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32
수많은 마차와 함께 동쪽으로 이동한 정보국 소속 요원들은 저 멀리 보이는 과달라하라의 모습에 미소를 지었다.
그동안 이곳까지 이동하느라 꽤 고생한 탓이다.
물론 유철승이 북미왕국에서 가져온 지원 물자를 이곳 과달라하라까지 운반하기 위해 많은 마차를 확보하고 짐꾼들을 고용해두긴 했지만, 푸에르토 바야르타에서 과달라하라까지 지형이 험한 편이기도 했고, 길도 제대로 관리한 대로는 아니었을뿐더러, 최대한 빠르게 과달라하라 혁명 조직에 물자를 넘겨주기 위해 계속 강행군을 한 탓에 나름 체력이 좋은 정보국 소속 요원들조차 지칠 정도였으니, 일반 짐꾼들이야 말해 무엇하겠는가.
그래서 정보국 요원들 역시 짐꾼을 도와야 했고, 덕분에 엄청나게 지쳐버렸다.
해서 정보국 요원들은 하루라도 빨리 과달라하라로 들어가 쉬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도시에서 어느 정도 떨어진 곳까지만 접근한 후 발걸음을 멈춰야만 했다.
과달라하라에서 난리가 났기 때문이다.
이미 과달라하라 혁명 조직은 식민지 정부에 반기를 들고 식민지 관리들을 투옥하고, 도시를 완전히 장악했다.
그런 상황에서 500명이 넘는 대규모 인원이 나타나 도시에 접근한다면, 당연히 난리가 나지 않겠는가.
해서 정보국 요원들과 일행은 이들이 어느 정도 진정될 때까지는 이동을 멈추고 대기했고.
덕분에 과달라하라 혁명 조직은 서쪽에서 나타난 대규모 인원이 식민지 정부와는 관련 없다는 것을 눈치채고 상황을 파악하기 위해 전령을 보냈고, 이때 유철승이 나섰다.
이들은 북미왕국에서 찾아온 의용군이라고.
군사 고문단이라는 명칭을 사용하면, 북미왕국에서 개입했다는 것이 알려질 수밖에 없기에, 의용군이라는 명칭을 사용한 것이다.
그리고 유철승의 설명에 전령은 반색했다.
이미 과달라하라 혁명 조직의 수장이자, 정보국 소속인 디에고가 도시를 장악한 후 북미왕국에서 의용군이 올 거라는 사실을 은근슬쩍 흘렸고, 전령 역시 이 사실을 알고 있었기에.
해서 전령은 유철승의 설명에 곧바로 도시로 되돌아갔고.
곧 과달라하라 혁명 조직의 지휘부에 속한 이들이 북미왕국에서 찾아온 의용군을 마중하기 위해 도시 밖으로 나왔다.
그리고 디에고는 유철승에게 다가가 가볍게 인사를 나누었고.
인사가 끝나자 디에고는 유철승에게 약속된 눈빛을 보낸 후, 짐꾼들과는 달리 오와 열을 맞추어 쉬고 있는 의용군을 가리키며 자신의 뒤에 있는 과달라하라 혁명 조직의 지휘부들이 들을 수 있을 정도로 큰 목소리로 말했다.
“이분들이 전에 말한 그...?”
이에 유철승 역시 목소리를 높이며 대답했다.
“그렇습니다. 에스파냐의 압제에 저항하는 누에바 에스파냐인들을 돕기 위해, 하던 일을 내던지고 기꺼이 누에바 에스파냐로 떠나는 배에 올라탄 의용군들이지요.”
디에고나 유철승이 북미왕국 정보국에 속한 정보원이라는 것이 알려져 봐야 여러모로 곤란해질 수밖에 없었다.
그렇기에 디에고는 유철승과 입을 맞췄고, 그 후 자신의 친구들이자 과달라하라 혁명 조직 지휘부에 유철승을 북미왕국과 주로 거래하는 상인이자, 멕시코인 연합회와 거래하는 상인이라는 것을 미리 알려두었기에, 유철승의 말에 디에고의 친구들은 탄성을 내질렀고.
그런 친구들의 반응에 디에고는 만족하며 시선을 돌려, 의용군의 책임자로 보이는 이에게 다가가 덥석 손을 잡으며 말했다.
“아아. 이렇게 저희를 도와주러 와 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이에 이서빈 역시 이곳까지 오는 동안 유철승에게 미리 언질을 받았기에 마치 연극을 하듯 조금 과장된 목소리로 대답했다.
