그의 상상대로냐고 묻고 싶었는데 그냥 벗기기 좋은 옷만 입은 걸로 끝나서 서우가 허탈하게 웃었다.

태윤이 그녀의 몸을 천천히 돌렸다.

“다음 옷 보여 줘.”

“뭐?”

“입고 나와.”

까만 동공이 이리저리 흔들리는 걸 그가 다정하게 내려다본다. 서우의 턱 끝을 가볍게 쓸면서 태윤의 손이 드레스룸을 가리킨다.

턱을 쓸다가 자신이 골라 놓은 귀걸이를 그대로 한 걸 보고 손이 그곳으로 가 귓불을 만지작거렸다.

“그럼 씻고….”

“그냥 입어.”

아래가 온통 미끄러웠다. 허벅지를 타고 흐르는 느낌이 선득한데 태윤이 말도 안 되는 요구를 한다. 느른하게 입꼬리가 호선을 그렸다.

말도 안 되는 요구가 아니라는 얼굴이라 서우가 고개를 저었다.

“너… 이상해.”

“이상한 놈한테 이러고 있었던 스스로를 돌아봐. 나는 이제 기회를 놓치지 않기로 했어. 내가 널 너무 많이 놓쳤거든.”

태윤이 알 수 없는 말을 한다.

“그래도….”

“옷에 전부 네가 묻혀 줬으면 좋겠어. 나는 그냥 네 냄새가 배인 걸 갖고 싶은 것뿐이니까.”

그것도 안 되냐고 강태윤의 눈꼬리가 조금 쳐졌다. 어쩐지 다시 아랫배가 뜨끈해진다.

이상하다는 걸 알고 있다. 그런데 태윤의 저런 얼굴을 보자 전부 들어주고 싶은 말도 안 되는 생각이 들었다.

“흣.”

서우가 덜덜 떨리는 두 다리로 섰다. 뒤로 돌았는데 제 벗은 뒷모습에 꽂히는 시선이 느껴진다.

다리 아래가 미끄러웠다. 드레스룸으로 가자 그제야 그의 눈에서 벗어날 수 있어서 안도의 숨이 터졌다.

“잘못 걸렸다.”

세상에 이러고 새 옷들을 입어 마음껏 묻히라니. 강태윤이 어디서부터 비틀린 건지 짐작도 안 된다. 그리고 그 옷을 고르고 있는 자신도 자포자기한 건지, 그에게 맞춰진 건지 모르겠다.

서우가 연베이지 투피스를 골랐다.

상의가 크롭처럼 짧고, 바지는 허리까지 올라와 있어 누가 봐도 한 벌이었다. 엉덩이가 축축했다. 속옷은 이 방이 아니라 다른 방에 있는 건지, 아무리 봐도 찾을 수 없었다.

결국 그대로 서우가 거실 밖으로 나왔다.

그러다 강태윤이 자신이 누워 있었던 피아노 의자 아래 앉은 채 제 머리만 가만히 대고 있어서 놀랐다.

일부러 저러는 걸까.

서우의 얼굴이 민망해졌다. 다른 쪽을 보면서 가까이 다가가자 다정하게 여전히 얼굴을 기대고 손만 뻗어 부른다.

“서우야, 이것도 예쁘다.”

“주지도 못할 여자 옷은 왜 자꾸 샀어.”

“가만히 집에서 혼자 생각하다가는 미칠 것 같아서. 나가서 이런 거라도 사야지. 살 때는 제법 정상처럼 보였을 거야.”

심할 땐, 같은 매장에 하루에 세 번 갈 때도 있다고 했다. 쉬는 날이면 태윤이 쇼핑 거리를 떠돌았다. 그리고 제 집에 와 쇼핑백을 놓을 때마다 빈자리를 확인하게 된다.

서우에게 어떤 것도 제대로 해 주지 못했던 스스로에 대해 환멸이 났을 때였다.

미국에서의 강태윤을 모른다.

서우의 손이 가만히 앉아 있는 그의 머리카락 위를 매만졌다.

“친구들이 자꾸 이런 옷만 사니까 뭐라고 안 했어?”

“나 친구 없어.”

담백한 말이었다. 친구 없다는 말을 당당하게 하는 그에게 서우의 손이 일순간 멈칫했다.

강태윤의 주변에는 항상 사람이 많았다. 서우가 표정을 굳히자 곧 그녀가 은하처럼 저를 걱정하는 걸 보고 태윤이 덧붙였다.

“애인도 없으면서 이런 걸 사니까. 게이라고 소문났거든.”

“아….”

강태윤이 게이라니 말도 안 된다. 서우의 얼굴이 붉어졌다. 그게 농담인지, 알 수 없다. 미묘하게 웃으면서 자신을 보는 그의 얼굴이 뻔뻔해서다.

“거짓말이지?”

“글쎄.”

말끝을 늘이면서 모르겠다고 천연덕스럽게 말한다. 그리고 서우의 크롭탑을 들쳐 가슴과 배꼽 사이에 입을 맞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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