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44
기차 생산 공방을 방문한 다음 날.
정성국은 철도국장을 지원하기 위해 몇몇 청장을 호출했다.
그리고 청장들이 하나둘 집무실로 들어올 때마다 정성국은 청장들에게 직접 내린 커피를 건네주면서, 잠깐 개인적인 이야기도 나누기도 하고, 업무적인 이야기도 나누었고.
그러다 외무청장인 조용한 곰이 마지막으로 도착하자, 정성국은 슬슬 이야기의 주제를 변경하기 위해 조용한 곰에게 질문을 던졌다.
“그보다 조용한 곰. 이번에 아국에 유입된 외국인 노동자의 수가 얼마나 되지?”
“이번에 처음으로 아국에 고용된 신성로마제국, 폴란드-리투아니아 왕국, 그리고 청나라의 외국인 노동자를 물으시는 거라면 5만 명입니다.”
조용한 곰의 대답에 정성국은 들고 있던 커피잔을 내려놓으며 다시 질문을 던졌다.
“흠. 외국인 노동자들을 데려오기 시작한 지 한 달쯤 되었지?”
“그렇지요.”
“한 달에 5만 명이라...생각보다 외국인 노동자의 수가 좀 적은 것 같은데? 설마 외국인 노동자의 모집이 잘 안 되는 건가?”
신성로마제국, 폴란드-리투아니아 왕국에서 각각 20만 명씩, 그리고 청나라에서 50만 명, 총 90만 명에 달하는 이들을 외국인 노동자들로 고용하기로 했고, 외무청에서는 이들을 내년 상반기까지 모두 북미왕국으로 데려오겠다고 했다.
그러니 한 달에 10만 명은 데리고 와야 할 텐데, 그 절반인 5만 명에 불과하니, 정성국은 앞으로의 북미왕국 개발 계획에 차질이 생기지는 않을까 싶어 우려하는 기색을 감추지 못하자, 조용한 곰이 바로 고개를 저었다.
“그건 아닙니다. 오히려 아국에서 일하고 싶다는 외국인들이 너무 많아 곤란한 상황이니까요.”
“음? 아국에서 일하고 싶다는 외국인들이 너무 많아 곤란할 정도라고?”
조용한 곰의 말에 정성국이 조금 안도하면서 현지 상황을 상세히 설명해 보라는 시선을 보내자, 조용한 곰이 설명을 시작했다.
“그렇습니다. 청나라의 경우야 나라 사정이 뒤숭숭하다 보니, 안전을 위해 아국에서 일하려는 이들, 그리고 청나라 조정에서 반란군을 약화시키기 위해 의도적으로 흘린 소문에 돈을 벌기 위해 반란군에서 나와 아국에서 일하려는 이들이 한 둘이 아니라서 말입니다.”
“음. 그야 그렇겠지.”
청나라야 워낙 인구가 많을뿐더러, 애초에 청나라에서 50만 명에 달하는 장정들을 북미왕국에서 외국인 노동자로 고용하게끔 허락한 이유가 바로 반란군을 견제하기 위함이었던 만큼, 청나라인들을 고용하는 것은 크게 문제가 없을 것이라 여겼던 정성국이 조용한 곰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고.
이에 조용한 곰이 다시 입을 열었다.
“그리고 유럽의 경우 아국에서 일하고 있는 잉글랜드, 프랑스, 에스파냐 출신 외국인 노동자들이 얼마나 좋은 대우를 받으면서 일하고 있는지 잘 알려진 터라, 신성로마제국과 폴란드-리투아니아 왕국의 농민들이 너도나도 외국인 노동자를 모집하는 관리가 있는 항구로 모여들면서, 가을 추수할 인력이 부족하다는 소리가 나올 정도입니다.”
조용한 곰의 말에 다른 청장들은 이 무슨 황당한 소린가 하는 표정으로 조용한 곰을 바라보았고.
이는 정성국도 다르지 않았다.
