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조선을 탈출하라-839화 (839/850)

#839

보좌관이 오늘 일정을 에스파냐 대사에게 전달하기 위해, 집무실로 들어갔을 때, 에스파냐 대사는 팔짱을 끼고 심각한 얼굴로 무언가 깊게 생각에 잠겨 있었고.

이를 확인한 보좌관은 에스파냐 대사에게 다가가 조심스럽게 말을 걸었다.

“안색이 좋지 않으십니다. 대사님.”

이에 아침부터 전화를 받고, 생각이 많아져서 보좌관이 집무실에 언제 들어왔는지도 몰랐던 에스파냐 대사는 정신을 차리고 굳게 다물었던 입을 열었다.

“안색이 좋지 않다라...그럴 수밖에 없네. 방금 새진주의 공사관에서 전화가 왔었거든.”

다른 나라와는 달리, 에스파냐는 새진주에 공사관을 두었고, 본국과 누에바 에스파냐의 연락망 역시 새진주의 공사관에서 담당하고 있었다.

누에바 에스파냐에서 직접 범선을 통해 에스파냐 본국에 소식을 보내는 것보다, 새진주의 공사관에 소식을 전달하고, 새진주의 공사관에서 에스파냐로 향하는 북미왕국의 선박편을 통해 본국으로 연락하는 것이 훨씬 빠르게 소식을 전달할 수 있기에 에스파냐는 북미왕국과 교류한 초창기부터 이러한 방식을 채택했고.

그러다가 북미왕국에서 비행기를 이용해 유럽까지 연락망을 구축한 이후, 북미왕국의 배려로 이 항공 연락망을 이용할 수 있게 되면서 더욱 빠르게 본국에 소식을 전달할 수 있게 되었으니, 누에바 에스파냐는 본국으로 전달할 소식들을 항상 새진주의 공사관을 보냈다.

그러니 새진주의 공사관에서 전화가 왔다는 뜻은, 누에바 에스파냐에서 소식을 전해왔다는 소리였기에, 보좌관은 에스파냐 대사의 대답에 급히 질문을 던졌다.

“새진주의 공사관에서요? 허면...”

“그래. 신문 내용이 사실이라더군.”

에스파냐 대사는 보좌관이 무슨 질문을 할지 안다는 듯, 그가 질문을 던지기도 전에 어두운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이렇게 대답했고.

이에 보좌관은 믿기 어렵다는 표정으로 탄식했다.

“허. 정말 중부 토벌군이 반란군들에게 패배했다는 말씀입니까?”

누에바 에스파냐에서 반란이 발생한 이후, 북미왕국의 신문들은 마침내 누에바 에스파냐인들이 에스파냐의 압제에 대항해 혁명을 일으켰다는 내용의 기사를 내보냈고, 이에 에스파냐 대사와 보좌관은 혁명이라는 단어를 사용한 것에 분노하며, 신문사들에게 항의했지만, 신문사들은 에스파냐 대사관의 항의를 무시했다.

북미왕국인들이 에스파냐가 아닌 누에바 에스파냐 원주민들에 감정을 이입하고 있는 만큼, 반란이라는 단어보다는 혁명이라는 단어를 쓰는 것이 신문 판매에 도움이 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으니 말이다.

해서 에스파냐 대사나 보좌관은 이런 신문사들의 행태에 격하게 분노했지만, 어쩔 방도가 없었다.

항의의 표시로 몇몇 신문사에 내보내고 있는 광고를 끊는 것을 고려했지만, 그렇기 에스파냐에서 광고를 끊어봐야 이미 광고를 실으려는 광고주들이 즐비한 만큼, 신문사 입장에서는 별다른 피해가 없었으니 말이다.

오히려 광고를 끊었다가 그 자리에 멕시코인 연합회의 모금 광고가 다시 들어가면, 에스파냐 대사관으로서는 낭패였으니.

