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짐승의 발자국 (45)화 (45/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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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명히 제 눈으로 봤다. 서우의 손가락이 그대로 한솔이가 닫은 문에 낀 것을.

비명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보통 사람이라면 소리를 지르지 않나. 혼란스러운 얼굴과 목소리로 은하가 더듬거리며 물었다.

“…언니 손이 왜 그래?”

아프지 않을 리 없다. 한솔이를 안고 있는 서우의 손은 육안으로 봐도 퍼렇게 올라와 있었으니까.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는 얼굴로 오로지 한솔이를 신경 쓰는 서우를 보고 은하가 몸을 떨었다.

“응?”

“손이… 왜….”

안 아프냐는 말이 나오지 않는다. 은하가 서우의 손가락을 가리켰다. 손톱부터 시작해 붉어지고 푸르스름해지고 말이 아니었다. 제대로 끼었나 보다.

아직 한솔이가 우는데 은하까지 이러니 어찌할 바 몰라 서우가 진땀을 뺐다.

저벅. 저벅.

묵직한 걸음 소리를 숨기지 않고 올라오는 구둣발 소리가 났다. 오늘만큼은 모두에게 개방된 집이라 구두 소리는 어디서나 들렸다. 그런데 어쩐지 익숙해서 서우가 울고 있는 한솔이를 안은 채 계단을 본다.

“강태윤.”

손이 왜 그래?

자신에게 은하가 물었던 질문을 고스란히 그에게 되돌려 주고 싶다. 한쪽 팔에 깁스를 하고선 올라온 태윤이 곧 서우를 발견했다.

“서우야, 이리 와.”

어제까지만 해도 멀쩡했던 강태윤이 깁스한 걸 바라봤다. 서로가 서로에게 할 말을 잃는 순간이었다. 태윤이 안으로 들어온 걸 깨닫고 은하가 서둘러 서우에게서 한솔을 안아 들었다.

“언니 손 다쳤어.”

덜덜 떨리는 목소리로 은하가 말했다. 태윤의 시선이 비스듬하게 서우의 손을 향하자 반사적으로 뒤로 숨겼다.

“넌 나중에 보자.”

묵직하게 머리 위로 내려앉는 목소리에 은하가 흠칫 몸을 떨었다. 진짜 화가 났을 때의 강태윤이다. 소리를 치거나 화내지 않고, 사람을 위압감으로 짓눌러 버린다.

“그냥 멍이 좀 든 것뿐인데. 걱정 안 해도 돼.”

자신에게 다가오는 강태윤이 어쩐지 거대해 보여서 서우가 슬금슬금 물러났다.

“뒤로 빼지 마. 들고 내려가는 수가 있으니까.”

한 손에 깁스를 한 채 정말 강태윤이라면 그럴 것 같아서 그녀의 몸이 딱 멈췄다.

은하가 여전히 혼란스럽고 정리 안 된 얼굴로 서우를 보고 있었다. 걱정하지 말라고 서우가 어설프게 웃어 보였는데 그대로 강태윤에게 어깨가 붙잡혔다.

“은하 겁먹잖아. 이러지 마.”

태윤에게 빠르게 속삭였다.

“넌 왜 이렇게 조심성이 없을까.”

낮고 무거운 소리가 서우의 머리 위를 갈랐다. 어깨에서부터 천천히 내려간 강태윤의 왼손이 서우의 오른손을 가만히 잡아다 앞으로 뺐다.

흉터투성이인 손가락에 멍이 들어 있다. 손톱은 얼마 지나지 않아 빠질 듯이 이미 되돌릴 수 없어 보인다.

토해 내는 태윤의 숨이 어쩐지 버겁다.

“아….”

“너만 생각해도 뭐라고 할 사람 없는데.”

그 순간, 서우가 자신을 잡고 있는 강태윤의 팔을 멀쩡한 손으로 붙잡았다. 그리고 고개를 천천히 저었다.

