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짐승의 발자국 (32)화 (32/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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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흣, 아, 아아, 윤아, 아…!”

서우가 눈을 크게 뜨면서 본능적으로 손을 뻗어 그의 어깨를 감쌌다. 온 몸으로 매달렸다.

격한 풍랑에 몸을 맡긴 것 같았다. 정처없이 흔들리는 배 위에서 중심을 잡을 수 없다. 오로지 태윤에게 매달렸다. 그를 감은 다리가 바르르 떨렸다.

서로의 몸이 더 이상 물러설 수 없을 정도로 맞닿았다. 사람의 체온이 이토록 아늑할 수 있던가. 막연하게 든 생각에 어쩌면 강태윤을 잊을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몰려들었다.

야한 얼굴의 태윤이 서우의 얼굴위로 끝없이 입술을 내렸다. 위로와 같은 입맞춤이었다.

머리끝이 무게로 인해 밀렸다. 그럴수록 태윤이 다시 끌어다 놓는다.

서로가 맞닿은 채로 억눌린 서우의 신음이 연신 터졌다. 그가 그토록 울리고 싶어 했던 눈물이 그녀의 눈꼬리를 타고 흐른다. 울멍울멍한 눈에서 기어이 폭풍같은 감정이 샌 눈물을 태윤이 기어이 보고야 만다.

그가 잔악하게 웃었다.

숨이 넘어갈 만큼 예쁘게 우는 윤서우를 보면서 그의 지리한 첫사랑의 말로를 생각했다.

손도 제대로 잡아 보지 못하고, 머리카락 한 올 만져 보지 못한 그의 첫사랑이 스러진다.

머릿속이 절절 끓어 그의 눈시울 또한 붉어졌다.

“…윤아.”

겨우겨우 갈라진 목 끝으로 서우가 애원했다.

제 이름이 한숨처럼 빠져나오는 이 순간을 태윤이 머릿속에 선명하게 각인시킨다.

“우리는 만나야만 했어, 이렇게.”

그녀와 자신은 계속 어긋나 있었으니 한 번쯤 만나야 할 지점에 도달한 것 같았다. 서로의 몸에 달라붙어 체온을 나누며 태윤이 잇새로 나직하게 말했다.

스스로에게 하는 다짐이었다. 우리는 살아있는한 이렇게 될 사이였다고. 태윤의 목소리는 어딘지 울음과 닮아 있어서 눈꼬리를 타고 흐르는 눈물을 서우가 삼켰다. 우는 건 전데, 꼭 강태윤이 울고 있는 것 같다.

“하아….”

서우가 몸서리를 친다. 그럴수록 벗어날 수 없게 태윤이 이를 세워 귓불과 목덜미에 제 흔적을 남겼다.

어딘가 부족하고 허전했다. 윤서우의 안에 몸을 묻으면서도 채워지지 않는 갈증이 그를 태웠다.

영원히, 끝없는 형벌을 받는 시시포스처럼, 윤서우를 곁에 두고도 태윤은 이 징벌 같은 갈증이 사라지지 않을 것을 안다. 그의 전부가 서우를 원했다.

극간의 지점에 도달해 모든 것을 먹어 치우면서 그렇게 여겼다. 이후에 다시 어긋난다 해도 지금은 만날 지점이었다. 난잡한 머릿속은 오로지 윤서우만을 인식한다. 그리고 젖가슴에 얼굴을 묻고 살 냄새를 담뿍 맡는다.

“하으, 하아, 하아….”

힘없는 서우의 손이 그의 머리카락 속에 묻힌다. 바르르 손가락을 떨면서 두피를 간지럽혔다. 만지지 못해서 아쉬웠던 건 꼭 저만이 아닌 것처럼, 윤서우가 조심스럽게 그를 만져 왔다.

그 손이 얼마나 조심스러운지 그조차 숨을 잔뜩 삼켜야만 느낄 수 있었다. 미약하기 이를데 없이 만진다.

자신이 미술 작품도 아닌데, 몰래 만져보기라도 하듯 더듬었다.

