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34
과나후아토에서 처음 반란이 발생했을 때만 하더라도, 누에바 에스파냐 식민지 정부는 이 일을 심각히 여기지 않았다.
오히려, 과나후아토에서 일어난 반란을 신속하고 확실하게 제압한다면, 세금과 부역을 과다하게 부과한 이후, 공공연히 식민지 정부에 불만을 표출하는 누에바 에스파냐 주민들에게 두려움을 심어주어, 누에바 에스파냐의 통제를 확고히 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고 여겼달까.
해서 식민지 정부는 과나후아토에서 반란이 발생했다는 전령이 도착하자마자, 즉각 멕시코시티에 주둔해 있는 에스파냐군을 과나후아토로 파견하려 했다.
헌데 식민지 정부의 생각과는 달리, 과나후아토에서 시작된 반란의 불길은 급격히 주변으로 번져나갔고, 덕분에 멕시코시티에 주둔해 있는 에스파냐군의 출진 준비가 끝났을 때쯤에는 멕시코 북부와 서부 지역은 식민지 정부의 통제에서 벗어나 버렸다.
이렇게 상황이 흘러가자 식민지 정부는 병력 이동을 급히 취소했다.
섣불리 멕시코시티의 병력을 이동했다가는 멕시코시티가 공격받을 수도 있다는 위기감이 들었던 것이다.
해서 식민지 정부는 일단 상황을 지켜보았고, 계속해서 주변으로 번져가던 반란의 불길이 아카풀코-멕시코시티-베라크루즈로 이어지는 선에서 막히자, 겨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고.
아직 식민지 정부의 통제하에 있는 누에바 에스파냐 남동부의 여러 도시에서, 반란 소식이 전해진 후 도시가 어수선하긴 하지만, 당장 주민들이 봉기할 것 같지는 않다는 보고서가 올라오자, 식민지 정부는 반란을 진압하고자 에스파냐군을 움직이기로 마음먹었다.
해서 먼저 멕시코 시티에 주둔하고 있던 에스파냐군 4천 명으로 구성된 중부 토벌군이 과나후아토로 이동하기 시작했고.
이 중부 토벌군을 지휘하게 된 호르헤는 평소에는 과나후아토를 비롯해 멕시코 북서부에서 캐낸 광물들을 멕시코시티로 수송하기 위해 만든 길을 따라 빠르게 병력을 북상시켰다.
* * *
“사령관님!”
“으음?”
내일이면 과나후아토에 도착할 예정이었기에, 과나후아토를 어떻게 점령해야 할지를 고민하고 있던 중부 토벌군의 사령관인 호르헤는, 앞에서 누군가가 자신을 부르자 생각을 멈추고 고개를 들었고.
자신을 부른 정찰병의 표정이 심상치 않았기에, 호르헤 역시 조금 긴장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무슨 일인가.”
“반란군이 남하하고 있습니다!”
“뭐라고?!”
예상치 못한 정찰병의 보고에 호르헤가 화들짝 놀랐을 때, 그 옆에 있던 호르헤의 부관이 급히 정찰병에게 질문을 던졌다.
“반란군의 숫자는?”
“지형 때문에 정확한 숫자를 파악하긴 어렵습니다만, 적어도 5천 명은 넘는 것 같습니다!”
정찰병의 대답에 호르헤가 골치 아프다는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끙. 과나후아토에 틀어박혀 있을 줄 알았더니...”
“그러게 말입니다. 물론 이곳의 지형도 방어하기 괜찮은 지형이기는 합니다만, 반란군들 입장에서는 과나후아토 안에서 싸우는 것이 더 나을 텐데 이곳까지 나오다니 좀 의외로군요.”
물론 자신들이 이동하는 것을 과나후아토의 반란군들이 모르리라고 생각하진 않았다.
그리고 지금 중부 토벌군이 이용하고 있는 길은, 산과 산 사이에 난 길이고, 양옆의 산은 가파른 편이다 보니, 우회할 수 없어서 길만 틀어막으면 쉽게 방어할 수 있는 지형이었고 말이다.