이미 다 알고 하는 말이다. 그런 예감이 들었다. 임신한 은하 앞에서 이대로라면 전부 그가 다 토해 낼 것 같아 필사적으로 강태윤의 셔츠 소맷자락을 잡고 흔들어 말렸다. 무저갱보다 더 시커먼 눈이 자신을 집어삼킬 것처럼 바라본다.

서우는 그 눈을 피하지 않았다.

“참 착해, 윤서우.”

빌어먹게도.

태윤이 마지막 말을 자신의 이름과 함께 씹어 삼키듯 말했다. 그리고 그대로 등을 돌려 은하를 지나쳐 서우를 데리고 그 집을 빠져나간다.

강태윤이 왔다고 강태윤과 주지형이 나란히 서 있는 걸 보려던 사람들이 어쩐지 광포한 육식 동물을 보듯 위태로운 분위기에 함부로 인사를 건네지 않고 돌아섰다.

오로지 윤서우만 태윤의 손을 잡고 당황해서 말도 걸지 못하는 미라를 스쳐 함께 나갔을 뿐이다.



 

차에서 기다리고 있던 김진호가 재빨리 문을 열어 줬다. 뒷좌석에 서우를 태우고 옆에 앉은 태윤이 문을 닫자마자 차가 출발했다.

“병원으로 가.”

운전하는 김진호에게 태윤이 고저 없는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그가 제 손을 허벅지 위에 가만히 두고 손바닥을 천천히 만졌다.

꼭 건드리면 아파서 어쩔 줄 몰라 할까 봐 조심스러운 손길이라 서우가 숨을 삼켰다. 태윤이 다친 것에 대해 묻고 싶은데 어떻게 말을 꺼내야 할지 알 수 없다.

말을 꺼내면 자신도 그에게 말해야 할까 봐.

“봄에는 기필코 널 가둬 둬야겠다고 생각했어.”

그녀의 발간 코와 붉어진 눈가를 보면서 태윤이 말했다. 백미러로 김진호가 그의 선득한 말에 잠시 눈길을 준다.

강태윤은 정말 그러고도 남을 사람이라는 걸 알아서다. 결코 빈말은 하지 않는다.

“눈이 빨간 게 꼭 우는 것 같아서 보여 주고 싶지 않았거든.”

꽃가루가 휘날리는 계절이 오면 창문이 없는 방 안에 윤서우를 둬야겠다. 나가지도 못하게, 그 빨갛고 예쁜 얼굴을 누가 볼까 싶어서.

손바닥을 뭉근하게 문지르면서 그렇게 말하는 태윤의 목소리는 지독할 정도로 낮았다.

태윤의 시선이 아래를 향했다. 서우의 다친 손가락을 보면서 분노와 비슷한 감정이 마음에 도사렸다.

“그냥 멍든 거야.”

그에게서 손을 빼내려는 걸 놓아주지 않았다. 옛날 같았으면 손이 조금만 다쳐도 예민해졌을 일이다.

그런데 서우가 대수롭지 않게 말하자 그녀가 잃은 게 뭔지 다시금 태윤이 상기했다.

“나도 그냥 부러진 거야.”

계속 제 손이 신경 쓰이는지 머뭇거리면서 보고 있는 서우에게 태윤이 상냥한 얼굴로 말했다.

아, 지금 강태윤이 화가 났구나. 그걸 모를 수가 없었다. 가라앉은 분위기에 불편한 침묵이 자리 잡았다.

병원에 도착해서 먼저 내린 그가 차 문을 연 채로 아직 안에 있는 서우를 기다렸다.

“내려.”

“태윤아.”

“한 번이라도 내가 하자고 하는 대로 해.”

그 말을 하면서 태윤이 서우에게서 시선을 떼고 멀리, 어떤 곳을 바라봤다. 내리누르고 짓이긴다.

마음에서 피어나오는 감정을 그가 안으로 갈무리했다. 돌이킬 수 없다는 걸 안 뒤에 찾아오는 후회는 절망의 다른 이름이었다.

