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조선을 탈출하라-847화 (847/850)

#847

“이거 조금 섭섭합니다.”

“예? 갑자기 그게 무슨...”

미리 기별도 없이 갑작스럽게 외무청에 나타나 자신을 만나려는 잉글랜드 대사의 행동에 대체 무슨 일인가 싶어 응접실로 발걸음을 옮긴 조용한 곰은, 간단한 인사를 건넨 후에 곧바로 섭섭함을 토로하는 잉글랜드 대사의 말에 뜬금없다는 표정을 지었고.

그런 조용한 곰의 반응에 잉글랜드 대사가 진지한 표정으로 조용한 곰을 바라보며 말했다.

“그동안 우리 잉글랜드와 북미왕국은 동맹만 맺지 않았을 뿐, 그 이상으로 우호적으로 지내왔다고 생각합니다. 헌데, 동맹국이 아니라는 이유로 이렇게 차별을 받게 되니 솔직히 섭섭하더군요.”

“차별이라고요?”

“그렇습니다. 제가 알아본 바로 내년에 개교한다는 철도 전문 대학교에서 외국인의 입학을 허락했는데, 동맹국 출신으로 한정되어 있더군요.”

잉글랜드 대사가 동맹국이 아니라는 이유로 차별을 받는다고 토로했을 때는, 지금 이 양반이 무슨 소리를 하는 거지, 라는 표정으로 잉글랜드 대사를 바라보던 조용한 곰은 잉글랜드 대사가 철도 전문 대학교의 이야기를 꺼내자, 그제야 상황을 이해하고 탄성을 질렀다.

“아...철도 전문 대학교의 일 때문에 오신 겁니까.”

“그렇습니다. 아주 중요한 일이니까요.”

북미왕국의 국력이 유럽에 알려진 이후, 유럽의 지식인들은 본격적으로 북미왕국을 연구하기 시작했다.

그러다 보니 유럽인들은 육상에서 대량의 물자를 빠르게 운반할 수 있는 철도가 북미왕국의 발전에 얼마나 큰 지분을 차지하고 있는지 깨달을 수 있었고.

자연스레 유럽 각국은 자국의 발전을 위해 철도를 부설하고 싶어했다.

다만, 당시에 북미왕국은 북미대륙을 개발하는 데 정신이 없었을뿐더러, 각종 기술이 유출될 것을 우려해 유럽 각국의 철도 부설 요청이나 기관차 판매 요청을 거절했고.

이에 유럽 각국은 어쩔 수 없이, 자체적으로 철도를 연구하고 기관차를 개발하고자 노력했다.

다만, 당시에 유럽 각국의 증기기관 기술 수준은 수준 이하였던 탓에, 기관차 개발은 지지부진했고, 이는 시간이 흘러 자체적으로, 혹은 북미왕국을 통해 어느 정도 수준의 증기기관 기술을 확보한 이후에도 상황은 비슷했다.

몇몇 나라의 경우 자체적으로 시험용 기관차를 제작하긴 했지만, 성능이 너무나도 조악해 제대로 써먹기도 어려울 정도였고, 이들의 눈에는 압도적인 성능의 북미왕국 기관차가 아른거리니, 자체적으로 개발한 기관차의 조악한 성능에 더욱 불만족스러울 수밖에 없었달까.

그렇기에 유럽 각국은 꽤 답답함을 느끼고 있었다.

특히, 작년에 북미왕국이 유럽 각국의 요청에 일부 학문을 개방하고, 유학생을 대거 허용하면서, 북미왕국에서 토목, 건축 기술을 배운 유학생이 자국으로 복귀하면, 자체적으로 철도를 부설할 수 있지 않을까 싶었는데, 기차를 끌 기관차의 개발이 지지부진하다면 철도를 부설해봐야 돈만 낭비하는 꼴이 될 수밖에 없기에.

헌데 북미왕국에서 철도 공학을 가르치는 철도 전문 대학교를 설립한다고 하니, 그리고 종합 대학교처럼 외국인들의 입학을 허락한다는 소리까지 들려오니, 잉글랜드 대사로서는 환호할 수밖에 없었다.

