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42
“어후. 아직 후덥지근하네.”
정성국이 목적지에 도착해 자동차 문을 열자마자 그를 반기는 뜨거운 공기에, 자신도 모르게 표정을 찌푸리며 중얼거리자, 함께 자동차에서 내린 호위대장이 고개를 끄덕이며 대꾸했다.
“그러게 말입니다. 올해 여름이 유난히 덥더니, 늦더위가 기승을 부리는군요. 빨리 공방 안으로 들어가시지요.”
“그러자고.”
국영 상단이나 왕실 상단에서 운영하는 공방들은 모두 직원들을 위해 냉난방 설비를 갖추어 두었기에, 정성국은 호위대장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거대한 기차 생산 공방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몇 달 전, 북미 서해안 철도와 북미 동해안 철도가 부설되어, 북미왕국의 철도가 새남포에서 보스턴까지 연결된 이후, 정성국은 노선이 길어진 만큼 이동 시간 역시 오래 걸린다는 이야기에 더 빠르게 지역 간 이동이 가능하도록 새로운 기관차를 도입하라고 지시했었다.
이에 철도국은 연구청에서 새롭게 개발한 기관차들을 면밀히 살핀 후, 차세대 기관차를 선정해 기차 생산 공방에서 양산 준비를 시작했고.
마침내 기차 생산 공방에서 처음으로 차세대 기관차가 생산되었다는 보고가 올라오자, 정성국은 차세대 기관차를 살피기 위해 이렇게 직접 기차 생산 공방으로 향한 것이다.
해서 정성국이 기차 생산 공방 안으로 들어서자, 공방 중앙에 있는 차세대 기관차 옆에서 기자들에게 이번에 양산된 차세대 기관차에 관해 설명하던 철도국장이, 정성국을 확인한 후 몹시 당황스럽다는 표정을 지었다.
물론 이는 정성국의 방문이 예정에 없는 갑작스러운 방문이었기 때문이었고.
이런 철도국장의 반응에 기자들이 의아한 표정으로 고개를 돌렸다가, 정성국이 보이자 다들 급히 고개를 숙이며 예를 취했고, 그런 철도국장과 기자들의 모습에 정성국은 쓰게 웃으며, 일단 자신은 신경 쓰지 말라는 듯 손짓하자, 철도국장은 당혹스러움을 가라앉히고, 다시 입을 열기 시작했다.
그리고 기자들 역시, 정성국이 아직 취재를 허용하지는 않았기에, 일단은 자신들이 이곳을 방문한 목적인 차세대 기관차의 정보를 얻기 위해 철도국장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고.
그 모습을 정성국이 멀리서 바라보고 있을 때, 누군가가 다가와 말을 걸었다.
“스승님. 오셨습니까.”
“음? 네가 여긴 웬일이냐.”
박기동의 목소리가 들려오자 정성국이 급히 고개를 돌려 자신을 보고 빙긋 웃으며 인사하는 박기동을 바라보고 반가움과 의아함이 뒤섞인 얼굴로 말을 건넸고.
이에 박기동은 당연한 것 아니냐는 얼굴로 대답했다.
“웬일이긴요. 양산된 차세대 기관차가 처음으로 철길을 달리는 뜻깊은 날인데, 차세대 기관차의 아버지로서 당연히 참석해야 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차세대 기관차의 아버지라고? 솔직히 너 기관차 연구 쪽에는 손 뗀 지 오래지 않아?”
물론 박기동은 연구청 산하 연구소를 총괄하고 있고, 기관차의 경우 철도국이 아닌 연구청 산하 연구소에서 계속 연구해오고 있었기에, 박기동이 이번 차세대 기관차를 만들었다는 말이 크게 틀린 말은 아니었다.
다만, 보통 어떤 발명품의 아버지는 이를 직접 연구, 개발한 이에게 붙이는 만큼, 박기동이 차세대 기관차의 아버지라고 주장하는 것은 조금 아닌 것 같아서 정성국이 슬쩍 태클을 걸자, 박기동은 그게 무슨 소리냐는 표정으로 펄쩍 뛰며 말했다.
“기관차의 심장인 동력기관을 제가 설계했습니다. 그러니 이번 차세대 기관차의 아버지는 제가 맞지요.”
이에 정성국은 어처구니없다는 듯 피식 웃었다.
물론, 기관차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이 동력기관이긴 하지만, 그것만으로 기관차를 만들 수는 없는 노릇이었으니까.
다만, 박기동이 저렇게 차세대 기관차의 아버지라는 타이틀에 애착을 보이는데, 괜히 면박을 주기도 뭐해서 정성국은 대충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이야기의 주제를 바꾸었다.
“그보다 저게 이번에 양산될 차세대 기관차란 말이지?”
“그렇습니다. 앞으로 장거리 여객 운송에 투입될 경유 기관차이지요.”
연구청에서는 계속해서 더 나은 성능의 기관차를 개발하고 있었고, 그러면서 다양한 기관차를 설계하고 실제 시제품까지 생산하기도 했다.