서우가 얌전히 밖으로 나왔다.

태윤이 곧장 윤서우를 데리고 간 곳은 접수처나 응급실이 아니라 대학 병원의 VIP 병실이었다.

이미 침대 위에 그녀의 환자복이 놓인 채다. 단순히 손가락을 다쳤다고 입원을 하는 건 말도 안 됐다. 그런데 문 앞을 지키고 선 그가 지그시 바라보자 서우가 입술을 깨물었다.

“그냥 처치만 받고 갈게.”

“무서워? 너 손 얼마나 엉망인지 내가 알게 될까 봐?”

머리부터 발끝까지 다른 이상이 없는지 다 검사하게 한 뒤, 7년 전 어떤 상해가 서우에게 남았는지 그가 확인해야 했다.

“다 나았어. 네가 알고 말고 할 것도 없이 이제….”

괜찮았다. 자신이 가여워서 희주가 백방으로 알아봤으니까. 어떻게든 절단하지 않고 신경이 거의 죽은 채로 살아가는 게 최선이었다. 다시 검사를 몇 번을 해도 마찬가지였다. 그래도 괜찮다.

악기를 아주 못 켜는 것도 아니고, 취미처럼 어쩌다 보이면 현을 만져 볼 정도는 된다.

“나와 내 가족은 너를 후원한 게 아니야.”

태윤이 서성이는 서우에게 다가왔다.

불안해 보이는 그녀를 보면서 그가 어둑어둑한 감정을 고스란히 담고 말을 이었다.

“너를 머리부터 발끝까지 먹어 치우려고 곁에 둔 거지.”

희망을 줬다가 빼앗고, 윤서우가 가진 모든 걸 빨아먹었다. 저 다정하고 빌어먹을 정도로 가여운 아이의 모든 걸 달라붙어 빨아먹고 무참하게 버렸다.

윤서우는 제 것을 전부 빼앗겼다.

“혹시 희주 만났니?”

“만났으면 왜.”

“하….”

서우가 곤란한 한숨을 뱉었다. 어제 그냥 강태윤을 다그칠 걸, 무슨 일이 있냐고 물어볼 걸 그랬다. 그것도 모르고 지형과 술이나 먹고 있었다.

“또 딴생각하지.”

태윤이 서우의 앞에서 손가락을 튕겼다.

“어차피 할 건 다 해 봤어. 검사 안 해 봐도 돼. 긴장하면 나도 모르게 손가락이 떨리거나 굳는데 심각한 건 아니야. 집게손가락은 어차피 붙어 있는 게 최선이래.”

또다시 복잡한 검사를 받고 하루 종일 무기력한 기분에 젖어 들고 싶지 않았다.

서우가 자신이 아는 걸 외우듯이 태윤에게 읊어 줬다. 시간 낭비를 하느니, 어차피 검사가 끝나고 난 뒤 알게 될 사실을 먼저 말해 줬다.

타인을 이야기하듯 동요 없는 목소리로 제 상황을 말했다.

“서우야.”

자신보다 훨씬 큰 그가 보였다. 안겼을 때의 폭풍 같은 격정 또한 뇌리에 똑똑히 박혔다.

병실이 모든 걸 떠올리게 한다. 이 병실이었는지, 다른 VIP 병실이었는지 그건 기억이 희미했다. 절망에 절여져서 바닥을 기고 있어서다. 이곳에 왔을 때 그랬다.

그리고 이 병원의 별관에 있는 장례식장에서 선생님의 상을 치렀다.

이곳의 병실은 그날을 떠올리게 한다. 절망의 냄새를 본능이 기억했다.

“하아, 태윤아. 나 여기 싫어. 여기 싫어.”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어서 서우가 바닥에 주저앉았다. 답답해서 자신도 모르게 입고 있는 옷의 단추를 잡아 뜯었다.

그럴 리가 없다는 걸 머리가 아는데, 물 냄새가 났다. 특유의 진한 물비린내에 정신을 차릴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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