다만, 호르헤나 호르헤의 부관은 이곳의 지형적 이점이 좋다고 한들, 도시 안에서 전투하는 것만은 못하기에, 반란군들이 과나후아토에서 자신들을 맞이할 거라 여겼는데, 반란군들이 자신들의 예상과는 다른 행동을 보이자 조금 의아하다는 표정을 지었고.
그때 잠시 생각에 잠겼던 호르헤가 생각을 정리한 듯 입을 열었다.
“흠. 아무래도 반란군들은 아직 과나후아토 인근 요새를 점령하지 못한 모양이로군.”
“음? 아. 그러고 보면 과나후아토에 1천 명 정도의 에스파냐군이 주둔해 있었지요?”
“그래. 그리고 마지막으로 도착한 전령이 분명 과나후아토의 에스파냐군은 도시에서 탈출한 에스파냐인들과 함께 요새로 퇴각해 방어에 나섰다고 이야기했었지. 그러니 탈출한 에스파냐인들에게도 무기를 쥐여주면 요새를 어느 정도 방어할 수야 있을 테고...”
“저희가 과나후아토에 접근해 이들과 합류하면 중부 토벌군의 전력은 늘어나는 셈이고, 반란군들은 불리해지는 셈이니, 이를 막기 위해 반란군들이 급히 남하했다는 생각이시군요?”
부관의 확인에 호르헤가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그래. 이곳의 지형상 병력을 우회하는 것도 쉽지 않으니, 길을 막아 우리를 이곳에서 돈좌시키고, 그 사이에 요새부터 깨부수겠다는 생각 같은데...”
“그럼 지금 남하하고 있는 반란군을 바로 공격해야 할까요?”
반란군의 의도가 중부 토벌군이 과나후아토로 접근하는 것을 막는 것이라면, 어떻게든 과나후아토로 접근해 도시 인근 요새에서 방어 중인 에스파냐군과 합류해야 한다고 생각한 부관이 현재 남하하고 있다는 반란군을 공격해야 하지 않겠느냐고 묻자, 호르헤는 고민스럽다는 표정으로 신음을 흘렸다.
“으음...”
식민지 정부에서 호르헤가 이끄는 토벌군에 중부 토벌군이라는 명칭을 붙인 것은, 이곳 과나후아토의 반란 세력을 토벌하는 것에서 임무가 끝나는 것이 아니라, 중부 내륙 지역 전체의 반란 세력을 모조리 토벌하라는 뜻이었다.
그러니, 앞으로 꽤 많은 전투를 벌여야 할 것 같은데, 이곳의 지형은 방어 측에 유리했기에, 단순히 적의 의도대로 움직이지 않겠다는 생각으로 현재 남하하고 있는 반란군을 공격하기에는 피해가 클 것 같았기에 호르헤는 생각이 많아질 수밖에 없었고.
그때 앞쪽에서 또 다른 전령이 급히 호르헤에게 다가와 간단히 군례를 올림과 동시에 보고했다.
“사령관님! 길을 따라 남하하던 반란군들이 저희를 발견한 모양입니다!”
이에 호르헤는 생각을 멈추고 전령을 바라보았다.
“그래? 저들의 반응은?”
“남하를 멈추고 급히 방어선을 구축하려는 듯합니다.”
전령의 보고에 호르헤는 바로 결정을 내렸다.
“쩝. 지형이 썩 좋지 않은 터라 조금 고민했는데, 반란군들이 저곳에 방어선을 완전히 구축해버리면 우리로서는 곤란해지니, 바로 공격하는 편이 낫겠군.”
“확실히 그렇지요. 반란군에게 시간을 주면 줄수록, 방어선이 견고해져서 이곳을 돌파하는 데 아군의 피해가 커질 테니까요.”
부관이 호르헤의 의견에 동의하자, 호르헤가 다시 입을 열었다.