“아닙니다. 그저 여러분들의 이야기를 듣고 안타까움과 에스파냐에 대한 분기를 참지 못해 이렇게 무작정 온 것인데 환대해주시니 오히려 감사하군요.”
그렇게 이서빈은 디에고를 비롯해 앞으로 함께할 과달라하라 혁명 조직 지휘부의 인물들과 인사를 나누었고.
그렇게 인사가 끝났을 때, 누군가가 이서빈에게 질문을 던졌다.
“제 친구에게 듣기로는, 여기 계신 분들은 모두 군 경험이 있다고 들었습니다만 정말입니까?”
이에 이서빈이 선선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습니다. 원래 여러분들을 돕기 위해 배를 타고 이곳 누에바 에스파냐까지 오려는 사람은 이보다 더 많았습니다.”
“허. 그렇습니까?”
“예. 500명가량은 되었지요. 허나, 이곳의 사정을 생각하면, 군 경험이 전혀 없는 이들은 크게 도움이 될 것 같지 않더군요. 해서 모인 이들 가운데 군 경험이 있는 이들만 선발해 의용군을 조직한 거지요.”
이서빈의 대답에 뚱뚱한 중년 사내가 의아한 표정으로 끼어들었다.
“음? 북미왕국인들은 다들 화약 무기를 다룰 줄 안다고 들었습니다. 그러니 군 경험이 없더라도 충분히 도움이 될 것 같은데...”
이들은 디에고를 통해 북미왕국의 소식을 들었기에, 나름대로 북미왕국의 사정을 알고 있었다.
그러니 북미왕국에서 민간에 총기를 허용하고 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고, 이 이야기가 나왔을 때, 북미왕국에서 민간에 판매하는 화약 무기를 구매하는 것이 어떻겠냐는 의논도 했었으니.
그렇기에 뚱뚱한 사내를 비롯한 과달라하라 혁명 조직 지휘부의 인물들은 이서빈의 대답에 의문을 감추지 못하자, 이서빈이 다시 입을 열었다.
“그렇진 않습니다. 물론 북미왕국은 총기 소유를 합법화했고, 덕분에 민간인들도 총기를 소유할 수 있긴 합니다. 하지만 모든 북미왕국인들이 총기를 잘 다루는 것은 아닙니다.”
“어? 그렇습니까?”
“예. 시골이라면 모를까 도시에서는 총기가 굳이 필요 없으니까요. 그러니 총기를 구매할 이유가 없지요.”
“아...”
북미왕국 백성 중 상당수는 살기 좋은 도시에서 산다는 사실 정도야 이들도 알고 있었기에 이서빈의 말에 상황을 이해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고 있을 때, 이서빈이 슬쩍 덧붙였다.
“그리고 북미왕국 민간인들이 다룬 총기는 신식 소총이지, 머스킷이 아닙니다. 그러니 군 경험이 없는 이들을 데려 와봐야 머스킷을 다루는 방법부터 가르쳐야 하는데, 그럴 바에는 여러분들을 가르치는 게 더 낫지 않습니까.”
“아. 신식 소총과 머스킷이 많이 다른가 보군요?”
“물론입니다. 신식 소총은 후장식 소총이고, 머스킷은 전장식 소총이라, 장전 방식이 완전히 다르거든요.”
그러면서 이서빈이 장전 방식의 차이를 간단히 설명했고, 이서빈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던 뚱뚱한 사내가 문득 이서빈과 의용군을 바라보며 말했다.
“그럼 당신들도 머스킷엔 익숙하지 않은 것 아닙니까? 북미왕국군에서 머스킷을 사용하진 않잖습니까.”
“어? 확실히...”
뚱뚱한 사내의 말에 다른 이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북미왕국군은 신식 소총보다 더 좋은 무기를 사용한다는 것이야 널리 알려졌으니.
해서 다들 이서빈을 바라보자 이서빈이 빙긋 웃으며 답했다.
“물론 저희는 후장식 소총인 갑오 소총을 사용합니다. 다만, 만약의 사태를 대비해 머스킷을 다루는 훈련도 함께 받거든요. 더불어 철제 무기를 다루는 법도 훈련받고요.”
이건 거짓말에 가까웠다.
물론, 군에서 만약을 대비해 머스킷의 구조나 다루는 법을 가르치긴 한다.
원정 상황에서 보급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을 경우, 노획물을 이용해야 하는 상황이 벌어질 수는 있으니까.