철도 전문 대학교에 잉글랜드인을 보내 북미왕국의 철도 공학을 배운다면, 기관차 개발에 물꼬가 트이지 않을까 싶었던 것이다.

해서 잉글랜드 대사는 최대한 많은 잉글랜드인을 철도 전문 대학교에 입학시키기 위해 움직이기 시작했는데, 교육청, 철도국 관리들과 만나 이야기를 나눠보니, 철도 전문 대학교에 입학할 수 있는 외국인의 국적은 북미왕국의 동맹에 한정한다며 잉글랜드인의 입학은 불가능하다고 이야기했고.

이에 잉글랜드 대사는 어떻게 해서든 잉글랜드인을 철도 전문 대학교에 입학시키기 위해 이렇게 조용한 곰을 만나러 외무청을 방문한 것이고 말이다.

그렇기에 잉글랜드 대사는 무척이나 진지한 얼굴로 조용한 곰을 바라보자, 조용한 곰은 속으로 잉글랜드 대사를 설득하기가 쉽지는 않겠다고, 그리고 상황을 봐서 정성국이 이야기한 대로 일을 처리해야겠다고 생각하면서 입을 열었다.

“그게 어쩔 수가 없습니다. 철도 전문 대학교의 규모가 작은 터라 외국인 입학생, 즉 유학생의 수를 제한할 수밖에 없고, 유학생의 수를 제한하다 보니 동맹국 출신으로 한정한 거라서 말입니다.”

“아니. 철도 전문 대학교의 규모가 작다고요? 제가 알아본 바론 정원만 2000명이 넘는다고 알고 있습니다만...”

잉글랜드 대사가 조용한 곰의 말에 미간을 찌푸리며 지적하자, 조용한 곰은 어깨를 으쓱했다.

“그러니 규모가 작은 거지요. 전체 정원이 2000명일 뿐이지 신입생을 2000명이나 받는 것은 아니니까요.”

“으음...”

철도 전문 대학교는 4년제 대학이었고, 그런 만큼 신입생은 딱 500명만 받는다.

물론 이는 유럽의 기준에선 많은 편이지만, 수천 명의 신입생을 받기도 하는 북미왕국의 대학교들을 생각하면, 확실히 규모가 큰 것은 아니었기에, 잉글랜드 대사는 조용한 곰의 반박에 잠깐 말문이 막혔고.

이에 조용한 곰은 재빨리 하소연하듯 말했다.

“지금도 북미왕국 각지에서 철도가 부설되면서 철도 길이는 늘어나고 있고, 이에 비례해서 더 많은 기차가 철도 위를 달리고 있습니다. 그러니 기차를 운용할 전문 인력을 대거 양산해야 하는 상황이고요. 그런 만큼, 아국으로서는 철도 전문 대학교에 입학할 유학생의 수를 제한할 수밖에 없고,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유학생을 동맹국 출신에 한정하게 된 것이지요. 그러니 이번엔 잉글랜드 측에서 조금 양해해 주셨으면 합니다.”

“끙...”

당장 북미왕국은 기차를 운용할 전문 인력을 대거 양산해야 하는 만큼, 많은 수의 유학생들을 받아들이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려웠다.

헌데 당장 철도를 운용하고, 또, 자체적으로 철도를 부설하려 하는 조선이나, 조만간 철도를 운용해야 하는 시베리아 부족 연합의 유학생을 받아들여야 했고.

여기에 시베리아 부족 연합에 철도를 부설하겠다고 발표한 후, 자신들도 철도가 필요하다면서 철도 부설을 요청하는 다른 동맹국들을 달래기 위해서라도, 동맹국들의 유학생까지 받아들여야 하는 만큼, 동맹국이 아닌 타국의 유학생까지 받아들일 자리가 없다고 토로하는 조용한 곰이었다.

그리고 이러한 조용한 곰의 토로에 잉글랜드 대사는 북미왕국의 사정상 당분간 동맹국에 한정해 유학생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것을 심정적으로는 이해하면서도, 이대로라면 북미왕국의 동맹국들과 기술 격차가 커질 수밖에 없는 터라, 알겠다고 고개를 끄덕일 수가 없었고.

