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48_
“살고 있잖아. 나 잘 살고 있어.”
“조금이라도 기대한 내가 어리석었어. 정직원 시켜 준다고 해서 네가 안 도망가고 남길래, 지금 사는 삶이 꽤 괜찮은 줄 알았지.”
그러다 뭔가 깨달았는지 태윤이 픽 웃는다.
반질반질한 얼굴로 저를 보는 윤서우의 얼굴을 한 손으로 감싸고 다시 물었다.
“정직원이 아니라, 내가 보고 싶어서 남은 거잖아.”
“아니야.”
“이런 얼굴을 하는구나. 사랑에 빠진 윤서우는 이런 얼굴을 해.”
“강태윤!”
“넌 거짓말할 때 사람 눈을 똑바로 봐. 그거 들키고 싶지 않은 사람처럼. 어디 한번 해 보라고 덤비는 얼굴로.”
진짜를 말할 땐 시선을 피한다. 아니라고 말하는 서우의 올곧은 얼굴을 보면서 태윤이 싱그럽게 미소지었다.
꼭 싸우려는 사람처럼 자신을 보고 있는 서우의 꽉 다문 입술에 한 번 입을 맞췄다.
“야!”
“좋네. 너 옛날에도 많이 화나면 태윤아, 강태윤이 아니라 야라고 불렀잖아.”
성격 나오니까 좋다고 그가 유들유들하게 말했다. 밀어내기도 마땅찮았다. 태윤의 깁스가 신경 쓰였기 때문이다. 손도 대지 못하고 있자, 그가 다시 서우의 입에 젖은 입술을 맞췄다. 그녀가 피하기 전에 다시 얼굴을 떼며 웃는다.
너는 어떻게 그럴까, 화가 나다가도 윤서우를 보면 태윤은 그러지 못했다.
서우가 정말 도망가면 자신이 어떻게 될지 모르니까. 져 줄 수밖에 없다.
“화가 난 게 아니라….”
시선을 스르륵 옆으로 피하는 걸 보면서 태윤이 웃음을 삼켰다. 서우가 화를 내는 날은 많지 않았다.
연습으로 예민해져 식사를 꼬박 거를 때쯤엔 화가 난다는 듯이 야! 하고 크게 부르거나, 그것마저 자신과 눈이 마주치면 말꼬리가 슬며시 내려가 ‘밥이나 먹고 하라고….’가 됐다.
귀엽게.
“호텔에선 왜 그냥 갔어. 씻고 나오니까 없던데.”
“…뭐?”
“설마 내가 주지형 그 새끼랑 너랑 둘이 뒀을까. 걘 그냥 오르골 같은 거야. 너 잠 잘 자게 도와주는.”
밤새 피아노 의자에서 내려오지 못하게 만들었다.
“언제 왔었어?”
지형과 아무 일 없었다는 걸 알면서 괜히 그 호텔 방에 둘이 있었다는 사실이 걸렸다. 그런데 태윤이 당연하게 입에 올리자 이상하게 안도가 된다.
씻고 있었던 게 강태윤인 줄 알았어도 얼굴을 볼 자신이 없어서 나갔을 텐데. 그래도 그냥 그가 자신에게 연락이 없었던 게 아니라 이미 밤을 지켜 줬다는 사실이 이상하게 울렁거리게 만들었다.
“아프니까 너 보고 싶던데.”
아직도 깁스에 대해선 차마 물어보지 못했다. 서우의 시선이 흔들렸다.
“왜 다쳤는지 물어봐도 돼?”
“네가 싫어할까 봐 말 못 하겠어.”
서우는 자신을 예쁘게만 보니까 말하고 싶지 않았다. 더 음험하고 새카만 속내를 들키면 겁을 먹을까 싶어서.
태윤이 서우의 붕대를 감고 있는 손을 들어 올렸다. 제 깁스에 싸인 손가락을 가볍게 부딪친다.
“아.”
“우리 똑같은 데 다쳤다. 그렇지?”
사근하게 휘어지는 눈가가 어쩐지 번들거린다. 서우가 머릿속에 희미하게 스치는 말을 뱉지 못하고 입을 벌리고 있었다. 이번에도 태윤의 입술이 당연하게 내려앉는다.