해서 이들이 취한 행동은 그저 몇몇 신문사를 통해 내보내던 에스파냐의 입장을 대변하는 1면 광고의 내용을, 반란을 일으킨 누에바 에스파냐인들이 멕시코 북서부 지역에 사는 에스파냐인들을 공격해 무자비하게 살해하고, 에스파냐인들의 재산을 갈취하는 범죄자들에 불과하다는 식의, 누에바 에스파냐 반란군을 비난하는 내용으로 바꾼 것이 전부였다.

그렇기에 에스파냐 대사나 보좌관은 신문을 읽어봐야 머리에 열이 오를 뿐이라, 이전과는 달리 신문을 쳐다도 보지 않았다.

다만 며칠 전, 여러 신문의 1면에 누에바 에스파냐의 혁명군이 식민지 정부의 토벌군을 상대로 대승을 거두었다는 내용의 기사가 앞다투어 실리자, 에스파냐 대사와 보좌관은 외면했던 신문을 다시 읽을 수밖에 없었고, 아무리 북미왕국 신문사들의 정보망이 빠르다 해도, 자신들도 파악하지 못한 누에바 에스파냐의 정보를 먼저 아는 것이 과연 가능하겠느냐는 생각에, 그리고 반란군 따위가 제대로 훈련받은 에스파냐군을 무슨 수로 상대하겠느냐는 생각에, 신문사들이 의도적으로 이런 거짓 기사를 내보냈다고 여겼다.

헌데, 누에바 에스파냐의 소식을 전달받은 에스파냐 대사가 신문 기사의 내용이 사실이라고 이야기하니, 보좌관은 믿을 수 없다는 듯 눈을 부릅떴고.

그러한 보좌관의 반응에 에스파냐 대사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그렇네. 중부 토벌군과의 연락이 끊겨서 정찰병을 통해 확인해본 결과, 중부 토벌군이 반란군에 의해 완전히 전멸했다고 하네. 그래서 상황 파악이 늦어진 모양이고.”

“전멸이요?! 맙소사...대체 어쩌다가...”

중부 토벌군이 반란군들 따위에게 그냥 패배한 것도 아니고, 전멸했다는 에스파냐 대사의 말에 보좌관은 다시 한번 깊은 탄식을 토해냈고.

에스파냐 대사 역시 처음 새진주의 공사에게 이 이야기를 들었을 때는, 도저히 믿기지 않아 몇 번이고 되물었었기에, 보좌관의 반응에 쓰게 웃으며 덧붙여 말했다.

“중부 토벌군의 지휘관이 반란군의 전력을 너무 무시했다 벌어진 참사라더군. 무장이 빈약한 반란군을 손쉽게 격파할 수 있을 거라고 여긴 모양인데, 반란군들의 무장이 생각보다 충실했고, 이 때문에 전멸한 모양이야.”

“반란군들의 무장이 충실했다고요?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를...아! 설마?”

“그래. 멕시코인 연합회가 반란군들에게 군수 물자를 지원해준 거겠지.”

“아니. 그래도 멕시코인 연합회가 구할 수 있는 무기라고 해봐야 철제 무기가 전부일 텐데, 토벌군이 고작 철제 무기로 무장한 반란군을 상대하지 못한다는 것은 조금...”

보좌관의 대답에 에스파냐 대사가 고개를 저었다.

“멕시코인 연합회가 반란군들에게 넘긴 무기들 가운데는 머스킷과 화약도 있다고 하더군.”

“예?! 그럴 리가요. 북미왕국에서 머스킷이나 화약을 구할 방법이 없을 텐데요?”

에스파냐 대사의 말에 보좌관이 펄쩍 뛰었다.

물론 에스파냐 대사나 보좌관은 멕시코인 연합회가 모금한 금액이 군수 물자로 바뀌어 누에바 에스파냐의 반란 세력으로 흘러 들어가는 것을 경계하긴 했다.

다만, 북미왕국 내에서 신식 소총을 제외한 화약 무기를 구하기는 어려웠고, 북미왕국 역시 민간에서 판매되는 신식 소총이 북미왕국 밖으로 유출되는 것을 엄격히 금지하고 있었으며, 외무청에서는 신식 소총이 누에바 에스파냐로 흘러 들어가는 것을 용인할 생각이 없다고 확답해주었기에, 에스파냐 대사나 보좌관은 조금 마음을 놓고 있었고.