해서 잉글랜드 대사는 어떻게든 조용한 곰을 설득하기 위해 열심히 머리를 굴리다가, 문득 누에바 에스파냐인들의 지원, 즉 멕시코인 연합회의 거래를 빌미로 북미왕국과 협상해보는 것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동안 언론이 과하게 에스파냐를 비판했어도, 그리고 민간단체인 멕시코인 연합회가 누에바 에스파냐인들을 지원하겠다고 모금을 하고, 이렇게 모금한 돈으로 잉글랜드 무기 상인인 스티브와 접촉, 막대한 수량의 무기를 구매했는데도 북미왕국은 별다른 제재를 하고 있지 않았으니, 북미왕국이 누에바 에스파냐인들을 은근히 지원하고 싶어한다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었다.

그러니, 잉글랜드 대사는 멕시코인 연합회를 통해 누에바 에스파냐 혁명 세력에게 넘길 군수 물자를 빌미로 협상하면 조용한 곰을 설득할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달까.

물론, 이미 스티브는 멕시코인 연합회와 계약을 체결했고, 이번에 체결한 계약의 규모가 어마어마한 터라, 잉글랜드 대사가 일방적으로 이 계약을 파기할 수야 없었다.

하지만, 멕시코인 연합회에 넘겨줄 물자는 결국 카리브해에 있는 잉글랜드 식민지에서 가져오는 만큼, 그가 마음만 먹는다면 군수 물자 인도 시기를 질질 끌 정도의 영향력은 발휘할 수 있었고.

그렇게 되면 에스파냐 본국에서 지원군이 오기 전에 최대한 세력을 키워야 하는 누에바 에스파냐 혁명 세력으로서는 곤란해질 수밖에 없었고, 누에바 에스파냐 혁명 세력을 은연중에 응원하고 있는 북미왕국도 곤란하리라 여긴 것이다.

물론, 잉글랜드 대사가 이를 빌미로 북미왕국을 압박하는 것은 조금 위험한 행동이기는 했다.

북미왕국이 잉글랜드 대사의 압박을 협박으로 인식할 가능성이 있었고, 그렇게 되면 그동안 쌓아온 북미왕국의 우호 관계에도 악영향을 끼칠 수 있었으니까.

다만, 그만큼 북미왕국의 철도 공학을 배우는 것이 중요한 터라, 잉글랜드 대사는 위험을 감수하고 조용한 곰을 설득, 혹은 압박하기 위해 이를 입을 열었을 때, 조용한 곰이 먼저 입을 열었다.

“대신, 유학생 정원에 여유가 생긴다면, 그때는 다른 나라보다 잉글랜드를 먼저 배려하겠습니다. 이 점은 약속드리지요.”

그동안의 관계가 있는 만큼 잉글랜드를 가장 먼저 배려하겠다고 덧붙이는 조용한 곰의 말에, 잉글랜드 대사는 꺼내려 했던 말을 다시 삼키며 질문을 던졌다.

“유학생 정원에 여유가 생긴다고요? 대체 언제쯤 말입니까?”

이에 조용한 곰은 철도 전문 대학교는 외무청의 관할이 아닌 만큼, 확실한 것은 아니라는 얼굴로 조심스레 이야기했고.

“뭐...철도 전문 대학교에서 철도 공학을 배운 유학생들이 복귀하고 나면, 동맹국들도 자체적으로 철도 전문 대학교를 세우려 들지 않겠습니까. 그러면 자연스레 유학생의 정원에 여유가 생기지 않을까 싶습니다만...”

이러한 조용한 곰의 대답에 잉글랜드 대사는 몹시 실망했다.

철도 전문 대학교는 다른 대학교처럼 4년제 대학이니, 아무리 빨라도 4년 이후에나 유학생의 정원에 여유가 생긴다는 소리였으니.

거기에 철도 전문 대학교를 졸업한 학생을 선생으로 삼아 배운 것을 가르친다 해도 한계가 있을 테니, 그리고 더 많은 인력을 확보하기 위해 동맹국들은 계속해서 북미왕국의 철도 전문 대학교에 유학생을 보내려 할 것이 뻔해 보였고.

