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짐승의 발자국 (24)화 (24/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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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어머니는 정상이 아니었다. 모두가 쉬쉬했지만, 태윤은 전부 알았다.

가난한 피아니스트였던 아버지는 어머니를 만나 천재로 칭송받았으나, 본인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 괴로워했다. 재능 없는 그를 죽음으로 몰아간 건 어머니였다.

가장 되고 싶었던 건 사실 EA의 후계자였는데 그건 공고하게 버티고 있는 외삼촌으로 인해 안 될 것 같자 방향을 틀었다.

어디서든 주목받고 싶어 하던 사람에게 가난한 피아니스트인 아버지는 좋은 배우자였다. 오로지 사랑으로 사회적 신분을 넘어서 결혼한 두 천재 타이틀을 어머니는 처음엔 분명히 마음에 들어 했다.

그녀의 욕망에 아버지가 따라가지 못하자 매일 고성이 오갔다.

그리고 심약했던 아버지는 그가 유일하게 버리지 못하고 고집을 부려서 방 한 칸에 기어이 놔둔 낡은 피아노 앞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그걸 발견한 건 가여운 아버지의 아들, 강태윤. 그였다.

요양은 태윤이 실어증에 걸리자 그걸 창피해한 어머니의 도피였다.

어렸더라도 정확한 이유를 알았다. 제 어머니의 편집증과 집착을 알고 있었다. 보여지는 모든 것을 중시하는 전형적인 사람이라는 사실 또한.

말을 하지 않는 그를 다그치고 처음엔 의사와 상담을 하다가 그게 안 되면 제 분을 못 이겨 태윤을 창고로 밀어 넣었다. 때리지 않으니 학대가 아니라고 생각하면서.

태윤은 오히려 그 깜깜한 곳이 나았다. 가만히 앉아 있으면 들리는 소리라곤 오로지 시골의 나무 사이로 바람이 나부끼는 소리, 그리고 여름의 벌레가 우는 소리뿐이었다.

…나무에 무당벌레, 팬지꽃에 꿀벌, 냇가에 청개구리…

창고 아래서 들리는 흥얼거리던 소리.

뭐가 그렇게 재미있는지 계속해서 흥얼거렸다. 비슷한 시간마다, 매일 그 창고 앞에서 들렸다. 그리고 곧 그게 창고와 닿아 있는 담벼락 너머에서 들리는 소리라는 걸 깨달았다.

며칠이 더 지나자, 그 소리가, 아무렇게나 즉흥적으로 들리는 가사가 안채에서 들리는 제 어머니의 하프 소리에 맞춰서 지어 부르는 노래라는 걸 알게 됐다.

그에게는 전혀 들리지 않았던 어머니의 음악이 그제야 귀에 들렸다.

매번 학교가 끝나고 집 안에 들어오지 못한 채 창고 밖 담에 기대 제 할머니를 기다리며 부르던 노랫소리.

그건 태윤이 들어 본 중, 가장 친절하고 상냥한 소리였다.

자신의 존재도 모른 채 그가 볼 수 없는 아래에 그녀가 있다고 상냥하게 알려 줬다. 그리고 서우를 처음 본 순간 알아봤다.

땀을 뻘뻘 흘리며 창밖에서 항상 제 귀를 즐겁게 해 주는 하프를 처음 보고 눈을 동그랗게 뜬 채 그 죽은 악기와 사랑에 빠진 윤서우를 발견했다.

들어와.

서우의 손을 잡고 안쪽으로 끌어당긴 강태윤이 한 첫마디는 그가 반년 만에 내뱉은 말이었다.

어머니가 그걸 놓칠 리 없다.

다시 정상적인, 그녀가 그려 놓은 그림 같은 가족으로 돌아가기 위해선 윤서우가 필요하다는 걸 어머니는 알아차렸다.

비운을 딛고 일어선 가족. 요양을 가서도 불쌍한 아이를 지나치지 못하고 거둔 상냥한 사람이라는 타이틀이 그녀에게 퍽 마음에 들었으리라.

사실, 상냥한 소리를 낼 줄 아는 건 어머니가 아니라 윤서우뿐이었는데.

“너보다 내가 먼저야.”