그 전처럼 입술을 빨고 떼는 게 아니라 혀가 깊게 서우의 입안으로 밀려들어 왔다. 얼마나 아픈지, 그 고통을 알고 있는 서우가 입술을 움직였다.
그럴수록 태윤의 혀에 숨이 넘어갔다.
아프게 뿌리까지 빨아 먹혔다. 입천장을 훑고 타액을 삼키는 귀가 가려울 정도로 야한 소리가 서로의 입안에서 났다. 숨이 섞인다는 게 이런 의미가 있었나. 누가 뱉은지 모르는 호흡을 허겁지겁 삼켰다.
헐떡이는 서우에게서 입술을 뗀 태윤이 그녀의 입가에 남아 있는 타액을 천천히 혀로 핥았다. 붉은 혀가 게걸스럽게 남아 있는 걸 완전히 먹어 치운다.
그의 멀쩡한 손이 서우의 허리를 감았다.
말랑말랑하고 자신에게 폭 안기는 서우에게 참을 수 없는 욕구가 치밀었다. 저에게 맞춘 것처럼, 아니, 자신이 맞춘 것처럼 들어맞는다.
젖은 입술이, 그리고 혀가 서우의 볼을 길게 핥았다. 울었던 자국을 말끔하게 씻겨 준다. 붉어진 눈가가 사랑스러웠다.
항상 젖어 있는 까만 눈을 가까이서 바라보며 태윤이 뭉근하게 허리를 움직였다.
제 욕망을 숨기지 않고 서우의 허벅지 사이에 다리를 밀어 넣고 배 위쪽에 문질렀다.
옷 위로 불룩 튀어나온 단단한 것으로 인해 뱉는 숨이 떨렸다.
“흐읏.”
“내가 맞출게. 너한테.”
기저에 깔린 음험한 욕정을 감추지 않고 그가 속삭였다.
서우가 하는 모든 걸 함께 하겠다고 말한다. 다치는 곳도 똑같고, 서로 배를 맞추고 갖는 쾌락조차 똑같은 지점을 향해 간다.
아래를 잔뜩 있는 대로 세운 채 태윤이 서우를 잡아끌었다. 미처 다가가지 못했던 하프로 함께 걸어 향한다. 그와 함께 잡은 손으로 하프의 유려한 곡선을 쓸었다.
서우의 몸을 만질 때보다 더 조심스러운 손길이다. 꼭 강태윤은 알고 있는 것 같다. 자신이 엉망인 연주를 마치고 그것조차 좋아서 사람들을 등지고 웃었던 일을.
그가 잡고 있는 서우의 손이 긴장으로 떨렸다.
“서우야.”
작은 서우의 키에 맞게 상체를 숙인 태윤이 그녀의 귓불을 깨물면서 물었다. 뜨거운 숨에 저절로 어깨가 움츠러든다.
대답을 바라고 부른 건 아닌 듯 그가 살살 혀로 제가 깨문 귓불을 굴렸다. 그리고 동그란 구멍을 혀가 뾰족하게 찌르며 들어오자 등줄기에 소름이 돋았다.
귀에 질척한 구멍을 오가는 소리가 들린다. 서우가 다리에 힘이 풀리려는 걸 태윤이 멀쩡한 손으로 허리를 감아 안았다. 그에게 엉덩이를 붙인 채로 제 귀를 흠뻑 적시는 걸 듣고만 있었다.
몸의 모든 감각이 날카롭게 일어났다.
젖은 소리가 그렇게 만들었다.
“추워?”
쯔읍.
혀가 빠져나가고 입술이 서우의 귀를 지분거리며 묻는다. 어느새 셔츠 아래로 파고든 손이 서우의 편편한 배를 매만졌다. 자잘하게 돋아나 있는 소름이 손톱 끝에 걸린다. 숨을 헐떡이는 가슴의 움직임 또한 적나라했다.
쾌락에 미친 건 혼자만이 아닐지도 모른다.
“추운 게 아니라 네가 너무….”
