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37
누에바 에스파냐의 부왕인 멜키오르 부왕은 멕시코시티에 주둔하고 있던 병력 중 상당수를 중부 토벌군으로 편성하고, 중부 토벌군의 사령관인 호르헤에게 1차로 과나후아토를 점령하라는 명령을 내린 이후, 아카풀코에서 해안가를 따라 북진하면서 반란군들을 토벌할 서부 토벌군의 편성에 공을 들이고 있었다.
그리고 서부 토벌군의 편성이 어느 정도 마무리되어, 슬슬 아카풀코로 서부 토벌군을 파견해 서해안의 항구들을 점거하고 있는 반란군들을 토벌해야겠다고 생각했을 때쯤, 중부 토벌군과의 연락이 끊겼다.
3일에 한 번꼴로 멕시코시티에 도착하던 중부 토벌군의 전령이 도착하지 않은 것이다.
다만, 처음 연락이 끊겼을 때만 해도, 멜키오르 부왕이나 식민지 정부의 관리들은 이를 심각하게 받아들이지는 않았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물론 반란군들의 기세가 꽤나 매섭기는 한데, 기세만으로 모든 것을 해결할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그리고 반란군들은 제대로 된 전투를 치른 경험도 없었고, 무장 상태도 빈약했기에, 제대로 군사 훈련을 받고 무장도 충실하게 갖춘 중부 토벌군을 상대할 수는 없다고 확신한 것이다.
해서 처음에만 하더라도 멜키오르 부왕이나 식민지 정부의 관리들은 중부 토벌군의 전령이 멕시코시티로 이동하다 사고를 당한 것으로 짐작했다.
특히, 중부 토벌군은 기병을 아끼기 위해, 전령을 홀로 보냈으니 불의의 사고가 일어난다면, 연락이 끊길 수밖에 없으니까.
그러나 이러한 식민지 정부의 분위기는, 시간이 흐를수록 바뀌었고.
연락이 끊긴 지 10일이 흘렀을 때, 멜키오르 부왕은 자세한 상황을 파악하기 위해 과나후아토 방면으로 정찰병들을 파견했고, 동시에 아카풀코로 출발할 예정이던 서부 토벌군의 이동 계획을 철회했다.
물론 멜키오르 부왕은 이때 까지만 해도 중부 토벌군이 반란군에 전멸했다고 생각하기보다는, 반란군의 쪽수에 밀려 전령을 보내지 못할 정도로 치열한 전투를 벌이고 있지 않을까 싶었고, 이 때문에 정찰병의 보고에 따라 서부 토벌군을 지원군으로 보낼 생각이었고 말이다.
헌데, 과나후아토 방면으로 파견했던 정찰병 중 한 명이 복귀해 과나후아토 인근 지역에서 대규모 전투가 벌어진 흔적이 발견되었다고 보고하자 무언가 일이 잘못되었음을 직감했다.
그리고 이후 과나후아토 방면으로 파견했던 정찰병 중 대부분이 복귀해 자신들이 관찰한 내용을 상부에 보고했고, 이 보고들을 종합해본 결과 중부 토벌군은 반란군에 의해 전멸한 것으로 보인다는 결론이 내려지자, 보좌관은 이를 급히 멜키오르 부왕에게 보고했고.
처음에는 묵묵히 보좌관의 보고를 듣던 멜키오르 부왕은 보좌관의 말이 끝나자 기가 찬다는 얼굴로 되물었다.
“하. 그게 사실인가?”
“그렇습니다. 부왕 전하.”
보좌관이 어두운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자, 멜키오르 부왕은 도저히 믿기지 않는다는 듯 다시 한번 확인했다.
“...정말로 중부 토벌군이 고작 반란군들 따위에게 패배했다는 말인가? 그것도 단 한 번의 전투로 중부 토벌군 전원이 사망하거나 항복해서 우리에게 제대로 소식조차 전달하지 못할 정도로 처참하게 패배했다고?”
