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조선을 탈출하라-836화 (836/850)

#836

정보원을 통해 이번 전투의 결과를 슬쩍 흘려, 멕시코 동남부 지역을 제대로 흔들어 보겠다는 음흉한 여우의 말에 한참 웃은 정성국은 들고 있던 보고서를 탁자 위에 올려놓으며 음흉한 여우에게 말했다.

“그래. 누에바 에스파냐 전역에 이번 일을 알리는 것은 정보국에서 알아서 진행하도록 하고...그보다 토벌군은 화약 무기로 무장했을 것 아닌가? 그럼 토벌군을 포위해 섬멸했으니, 토벌군의 무기나 군수 물자들도 노획했을 테지?”

식민지 정부의 토벌군은 포위되었다는 사실을 깨닫자 이대로는 위험하다는 생각에 어떻게든 포위망을 뚫기 위해 혼란에 빠진 토벌군을 추스른 후, 기병을 앞세워 그나마 병력이 적어 돌파할 수 있을 것 같은 후방으로 돌격했다.

다만, 토벌군의 예상과는 다르게 후방의 병력 중 일부는 머스킷으로 무장하고 있었고, 덕분에 500명의 기병은 후방의 진형을 돌파하지 못하고 전멸했고.

믿었던 기병이 제 역할을 하지 못하고 전멸하는 광경에 토벌군은 동요했지만, 그렇다고 돌격을 멈추진 않았다.

머뭇거렸다가는 자신들을 추격하는 혁명군에 뒷덜미를 잡힐 테니 말이다.

그리고 상황이 안 좋다고 항복하기에는, 에스파냐인들의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았고.

에스파냐군은 순수 에스파냐인으로 구성되어 있다 보니, 누에바 에스파냐 원주민들을 깔보고 무시하는 경향이 있었기에.

해서 토벌군은 퇴각로를 막고 있는 이서빈이 지휘하는 과달라하라 혁명군과 이들을 보호하기 위해 철제 무기로 무장한 과나후아토 혁명 세력의 병사들에게 그대로 돌격했고.

그렇게 한쪽은 진형을 돌파하려 하고, 한쪽은 어떻게든 이를 막으려고 애를 쓰는 사이, 토벌군을 추격하던 과나후아토 혁명 세력의 병력이 토벌군의 후미를 공격하면서 토벌군의 숫자는 빠르게 줄어들었고, 결국 토벌군의 수가 500명 정도에 도달했을 때, 남은 이들이 무기를 버리고 항복하면서 전투가 끝났다.

그러니 이런 격렬한 전투를 치를 만큼, 무기가 어느 정도 파손이 되었다 하더라도, 상당히 많은 무기와 군수 물자를 노획했을 것 같은데, 정성국이 확인한 보고서에는 이번 전투가 어떻게 흘러갔는지에 대한 내용만 상세히 적혀 있었지, 전후처리에 관련된 내용은 없었기에 정성국이 질문을 던지자, 음흉한 여우가 보고서 더미에서 한 보고서를 찾아 정성국에게 건네며 대답했다.

“그렇습니다. 이 보고서에 적혀 있기를, 약 3500자루의 머스킷을 노획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해서, 이 머스킷의 소유권을 놓고 과달라하라 혁명군과 과나후아토 혁명 세력이 약간의 신경전을 벌인 모양이고요.”

이에 정성국은 음흉한 여우가 건네준 보고서를 받아들면서 고개를 갸웃했다.

“신경전? 굳이 그럴 필요가 있나? 어차피 과달라하라 혁명군은 우리의 지원을 받으니 노획한 머스킷은 모두 과나후아토 혁명 세력에 넘겨도 상관없을 것 같은데...”

원래 정성국은 지원 물자를 현재 혁명 세력이 장악하고 있는 멕시코 북서부 지역 전역에 적당히 나누어서 뿌릴 생각이었다.

다만, 음흉한 여우는 이런 정성국의 생각에 반대 의사를 밝혔고.