그러니 조용한 곰의 대답은 겉으로만 그럴듯한 대답일 뿐이지, 실제로는 무척이나 불만족스러울 수밖에 없었고, 이에 잉글랜드 대사가 헛웃음을 흘렸다.

“허허허. 대체 어느 세월에 말입니까. 아. 혹시 철도 전문 대학교를 확장하거나 또 다른 철도 전문 대학교를 세울 계획이 있는 겁니까?”

잉글랜드 대사가 혹시나 해 질문을 던지자, 조용한 곰이 잘 모르겠다는 듯 어깨를 으쓱했다.

“글쎄요. 아까도 말씀드린 것처럼 철도 전문 대학교는 제 관할이 아니라서요. 다만, 방금도 말씀드렸다시피, 워낙 인력이 부족한 상황이라...”

북미왕국에도 철도 공학을 배운 인재가 부족한 상황이라 설사 철도 전문 대학교를 확장하거나, 또 다른 철도 전문 대학교를 세운다 하더라도, 유학생의 정원이 늘어나지는 않을거라는 조용한 곰의 말에 잉글랜드 대사는 낙담했고.

그러면서 잉글랜드 대사는 아까의 계획대로 북미왕국을 압박하기 위해 멕시코인 연합회와의 거래를 언급할까 고민하고 있을 때, 조용한 곰이 지나가듯 이야기했다.

“헌데...그거 아십니까?”

“무엇을 말입니까?”

잉글랜드 대사가 조용한 곰의 질문에 퉁명스럽게 대꾸했지만, 조용한 곰은 그런 잉글랜드 대사의 태도를 모른척하며 말했다.

“이번에 철도 전문 대학교에 유학생을 보내는 동맹국들 가운데는 유구국도 있습니다.”

“예? 유구국이요?”

잉글랜드 대사는 뜬금없다는 표정으로 조용한 곰을 바라보자, 조용한 곰은 방긋 웃으며 대답했다.

“예. 물론 유구국의 크기를 생각하면, 철도가 크게 의미가 없다고 생각합니다만, 유구국에서는 바깥세상이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는 것을 백성들에게 보여주기 위해 철도를 부설하고 싶어하거든요. 해서 전하께서는 보호국 역시 일종의 동맹국과 같으니 유구인들의 입학을 허락하셨고, 덕분에 유구국에 배정한 입학생의 숫자가 꽤 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허어...”

조용한 곰의 대답에 잉글랜드 대사는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북미왕국에서는 유학생의 정원이 부족하다고 해놓고, 철도가 별로 필요 없는 유구국에도 유학생을 배정했다고 하니 잉글랜드 대사로서는 화가 날 수밖에 없었고.

더불어 그런 말을 하면서 자신을 보고 방긋 웃는 조용한 곰의 행동에 잉글랜드 대사는 속으로 생각했다.

‘지금 이거 놀리는 건가? 차라리 그 자리를 우리에게 주었으면...어?!’

동시에 조용한 곰이 뜬금없이 유구국의 이야기를 꺼내지는 않을 거라는 생각이 들자, 잉글랜드 대사는 내심 긴장하며 조용한 곰을 바라보고 질문을 던졌다.

“저기...그러면 말입니다. 만약에 유구국에서 확보한 입학생 자리를 타국에 넘긴다면 어떻게 됩니까?”

이에 조용한 곰은 잉글랜드 대사를 보고 꽤나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글쎄요...그에 관한 별다른 규정이 없는 만큼, 당장은 그냥 넘어가지 않겠습니까?”

조용한 곰의 의미심장한 미소와 대답에, 잉글랜드 대사는 북미왕국에서 타국의 불만을 최소화하기 위해 이런 식으로 자리를 내어준 거라 확신했고.

동시에 북미왕국이 잉글랜드를 배려한 까닭이 잉글랜드가 스티브를 통해 멕시코인 연합회에 대량의 군수 물자를 넘기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하는 짐작과 함께, 경솔하게 멕시코인 연합회의 일을 입 밖에 내지 않을 것을 다행이라고 여기며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그렇군요. 알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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