노골적으로 굴어서다. 이게 어떤 전조의 시작이라는 걸 모를 만큼 순진하지 않았다. 이미 태윤과 보냈던 밤이 서우에게 선명한데 다시 덧입혀지려 했다.
“야해 빠져서 그래.”
머릿속에 윤서우를 안고 난 뒤의 적나라한 욕망이 그에게 새겨졌다. 탁한 목소리가 그렇게 말했다.
그녀로 인해 야해 빠진 몸이 돼서 매번 달아 있었다는 걸 알기나 할까.
“태윤아, 읏.”
서우의 몸이 창문가로 밀렸다.
눈을 커다랗게 떴다. 창밖으로 사위가 분간이 가는 시간이라서다. 아랑곳하지 않고 뒤에서 검은 욕망을 드러낸 태윤이 서 있었다.
서우의 바지 버클을 풀고 팬티와 함께 단번에 내린다. 창에 비친 그의 시선이 위험한 욕망에 젖어 있다.
“응?”
얄미울 정도로 대답을 잘했다.
“누가, 누가 보면….”
“이 시간에 누가 남의 집을 보고 있겠어. 변태가 아니고서야.”
개인 사유지였다. 먼 숲을 향해 나 있는 지대가 높은 빌라인데 미치지 않고서야 남의 집 앞을 지나갈 리가 없었다.
태윤이 고개를 기울여 서우의 목덜미를 깨물면서 말했다. 자근자근 씹히는 느낌이 날카로웠다.
숨을 헐떡이자 낮게 웃는 기색이 느껴졌다.
제 숨이 유리에 부딪쳐 뿌연 자국을 남긴다.
“네가 변태야. 강태윤, 네가 지금, 아, 무슨, 짓을, 흣….”
“말을 너무 예쁘게 해 주네.”
변태라는 말이 예쁘다고 말하는 강태윤이 단단히 미친 게 분명했다. 찔걱이며 안으로 들어오는 손가락으로 인해 놀라서 뒤로 엉덩이를 물렸다.
그러자 더 깊이 들어온다. 그가 찌르기 좋게 엉덩이를 물려 준 예쁜 서우의 어깨를 옷째 위로 깨물면서 태윤이 소리 없이 웃었다.
“방….”
방도 있는데 왜 한 손씩 불편한 사람들이 이러고 있어야 하는지 모르겠다.
“왜. 신성한 악기 옆에선 하면 안 돼?”
그들에게 있는 어떤 약속이었다. 부정한 짓을 신성한 악기 위에서 하지 말라는 건 암묵적인 게 아닌가.
서우가 힘겹게 고개를 끄덕였다. 태윤의 시선 아래 가느다란 허리가 제 쪽으로 휘어져 바르르 떨린다.
“으응.”
“무슨 상관이야. 어차피 둘 다 그만뒀는데.”
여기서 무슨 짓이든 가장 방만하고 음탕한 짓을 벌일 거라고 태윤이 말했다. 흐트러진 숨을 참을 수가 없었다.
아래를 만지고 젖은 손가락이 앞으로 돌아와 제 가슴을 주물렀다. 속옷 안에 손을 넣고 젖은 손가락으로 정점을 천천히 돌렸다.
결코 다급한 몸짓이 아니었다.
그래서 더 부끄럽고, 적나라했다. 커다란 손이 부드럽게 서우의 몸을 일깨운다. 바깥의 풍경이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오로지 뒤가 잔뜩 예민해져서 온 신경이 그곳으로 쏠렸다.
“하아.”
한참 뒤에야 서우의 몸이 돌려졌다. 등이 유리에 닿은 채 태윤의 얼굴을 마주했다. 그가 만졌던 속옷이 구겨져 셔츠 위로도 태가 났다.
서우의 머리부터 발끝까지, 어디서부터 씹어 먹을지 가늠하는 사람처럼 느리게 그의 시선이 훑는다. 도망가고 싶었다.
“안 그러는 게 좋을걸.”
그의 너머를 바라보는 게 들켰다. 그녀의 턱을 잡고 바로 자신을 보게 하면서 태윤이 비틀리게 웃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