“허어? 농민들이 자식이나 다름없는 농작물을 포기하고 외국인 노동자가 되기 위해 항구로 이동한다고?”
북미왕국을 제외한 대부분 나라의 농민들은 농작물을 키우기 위해 해가 뜨자마자 밭으로 나가 해가 질 때가 되어서야 집으로 돌아올 정도로 밭을 관리하는 데 시간과 정성을 쏟았고.
그런 만큼, 농작물에 대한 집착이 강할 수밖에 없었다.
해서 수확한 이후에 전쟁이 벌어지면 농민들은 전쟁을 피해 피난 가더라도, 파종한 이후에 전쟁이 벌어지면 농민들은 위험을 감수하더라도 피난 가지 않는다는 소리가 있는 것이고 말이다.
그러니 외국인 노동자가 되어 북미왕국에서 일하는 것이 훨씬 이득이라고 해도, 농민들이 과연 그동안 공들여 키운 농작물을 버리고 움직일까 싶었다.
특히, 한두 달 후면 수확할 수 있는 상황에서 말이다.
해서 정성국은 조용한 곰이 신성로마제국과 폴란드-리투아니아 왕국에서 외국인 노동자 모집이 순조롭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 조미료를 과하게 쳐서 이야기한 것 아닌가 싶어 그를 바라보자, 조용한 곰은 이들의 반응이 충분히 이해된다는 얼굴로 대답했다.
“그게...잉글랜드, 프랑스, 에스파냐에서 외국인 노동자를 모집할 때, 농민들이 키우던 농작물 때문에 잠깐 주저하는 사이 외국인 노동자 모집이 끝나버리는 바람에 뒤늦게 땅을 치고 후회했다는 것은 꽤 유명하지 않습니까. 그 소문이 신성로마제국, 그리고 폴란드-리투아니아 왕국까지 퍼졌고, 그래서인지 두 나라의 농민들이 과감히 움직인 모양입니다.”
“아...”
조용한 곰이 언급한 것처럼 처음 외국인 노동자를 서유럽의 세 나라에서 모집했을 때, 모집 시기가 파종 직후였기에 세 나라의 농민들은 북미왕국 외무청 관리가 좋은 대우를 약속했음에도 주저했었다.
다만, 이때는 북미왕국의 인력 부족 문제가 워낙 심한 시기였기에, 북미왕국이 서유럽 세 나라에서 외국인 노동자를 고용하는 대신, 세 나라의 정부가 중간에서 이득을 취할 수 있게 해 주었고, 이 때문에 세 나라의 정부가 적극적으로 나서서 겨우 외국인 노동자를 확보할 수 있었고.
물론, 이 외국인 노동자들이 북미왕국에서 무척이나 좋은 대우를 받고 일하고 있다는 것이, 이들이 가족들에게 보낸 편지나 각종 신문을 통해 알려지면서, 세 나라의 농민들이 두고두고 후회한 것은 꽤 알려진 사실이었고 말이다.
그리고 정성국은 이러한 현지 사정을 이전에 조용한 곰에게 들은 적이 있었기에, 조용한 곰이 이를 언급하자 겨우 수긍했을 때, 조용한 곰이 덧붙였다.
“아. 그렇다고 두 나라의 농민들이 피땀 흘려 키운 농작물을 완전히 포기한 것은 아닙니다. 일단 가족들이 남아 있기도 하고, 그래도 일손이 부족하면 소출을 일부 떼어서 추수 때만 잠깐 사람을 구할 생각이었겠지요. 헌데...”
조용한 곰이 잠깐 숨을 돌리는 사이 관리청장이 끼어들었다.
“외국인 노동자가 되기 위해 지방의 성인 남성들이 상당수 자리를 비우면서, 사람을 구할 길이 없어졌다는 소리군요?”
“맞습니다. 해서 지금 두 나라에서는 자칫하면 작물을 잘 키워놓고도 제때 수확하지 못해 수확량이 감소할 거라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을 정도이니, 외국인 노동자의 모집은 무척이나 수월하지요.”
이에 정성국은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물었다.