누에바 에스파냐에 배치된 에스파냐군도 그렇고, 북미왕국의 지원으로 혁명 세력이 결국 식민지 정부의 토벌을 막아내면, 분명 에스파냐 본국에서도 추가로 지원군을 파견할 텐데, 이들을 상대하려면 지휘권이 나뉘어서는 절대 안 된다고 주장한 것이다.

그리고 누에바 에스파냐에서 에스파냐 세력을 몰아낸 이후를 생각하면, 자신들과 인연이 있는 디에고가 혁명 세력 전체의 지도자가 되는 것이 북미왕국 입장에서는 나았기에, 디에고의 과달라하라 혁명 조직이 다른 지역의 혁명 세력들 사이에서 두각을 드러내고, 주도권을 잡을 수 있도록 최소한 머스킷만큼은 과달라하라 혁명 조직에 집중적으로 넘기자고 주장했다.

이에 정성국은 음흉한 여우의 말대로 했다간 멕시코 혁명 연합이 아니라, 멕시코 왕국이 탄생할 것 같아 썩 내키지는 않았지만, 비공식적으로 혁명 세력을 지원할 수밖에 없는 만큼, 이들이 자체적으로 에스파냐군을 물리쳐야 하는데, 지휘권이 분산되면 곤란하다는 음흉한 여우의 지적에는 일리가 있었기에 결국 이를 허락했고.

그러니 북미왕국에서 앞으로 보낼 머스킷을 생각하면, 이번에 노획한 머스킷은 그냥 과나후아토 혁명 세력에게 넘겨도 크게 상관이 없지 않으냐고 정성국이 중얼거리자, 음흉한 여우가 이서빈의 행동을 변호했다.

“물론 그렇기야 합니다만, 다른 군수 물자는 몰라도 머스킷의 경우는 잉글랜드 상인에게 구매해야 하는 터라, 추가 지원에 시간이 걸리지 않습니까.”

음흉한 여우의 말에 정성국이 수긍하듯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아. 그래서 일단 머스킷으로 무장한 병력을 늘리기 위해 노획한 머스킷에 욕심을 낸 건가?”

“그렇습니다. 더불어 현재 이서빈이 지휘하는 머스킷으로 무장한 과달라하라 혁명군이 3천 명인데, 노획한 머스킷은 그보다 많잖습니까. 그러니 이를 과나후아토 혁명 세력에게 넘기면, 이들 역시 머스킷으로 무장한 3500명의 병력이 생기는 셈이고, 그럼 자신의 발언력이 약해지지는 않을까 걱정해서 개입한 모양입니다.”

이에 정성국은 묘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발언력이 약해진다? 흠. 이번의 승리에 가장 큰 지분은 이서빈의 전술 덕분이니만큼, 설사 과나후아토 혁명 세력이 머스킷으로 무장한 병력을 확보하더라도, 이서빈의 발언력에는 크게 영향이 없어야 정상일 텐데...그런 걱정을 하는 것을 보니 조금 복잡한 모양이구만?”

이서빈이 작성한 보고서를 면밀히 살펴본 결과, 이번 승리는 전술의 승리였고, 그런 만큼, 이 전술을 구상한 이서빈의 발언력이 과나후아토 혁명 세력 내에서 커지는 것이 정상이었다.

헌데, 이서빈은 자신의 발언력이 약해지지 않을까 걱정해서 과나후아토 혁명 세력과 머스킷의 분배 문제로 신경전을 벌였다고 하니, 정성국으로서는 이서빈의 행동이 의미심장해 보였고.

이에 음흉한 여우가 쓰게 웃으며 대답했다.

“약간 그런 것 같습니다. 토벌군을 상대로 큰 피해 없이 승리를 거둘 수 있었던 것은 전하의 말씀대로 이서빈의 지분이 큰데, 과나후아토 혁명 세력 지휘부의 생각은 조금 다른 모양이라서 말입니다.”

“다르다면?”

“분명 이번 승리에 이서빈의 지분이 있기는 하지만, 그보다는 토벌군보다 더 많은 병력을 동원하고, 용맹하게 싸운 자신들의 지분이 크다고 생각하는 모양입니다. 그러니 당당하게 노획한 머스킷을 요구한 거구요.”

