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짐승의 발자국 (49)화 (49/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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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밝잖아.”

“섹스는 꼭 밤에 해야 해?”

가슴골 사이로 내려온 손가락이 서우의 배꼽 위를 지분거렸다.

“아, 으응, 흡….”

“보수적이네. 그냥 여기서 이렇게 하는 게 더 흥분되는데. 서우 네가 좋아하는 게 전부 있잖아. 나랑 피아노, 그리고.”

마지막 말은 태윤이 삼켰다. 서우가 빼앗긴 건 말하고 싶지 않아서다.

“너 진짜, 너, 하아, 이상해. 취향이, 이상하다고.”

“이상할 수밖에 없지. 너를 두고 어떻게 제정신이겠어.”

한마디도 지지 않는다. 그가 서우의 신음에 헐떡이며 하는 소리에 제대로 반응해 줬다.

배를 맞추고 질퍽하게 아래를 내돌리고 싶어서 태윤이 마른 입술을 혀로 쓸었다. 제 바지의 지퍼를 내렸다. 서우의 한쪽 발을 높이 집어 들게 했다. 둘의 상체 사이로 한 발이 끼었다. 아래는 더 들어가기 쉽게 그를 향해 활짝 벌어졌다.

태윤의 몸에 맞추려 본능적으로 발끝으로 서우가 섰다.

“다리… 태윤아, 너 손….”

한 다리를 지탱하는 손은 깁스한 손이다. 이 상황에서도 저를 걱정하는 상냥함에 그가 난폭한 얼굴로 웃는다.

“네가 걱정해야 할 건 이쪽일걸.”

“읏!”

발간 눈꼬리가 크게 벌어지는 걸 보면서 태윤이 진한 만족감을 느꼈다.

그의 가슴팍을 잡은 작은 손이 밀어내지도, 당기지도 못한 채 떨기만 했다.

제 몸을 잔뜩 서우에게 붙이고 그가 천천히 허리를 뒤로 물렸다가 그대로 박았다.

“아, 제발, 흑….”

아래서부터 천천히 강태윤에게 꿰였다.

“다리 감아.”

균형을 계속 잃는 서우에게 그가 요구했다. 다리를 내리고 그 예쁜 걸 허리에 감으라고 속살거렸다.

결국 거절하지 못하고 서우가 그가 한 손으로 엉덩이를 받치고 가는 몸을 그대로 집어 들자 재빨리 다리를 떨어지지 않기 위해 꽉 감았다. 두 손이 본능적으로 태윤의 목 줄기를 끌어안는다.

사나운 웃음소리가 머리꼭지 위에서 들렸다. 그리고 제 아래와 완전히 맞물려 떨어지는 서우의 안쪽을 무자비하게 파고든다.

“흐, 하으, 아.”

제 등의 모양 그대로 유리창에 자국이 남을 것 같다. 다친 손가락마저 잊을 정도로 태윤에게 온전히 저를 내맡겼다.

마구 흔들리고, 그에게 그대로 꿰뚫려 비명을 질렀다. 신음과 쾌락이 뒤섞인 음탕한 소리였다. 스스로의 입에서 헐떡이는 소리가 듣기 싫어서 괜히 태윤의 어깨를 물었다가 아플까 봐 놓기를 반복했다.

그것마저 지독하게 윤서우다웠다.

더 파고들 수 없을 만큼 배꼽이 서로 맞붙었다.

땀에 젖은 윤서우의 얼굴을 보면서 태윤이 입술을 아무 데나 물고 빨았다.

어느 한군데 그녀의 것이라면 예쁘지 않은 곳이 없어서다.

손가락에서 아릿한 통증이 퍼진다. 다시 부러지고 어떻게 되든 그가 알 바 아니었다. 쾌락이 주는 이 행위가 그에게 완벽했기 때문이다.


 

***


 

서우와 태윤이 그렇게 나간 뒤로 가든 음악회는 그렇게 엉망이 됐다.

