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조선을 탈출하라-833화 (833/850)

#833

“으음. 저기가 바로 과나후아토인가?”

말을 타고 이동하던 이서빈이 저 멀리 보이는 과나후아토를 보고 중얼거리자, 과달라하라 혁명 조직에서 이서빈에게 붙여준 부관이 대답했다.

“그렇습니다. 대장님.”

“흠. 생각보다 도시가 크네? 거기에 도시 주변에는 소도시들도 여럿 보이고...”

과나후아토는 광산 도시답게 산기슭에 위치해 있었는데, 그 규모가 생각보다 커서 이서빈이 의외라는 표정으로 중얼거리자, 부관이 대답했다.

“이 주변에서 은을 비롯해 수많은 광물이 발견되고, 이를 캐기 위해 수많은 광산이 개발되면서, 누에바 에스파냐 전역에서 수많은 사람이 몰려들었으니 자연스레 도시가 커질 수밖에 없지 않겠습니까.”

부관의 말에 이서빈이 그야 그렇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자, 부관은 손을 들어 과나후아토와 조금 떨어져 있는, 산 중턱의 몇몇 소도시들을 가리키며 말했다.

“그리고 저기 보이는 과나후아토 주변의 소도시들은, 이후 발견된 광산들이 과나후아토에서 떨어져 있다 보니, 광산 주변에 숙소가 들어서면서 생겨난 마을들이 점차 커지면서 소도시가 된 겁니다.”

“역시 그런가.”

기본적으로 에스파냐는 돈이 되는 귀금속 외의 광물은 크게 신경 쓰지 않는 편이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다른 광물들을 본국까지 가져가기에는 수송비가 더 들기에 의미가 없었고, 누에바 에스파냐에서 자체적으로 소모하기에는 시장 규모가 작은 편이라 한계가 명확했기에.

그러나 북미왕국이 등장하면서, 그리고 인력 부족 문제와 무역 흑자를 줄이기 위해 타국에서 광물을 대거 수입하자 상황이 변했다.

광물을 캐기만 하면 비싼 값에 사주니 에스파냐로서는 누에바 에스파냐에 묻혀 있는 광물들을 캐는 데 열을 올릴 수밖에 없었고.

덕분에 누에바 에스파냐의 광산 도시들은 더욱 발전했고, 그중에 여러 광물이 대거 묻혀 있는 저 과나후아토의 발전이 가장 빨랐다는 부관의 설명에 이서빈은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인 후, 과나후아토와 주변의 도시들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아무튼, 이렇게 보니 이해가 되는군. 왜 에스파냐군이 봉기한 주민들을 제압하는 것을 포기하고 요새에 틀어박혀 있는 건지.”

과나후아토는 산과 산 사이의 계곡을 따라 마을이 확장되면서 도시로 성장했기에, 아래쪽에 있는 이곳에서도 도시가 어떻게 구성되어있는지가 대충은 보였는데, 제대로 계획을 세워 도시를 발전시킨 것이 아니라, 광업이 발전하면서 몰려든 이들이 광산 주변에 아무렇게나 정착하면서 도시가 발전했기에, 도로가 넓지도 않을뿐더러, 거미줄처럼 복잡하게 깔려있었다.

그러니, 아무리 머스킷으로 무장한 에스파냐군이라도, 저런 복잡한 구조의 도시로 진입해 전투를 치르는 것은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겠다는 생각에 이서빈이 중얼거리자, 부관이 당연하다는 얼굴로 대꾸했다.

“예. 아무리 에스파냐군의 전투력이 뛰어나다 해도, 고작 1천 명 남짓의 병사로는 과나후아토와 그 주변의 소도시들까지 모두 장악하긴 어려운 노릇이니까요.”

“그렇지. 다만...조금 의외긴 해. 이곳은 누에바 에스파냐에서 멕시코시티, 베라크루즈 다음으로 중요한 도시 아닌가? 헌데 의외로 배치된 병력이 적은 것 같은데...”

물론 누에바 에스파냐에는 꽤 많은 은광이 존재했다.

다만, 이곳 과나후아토의 은광산은 가장 뒤늦게 발견되었기에, 그만큼 많은 은이 묻혀 있었고, 그 때문에 식민지 정부 입장에서는 수도인 멕시코시티나, 본국과의 연결통로인 베라크루즈 다음으로 중요한 도시일 수밖에 없었고.

여기에 북미왕국과의 교역이 시작되고, 무역 적자를 줄이기 위해 더 많은 광물을 캐서 북미왕국에 판매해야 하는 만큼, 이곳 과나후아토의 치안 유지는 무엇보다 중요할 수밖에 없었다.

헌데, 그런 중요한 도시에 배치된 병력이 생각보다 적은 편이었기에, 이서빈이 의아하다는 표정을 짓자, 부관이 입을 열었다.