“맞네. 그리고 우리가 저기 있는 반란군에게 발목을 잡힌 사이에 과나후아토 인근 요새가 함락되기라도 하는 날에는 반란군들도 화약 무기로 무장할 테고, 그럼 피해는 더욱 커질 거야. 그러니 그 전에 저 반란군을 격파해야 해.”
어차피 도시 내 식민지 정부 관청에는 군수 물자가 별로 없었기에, 반란군들에 의해 관청이 약탈당하였어도 크게 상관은 없었지만, 수많은 군수 물자가 비축된 요새는 달랐다.
요새가 넘어가면, 반란군들도 화약 무기로 무장할 수 있게 되고, 그러면 중부 토벌군으로서는 반란을 진압하는 데 더 많은 피해를 입을 수밖에 없었고.
그러니 그 전에 반란군을 격파해야 한다고 여긴 호르헤였고, 호르헤의 의견에 부관이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뭐 어떻게 보면 반란군들도 병력이 분산된 셈이라, 잘만 하면 각개격파로 피해를 줄일 수도 있을 테니 나쁠 것 없겠지요. 허면 바로 전투를 준비하겠습니다.”
“그러도록 하게.”
* * *
전투 준비가 끝나자, 호르헤는 즉각 병력을 진군시켰다.
그러자 한창 방어 준비에 여념이 없던 반란군들 역시 대열을 정비하고 자신들에게 다가오는 토벌군을 바라보았고.
그런 반란군의 행동에 호르헤는 잠시 미간을 찌푸렸지만, 토벌군이 점차 반란군과 가까워지기 시작하자 반란군들이 하나둘 커다란 방패를 들어 올리자 상황을 이해하고 표정을 풀었다.
“대열을 유지하고 방패로 총알을 막겠다...정말 방어에만 집중한 생각인 모양이군.”
“그런 것 같습니다. 그만큼 저희를 이곳에 묶어두겠다는 생각이 큰 모양인데...저들을 돌파하기가 쉽지는 않겠군요.”
“흠.”
호르헤의 중얼거림에 부관이 맞장구쳤을 때, 반란군의 진영으로 진군하던 토벌군이 발걸음을 멈추고 일제히 머스킷을 들어 올렸고.
‘타타타타타타탕!’
총성과 함께 화약 연기가 시야를 가리자 호르헤와 부관은 귀를 기울였지만,
‘퍼퍼퍼퍼퍼퍼퍽!’
아쉽게도 반란군들의 비명보다는, 머스킷에서 발사된 총알에 나무판이 깨지는 소리만 들리자, 호르헤가 표정을 찌푸렸다.
“쯧. 이거 반란군들이 준비를 제대로 한 모양이군.”
“그러게 말입니다. 생각보다 방패의 질이 좋은 모양입니다. 조금 의외로군요.”
“의외랄 것이 있는가. 어차피 저들은 방어가 목적일 테니, 무게를 신경 쓰지 않고 두꺼운 방패를 만든 모양이지.”
그렇게 호르헤와 부관이 대화하는 사이 토벌군은 계속해서 길을 막고 있는 반란군을 향해 머스킷을 발사했지만, 기대하던 비명이나, 두려움으로 인한 혼란이 일절 없었기에 호르헤는 혀를 차며 주변을 한번 둘러보고 입을 열었다.
“흠. 반란군은 우리보다 조금 높은 곳에 자리하고 있고, 방패와 창으로 꽤나 견고해 보이는 진형마저 구축하고 있으니, 500의 기병만으로 반란군의 진형을 깨부수는 것은 어렵겠지?”
“예. 힘들어 보입니다. 우회할 공간이 없으니 결국 정면으로 돌파해야 하는데, 오르막이라 기병들이 제대로 가속하지도 못할 것으로 보이니...”
“쯧. 지형이 너무 안 좋아.”
오합지졸인 반란군을 상대하는 데는 기병만 한 병종이 없었기에, 호르헤는 멕시코시티에 있던 기병 500명을 모두 데리고 왔다.