겨우 두 사람이 빠진 일이라서가 아니라, 주지형이 미친 듯이 화를 냈기 때문이다. 파티를 주최한 은하에게, 그리고 서우를 비웃던 사람에게 분노에 찬 일침을 가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태윤이 보낸 사람들이 정원에 있는 서우의 하프를 가져갔다.

말릴 수조차 없었다. 자신에게 후에 보자고 싸늘하게 말한 그의 얼굴이 생각났기 때문이다. 하프라면 죽은 엄마가 생각나 끔찍해하는 강태윤에게 유일한 예외가 있었다.

윤서우.

서우를 생각하자 은하의 얼굴이 깊게 가라앉았다.

다친 손에도 놀라지 않고 오히려 한솔이를 챙기는 모습이 낯설었다.

“…꼭 고통이 안 느껴지는 사람 같잖아.”

보통은 비명을 지르거나 소리를 친다. 고통을 못 이겨서 순간적인 반응이 나오기 마련이다.

그런데 서우의 반응은 이상했다. 그저 쓱, 타인의 것을 보듯 손가락을 확인했을 뿐이다.

“강은하! 너 지금 내 말 듣고 있어?”

“주지형, 그냥 돌아가라니까.”

겨우 교류하던 사람들을 돌려보내 놓고 지친 얼굴로 은하가 소파에 앉아 지형과 마주 봤다. 그럼에도 머릿속에 서우에 대한 생각이 떠나지 않아 손톱을 잘근잘근 씹었다.

지형이 짜증 나는 건 짜증 나는 거고 그러지 말라고 은하의 손목을 잡아채서야 깨달았다.

어딘가 초조할 때면 나오는 버릇이었다.

“너 누나 그렇게 구경거리 시키면 재미있어?”

“누가 재밌대? 언니가 치겠다고 한 거잖아.”

“그 상황에서 그럼 도망가? 네 부탁 누나가 거절 못 하는 거 뻔히 알면서! 너 진짜 나빠.”

차마 육두문자를 입에 올릴 순 없어 나쁘다는 말로 순화해 놓고 지형이 분에 차서 콧방귀를 꼈다.

“나도 알아. 나 나쁜 거.”

너무 쉽게 인정하자 지형이 입을 닫고 가만히 노려본다.

“아는 애가 왜 그래. 누나가 몇 년을 고모 밑에서 미친 듯이 연습을 했는데. 그거 몇 년 안 했다고 그렇게 연주할 사람이야?”

어쩔 수 없이 알게 되는 사실들이 있다.

서우의 음을 듣는 순간 지형이 그랬다. 그녀의 손이 망가졌다는 걸, 그래서 어디에서도 유망했던 윤서우에 대한 이야기를 찾을 수 없었다는 사실을 알았다.

“…확인하고 싶었어.”

“뭘! 너는 누나 몇 년 전부터 다시 만났다며. 진짜 몰랐어? 이건… 네가 그냥 누나 엿 먹인 거잖아.”

“몰랐어! 몰랐다고! 괜찮다고 했단 말이야!”

“그게 진짜 괜찮은 거냐? 고모가 누나한테만 못되게 굴고 강요할 때도 한마디도 안 하고 웃었던 사람이 진짜 괜찮아서 괜찮다고 했겠냐고! 그건 그냥 누나가 맨날 우리한테 하는 소리였잖아….”

코피가 터지도록 연습실에서 나오지 못하고, 손가락의 굳은살을 깎아 내다 잘못해 생살까지 떼어 냈을 때도 괜찮다고 웃던 서우였다.

너는 그걸 진짜로 믿었냐고 지형이 벌떡 서서 화를 냈다. 그러다 은하의 부른 배를 보고 한숨을 쉬더니 다시 앉는다.

“화내서 미안.”