윤서우가 하프라는 악기에 시선을 빼앗겼을 때, 태윤은 그녀를 보고 있었다.

윤서우가 먼저 자신을 좋아한 게 아니라 그가 먼저 그녀를 알아봤다. 꼭 제 아버지처럼 상냥하고 다정한 아이를.

쾅!

그때 철로 된 문을 찍어 누르는 굉음이 들렸다. 서우를 생각하느라 잠시 경찰에 전화도 미뤘던 탓에 놀란 건 그였다.

콰앙!

문을 내리찍는 소리가 연신 났다.

태윤아!

목 끝까지 숨을 헐떡대면서 자신을 부르는 절박한 소리에 태윤이 벽에 기댔던 몸을 바로 세웠다.

상냥한 소리.

“윤서우! 너, 뭐 하는 거야.”

뭘 하길래 이렇게 큰 소리가 나는 걸까.

뒤로 물러서 있어. 다칠지도 몰라.

대체 윤서우가 뭘 하는지 짐작조차 되지 않았다.

아니, 이 아가씨가 미쳤나! 그거 안 내려놔?

가까이 오지 마세요!

그냥 문이 잠긴 거라니까.

그냥 문이 잠겼는데 자물쇠를 채워놔요?

서우가 소리 지르자 태윤의 얼굴이 질렸다. 험악한 목소리들 사이에 큰일이 날지도 몰라서 그녀에게 빨리 김진호에게 가라는 말을 하려고 했다.

김진호는 대체 어디에 있어서 서우가 혼자 여기서 이러는지 소리를 치려고 할 때였다.

“윤서우, 아무것도 하지 말고….”

너야말로 물러나 있으라고 말하려던 순간이었다.

콰지직!

자물쇠가 떨어져 나가며 창고 문이 활짝 열렸다. 앞머리가 땀으로 범벅이 된 채 씩씩거리는 숨을 내쉬는 윤서우가 보였다. 손에 커다란 소방용 도끼를 든 채로 그녀의 혼란스러운 눈이 태윤을 찾았다.

“경찰에 신고했으니까 가까이 오면 이거 폭행이에요!”

뒤에서 낭패스러운 표정을 짓는 남자들을 향해 가까이 오지 말라며 엄포를 놓는다. 폭행은 소방 도끼를 들고 있는 사람에게 해당되지 않는 말 같았다. 자신을 걱정해서 한달음에 달려온 모양새 그대로였다.

무어라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거친 숨을 몰아쉬면서 서우가 물었다.

“태윤아, 괜찮아?”

손이 먼저 나갔다. 바들바들 떠는 서우의 어깨를 끌어안고 그대로 문이 절반쯤 떨어져 나간 창고 문을 안에서 다시 닫았다.

어설픈 어둠이 둘을 감싼다. 웅성거리는 소리도 더 이상 그의 귀에 들리지 않는다.

“안 괜찮을 건 뭔데. 너 알고 있었지.”

확신에 가까운 말이었다. 서우가 대답을 망설이는 기색까지 느껴졌다. 자신이 안고 있는 몸이 경직된다.

“아….”

“어머니가 나 창고에 가둔 거 알고 있었잖아.”

몰랐다고 생각했다. 서우가 들어오고 난 뒤의 자신은 꽤 정상이 돼서 창고에 다시 갇힐 일이 없었다.

“할머니가 걱정된다고 해서….”

모르고 부른 노래가 아니라 알면서. 그가 창고에 있었다는 사실을 알고 불러 준 거였다. 마음이 한없이 흐른다. 거기에 대해 지금까지 서우가 어떤 내색도 하지 않아 오로지 저 혼자만의 추억이라고 단언할 수 있었다.

“이러는데 내가 어떻게 널 놓겠어.”

이곳에 오기 전 그녀가 했던 말을 이를 갈 듯 태윤이 곱씹으며 말했다.

말도 안 되는 소리였다. 서우의 체온이 말도 못 할 정도로 뜨거웠다. 여기까지 씩씩거리면서 달려와서 저를 위해 달려든 이 작은 몸을 안지 안고는 못 견딜 것 같았다. 태윤의 두 손이 서우의 뺨을 감쌌다.

눈동자가 흔들린다.