“그럼 아국에 유입된 외국인 노동자의 수가 적은 것은 이들을 수송할 선박이 부족하기 때문인 건가?”
“맞습니다. 초장부터 이렇게 많은 이들이 몰려들 거라고는 미처 예상하지 못해서 말입니다. 해서 현지 사정을 파악하고 난 후 운송국에 이를 이야기했고, 운송국장이 가용할 수 있는 모든 선박을 동원해 외국인 노동자들을 데려오겠다고 약조했으니, 다음 달부터는 매달 15만에 달하는 외국인 노동자가 유입될 겁니다.”
“흠. 그렇다면 다행인데...”
조용한 곰의 대답에 정성국은 팔짱을 끼며 중얼거렸고, 이러한 정성국의 반응에 조용한 곰이 질문을 던졌다.
“헌데 전하. 갑자기 무슨 연유로 외국인 노동자들에 신경을 쓰시는 겁니까?”
그리고 이 문제 때문에 자신뿐만 아니라, 관리청장, 개발청장, 연구청장을 부른 것이냐는 시선을 보내자, 정성국이 답했다.
“아. 어제 차세대 기관차가 처음으로 양산되었다는 소식에 잠깐 기차 생산 공방을 방문해 철도국장과 잠깐 이야기를 나누었거든. 그때...”
그러면서 정성국은 청장들에게 어제 철도국장을 만나 결정했던 기차 생산 공방의 확장 및 추가 공방 건설, 그리고 주요 선로의 확장을 말해 주었고.
이에 청장들은 정성국이 왜 자신을 호출했는지를 이해하고 고개를 끄덕였을 때, 관리청장이 입을 열었다.
“흠. 주요 도시를 잇는 철도를 복복선화하겠다니 그거 잘 되었군요. 그렇지 않아도 최근에 철도망을 통해 수송할 물자가 점차 늘어나고 있어, 이대로라면 육로 물자 수송에 문제가 생길 것으로 예측되어 조만간 보고드리려 했거든요.”
“어? 물자 수송이 지체될 정도라고?”
정성국이 선로를 확장하겠다고 결정을 내린 것은 당장은 여객용 기차의 속도 문제 때문이었고, 후에는 기차 생산 공방이 늘어나면서 화물 열차가 대폭 늘어나면서 선로용량이 부족해질 것을 우려했기 때문이다.
헌데, 관리청장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벌써 물자 수송에 지장이 있다고 하니 정성국으로서는 조금 당황한 표정을 지었고.
이에 관리청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예. 주요 도시가 철도로 연결되면서, 너도나도 철도를 이용해 물자를 수송하려 하거든요. 그러다 보니 철도로 수송해야 하는 물자가 어마어마해져서 최근엔 물자를 화물 기차에 싣는 데 일주일은 기다려야 한다는 보고까지 올라와서 말입니다. 해서 선로를 확장하고 기차 생산 공방의 규모를 키워 더 많은 화물 기차를 생산해 투입하는 것과 동시에 자동차 생산 공방에서 더 많은 화물차를 생산해 투입하는 것을 말씀드리려 했습니다만...”
관리청장의 말에 정성국은 미간을 찌푸렸다.
아직 북미왕국의 화물차는 크기가 작아 수송량이 적은 터라, 장거리 물자 수송엔 적합하지 않다는 사실을 관리청장이 누구보다 잘 알고 있을 텐데도, 더 많은 화물차를 생산해 투입하는 것을 건의할 정도라고 하니, 상황이 생각보다 심각하다는 것을 깨달은 탓이다.
“흠. 육상 물자 수송이 지체되고 있으니 지역 간 물자 수송에 화물차까지 투입하겠다?”
“물론, 화물차의 경우 수송량이 적어서 장거리 물자 수송에는 썩 적합하지 않다는 것을 압니다만, 당장 상황이 상황이니만큼...”
“그래. 당장 현장 상황이 급한데 효율을 생각할 수야 없는 노릇이지. 알겠네. 자동차 생산 공방에 연락해 더 많은 화물차를 생산하도록 하자고.”