아무리 그래도 임산부에게 화내는 건 아닌 것 같아 바로 미안하다고 말하는 지형을 은하가 뚫어지게 바라봤다.

그리고 이내 망설이다가 떨리는 목소리로 지형에게 속삭였다.

“소, 손에 감각이 없는 거 같았어. 위에서 한솔이가 장난치다가 언니가 손을 다쳤는데 소리를 안내더라고.”

무섭다.

그때 머릿속에 스친 감정이 그거였다. 누구에게라도 말하고 싶었다.

“뭐?”

“외할머니한테 한 달에 한 번씩 연주해 주는 건 알았는데 꼴 보기 싫어서 들어 본 적이 없거든. 그래서 몰랐어. 들었으면 알았을 텐데 몰랐어.”

“외할머니한테 뭐?”

집안에 거의 온 적 없었던 지형이 얼굴을 와락 구기면서 물었다. 영문을 모르는 그라도 뭔가 이상하다는 걸 안다.

둘이서 맞대고 말 없는 침묵이 흘렀다. 누구라도 먼저 입을 열면 깨질 듯한 날 선 긴장감 속에 은하가 앞에 있는 찻잔을 들어 올리다 떨어트렸다.

반쯤 식은 찻물이 치마 위로 흐른다.

“아….”

“괜찮아?”

놀란 지형이 괜찮냐고 티슈를 찾아 은하에게 건넸다. 치마를 반쯤 걷어 올리자 여전히 보기 싫은 흉터가 보인다.

은하의 시선이 흔들렸다.

“너 가.”

“뭐?”

“너 가라고. 나 혼자 있고 싶어.”

수술을 해 길게 찢어진 상처.

윤서우에겐 이것 때문에 발레를 그만뒀다고 원망했는데 애초에 별로 재능이랄게 없었다. 어딘가 내세우고 싶은 게 필요해서 시작했을 뿐, 체중 감량도 힘들고 혹독하게 스스로를 몰아붙여야 하는 발레는 엄마와 더욱 갈등을 빚게 했다.

이왕 하는 거 제대로 해야 한다고 밥 한 끼 주지 않았고, 언제나 마른 몸을 유지해야 했으니까.

다리가 아프다고 핑계 삼아 모든 걸 그만뒀다. 하고자 하는 마음도 들지 않았다. 자신의 곁을 떠난 윤서우가 원망스러웠고, 한순간에 고아가 된 제 처지가 가여웠다.

배가 고파서 새벽에 서러워 깨 엉엉 울 때면 몰래 바나나를 가져와 눈물이 글썽해선 제 손에 쥐여 줬다. 그리고 다음 날 엄마에게 혼나는 건 언제나 서우였다.

지형이 질렸다는 얼굴로 나가 버리고 혼자 남은 거실에서 한솔이 다가와서 선다. 조막만 한 손으로 제 흉터를 만져 준다.

“엄마, 아파요?”

“…아니. 이제 안 아파.”

그냥, 눈물이 났다.

지형의 말대로 서우의 입버릇이 괜찮다는 말인 걸 안다. 자신을 거둬 준 우리 가족에게 어떻게든 애써서 좋은 모습만 보여 주려던 그녀를 알고 있다.

사람에겐 천성이라는 게 있는데, 윤서우의 천성은 항상 희생이었다.

“근데 왜 울어요?”

한솔이가 울멍울멍해서 묻는다.

아이를 끌어안고 은하가 울음을 터트렸다. 무섭고 두려웠다. 윤서우가 덮는 대로 가만히 있고 싶었다.

가끔 꿈에서 들리는 환청이 환청이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에 몸이 떨렸다.

“한솔아, 엄마 어떻게 해. 흐윽, 어떻게 하지.”

따뜻하고 작은 아이의 품도 위로가 되지 않았다. 무서워서 덜덜 떨리는 손으로 은하가 끊임없이 흐르는 눈물을 닦지도 못한 채 아이의 어깨를 적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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