“아. 한때 이곳 과나후아토에 배치된 병력은 거의 5천 명에 달할 정도였다고 합니다. 헌데, 점차 누에바 에스파냐가 점차 안정되면서, 내륙에 위치해 있기에 타국의 공격을 받을 가능성이 없는 과나후아토에 굳이 많은 병력을 배치할 필요가 있느냐는 말이 나오기 시작하면서 조금씩 병력 규모를 줄인 겁니다. 뭐 덕분에 이번에 과나후아토의 주민들이 성공적으로 봉기할 수 있었으니 저희로서는 다행인 일이지요.”

부관의 설명에 상황을 이해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인 이서빈은, 부관과 대화하느라 어느덧 무척이나 가까워진 과나후아토를 바라보다가, 조금 떨떠름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그렇군. 그보다 도시가 조금 소란스러운데...이미 과나후아토를 장악한 혁명 세력에는 이야기를 해두었다고 했지?”

“그렇습니다.”

부관의 대답에 이서빈이 손을 들어, 도시 입구를 방어하고 있는 이들을 가리키며 말했다.

“헌데 저들은 우리를 보고 왜 저렇게 소란을 피우는 건지 모르겠군.”

과나후아토 혁명 세력으로 짐작되는 이들이 산 밑에 있는 도시 입구를 방어하고 있었는데, 이들은 과나후아토로 접근하는 자신들을 반기기보다는 오히려 경계하듯 무기를 들고 비상종까지 치고 있었고, 그 때문인지 도시 안쪽에서 계속해서 사람들이 나와 도시 입구로 모이고 있는 모습에 부관 역시 의아한 표정을 지으며 잠시 생각에 잠겼고.

그러다 부관이 혹시나 하는 얼굴로 의견을 제시했다.

“아. 저희의 모습이 저들의 상상과는 다르기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만...”

“응? 그게 무슨 소린가?”

의아한 표정으로 되묻는 이서빈에게 부관이 뒤쪽에서 자신들을 따라오고 있는 과달라하라 혁명군을 가리켰다.

“뒤를 보시지요. 딱 봐도 정예병처럼 보이지 않습니까?”

“정예병은 무슨...”

과나후아토의 방어가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생각이 일치한 디에고와 이서빈은, 과달라하라의 젊은이 3천 명과 북미왕국에서 온 의용군을 합해 과달라하라 혁명군을 조직했고.

과달라하라 혁명군이 조직되자마자 즉각 과나후아토로 이동했다.

과달라하라에서 한가롭게 훈련할 상황이 아니라는 판단 때문이었다.

해서 부관이 가리킨 과달라하라 혁명군은 이곳으로 행군하면서 중간중간 쉬는 시간에 간부인 북미왕국인들에게 간단히 교육받은 것이 전부였기에, 이서빈은 부관의 말에 콧방귀를 뀌었고.

그런 이서빈의 반응에 부관이 웃음을 터트렸다.

“하하하. 물론 이들이 정말 정예병은 아니지요. 다만, 통일된 군복을 입고 오와 열을 맞춰 행군하는 것만으로도, 저 과나후아토에 있는 친구들이 보기엔 충분히 정예병처럼 보일 겁니다. 그러니 당황스러울 수밖에요.”

이서빈이 보기에 과달라하라 혁명군은 오합지졸이나 다름이 없었지만, 부관의 말을 듣고 보니 과나후아토 혁명 세력에서 보기엔 정예병처럼 보일 수도 있다는 사실을 이해했다.

특히, 처음엔 아무렇게나 대열을 이루어 이동하는 모습에 이서빈이 직접 나서서 간단한 제식 훈련은 시켜둔 상태였으니.

해서 이서빈은 과나후아토 혁명 세력이 저렇게 난리를 치는 것을 이해하고 바로 명령을 내렸다.

“그런가? 흠. 그럼 저 친구들이 우리를 경계하지 않도록 일단 행군을 멈추도록 하지.”

“알겠습니다. 대장님.”

* * *

과달라하라 혁명군이 행군을 멈추고 가만히 대기하자, 과나후아토에서 사람을 보냈고, 이를 통해 오해를 풀 수 있게 된 과달라하라 혁명군은 다시 이동을 시작했다.

그리고 마침내 과나후아토 입구에 도착했을 때, 덥수룩한 수염이 인상적인 근육질의 한 중년 사내가 과달라하라 혁명군에게 다가오자, 이서빈이 부관과 함께 그를 맞이했고.

“반갑소. 나는 과나후아토의 사령관. 리카르도요.”

“과달라하라 혁명군 대장 이서빈이라고 합니다.”

이미 디에고가 전령을 통해 과나후아토의 사령관인 리카르도에게 어느 정도 가공된 정보를 건넸기에, 리카르도는 북미왕국인인 이서빈이 나섰어도 놀라지 않고 통성명을 나누었고.

그 후 리카르도는 씁쓸한 표정으로 이서빈에게 말했다.