음흉한 여우의 대답에 정성국은 과나후아토 혁명 세력의 행태에 나직이 혀를 찼다.

‘벌써 주도권 다툼을 하는 건가?’

설마 과나후아토 혁명 세력의 지휘부가 모두 어리석겠는가.

분명 이들도 이번 승리에 이서빈의 지분이 크다는 것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허나, 이것을 인정하면, 이번 승리는 과달라하라 혁명군의 공이 가장 크다고 인정하는 셈이고, 이는 차후의 주도권 다툼에서 불리하게 작용할 수 있으니 과나후아토 혁명 세력이 이런 행동을 보이는 것일 테고.

다만, 아직 갈 길이 먼데 벌써부터 주도권 다툼을 하는 모양새에 정성국은 입맛이 썼지만, 이런 문제가 발생하는 것은 사람이 모여 조직을 구성한 이상 어쩔 수 없는 일이었기에, 신경을 쓰지 않기로 마음먹고 음흉한 여우를 바라보았다.

“거참...그래서 이서빈이 어떻게든 머스킷을 확보하려 한 거군. 지휘권 문제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래서 결과는?”

보고서를 확인하는 것보다, 음흉한 여우에게 묻는 것이 빠를 것 같아 정성국이 질문을 던지자, 음흉한 여우가 묘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과나후아토 혁명 세력에게 노획한 머스킷을 전량 넘기기로 했다는군요.”

“응?”

음흉한 여우의 대답에 정성국의 미간이 찌푸려졌을 때, 음흉한 여우가 덧붙여 말했다.

“대신, 이들의 훈련 및 지휘를 이서빈이 맡기로 했고요.”

이에 정성국은 잠깐 생각에 잠겼다가, 상황을 이해하고 중얼거렸다.

“아...그러니까 머스킷으로 무장한 병사들의 소속은 과나후아토 혁명 세력으로 두되, 지휘권은 이서빈이 갖는다?”

“그렇습니다.”

정성국의 말에 음흉한 여우가 빙긋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자, 정성국이 감탄사를 토해냈다.

“허. 생각보다 이서빈 이 친구의 수완이 좋은 모양인데?”

과나후아토 혁명 세력은 과달라하라 혁명 조직을 의식해, 어떻게든 더 많은 머스킷을 확보하려 들었고.

그런 만큼, 과나후아토 혁명 세력으로서는 머스킷으로 무장한 병력의 지휘권을 꽉 쥐고 싶어할 것이 분명했다.

헌데, 이 과나후아토 혁명 세력의 손에 쥐어진 머스킷으로 무장한 병력의 지휘권을 이서빈이 가져온 셈이니, 정성국은 그의 수완에 새삼 놀랐고.

이에 음흉한 여우가 웃으며 이서빈이 과나후아토 혁명 세력을 어떻게 설득했는지 설명하기 위해 입을 열었다.

“머스킷의 경우 화약의 보급이 필수인데, 과나후아토 혁명 세력은 자체적으로 화약을 생산하지 못하잖습니까.”

“아. 북미왕국의 지원을 받는 과달라하라 혁명 조직의 도움 없이 과나후아토 혁명 세력이 독자적으로 머스킷으로 무장한 병력을 운용하기는 어렵다는 것을 강조한 모양이군.”

“맞습니다. 더불어, 누에바 에스파냐의 중요성을 생각하면, 에스파냐 본국에서 분명 지원군을 파견할 텐데, 이들을 상대하려면 제대로 훈련할 필요가 있다는 것과 자신들은 북미왕국군 출신이라 혁명군들을 에스파냐군에 못지않게 제대로 훈련시킬 수 있다고 장담한 모양이고요. 해서 과나후아토 혁명 세력은 고민 끝에 과나후아토 주민들 가운데 체력이 좋은 3500명의 청년을 선발해 과나후아토 혁명군을 창설하고, 이서빈에게 지휘권을 넘겼답니다. 그리고 식민지 정부와의 전쟁이 끝나는 날까지 지휘권을 보장하겠다고 약조했고요.”