멜키오르 부왕은 전임인 누에바 에스파냐 부왕과는 달리 조금 다혈질이었고, 이 때문에 보좌관은 멜키오르 부왕이 버럭 화를 낼 거라 여겨, 멜키오르 부왕의 분노를 조금이라도 피하고자 면목 없다는 듯 고개를 숙였고.
그러나 바로 고함 소리가 날아올 거라는 예상과는 달리 깊은 한숨 소리가 들려왔기에 보좌관이 고개를 들자 멜키오르 부왕은 허탈하다는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하아. 너무 어이가 없어서 화도 나질 않는군. 아니. 호르헤 이 멍청한 자식은 대체 어떻게 병력을 지휘했길래, 기껏해야 농기구로 무장한 반란군 따위에게 이렇게 대패한 거지?”
호르헤를 중부 토벌군의 사령관으로 임명한 것은 결국 멜키오르 부왕 본인이었기에, 멜키오르 부왕은 자책하는 얼굴로 호르헤의 무능함을 탓하자, 보좌관이 그런 멜키오르 부왕을 위로하기 위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음...정찰병들의 보고에 따르면, 반란군의 무장이 대단히 충실했다고 합니다.”
“반란군들의 무장이 충실했다고?”
“예. 단순히 농기구만 들고 있을 거라는 예측과는 달리, 반란군 중 대다수가 머스킷과 창, 칼, 활로 무장하고 있다더군요.”
“아. 그야 그렇겠지. 중부 토벌군의 장비를 노획했을 테니.”
보좌관의 말에 멜키오르 부왕은 당연한 것 아니냐는 얼굴로 대꾸했고.
이에 보좌관이 진지한 얼굴로 멜키오르 부왕을 바라보며 말했다.
“그게 아닌 것 같습니다. 일단 중부 토벌군의 무장은 머스킷과 근접전을 대비한 총검이 전부입니다. 그 외에는 기병들이 쓰는 기병도가 전부이지요. 헌데 과나후아토를 방어하는 반란군들은 창으로 무장했다고 합니다.”
“그야 총검에 나무를 연결해 창으로 만든 것 아니겠는가.”
“정찰병이 망원경을 이용해 확인해본 결과, 창날은 우리 에스파냐의 총검이 아니라고 했습니다.”
“으음...”
보좌관의 이야기에 멜키오르 부왕은 생각이 많은 얼굴로 신음을 흘렸고.
이런 멜키오르 부왕의 반응에 보좌관이 덧붙여 말했다.
“거기에 반란군들의 무기가 전부 중부 토벌군의 무기를 노획했다고 하기에는 그 수가 너무 많습니다.”
“수가 많다고?”
“예. 과나후아토 인근 요새를 포위하고 있는 반란군 2만여 명 전부가 머스킷, 창, 칼, 활로 무장했다고 보고했는데, 이는 반란군이 중부 토벌군의 무기를 전부 노획했다 하더라도 불가능한 수치입니다.”
보좌관의 말에 멜키오르 부왕은 그건 그렇다는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며 중얼거렸다.
“...확실히 이상하긴 하군. 물론 과나후아토 인근에 철광산도 있긴 하지만, 철광석을 캐낸다 하더라도 이를 가공할 인력이 반란군에는 없을 텐데?”
멜키오르 부왕의 중얼거림에 보좌관은 처음 정찰병들에게 보고를 듣고 가장 놀랐었던 내용을 멜키오르 부왕에게 전했다.
“그렇습니다. 거기에 머스킷으로 무장한 반란군들은 한 곳에 모여 있어 그 수를 파악해보니, 6천 명이 넘었다고 합니다.”
“뭐?! 6천 명?”
멜키오르 부왕이 놀란 표정으로 보좌관을 바라보자, 보좌관이 바로 대답했다.
“예. 명백히 중부 토벌군이 보유한 머스킷의 숫자보다 많지요. 그리고 머스킷으로 무장한 반란군들은 사격 훈련까지 진행했다고 합니다. 단순히 동작만 훈련하는 것이 아니라 화약을 사용해서 말입니다.”