해서 정성국이 새롭게 차세대 기관차를 도입하려 했을 때, 연구청에서는 고출력의 증기 기관차와 경유기관을 도입한 경유 기관차를 차세대 기관차의 후보로 내밀었고.
철도국은 이 두 기관차를 직접 시험 운용해보면서 두 기관차의 장단점을 비교해본 후, 결국 역마다 석유 저장고를 따로 짓는 것을 감수하고 경유기관을 도입한 경유 기관차를 차세대 기관차로 선정했고 말이다.
그리고 이를 그동안 철도국에서 올라온 보고서를 통해 파악하고 있던 정성국은 시선을 공방 한 가운데에 자리한 경유 기관차로 옮기고, 조금 묘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경유 기관차라서 그런가...확실히 생김새가 조금 다르긴 하네.”
이에 박기동이 선선히 고개를 끄덕였다.
“예. 아무래도 보일러가 필요 없다 보니, 앞쪽에 커다란 보일러가 있는 증기 기관차와는 생김새가 다르지요.”
“그렇기도 하고, 기존의 증기 기관차와는 다르게 기관차 앞부분이 뾰족하고 유선형인 것이 꽤 인상적이어서 말이야.”
원래 기존의 증기 기관차들은 전생에서 각종 미디어에 전형적으로 등장하던 증기 기관차의 모습과 거의 흡사한 편이었다.
보일러 때문에 기관차 앞쪽에 커다란 원통이 자리했고, 그와 연결된 굴뚝이 있었으며, 맨 앞에는 혹시 모를 장애물을 밀어내기 위한 V자 모양의 삽이 있었고 말이다.
헌데, 지금 저기 보이는 차세대 기관차인 경유 기관차는, 마치 전생의 고속 철도마냥 앞부분이 뾰족한 유선형의 모습이었기에 정성국은 새삼 놀랍다는 얼굴로 이를 언급하자, 박기동이 대답했다.
“아. 공기 저항을 조금이나마 줄이기 위해서 앞부분을 저런 식으로 설계했습니다.”
그 말에 정성국은 흡족한 표정을 지었다.
자신이 따로 언급하지 않았음에도, 자체적으로 연구해, 전생과 흡사한 모습의 기관차를 만들어냈으니 말이다.
“그래? 잘 했어. 확실히 저런 외형이면 공기 저항을 줄여 도움이 될 테니 말이야. 그보다...이 경유 기관차의 최대 속력이 시속 120km에 달한다면서?”
정성국이 예전에 올라온 보고서를 머릿속에서 떠올리며 묻자, 박기동이 자신만만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며 차세대 기관차인 경유 기관차의 성능에 대해 설명하기 시작했다.
“예. 기존에 운영되던 여객용 기차와 비교하면 1.5배나 빠르지요. 거기에 경유 기관차이니만큼, 증기 기관차처럼 보일러가 가열되기까지 기다릴 필요 없이, 바로 시동을 걸고 움직일 수 있으며, 연료 공급도 쉽고, 여기에 연비가 훨씬 좋은 관계로 연료 공급을 자주 할 필요까지 없으니, 장거리 이동 시간이 1.5배 이상으로 단축될 겁니다.”
출력 자체는 지금 저기 있는 경유 기관차보다, 새로 개발했다는 고출력 증기 기관차가 월등했다.
그리고 고출력 증기 기관차의 출력이 훨씬 높은 만큼, 속도도 고출력 증기 기관차가 더 빠른 편이었고, 더 많은 객차를 연결할 수도 있었고.
허나 고출력 증기 기관차는 증기기관으로 움직이는 만큼, 증기기관이 갖는 공통적인 단점을 그대로 갖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예를 들면 완전히 멈춘 후, 다시 시동을 걸고 보일러를 예열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린다는 점이나 고체인 석탄을 공급하는 데 시간이 걸린다는 점, 추가로 물까지 공급해야 한다는 점, 그리고 석탄과 물을 가득 실어야 하는 터라 기관차의 무게가 어마어마해질 수밖에 없었고, 덕분에 연비마저 무척 나빠서, 연료 공급을 자주 해야 한다는 점 등을 말이다.
그래서 철도국에서는 석탄과 석유라는 두 가지 연료를 함께 사용하는 번거로움을 감수하고 장거리 여객 운송을 위해 경유 기관차를 차세대 기관차로 선정한 것이고, 전생에서도 이러한 이유로 증기 기관차는 다른 기관차들의 경쟁에서 밀려 역사의 저편으로 사라졌다는 사실을 아는 정성국이 고개를 끄덕이며 제일 중요한 질문을 던졌다.
“그래? 그럼 이 녀석이 투입되면, 새남포에서 보스턴까지 이동하는 데 얼마나 걸려?”
이에 박기동이 씩 웃으며 대답했다.
“단순히 노선 길이만 가지고 계산한다면, 3일이 채 안 걸릴 겁니다.”
“이야...절반 이상을 단축한다고?!”