“툭하면 내가 창고에 처박혔을 때, 거기에 가만히 앉아 있다 보면 네가 왔어.”

그 엉망인 흥얼거림을 듣다 보면 모든 게 괜찮아졌다. 태윤의 얼굴이 점점 그녀의 입술 위로 떨어져 내린다. 피할 수 없었다.

그의 눈에 제 안타까움이 고스란히 담겨서 서우는 숨도 제대로 쉬지 못하고 입술 위에 닿는 뜨겁고 부드러운 타인의 체온을 느꼈다. 눈꺼풀이 저절로 감겼다.

입술 위를 적시고 들어온 혀가 안쪽의 점막을 깊게 빨아들였다.

“흡.”

쿠웅.

바닥을 짚고 있던 소방 도끼가 그대로 손에서 미끄러졌다. 오갈 데 없는 서우의 손이 태윤의 허리춤을 붙잡았다.

다급하게 그의 얼굴이 옆으로 기울어진다. 그럴수록 목 안쪽 깊숙하게 찔러 오는 두툼한 살덩이에 숨이 넘어갈 것 같아 필사적으로 매달렸다.

어느새 창고의 벽에 등을 기대면서 밀렸다.

서우의 다리 사이에 그가 무릎을 끼워 넣었다.

부푼 아랫도리가 허벅지 한쪽에 닿아 뜨거웠다. 서로의 체온이 높은 건지, 좁은 창고의 열기 때문인지 누구도 짐작할 수 없었다.

츱.

점막이 닿아 떨어지는 끈적이는 소리가 귓가를 울렸다.

“하아, 하. 흐읍.”

젖은 입술로 서우가 헐떡였다. 반사적으로 손등을 올려 입술을 문지르려는 걸 태윤이 붙잡았다.

“상상보다 훨씬 야하네, 윤서우.”

그렇게 말하는 태윤의 눈가가 야살스럽게 휘어졌다. 머릿속이 하얗게 비워져 간다. 어째서 이렇게 됐는지 도통 알 수 없었다. 그냥 김진호의 통화 내용을 듣자마자 뛰쳐나왔다.

위급 상황 시에만 사용하라는 소방용 도끼를 들고 뛰었다. 상대적으로 근력이 약한 오른손이 덜덜 떨렸다. 그러다 문득 태윤이 손목을 잡고 있는 그 손이 신경 쓰여 내리려 했다.

“…누가.”

어둡고 습한 눈이 묻는다.

“누가 너를 이렇게 만들었어?”

누구의 타액인지 젖은 입술로 태윤이 자신이 잡고 있는 서우의 손목 안쪽 깊숙한 곳에 입을 맞췄다.

자세히 봐야 알 수 있다. 그만큼 흉터는 오랜 세월을 말해 준다.

비교적 멀쩡해 보이는 손등에도 자세히 보면 흉터가 있었다. 그걸 화장품으로 덮어 가릴 뿐이다. 뒤집어 보면 손바닥과 손가락 안쪽엔 허옇게 수술 자국이 남아 있었다.

집게손가락이 경련하듯 달달 떤다.

그걸 아무렇지도 않게 태윤이 입을 벌려 입안에 삼켰다.

“아!”

혀가 손가락을 감싸고 깊게 빨아들인다. 어떤 느낌도 제대로 나지 않았는데 볼우물이 깊게 패인 그의 얼굴을 보고 그렇게 상상할 뿐이었다. 그냥, 제 손가락을 빠는 강태윤의 얼굴이 비현실적이라 서우가 달아올랐다.

대답할 때까지 제 손가락을 놔주지 않을 기세였다.

“내가. 내가 그랬어, 태윤아.”

떨리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잔뜩 그의 타액이 묻은 손가락을 뱉어 낸 태윤이 여전히 그 음험한 눈으로 위험하게 입을 연다.

“넌 거짓말을 할 땐 이상하게 내 눈을 똑바로 봐.”

부끄러울 땐 피하면서, 거짓말을 할 땐 마주한다. 거짓을 말하는 주제에 뭐가 그렇게 당당해서.

이 예쁜 얼굴로 사람을 홀려서 그게 거짓이라는 걸 모르게 하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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