“허. 반란군이 사격 훈련에 화약을 소모한다고?”
훈련을 위해 화약을 소모하는 것은 에스파냐도 쉽게 하지는 못했다.
헌데 물자가 부족할 수밖에 없는 반란군이 사격 훈련을 위해 화약을 소모했다고 하니, 멜키오르 부왕은 어처구니가 없다는 표정을 지었고.
“정찰병들이 과나후아토를 관찰한 3일 동안, 반란군들은 2차례의 사격 훈련을 진행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반란군들이 머스킷을 다루는 솜씨가 꽤나 익숙해 보였다고 하니, 이전에도 사격 훈련을 진행했던 것 같고요.”
이에 멜키오르 부왕은 머릿속으로 중부 토벌군을 편성하면서 보급해주었던 물자들의 양을 떠올려보고, 곧 심각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중부 토벌군이 화약을 많이 챙겨가긴 했지만, 그렇다고 해도 6천 명에 달하는 병력이 화약을 풍족하게 쓸 정도는 아니지 않나?”
멜키오르 부왕의 지적에 보좌관 역시 심각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멜키오르 부왕은 차마 하지 못했던 말을 꺼냈다.
“그렇지요. 그러니 반란군들은 중부 토벌군에 노획한 물자 말고도, 충분한 양의 화약을 보유하고 있다는 소리고, 반란군들이 자체적으로 화약을 생산할 리는 없으니, 누군가가 반란군들에게 화약을 넘겨 주었다는 뜻이지요. 그리고, 그 누군가가 화약뿐만 아니라 머스킷과 철제 무기들도 넘겨 주었을 테고요.”
이에 멜키오르 부왕은 깊은 한숨을 내쉬며 탁자 위의 찻잔을 들어 보고를 받는 동안 미지근해진 커피를 한 모금 마셔 마른 목을 축인 후, 꽤나 껄끄럽다는 얼굴로 말했다.
“...반란군을 지원하는 누군가는 역시 예전에 새한성에 주재하는 에스파냐 대사가 이야기한 멕시코인 연합회겠지?”
멜키오르 부왕 역시 북미왕국이 돌아가는 사정을 확인하기 위해 매일 아침 북미신문을 읽었을뿐더러, 에스파냐 대사가 예전에 이에 대해 경고한 적이 있기에, 멕시코인 연합회를 지목하자, 보좌관 역시 같은 생각이라는 듯한 얼굴로 대답했다.
“그럴 겁니다. 다만, 조금 놀랍기는 하군요. 정찰병들의 보고를 종합해보면, 멕시코인 연합회는 철제 무기 1만 개 내외, 머스킷 2천 자루 내외, 그리고 대량의 화약을 구해 반란군들에게 넘겨주었다는 소린데...”
정찰병들의 보고를 종합해보니 대충 견적이 나왔기에, 그리고 보좌관은 1만 2천 명에 달하는 병력을 무장하는 데 들어가는 비용을 대략 짐작할 수 있었기에, 멕시코인 연합회의 능력에 새삼 놀랍다는 표정으로 말을 흐리자, 멜키오르 부왕 역시 같은 생각인지 고개를 끄덕이며 그 말을 받았다.
“확실히 놀랍기는 하군. 뭐 북미신문을 비롯해 북미왕국의 신문들에 모금 광고가 실렸으니, 돈이 썩어 넘치고 오지랖이 넓은 북미왕국인들이라면 너도나도 멕시코인 연합회에 기부했을 테고, 그러니 재력은 이해가 가는데, 이렇게 신속하게 물자를 구매하고 반란군들에게 넘길 수 있을 줄은 몰랐어.”
“그렇습니다. 특히, 철제 무기라면 북미왕국에서도 쉽게 구할 수 있지만, 머스킷이나 머스킷에 사용할 화약을 구하는 것은 어렵잖습니까.”
북미왕국에서 민간에 총기를 허용하고 있기는 하지만, 신식 소총과 신식 소총에 맞는 총알을 판매할 뿐이었지, 화약 그 자체를 판매하지는 않았다.