기존의 기차를 이용할 경우, 새남포에서 보스턴까지 이동하는 데 7일 정도가 걸렸다.
헌데 차세대 기관차로 바꾸면, 3일이 채 안 걸린다고 하니 정성국이 탄성을 지르자, 박기동은 정성국의 반응에 손가락으로 볼을 긁으며 슬쩍 덧붙였다.
“예. 다만, 이건 단순히 선로의 길이만 놓고 계산했을 때 걸리는 시간이고...현실적으로 새남포에서 보스턴까지 이동하는 데는 5일 정도가 걸릴 겁니다.”
이에 정성국은 나쁘지 않다는 표정을 지었다.
기존의 기차를 이용할 경우 새남포에서 보스턴까지 이동하는 데 7일 정도가 걸리지만, 이것도 특별 기차 같은 것을 편성해 연료 공급을 최우선으로 했을 때의 일이고, 실제로 새남포의 백성들이 보스턴까지 이동할 때는 그 이상의 시간이 소요되었으니, 현실적으로 두 지역을 이동하는 데 5일이 걸린다면, 시간을 많이 단축하는 셈이었으니까.
그리고 노선 자체가 빙 돌아가는 노선이었으니, 며칠씩 시간이 걸리는 것은 어쩔 수 없는 노릇이기도 했고.
하지만, 자주 연료를 공급받아야 하고, 연료를 공급받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리는 증기 기관차의 단점을 대부분 개선한 것이 경유 기관차인지라, 계산한 것처럼 이동 시간을 최대한 단축할 수 있을 것 같은데 그러지 못하는 것이 아쉬웠던 정성국이 중얼거렸다.
“흠. 새남포에서 보스턴까지 이동하는 데 5일이라면 충분히 빠른 편이기는 한데...역시 지체되는 것은 여객용 기차가 선로에서 항상 전속력으로 달릴 수 없기 때문이지?”
“그렇죠. 해안가에 있는 북미 주요 도시들이 모두 철도로 연결되면서, 기차를 이용한 육상 물류 운송이 더욱 활발해진 덕분에, 선로 태반이 포화상태라서요. 물론 선로 이용에 있어서 여객용 기차가 우선권을 지니고 있기는 한데...”
“그걸로는 한계가 있지. 쯧. 이럴 줄 알았으면 처음부터 복선이 아니라 복복선으로 선로를 깔았어야 했나.”
복복선은 복선 선로를 이중으로 놓아 4개의 선로를 설치한 것을 의미하는데, 북미왕국의 경우 역과 가까운 일부 구간에 복복선을 설치해 빠르게 이동해야 하는 여객용 기차를 먼저 선로를 이용할 수 있게끔 조치해두긴 했지만, 이런 조치만으로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었다.
그렇기에 정성국은 처음부터 복선이 아닌 복복선으로 선로를 깔았어야 했다고 후회하자, 박기동이 손을 내저었다.
“에이. 처음부터 복복선으로 선로를 깔았다면, 비용은 둘째치고 강철 부족 문제로 북미 동, 서해안 철도를 동시에 부설할 엄두도 못 냈을 겁니다. 아마 지금쯤 북미 동해안 철도를 부설하고, 북미 서해안 철도를 부설하겠다고 준비하고 있지 않을까 싶은데요?”
“하긴...”
확실히 처음 새나주에서 새진주까지 철도를 부설했을 때도 선로를 만들기 위한 강철을 마련하는 데 애를 먹었었고, 그 이후로도 추가로 북미 동, 서해안 철도를 부설했을 때도, 제철소 규모를 키워 더 많은 강철을 생산했음에도 초반에는 강철이 넉넉한 편은 아니었었던 만큼, 처음부터 복복선으로 선로를 깔았다면, 지금보다 철도 부설이 많이 늦어졌을 거라는 박기동의 말에도 일리가 있었다.
해서 정성국이 수긍하자 박기동이 덧붙였다.
“그리고 철도국 친구들의 말을 들어보면, 나중에 선로용량이 부족해질 때를 대비해, 기존의 선로 옆에 추가로 선로를 부설할 수 있도록 기반 공사를 어느 정도 해둔 상태라고 하니, 슬슬 모든 선로를 복복선화하면 될 것 같은데요?”
“어? 그게 정말이야?”
정성국이 처음부터 복복선으로 선로를 깔지 않은 것을 후회한 것은, 선로를 추가하려면 기초 공사부터 다시 해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인데, 철도국에서 미리 준비해두었다고 하니, 정성국은 눈을 크게 떴고.
그러한 정성국의 반응에 박기동이 기자들의 질문에 응답하고 있는 철도국장을 가리키며 말했다.
“예. 북미왕국이 계속해서 발전하면, 선로용량이 부족해질 것이 뻔해서, 처음 공사할 때, 나름대로 신경 써서 공사했다고 하더군요. 개발청 시절부터 말이지요.”
이에 정성국 역시 철도국장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휘유. 그거 다행이네. 그럼 기왕 철도국장도 만난 김에 이야기를 꺼내 봐야겠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