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짐승의 발자국 (60)화 (60/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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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 눈을 빛내면서 제 여동생에게 종용한다. 윤서우가 예뻐 마지않아 하는 그의 동생이다.

“나, 나 미워하면?”

“그럴 리가. 윤서우는 널 퍽 아끼고 예뻐해. 나는 그래서 널 꽤 많이 질투하고 있거든.”

평생 한 짓이 있으니 죄책감으로 몸부림쳐도 그것까지 태윤이 어찌해 줄 수 없는 부분이다. 은하가 윤서우에게 조금만 더 너그러웠더라면.

허튼 생각을 하는 그녀를 묶어 두기 위해선 은하가 필요했다.

“아….”

“윤서우는 어미 새가 아니야. 그걸 명심해.”

어떻게든 있는 힘껏 윤서우를 붙잡으라 말한다. 자신에게 그런 자격이 있는지 모르겠다. 은하가 입술을 깨물며 서러운 소리를 참았다.

“전부 알고 있었으면서. 왜 말을 안 한 거야. 차라리 나한테 말해 주지. 그럼….”

은하의 행동을 보고 막연하게 추측했다. 뭔가를 감추고 싶어서 더 윤서우에게 야생 동물처럼 몸집을 부풀리는구나 싶었다.

윤서우는 그가 아는 동안 뭔가를 조른 적이 없다. 납골당에서 얼어 죽는다고 해도 어머니를 부르는 윤서우는 상상이 가지 않는다.

그런 반면 강은하는 평생을 누군가에게 조르며 살아왔다.

“말해 주고 싶었어. 네가 어머니처럼 구는 게 진저리가 난 참이었거든.”

가장 닮고 싶지 않았다. 그런데 그 핏줄이 어디 가겠는가. 사람 피를 바짝바짝 말리면서도 곁에 두려고 하던 모습 등에서 전부 죽은 어머니가 보였다. 은하가 그러는만큼 저 역시 그 피를 속이지 못하고 똑같을 것이다.

그 집착이 비정상적이라는 걸 알면서 윤서우를 놓지 못하고 있었다.

“흑….”

“그런데 윤서우가 싫어하니까. 네가 다칠까 봐 질색하잖아.”

사실 누가 다치든 강태윤에겐 상관없었다. 아무렴, 윤서우만 할까. 그가 자조적으로 웃는다. 아버지의 시신을 발견한 날부터 제 감정의 어느 한 부분이 거세당했다는 걸 알게 됐다. 강은하도, 그리고 저 역시 결국 스스로만 생각한다.

자신의 동생이 아닌 꼭 연적에게 하는 말처럼 태윤이 음험하게 속삭였다.

“흐읍, 내가 무슨 짓을, 무슨 짓을 한 거야.”

“울지 마. 우린 그럴 자격도 없잖아.”

배 속의 아이가 잘못되면 윤서우가 또 제 탓도 아닌데 자책할 게 뻔했다. 태윤의 싸늘한 말에 은하가 고개를 떨군다.

언젠가 생각한 적 있었다.

자신이 사람의 탈을 쓴 괴물이 아닐까, 하고.

윤서우의 행복 따위를 진심으로 빌어 본 적 없다. 그 차가운 위선 속에서 다정한 윤서우의 목소리가 저를 현실로 이끌었다. 얼굴도 모르는 오로지 저만을 위한 그 소리가 태윤의 입을 다시 열게 했다.

주 회장은 잘못 생각하고 있다.

이기적이고, 위선적인 어머니 아래서 제대로 된 아이들이 나왔을 리 없다.

죄책감으로 평생 그들을 휘두를까 싶어 보냈던 윤서우가 아니라, 잘못된 건 저와 은하였다. 괴롭히든, 안고 사랑해 주든, 저마다의 방식으로 그녀를 끌어안고 있었다.

“언니가 간다고 하면 어떻게 해. 우리가 질려서, 내가 싫어서.”

“그게 사랑이 아닐 리가 없지.”

그들에게 다정한 윤서우가 쩍쩍 마른 땅 위에 나타난 오아시스였다면, 윤서우에게 그들은 처음으로 생긴 가족의 형태였다. 세상 그 누구도 제 가족이 잘못됐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윤서우의 믿음은 신을 믿는 것처럼 굳건했다.

태윤은 그래서 그 마음에 기댈 생각이었다.

“오빠….”

“나는 윤서우가 없는 삶은 잘 모르겠어. 너는?”

탐욕스러운 어머니로부터 감춘다는 명분하에 그는 스스로를 죽여 버렸다. 어머니의 아래서 아버지가 어떻게 말라 가고, 죽어 가는지 봐서다. 가장 소중한 걸 그렇게 둘 수야 없지.

그런데 만지고, 물고, 빨고, 제 감정을 전부 퍼 줘도 모자랄 시간이었다.

자신이 그날 거기에만 있었어도.

제 손은 어떻게 되든 아무런 상관이 없는데.

손등을 짓누르고, 그렇게 아끼고 아꼈던 손가락의 뼈가 으스러지면서 윤서우는 끝까지 손을 치우지 않았다.

태윤이 애증 어린 눈으로 은하를 바라봤다. 윤서우가 곱고 예쁘게 지킨 그의 동생은 여전히 아름다웠다. 제 감정이 가장 중요한 이기적인 사람으로 잘 자랐다.

은하가 태윤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너도 그럴 줄 알았어. 우리는 알잖아. 그날 장례식장에서 어머니가 돌아가신 것보다 윤서우가 그 자리에 없었다는 사실을 서로 신경 썼으니까.”