“우리를 도와주러 온 손님들이니만큼 제대로 환영해주고 싶은데, 상황이 상황이라 그러지 못하는 것을 이해해주시오.”

이에 이서빈은 리카르도에게 미안해할 것 없다는 얼굴로 빙긋 웃으며 대답했다.

“괜찮습니다. 저희는 과나후아토 혁명 세력을 도우러 온 것이지, 대접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니까요.”

“호. 그것참 고마운 소리로군요. 그보다 저기 저 상자들이...?”

그리고 이서빈의 대답에 리카르도는 희미한 미소를 지었다 지운 후, 행렬 뒤쪽에 있는 마차들을 바라보며 질문을 던지자 이서빈이 고개를 끄덕였다.

“예. 북미왕국에서 가져온 철제 무기들입니다.”

“얼마나 됩니까?”

“정글도 5천 자루, 창날 5천 개, 단검 5천 개, 화살촉 5만 개 분량입니다.”

이서빈의 대답에 리카르도의 안색이 밝아졌다.

물론 이곳 과나후아토는 광산 도시였고, 주변에 광물이 많이 나긴 한다.

그러나 광물만 있다고 무기를 만들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제대로 된 대장간과 장인들이 있어야만 가능한 일이었지.

문제는 대장간의 장인들은 대부분 에스파냐인이었고, 이들은 과나후아토 주민들이 식민지 정부에 대항해 봉기하자, 잘못하면 죽을 수도 있다는 위기감에 도시를 탈출했기에, 철제 무기를 대량 생산해 무장할 방법이 없었고.

그렇기에 현재 과나후아토 혁명 세력의 일원들은 농기구나 식민지 정부 창고를 약탈해 확보한 얼마 안 되는 무기가 전부였는데, 이서빈이 못해도 1만 명 이상을 무장시킬 수 있을 정도의 무기들을 가져왔다고 하자, 리카르도는 기쁨을 감추지 못하며 탄성을 질렀다.

“와우. 무기가 생각보다 많구려?”

“예. 이곳의 상황을 알게 된 북미왕국인들이 누에바 에스파냐인들을 돕기 위해 생각보다 많은 돈을 기부했기거든요. 덕분에 많은 철제 무기를 사 올 수 있었지요.”

이서빈의 대답에 리카르도가 진지한 표정으로 이서빈을 바라보다 입을 열었다.

“북미왕국이 직접 우리를 도와주지 않는 것이 아쉽긴 하지만, 그래도 북미왕국인들 덕분에 식민지 정부에 제대로 대항할 수 있을 것 같으니 다행입니다. 나중에 이 은혜는 꼭 갚도록 하지요.”

“그러시지요.”

리카르도의 대답이 기꺼웠던 이서빈이 그의 말에 빙긋 웃으며 대답했고.

그런 이서빈의 반응에 리카르도는 살짝 멋쩍은 듯 바로 고개를 돌려 과달라하라 혁명군을 바라본 후, 조금 놀랍다는 듯 입을 열었다.

“그리고 말입니다. 디에고가 보낸 전령에게 듣기로, 저 병사들이 훈련받은 지 얼마 되지 않았다고 들었는데...생각보다 군기가 엄정한 것 같습니다.”

이에 이서빈이 어깨를 으쓱하며 대답했다.

“물론 훈련받은 기간이야 얼마 되지 않지만, 제대로 훈련시키고 있으니까요.”

이서빈의 말에 리카르도는 진중한 표정으로 대열을 갖추고 대기하고 있는 과달라하라 혁명군을 바라보다가, 조심스러운 표정으로 질문을 던졌다.

“흐음...그럼 당장 전투에 투입할 수 있는 겁니까?”

리카르도의 질문에 이서빈은 탐탁지 않다는 표정으로 대답했다.

“가능이야 하겠지요. 다만 제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조금 더 훈련시킨 후에 전투에 투입하는 것이 전력을 극대화하는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만...혹시 요새에 처박혀 있는 에스파냐군을 공격하시려고 그러십니까?”

이에 리카르도가 이서빈에게 한 발 더 가가가 주변에 들리지 않게 목소리를 낮추고 대답했다.

“아닙니다. 멕시코시티에서 이곳 과나후아토를 점령하기 위해 진군하고 있는 에스파냐군을 상대하기 위해서입니다.”

리카르도의 대답에 이서빈의 안색이 굳었다.

“식민지 정부가 멕시코시티에 주둔해 있는 에스파냐군을 이곳에 보낸 겁니까? 규모와 현재 위치는요?”

“알려진 바로는 에스파냐군 4천 명을 파견했다고 하더군요. 그리고 아마 지금쯤이면 3일 거리에 위치해 있을 겁니다.”

리카르도의 대답에 이서빈이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잔뜩 굳은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그럼 지금 이럴 시간이 없군요. 바로 회의를 시작하도록 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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