헌데 누에바 에스파냐 반란군들이 머스킷과 화약을 확보했다고 하니, 그리고 이 머스킷과 화약이 결국 멕시코인 연합회가 구해 넘긴 것으로 추측되는데, 북미왕국에서는 이를 구할 방법이 없다는 것을 보좌관도 잘 알고 있었기에 에스파냐 대사의 말에 펄쩍 뛰었다가, 한 가지 방법이 생각난 듯 표정을 찌푸리며 말했다.

“설마 북미 동해안 지역에서 구한 걸까요?”

북미왕국에서 유일하게 머스킷을 구할 수 있는 곳이 바로 북미 동해안 지역이었다.

잉글랜드 식민지 시절에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머스킷을 산 주민들이, 그대로 남아 북미왕국의 백성이 되면서, 북미왕국에서 유일하게 머스킷을 보유하게 되었고.

머스킷의 경우 발사하는 데 시간이 걸리는 만큼, 사고가 발생하거나 범죄에 사용될 가능성이 적다는 판단에 북미왕국에서는 신식 소총처럼 철저하게 관리하지는 않았다.

해서 신식 소총과는 달리, 머스킷의 경우 민간에서 종종 거래되기도 했었고, 북미왕국에서 오래 머물렀기에 이러한 사실을 알고 있는 보좌관이 혹시나 하는 표정으로 묻자, 에스파냐 대사가 고개를 저었다.

“식민지 정부에서 확인한 바론, 못해도 2천 자루 이상이라고 하니 멕시코인 연합회가 북미 동해안 지역에서 머스킷을 보유한 이들에게 사들인 것은 아닐 걸세. 아마 유럽 상인들을 통해 구한 것이 아닐까 싶은데...”

확실한 것은 아니라 에스파냐 대사가 말을 흐리자, 보좌관이 미심쩍은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음. 아무리 유럽 상인들이라 하더라도, 머스킷을 대량으로 확보하기가 쉽지는 않을 텐데요.”

“그래도 최근 유럽에 평화가 찾아오면서, 머스킷 수요가 줄어들었으니 가능성은 있지. 거기에, 우리 에스파냐를 흔들 절호의 기회라고 여긴 타국이 적극적으로 개입했을 수도 있고.”

에스파냐 대사의 말이 일리가 있다고 여긴 보좌관이 표정을 찌푸리며 생각에 잠겼다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음...프랑스나 잉글랜드가 개입한 걸까요?”

유럽에는 여러 나라가 있었지만, 이번 일에 적극적으로 개입할만한 국력을 지닌 나라는 기껏해야 잉글랜드나 프랑스뿐이었기에 보좌관이 두 나라를 언급하자, 에스파냐 대사가 대답했다.

“확실한 것은 아니지만, 그럴 가능성이 있겠지. 해서 두 대사와 약속을 잡아야 할 것 같네.”

에스파냐 대사의 의도를 파악한 보좌관이 회의적인 표정으로 대꾸했다.

“두 대사와 만나 멕시코인 연합회와 거래하지 말아 달라고 요청하실 생각이십니까? 하지만...”

어렵지 않겠느냐는 시선을 보내며 말을 흐리는 보좌관을 보고 에스파냐 대사가 어깨를 으쓱했다.

“나도 아네. 우리의 요청을 들어줄 리가 없다는 것은. 다만, 이를 통해 어느 나라가 멕시코인 연합회를 통해 반란군들을 지원하는지는 파악해야 하지 않겠나.”

“하긴...”

“그리고 누에바 에스파냐에서는 본국에 지원을 다시 요청하면서, 동시에 페루 부왕령과 쿠바 총독부에 지원을 요청했다고 하는데, 그곳에서 누에바 에스파냐에 지원해줄 병력이 얼마나 되겠는가.”