느리게 태윤이 말했다. 손바닥에 흥건하게 묻은 눈물을 바닥에 털어 낸다. 무심한 얼굴에서 안광만이 오로지 짐승처럼 번들거린다.


 

***


 

병원에서 안정을 취하고 있다는 은하의 소식을 들은 주 회장이 깊게 한숨을 내쉬었다.

아이는 무사하지만 경과를 보고 생각보다 이르게 제왕 절개를 해야 할지도 모른다고 해서 입원을 결정했다.

“아버님, 제가 병원에 가 볼까요?”

“됐다. 괜히 우리가 앞에 있어 봐야 신경만 예민해지지.”

그동안 죄책감 때문에 제 얼굴을 쳐다도 못 본 은하에게 부담을 주고 싶지 않았다. 딸이 죽고 자연히 이 집을 뿔뿔이 떠나 흩어졌다. 얌전히 그가 말하는 대로 떠나 공부하고 있는 태윤을 볼 겸 출장이 끝나고 미국에서 태윤의 대학을 찾은 적 있다.

하나는 결혼으로 제 곁을 떠나고, 하나는 어미의 죽음을 다독여 줄 시간도 없이 떠나보내 주 회장에게 아픈 손가락이었다.

괜히 태윤이 신경 쓰지 않게 그의 아파트 아래서 기사와 함께 주 회장이 꽤 오랫동안 기다렸으나 돌아오지 않아 의아하게 생각했다.

그 나이쯤엔 친구들과 어울리기도 하겠지, 여기다가도 이상하게 마음이 불안해서 그 주변을 찾으러 다녔다.

태윤을 발견한 건 근처 강가였다.

하염없이 어두운 강물을 물끄러미 보고 있는 무심한 모습을 본 순간 어쩐지 주 회장의 가슴이 철렁 떨어졌다. 검고 어둑어둑한 눈이 이쪽을 돌아본다. 그런데 보이지 않는 건지 무심하게 주 회장을 보고도 스쳤다.

학교에 한 번도 빠진 적이 없다. 그건 보고를 들어서 알고 있었다.

그런데 학교가 끝난 뒤엔 이렇게 강가에서 한참을 서서, 밤을 지새웠을까.

텅 비어서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은 눈이었다. 오로지 집착과 아집으로 뭉쳐져 있는 그 검은 구덩이 같은 눈을 보고서 주 회장은 하나를 떠올렸다.

…제 사위에게서 저런 눈을 보았다.

그가 스스로 목숨을 끊기 전에 자신을 돌아보았을 때의 눈이 꼭 그랬다.

선득한 감각이 그를 움직이지 못하게 옥죄었다.

잘못 생각하고 있는 게 아닐까.

처음으로 윤서우를 보내고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은하에게 도피처로 가족을 만들어 주고, 제법 잘 살아가는 것 같아 태윤은 신경도 쓰지 못했다.

“아무리 고모가 없다지만, 태윤이나 은하나 둘 다 너무 어렵네요.”

희옥이 한숨을 내쉬었다. 옛날 이 집 안이 아이들로 북적였던 때가 분명히 존재했다.

집에 적응한 윤서우가 악보를 들고 이리저리 다닐 때면 지형과 은하가 그 뒤를 새끼 오리처럼 따랐다. 그 모습이 어여뻐서 예쁜 복덩이 하나가 집에 들어온 것 같아 주 회장이 웃었다.

사위가 죽고 살얼음판 같던 저택에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들리던 것도 그때였다.

“다, 내가 잘못한 탓이지.”

“그런 말씀 마세요. 아버님이 무슨….”

희옥이 주 회장을 위로했다. 이번 일로 주 회장이 흔들리거나 건강에 악화가 될까 봐 신경 쓰는 모습이었다.

“내가 하영이가 죽던 날, 그 아이를 보냈다.”

“네? 윤서우 말씀하시는 거예요?”

대번에 알아들은 희옥이 서우를 입에 올렸다. 그리고 이내, 그럼 그렇지. 씁쓸하게 얼굴을 굳힌다. 뭔가 이유가 있을 거라 여겼다.

“그게 잘못된 걸 너무 늦게 알았지.”

“아버님이 다 뜻이 있으셨겠죠.”

자신을 위로하는 희옥을 보면서 주 회장이 너털웃음을 터트렸다. 태윤의 눈을 봤어도 저렇게 말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그날로 태윤을 만나지 않고 한국으로 돌아온 주 회장은 아예 그 뒤로 사람을 붙였다. 그리고 오랜 장고 끝에 윤서우를 찾았다. 숨어서 떨고 있는 아이에게 말도 안 되는 부탁을 했다.

어쩔 수 없는 사업가였다.

윤서우가 거부할 수 없다는 걸 알면서 그 온정에 기댔다.

이 아이를 데려다 놔야 태윤이 그 밤에 그렇게 강가에 다시는 가지 않을 것 같았다. 그곳에 서서 무엇을 생각하는지 알고 싶지도, 알아야 할 이유도 없다. 다만, 다시는 가지 않으면 된다.

단단히 잘못 생각했다.

은하는 윤서우를 대체할 다른 맹목적인 것을 찾아 떠났다. 윤서우를 원망하는 것으로 어떻게든 버텨 내고 있었다.

그런데, 강태윤은 벗어나지 못했다.

“보내는 게 아니었어. 차라리 그냥 뒀으면 은하도, 우리 태윤이도 괜찮았을지 모르는데.”

어떻게든 셋이서 살아가지 않았을까. 그가 지레 겁을 먹고 떼어 놓지 않았다면, 이보다는 더 나은 결과를 보았을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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