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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님….”
“내 손주들 때문에 떠밀어 놓고, 다시 데려다 놓는 나도 참 죽어서 좋은 꼴은 못 보겠구나.”
“그런 말씀 마세요.”
서우를 그렇게 이곳에 목줄을 매어 놓자 태윤을 감시하던 사람들로부터 연락이 왔다. 윤서우가 이곳을 드나드는 걸 안 뒤의 강태윤이 더 이상 밤의 외출을 삼간다고 했다.
그래, 그거면 됐다.
그렇게 무서운 눈으로 앞에 뭐가 있는지도 모른 채 서 있는 태윤의 모습을 다시는 보고 싶지 않았다.
윤서우는 어떤 재정적 지원도 바라지 않았다. 어떻게든 뭐든 해 주겠다는 주 회장의 제안을 고개를 저어 거절했다. 그나마 챙겨 줄 수 있는 게 연주비뿐이었다.
제 돈은 한 푼도 받고 싶지 않은 게 느껴져 그냥 이곳에 드나드는 것만으로 만족하기로 했다.
태윤이 돌아오는 그날까지, 그게 주 회장의 숙명이었다.
***
“안녕, 태윤아.”
늦은 밤에야 돌아온 태윤은 제 집 앞에 서서 잔디 위에 앉아 있는 윤서우를 보고 잠시 할 말을 잃었다.
다리가 아파서 앉아 있었는지 그를 보다 엉덩이를 털고 일어난다.
“내가 그래도 여기 몇 번 왔었다고 문 열어 주시더라고.”
정문에 있는 경비실을 말하면서 서우가 활짝 웃었다. 그래 봤자 여전히 눈의 부기가 가라앉지 않아 부어 있는 채다.
“들어가 있지. 비번 네 생일인데.”
“알아. 혹시 하고 눌러 보니까 열리더라.”
“그런데 왜 여기에서 기다리고 있어.”
바닥에 앉아서 하염없이 자신을 기다렸을 윤서우를 생각하니 어쩐지 속이 답답해져 왔다.
“그냥. 바람도 좋잖아. 나 여름에 너무 더울 땐 평상에 많이 앉아 있었거든.”
안에서 쪄 죽느냐, 밖에서 타 죽느냐의 싸움이었다. 그때가 떠올라 서우가 작게 웃음을 터트렸다.
우리가 만났던 것도 꼭 이런 여름이었는데, 태윤은 기억하고 있을 것 같았다.
“밤에 나를 기다리고 있다는 게 어떤 의미인 줄 넌 모를 거야.”
자신이 돌아왔는데 윤서우가 기다리고 있었다. 잔뜩 세워졌던 날이 무뎌진다. 그 풀어지는 기분은 서우의 얼굴을 볼수록 오묘해졌다.
꼭 온순하고 저만 보는 어린 동물 같다.
“무슨 말인지 모르겠어. 그런데 그냥 집에 가다가 네가 보고 싶어서 오게 되더라.”
“내가 안 오면.”
“그럼 기다리다가 쓸쓸히 혼자 집에 돌아갔겠지.”
서우의 말에 태윤이 픽 웃었다. 들어오길 잘했다. 분을 못 이겨 어딘가를 방황하느니 시트를 갈지 않고 둬서 침대 어딘가에 남아 있을 윤서우 냄새나 찾아 코를 박고 누워 있는 게 나을 것 같아서다.
“다음에는 안에서 기다려.”
“그럴게.”
태윤의 옆에 붙어서 서우가 졸졸 안까지 따라 들어갔다. 사람이 들어오자 자동으로 집 전체에 은은한 조명이 함께 켜졌다.
“옷 갈아입고 나올게.”
“응. 씻구 나와.”
“무슨 생각이실까.”
씻겨서 뭘 어쩌려고.
태윤이 고개를 모로 기울이며 낮게 샌 목소리로 물었다. 피곤한지 갈라진 그의 목소리가 어쩐지 더 섹시하게 들렸다.
“너 씻는 동안 나 집 구경해도 돼?”
“마음대로 해.”
서우가 못 갈 곳은 어디에도 없었다. 태윤이 미심쩍은 얼굴로 그녀를 바라보자 어서 들어가라며 서우가 손짓했다. 방으로 들어가는 그를 보고 나서야 집을 여유롭게 둘러본다. 자신이 아는 곳은 태윤의 방과 거실뿐이었다.
세 개의 방이 이곳에 더 있었는데 서우가 그걸 찾아 걸음을 옮겼다. 방은 몇 개 되지 않아 금방 알게 됐다.
“미치겠다, 강태윤.”
그가 쓰는 방이 당연히 커서 안방이라고 생각했는데 그보다 더 큰 방이 하나 더 있었다. 거기가 안방이란 걸 누가 봐도 알 수 있을 만큼, 작은 거실이라고 봐도 좋을 정도로 컸다.
그 큰 방에 드레스룸이 하나 있었고, 거기에 여자 옷과 구두, 가방 등이 차곡차곡 진열돼 있다. 은하의 집에서나 볼 법한 드레스룸이었다.
“안방을 드레스룸으로 쓰는 사람이 어디 있어.”
진짜 강태윤 변태 같다.
어느 숍에 오기라도 한 사람처럼 서우가 안을 둘러봤다. 정말 자신을 생각하면서 이걸 하나하나 사 모았을까. 그럼 진짜 변태가 맞았다.
서우의 손끝이 옷들을 한 번씩 쓸어 본다. 가격표가 그대로 붙어 있는 옷들은 한 번도 누군가 입은 적 없다는 걸 알려 줬다. 서우가 그중 초록색의 실크 원피스 하나를 집어 들었다. 그리고 잠시 망설이다 제 옷을 재빨리 갈아입는다.