페루 부왕령의 경우, 그 크기에 비해 보유 병력은 무척 적었다.

유럽의 배들이 드나드는 대서양과는 달리, 태평양에서 활동하는 유럽의 배는 거의 없었으니, 에스파냐 입장에서는 페루 부왕령에 대규모 병력을 배치할 이유가 없었던 것이다.

그러다 보니, 에스파냐의 돈줄인 포토시 은광이라던가, 일부 지역에 최소한의 병력을 배치해둔 상황이라, 누에바 에스파냐에서 지원을 요청했다고 한들, 제대로 도움을 주기 힘든 상황이었고.

쿠바 총독부의 경우는 다른 나라들이 쿠바 섬을 무척 탐내고 있었기에, 이를 대비해 충분한 병력이 배치되어 있었지만, 문제는 그렇기에 쿠바 섬에 배치된 병력을 빼기가 힘들었다.

잘못하면 타국이 쿠바 섬을 점령하겠다고 덤벼댈 수도 있으니 말이다.

물론 쿠바 섬의 위치를 생각하면, 북미왕국에서 쿠바 섬을 두고 전쟁이 벌어지는 것을 용납하지 않을 거라고 생각하기는 하는데, 최근 누에바 에스파냐 문제로 북미왕국과 에스파냐 관계가 무척 경색되어 있었기에, 이를 장담할 수 없었고.

그러니 쿠바 총독부에서도 대규모 병력을 누에바 에스파냐에 파견하기는 어렵다는 것을 보좌관도 잘 알고 있었기에, 에스파냐 대사의 말에 수긍하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기야 하지요.”

“그런 만큼 에스파냐 본국에서 지원군을 보내주기 전까지는, 반란군 토벌은커녕 반란군들의 확장을 막기도 쉽지 않을 텐데, 멕시코인 연합회에서 반란군들에게 더 많은 지원을 해준다면 누에바 에스파냐가 정말 위험해질 수도 있어. 그러니 두 대사와 만나 멕시코인 연합회와 거래하지 말아 달라고 강하게 요청함으로써, 두 나라를 조금이나마 위축시킬 필요가 있고.”

새진주 공사가 전해준 이야기에 따르면, 멕시코인 연합회는 무려 2천 자루의 머스킷과, 6천 명의 머스킷병이 풍족하게 화약을 사용할 정도의 대규모 화약을 누에바 에스파냐 반란군에 넘겨주었다고 했다.

헌데 머스킷의 수도 그렇지만, 그 정도 대규모 화약을 일개 상인이 구해 멕시코인 연합회에 넘겨준다?

그건 절대 불가능했다.

그러니 에스파냐 대사는 분명 멕시코인 연합회와 거래하며 머스킷과 화약을 대주는 유럽 상인 뒤에는 타국이 있을 거라고 확신했고.

그런 만큼 멕시코인 연합회를 뒤에서 지원해주는 것으로 짐작되는 잉글랜드나, 프랑스의 대사 역시 이에 관련된 사항을 보고받았으리라.

그렇기에 에스파냐 대사는 직접 만나 이를 언급하면서, 대사들의 반응을 확인해 두 나라 가운데 어느 나라가 이번 일에 개입했는지를 확인하고, 또, 강하게 압박해 이들이 에스파냐를 의식해 조금이나마 거래가 지연된다면, 그것만으로 충분하다고 여겨 이를 이야기하자, 보좌관이 에스파냐 대사의 뜻을 이해하고 자리에서 일어나며 대답했다.

“알겠습니다. 허면 바로 두 대사관에 연락해 약속을 잡도록 하겠습니다.”

이에 에스파냐 대사가 고개를 끄덕이다가, 집무실을 나가려는 보좌관에게 덧붙여 말했다.

“아. 그리고...그 뒤에 외무청에 연락해서 조용한 곰과의 약속도 잡아주게. 물론, 멕시코인 연합회를 제재해달라고 요청해봐야 못 들은 척하겠지만, 그렇다고 해도 손을 아예 놓을 수는 없으니 말일세.”

“...알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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