“허. 그게 정말인가?”

음흉한 여우의 말에 정성국은 놀란 표정을 지었다.

그게 정말이라면, 이번에 창설된 과나후아토 혁명군은 공식적인 소속만 과나후아토 혁명 세력일 뿐, 실제로는 과달라하라 혁명군 소속이나 다름이 없었기에.

물론, 화약 보급 문제 때문에 과나후아토 혁명 세력으로서는 어쩔 수 없이 이서빈에게 머스킷으로 무장한 병력의 지휘권을 넘겼겠지만, 과달라하라 혁명군이 계속해서 과나후아토에 머물지는 않을 테니, 이들이 다른 곳으로 이동하면 과나후아토 혁명 세력으로서는 과나후아토 방어 문제로 불안할 수밖에 없을 텐데, 이를 용인했다고 하니 정성국으로서는 과나후아토 혁명 세력의 결정이 무척 의외라고 여겼고.

이런 정성국의 반응에, 음흉한 여우는 정성국이 무엇 때문에 놀랐는지를 깨닫고 바로 입을 열었다.

“그렇습니다. 대신, 이서빈은 과달라하라 혁명군과 과나후아토 혁명군의 훈련이 끝나는 대로, 과나후아토 인근 요새를 공략하고, 이곳의 군수 물자를 과나후아토에 넘긴다고 약조했고요.”

“아. 그렇다면 상황이 이해가 가는군. 그럼 이서빈이 지휘하는 혁명군의 다음 목표는 에스파냐군이 방어하고 있는 과나후아토 인근 요새인가?”

“그렇습니다. 헌데, 문제는 요새를 공략하기가 쉽지만은 않다는 점입니다.”

음흉한 여우의 대답에 정성국이 고개를 끄덕이다 멈칫했다.

“물론 그렇겠지만...어라? 잠깐만. 토벌군은 기병과 머스킷병으로만 구성된 건가? 포병은 없었고?”

“아닙니다. 5문의 대포를 끌고 왔다더군요. 헌데, 포위되었고, 즉각 포위망을 돌파해야겠다는 판단을 내린 토벌군 지휘관이 화포의 파괴를 명령한 모양입니다.”

물론 적에게 화포라는, 요새를 공략하는 데 무척 도움이 되는 무기를 어떻게든 넘기지 않으려는 토벌군 지휘관의 선택은 올바른 선택이었다.

다만, 혁명군이나 북미왕국 입장에서는 참으로 안타까운 선택이었기에, 정성국이 혀를 차며 물었다.

“저런...그럼 한 문의 화포도 못 건진 건가?”

“그렇습니다. 화약을 넣고 폭파시킨 탓에 포신이 완전히 망가져 버렸다더군요. 그러니...”

음흉한 여우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자, 정성국이 안타까움이 뒤섞인 한숨을 내쉰 후 잠깐 고민하다 음흉한 여우에게 말했다.

“잉글랜드 상인에게 화포도 구입할 수는 없나?”

“음...솔직히 어렵습니다.”

회의적인 표정으로 대답하는 음흉한 여우에게 정성국이 말했다.

“그래도 잉글랜드 상인과 접촉해 한 번 구해보게. 정 뭐하면 상선에 실린 화포라도 구매하겠다고 하게.”

“으음...”

“언젠가 멕시코시티를 공략해야 하니, 화포가 필요긴 하잖나.”

정성국의 말에 음흉한 여우가 난처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글쎄요. 잉글랜드 상인에게 구할 수 있는 화포라봐야, 쇳덩이를 날리는 전장식 화포일 텐데, 그거 몇 문으로 멕시코시티를 공략하는 것은 무리이지 않습니까. 차라리, 시베리아 부족 연합에 넘긴 것처럼, 자체적으로 전장식 화포를 생산해 넘기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이에 정성국은 잠깐 고민하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하는 수 없군. 알겠네. 내가 평화에게 따로 이야기해두도록 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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