거기에 맞춰서 검은 새틴 구두를 고르고, 앙증맞은 아이보리색 미니 백을 골랐다.
그러다 눈에 들어온 건, 한쪽에 있는 주얼리였다.
“얼마나 변태면 이런 것까지 사 놨어.”
잘못 걸린 거 아닐까. 그 생각이 들 정도로 세심하게 준비돼 있었다. 다이아만 심플하게 있는 귀걸이를 했다. 심장이 어쩐지 입 밖으로 튀어나올 것 같다. 자신을 보고 태윤이 뭐라고 할지 예상이 가지 않았다.
망설이다 서우가 방문을 슬쩍 열었다.
태윤이 씻고 나왔는지 주방 쪽에서 냉장고를 여는 소리가 들린다. 그리고 곧 그가 목이 말랐는지 생수 하나를 들고 마시는 모습이 보였다.
“태윤아….”
애꿎은 가방의 손잡이를 쥐었다 펴면서 서우가 그를 불렀다. 물을 마시던 그가 돌아보다가 이내 큽, 하고 사레가 들렸는지 허리를 크게 숙였다.
“쿨럭.”
크게 헛기침을 한다. 손등으로 입가를 닦으면서 태윤이 서우를 말도 안 되는 눈으로 바라봤다.
“나 이상해?”
“…왜 이렇게 깜찍한 짓을 할까.”
윤서우의 어마어마한 용기를 알 수 있었다. 자신이 다가가기만 해도 밀어내기 정신없던 그녀가 이렇게 그의 방에 들어가 그녀를 위한 옷을 입고 나온다는 게 얼마나 수도 없이 생각해 온 일인지 태윤이 짐작했다.
내내 들어가지 못하고 잔디밭에 앉아서 안쪽만 노려봤으리라.
그의 말에 서우의 얼굴이 붉어졌다. 눈도 붓고, 얼굴도 붉어지고 가관이 따로 없었다. 한입에 삼키고 싶을 만큼 예뻤다.
태윤이 물병을 테이블에 내려놓고 서우에게 다가왔다.
편한 옷차림으로 걸어오는데 어쩐지 왼쪽 허벅지에서 헐렁한 바지 사이로 다른 게 움직이는 것 같아 유심히 보다 바로 앞까지 다가온 그로 인해 시선을 올렸다.
“너….”
자신이 벗은 것도 아니고 옷을 입고 있는데 왜 거기가 커져 있냐고 차마 묻지 못하고 서우가 입을 벙긋거렸다.
“윤서우, 나 환장하게 하려고 작정했어?”
생각해 보지도 않은 일이었다. 어쩌면 상상으로 어딘가 했을지도 모른다. 그가 골랐던 옷들은 전부 윤서우가 입었을 거라 생각하고 골랐기에. 고르면서 이 옷을 입은 그녀의 모습을 떠올려 보지 않은 건 아니었다.
그런데 상상보다 실제는 훨씬 더 자극적으로 보였다.
시선만으로 쌀 것 같다는 게 뭔지 알 정도로. 태윤이 짧게 웃으면서 서우의 팔을 잡았다.
“아니…. 작정한 건 아닌데 왜 이렇게 너-”
눈이 돌았다.
태윤에게는 미안하지만 그렇게밖에 표현이 안 됐다. 서우가 물러서기도 전에 태윤이 그녀의 허리를 강하게 감아 제 하체에 딱 붙였다.
유독 뜨거운 한 부분이 있었다. 서로의 붉어진 얼굴을 감출 새도 없이 가깝게 마주 봤다.
“이렇게 예쁜 짓을 하면 내가 돌잖아.”
“어…. 그래 보여, 너.”
서우가 멍하게 긍정하자 태윤의 입가 한쪽이 날큰하게 웃는다.
이렇게 저를 좋아하는데 그동안 어떻게 참았냐고 묻고 싶었다. 서우를 안고 그가 뭉근하게 허리 아래를 부볐다. 천천히, 선득하게 자신이 느낄 딱 그 정도로만 제 흥분을 확인시켰다. 어쩐지 침이 넘어간다.
“태윤아.”
“쉿. 생각 중이야. 이대로 인형 놀이를 할까, 그냥 엎어 놓고 다른 놀이를 할까.”
엎어 놓고 다른 놀이라는 걸 이해하는 스스로가 이제 돌이킬 수 없는 강을 건넌 것 같다. 자연스럽게 머릿속에 난잡하게 뒹굴었던 게 기억났다.
“인형 놀이.”
“그래.”
다급하게 말하는 서우를 향해 입술을 올린 태윤이 기꺼이 그렇게 해 주겠다고 속삭였다. 그리고 곧장 그의 손이 차마 안쪽을 파고들었다.
팬티를 쑥 끄집어 내린다. 태윤에게 붙은 채로 피할 수도 없어서 서우가 짧게 비명을 질렀다.
“강태윤! 인형 놀이하자며.”
“그러려면 먼저 벗겨야지.”
태연한 얼굴의 그가 말했다. 잠시 속아 넘어갈 정도로 멀끔한 얼굴이었다. 닿아 있는 몸이 뜨거웠다. 아직 열기가 가시지 않았는지, 그의 몸이 달라붙는데 온도가 높았다. 허벅지에 걸쳐져 있는 팬티가 아래로 떨어져 내린다.
멀쩡한 팔로 그녀의 허리를 끌어안아 올린 채로 태윤이 걸어갔다.
성마른 눈이 주변을 훑었다. 그리고 이내 서우를 제 피아노 의자로 데리고 가 눕혔다.
“아!”
“딱 맞네. 네 것처럼.”
상체를 거기에 눕히자 벗은 두 발이 버둥거린다. 그럴수록 자신이 벗겨 놓은 아래가 훤히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