태윤이 지그시 입술을 사리물며 서우가 주는 자극을 참았다. 마음 같아선 손가락째로 입에 넣고 삼키고 싶었다.

더 세게 만져도 자신은 망가지지 않는다고 말해줄까. 하지만 이 상냥한 손길이 어쩐지 마음에 불을 지펴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윤서우가 그를 이런 식으로 그녀의 방식대로 대해주는 게 좋아서다.

지금 자신에게 안겨있는 그녀의 작은 몸짓을 방해하고 싶지 않았다.

뜨겁고, 다정한 윤서우.

만지는 것도 꼭 그녀 다웠다. 태윤이 더 이상 참을 수 없어서 서우에게 깊게 묻었다.

배 속이 두들겨 맞은 것처럼 먹먹했다. 흐르는 느낌에 아래를 본능적으로 조이자 태윤의 굵은 눈썹이 꿈틀거렸다.

“서우야, 눈 떠 봐. 응?”

볼을 그가 손가락으로 간지럽히며 짐짓 다정한 기색으로 묻는다.

몸이 간헐적으로 떨렸다. 머릿속을 누가 주물러 놓은 것처럼 흐물거려 아무런 생각이 들지 않았다.

강태윤이 부른다는 걸 아는데 한기가 들어 손만 높게 올렸다. 그러자 여전히 몸을 물리지 않은 채 그가 나직한 웃음과 함께 서우의 몸을 파고들었다.

그녀를 끌어안고 거뜬히 제 체온을 나누어 준다.

“씻어야지.”

“그냥… 내일 씻을래.”

“씻겨 줄까? 힘들면 내가 안아서 씻겨 줄게.”

여우가 속삭인다. 수정에게 들은 말이 도무지 잊히지 않았다. 이제는 그의 목소리가 여우처럼 들릴 지경이었다. 자신을 보면서 야살스럽게 눈을 휘던 모습이 꼭 그때 홀려서 여기까지 온 것 같다.

“내가, 내가 씻을게.”

서우가 눈을 번쩍 떴다. 그녀에게 거대한 몸을 부빈 채 이리저리 만지고 있었던 태윤의 얼굴에서 희미하게 서운함이 스쳐 지나간 것을 서우는 보지 못했다.

그를 서둘러 밀어내고 품을 벗어나 매트리스에 아무렇게나 발을 디뎠을 때 그대로 앞으로 쓰러질 뻔한 걸 뒤에 있던 태윤이 허리를 감아 올렸다.

그럼에도 낮아서 바닥에 쿵 찧은 무릎이 아려 왔다.

다리에 힘이 하나도 들어가지 않는 걸 느낀 서우가 멈추라고 하기도 전에 태윤이 그대로 그녀를 달랑 안아 올렸다. 벌어진 아래쪽에서 미처 힘을 주지 못해 흐르는 느낌이 들어 어깨를 떨었다.

아랑곳하지 않고 서우를 욕실까지 데리고 간 그가 잠시 내려놓고 샤워기의 물 온도를 조절한다.

쏴아아아-

뜨끈한 온수가 쏟아졌다. 서우의 겨드랑이에 손을 넣고 일으켜 세운 태윤이 말했다.

“나 잡고 있어. 씻겨 줄게.”

“계속 다리 올리고 있어서 그래. 내가 할 수 있어.”

자신의 다리를 한계까지 올리고 치받아서 힘이 풀렸을 뿐이다. 아니, 애초에 이런 몸을 갖고 있는 강태윤과 제 체력이 같을 리 없다고 위안을 삼았다. 여기저기 쑤셔서 피곤한 얼굴의 서우가 한숨을 내쉬다가 그대로 굳었다.

그의 시선이 제 다리 사이를 보고 있다.

번들거리면서 흐른 흔적을 보는 시선이 잠시 기우는 것을 보곤 그녀가 물러났다. 차가운 벽에 등이 닿자 정신이 번쩍 들었다.

“강태윤, 태윤아…?”

키 차이가 심했다. 가까이 다가오자 턱 끝을 들어 올려다봐야 할 정도였다.