그리고 신식 소총의 총알에 들어가는 화약은 그 위력이 높아, 머스킷에 함부로 사용하기도 어렵다고 알려져 있었을뿐더러, 민간에서는 이 총알을 대규모로 구매할 수도 없었다.
그러니 보좌관은 멕시코인 연합회의 능력에 놀라움과 경계를 감추지 못했고.
이에 멜키오르 부왕은 뻔한 것 아니냐는 표정으로 말했다.
“누에바 에스파냐가 혼란해지면, 에스파냐가 흔들린다는 것을 잘 아는 프랑스나 잉글랜드가 판매했겠지. 빌어먹을 놈들.”
지금 유럽의 분위기는 예전과는 다르게 평화로웠다.
유럽 국가들은 북미왕국의 기술 발전을 어떻게든 따라잡기 위해 기술 발전에 투자하고, 북미왕국의 제도를 본받아 자국을 개혁하고 있었으니까.
다만, 유럽 국가들이 북미왕국의 기술 발전을 따라잡으려는 것은, 결국 자국의 국력을 키워 주변국을 제압하기 위함이었으니, 에스파냐를 흔들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놓칠 다른 유럽 국가들이 아니었고.
보좌관 역시 이러한 사실을 짐작했기에, 멜키오르 부왕의 말에 쓰게 웃으며 말했다.
“그렇겠지요. 그리고 이번 일을 새한성에 주재하는 에스파냐 대사에게 알려, 프랑스나 잉글랜드에 멕시코인 연합회와 거래하지 말아 달라고 요청한다 해도...”
“그놈들이 그걸 들어주겠나. 모른 척하겠지. 젠장.”
“허면 반란군들을 상대하기가 어려워질 겁니다. 가뜩이나 중부 토벌군이 이탈한 상황이라 이곳 멕시코시티의 방어부터 신경 써야 하니까요.”
중부 토벌군은 멕시코시티의 방어 병력을 떼서 편성한 병력이었다.
식민지 정부의 바람처럼 중부 토벌군이 과나후아토를 점령하고, 이곳을 거점으로 주변 지역을 평정한다면야, 멕시코시티의 방어는 크게 신경 쓸 필요 없지만, 오히려 중부 토벌군이 사라지고 멕시코인 연합회의 지원으로 무장이 충실해진 반란군들이 과나후아토에 웅크리고 있다면, 과나후아토와 가까운 멕시코시티 역시 더는 안전하지 않았고.
그러니 이곳의 방어를 신경 써야 한다는 보좌관의 말에 멜키오르 부왕은 고개를 끄덕이며 대꾸했다.
“그래야지. 일단 서부 토벌군을 해체해 멕시코시티 방어 병력으로 편성하면, 혹여 과나후아토의 반란군들이 멕시코시티로 몰려오더라도 충분히 막아낼 수 있을 거야. 문제는 그렇게 되면 반란군들의 기세가 더욱 오를 테고, 반란은 장기화될 거라는 점인데...아직 본국에서 새로운 연락은 없지?”
“예. 지원 요청에 알겠다고 연락한 이후, 구체적으로 어떻게 지원해주겠다는 것은 아직...”
보좌관의 대답에 멜키오르 부왕은 답답하다는 듯 한숨을 내쉬었다.
전임이었던 안토니오 부왕이 누에바 에스파냐의 병력을 축소시켰기에, 현 상황에서 본국의 지원이 없다면 반란군들을 토벌하기가 거의 불가능한 만큼, 하루라도 빨리 본국에서 지원군을 보내줘야 할 텐데, 본국에서 늑장 부리고 있으니 멜키오르 부왕 입장에서는 답답할 수밖에.
해서 멜키오르 부왕이 말했다.
“일단 새진주에 있는 공사관에 연락해서, 다시 한번 본국에 현 상황을 알리고 지원 요청을 하도록 하게.”
“알겠습니다.”
“그리고, 페루 부왕령과 쿠바 총독부에도 지원 요청을 하도록 하게.”
“...알겠습니다. 부왕 전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