정성국은 자동차 생산량을 늘리기 위해 계속해서 자동차 생산 공방의 규모를 키워온 것을 그나마 다행이라고 여기며, 더 많은 화물차를 생산하자는 관리청장의 의견을 수용했고.
이러한 결정에 관리청장은 육상 물자 수송에 숨통이 트일 것 같아 기뻐했다.
“감사합니다. 전하.”
그리고 옆에서 이를 물끄러미 듣고 있던 연구청장이 손을 들며 입을 열었다.
“헌데 전하.”
“음? 할 말이라도 있나?”
정성국이 연구청장을 바라보고 묻자, 연구청장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아국의 발전이 무척 급격하다는 것을 생각해보면, 지금 주요 선로를 복복선화 해도 금방 선로용량이 꽉 찰 것 같은데...기왕 선로를 추가할 거라면 주요 도시들을 잇는 본선은 아예 3복선이나 4복선으로 설치하는 것이 낫지 않습니까?”
복선이 2개의 선로를 의미한다면 복복선은 4개의 선로를 의미하며, 다른 말로는 2복선이라고 한다.
그리고 3복선은 6개의 선로를, 4복선은 8개의 선로를 의미하고 이렇게 선로가 많아질수록 선로용량은 늘어난다.
그러니 연구청장은 기왕 선로를 추가하기 위해 공사를 시작할 거라면, 앞으로를 생각해 더 많은 선로를 추가하는 것이 어떻겠냐고 건의했다.
물론 그만큼 건설 비용도 기하급수적으로 올라가지만, 부유한 북미왕국으로서는 충분히 감당할 수 있다고 여겼기에.
“흠. 확실히...”
그리고 이러한 연구청장의 의견에 조용한 곰이 동의하듯 고개를 끄덕이자, 정성국이 나서기 전에 개발청장이 먼저 입을 열었다.
“그건 강철이 부족해 현실적으로 어려울 겁니다.”
“어? 그래요?”
“왕실 상단에서 여러 나라에 투자한 덕분에 각국에서 더 많은 광산을 개발하고, 이렇게 개발한 광산에서 나오는 광물 전량을 아국에 수출하고 있기에 강철을 비롯한 각종 원자재의 생산량이 많이 늘어난 것으로 아는데...”
연구청장과 조용한 곰이 한마디씩 하며 개발청장을 바라보자, 개발청장이 강철이 충분한 것 아니냐는 시선을 보내는 조용한 곰을 보고 설명했다.
“그렇긴 합니다. 다만, 이번에 외국인 노동자가 대거 유입되면서 북미왕국 전역을 개발하기로 하지 않았습니까.”
“아. 그럼...”
“맞습니다. 늘어난 원자재들은 북미왕국 전역을 개발하는 데 소모되는 터라, 아마 본선을 복선에서 복복선으로 만드는 것도 강철 부족 문제로 빠르게 진행하기는 어려울 겁니다.”
개발청장의 말에 정성국이 고개를 끄덕이며 끼어들었다.
“맞네. 어제 철도국장도 그 소리를 하더군.”
“그렇습니까? 조금 아쉽군요.”
“그러게 말입니다. 노동력이 풍부할 때 선로를 대거 추가하면 아국의 발전에 큰 도움이 될 거라 여겼는데 말입니다.”
연구청장과 조용한 곰이 현 상황에 수긍하면서도 아쉬워하자, 정성국은 빙긋 웃으며 대꾸했다.
“그러니 자네들이 더욱 힘을 써야겠지.”
“하하하. 알겠습니다. 전하. 허면 더 많은 자원을 확보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그리고 저는 철도국을 전폭적으로 돕도록 하지요.”
조용한 곰과 개발청장의 대답에 정성국은 흡족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인 후, 연구청장을 보며 말했다.
“연구청장 자네는, 기차 생산량과 화물차 생산량에 신경을 쓰도록 하고.”
“알겠습니다. 전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