태윤이 상체를 위험하게 숙여 서우의 목덜미에 입술을 붙이며 사납게 대답했다.

“그래.”

“더는, 아, 태윤아, 더는….”

무리라고 말할 새도 없이 그녀의 엉덩이를 두 손으로 잡고 그대로 들어 올린다.

떨어지지 않기 위해 본능적으로 태윤의 허리에 다리를 감았다. 땀으로 서로의 몸이 번들거리며 젖어 있었다. 그럼에도 불쾌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흐윽….”

완전히 강태윤에게 매달리는 자세가 됐다. 그를 끌어안고 떨어지지 않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버거웠다. 그가 주는 무게가, 그리고 자신의 머릿속을 온통 하얗게 물들이는 쾌감이 낯설었다.

“너, 진짜 짐승이니?”

태윤이 서우의 목덜미에 이를 세우며 웃는다.

“짐승이 지나간 자리엔 발자국이 남거든.”

그렇게 말하며 선득하게 웃는 태윤의 송곳니가 날카로웠다. 그가 서우와 배를 맞추면서 잇새로 말을 이었다.

“여기에 그럼 내 발자국이 남았겠네, 윤서우.”

그녀의 안쪽 깊숙한 곳에 그의 자국이 선명하게 남았다. 몇 번이고 지워지면 다시 새겨 줄 셈이었다.

서우가 다시 울먹거린다. 욕망이 사그라들지 않았다. 그러기엔 오래 참아 왔고, 그가 가장 고대하던 시간이었다.

그의 유일한 위로였던 윤서우를 아버지처럼 잃을 수 없어서 버텨 왔던 시간, 그 인내에 대한 보상은 꿀처럼 달았다. 처음으로 온전히 태윤은 저를 풀어놓고 날뛰었다.

서우의 안쪽에 제 발자국을 그대로 새기며 할퀴고, 낙인을 찍어 내리눌렀다.

그럼에도 다정하게 그를 안아 준다.

그들에게 길었던 날이 지나가고 있었다.

누구에게도 안겨 보지 못했던 서로가 온기를 깊게 나눴다. 자신을 압박하는 강태윤의 몸이 버거우면서도 매달릴 정도로 그 살 내음과 뜨거움이 어쩌면 좋은 느낌일지도 모른다고 서우가 멍한 머리에 떠올렸다.

단단한 등을 끌어안고 날개뼈에 가만히 손을 내려놓는다.

그가 자신을 안을 때마다 서우의 손바닥이 함께 근육의 움직임대로 불룩하게 부풀었다 내려갔다.

“너무… 아, 깊….”

불이라도 켜듯 눈앞이 하얗게 점멸했다. 서우가 태윤의 어깨를 지끈 깨물었다. 어지러움이 몰려왔다. 기절하듯 눈을 감았다. 강태윤이 어떻게든 해 주지 싶어서 뒤를 생각할 시간이 없을 정도로 피곤이 몰려왔다.

잠이 안 와서 산책을 할까 했던 게 거짓말인 것 같다.

강태윤은 지독했다. 자신이 허튼 생각을 할까 봐 끊임없이 그의 존재를 각인시켰다. 결국 오로지 그의 생각만으로 가득 찬 채 서우가 눈을 감아 버렸다.



 

한국에 돌아온 뒤로 오랜만에 태윤은 푹 잤다.

새벽에 단 한 번도 깨지 않고 따뜻하고 말랑한 윤서우를 끌어안고 옅게 잠이 깰 때마다 코를 부비고 그 살갗의 냄새를 맡으면 금세 다시 잠이 왔다.

그러다 문득 얼굴 위로 햇살이 드리워져 눈을 떴을 땐, 옆에 윤서우가 없었다.

순식간에 머리가 차가워진 채로 깼다.

휴대폰의 시계를 보니 10시가 넘은 시간이었다.

김진호에게 온 부재중 통화를 대충 넘기고 가만히 앉아서 서우를 기다리다 이내 현관문에 포스트잇 하나가 붙은 게 보였다.

    출근할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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