헌데 지형 때문에 이렇게 데려온 기병을 제대로 써먹기 힘들었기에, 호르헤가 다시 한번 혀를 차자, 부관이 쓰게 웃었고.
계속해서 총알을 퍼붓는데도, 별다른 동요 없이 방어에만 전념하는 반란군의 모습에 호르헤는 이번 반란군 토벌이 쉽지 않겠다는 생각과 함께, 부관에게 명령을 내렸다.
“그럼 답은 하나뿐이로군. 대포를 준비하게.”
“알겠습니다. 사령관님.”
대포는 무거웠고, 그만큼 끌고 다니기가 쉽지 않았다.
다만, 반란군의 사기를 꺾는 데는 대포만 한 것이 없다고 생각한 호르헤가 대포 5문을 끌고 왔었고.
그러니 대포를 이용해 저 견고해 보이는 반란군 진형을 깨부수고, 그 틈을 노려 토벌군을 돌격시키겠다는 생각에 호르헤가 명령을 내리자, 부관은 호르헤의 생각을 파악하고 직접 포병들에게 호르헤의 명령을 전했다.
그러자 포병들은 대포를 발사하기 위해 움직이기 시작했고.
호르헤와 부관이 그런 포병들을 바라보고 있을 때, 총성이 잠시 멎고 양옆에서 무언가가 바람을 가르는 소리가 들리자 호르헤와 부관은 즉시 고개를 돌렸고.
하늘에서 떨어지는 검은 빗방울에 부관이 즉시 소리쳤다.
“화살이다! 방어하라!”
하지만 부관의 명령에도 토벌군은 우왕좌왕했다.
물론 에스파냐군도 반란군의 화살을 대비해 방패를 보유하고는 있었지만, 방패를 든 이들은 모두 대열의 전면에 위치해 있었다.
그러니 양옆에서 기습적으로 날아온 화살에 대응하긴 어려웠고.
“컥!”
“으악!”
측면에 있던 토벌군이 하나둘 화살에 맞아 쓰러지기 시작하자 간부들이 급히 토벌군의 대열을 재정비하기 시작했고.
하지만, 호르헤는 그런 토벌군을 바라보기보다, 산 중턱에서 매복해있다가 자신들에게 화살을 발사하는 반란군의 행동에 충격을 받은 얼굴로 중얼거렸다.
“이런 말도 안 되는! 저곳에 반란군이 미리 매복해있었다고?!”
그런 모습에 부관이 즉시 호르헤에게 달려가 소리쳤다.
“사령관님! 일단은 퇴각해야 합니다!”
“하지만...”
“반란군이 이곳에 매복해있다는 소리는, 저들이 이미 이곳을 전장으로 생각하고 있다는 뜻입니다! 그러니 일단은 물러서야 합니다!”
“으윽...”
물론 이곳의 지형을 생각하면 지휘관으로서 당연히 측면의 매복을 고려했어야 했다.
하지만, 호르헤가 미처 이를 생각하지 못한 것은, 다 저 전방의 토벌군이 처음에 급히 남하하는 모습을 보였기 때문이었고.
헌데 이게 다 반란군의 수작이었다는 뜻이니 호르헤는 반란군에게 농락당했다는 생각에 분노했지만, 갑작스러운 매복 공격에 오히려 토벌군이 흔들리는 모습을 보이자 호르헤는 일단 부관의 말대로 잠시 물러나서 토벌군을 재정비하는 것이 우선이라고 판단해 명령을 내렸다.
“알겠네. 허면 바로 퇴각 명령을...”
“사령관님!”
호르헤가 부관에게 퇴각 명령을 내리려는 찰나, 후방에서 전령이 급히 호르헤에게 달려오면서 자신을 부르자, 호르헤는 왠지 모르게 피가 식는 기분이 들었고.
“무슨 일인가!”
“뒤쪽에서 머스킷으로 무장한 3천의 병력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뭐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