다만, 이 훈련은 훈련소에서 조교가 간단히 설명하고 시범을 보이는 수준에 불과한 수준이었지, 제대로 머스킷을 다룰 수 있을 정도로 가르치지는 않았다.
그러나 이들은 정보국의 공작원이었고, 공작원은 타국에서 임무를 수행하는 만큼, 머스킷을 잘 다룰 수 있어야 했다.
타국에서 비공식적인 임무를 수행하는데 북미왕국의 무기들을 사용할 수는 없었으니까.
해서 여기 있는 의용군들은 정보국으로 소속을 옮긴 이후, 머스킷을 다루는 훈련을 꾸준히 받아왔고, 덕분에 머스킷을 잘 다룰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이를 사실대로 이야기할 수는 없는 노릇이라 이서빈은 적당히 둘러대었고.
디에고는 대충 상황을 짐작했지만, 내색하지 않고 오히려 호들갑을 떨었다.
“오. 역시 북미왕국군이 강력한 건 다 이유가 있었군요.”
“그러게 말입니다.”
디에고의 말에 다들 새삼 놀랍다는 표정으로 이서빈을 바라보았고, 이에 이서빈은 빙긋 웃으며 입을 열었다.
“아무튼, 그렇기에 저와 함께 온 의용군들은 모두 머스킷을 잘 다룰 줄 알고, 다른 이들을 가르칠 수도 있습니다.”
“그러면...”
“예. 사람을 모아 주십시오. 그럼 저희가 철저히 훈련시켜 제대로 된 병사로 만들 테니 말입니다.”
이에 혁명 조직의 지휘부는 기대감이 섞인 탄성을 내뱉었다.
솔직히 자신들은 오합지졸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아는 만큼 에스파냐군을 내심 두려워할 수밖에 없었는데, 의용군이 합류한 이상, 상황이 많이 달라질 거라는 기대감이 생긴 것이다.
해서 다들 기대가 가득한 얼굴로 옆 사람과 떠들고 있을 때, 디에고가 이서빈을 보고 말했다.
“그러지요. 일단 3천 명을 모으면 되겠습니까?”
“예. 아. 그리고 의사소통을 위해 북미왕국말을 할 줄 아는 이들도 조금 붙여주었으면 합니다.”
“알겠습니다. 그리하지요.”
이미 북미왕국의 영향력이 커지기도 했고, 디에고는 훗날을 생각해 친구들에게 북미왕국어를 배우라고 강권했었기에, 이곳에서는 의사소통이 원활하지만, 다른 이들은 상황이 달랐다.
그러니 원활한 소통을 위해 통역을 붙여달라는 이서빈의 말에 디에고는 선선히 고개를 끄덕였고.
그러다 문득 질문을 던졌다.
“헌데, 훈련 기간은 어느 정도로 생각합니까?”
“글쎄요. 못해도 한 달은 훈련 시켜야 한 사람 몫을 할 것 같기는 한데...왜 그러십니까?”
이서빈의 대답에 디에고는 팔짱을 끼고 고민스럽다는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음...가능하면 과나후아토를 돕고 싶어서 말입니다.”
“예? 과나후아토를요?”
예상외의 대답에 이서빈이 놀란 표정으로 되묻자, 디에고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습니다. 과나후아토에서 처음으로 혁명이 시작된 것은 아시지요?”
“예. 그건 들었습니다만...”
“그러니 식민지 정부는 다른 곳보다 과나후아토를 공격하려 하지 않겠습니까?”
디에고의 의견에 이서빈이 잠깐 생각에 잠겼다가 일리가 있다는 표정을 지었다.
“흠...그럴 가능성이 있긴 하군요. 과나후아토에서 처음 혁명이 시작되었으니 상징성도 있고, 수도인 멕시코시티에서의 거리도 비교적 가까운 편이니 말입니다.”
“맞습니다. 거기에 과나후아토에는 아직 에스파냐군이 주둔해 있으니, 식민지 정부는 멕시코 시티에 있는 병력 중 일부를 과나후아토로 보내, 이들과 연계하려 하겠지요.”
과나후아토 인근에는 여러 광산이 있었다.
그리고 그 중 과나후아토 도시에서 조금 거리가 있는 파스티타 광산에서 처음으로 충돌이 발생했고.
충돌이 알려지면서 과나후아토 도시 인근 요새에 주둔하고 있던 에스파냐군이 이미 통제에서 벗어나 파스티타 광산을 점령한 불순 세력을 진압하려 했지만, 파스티타 광산에 도착하기 전에 과나후아토 인근의 다른 광산들에서도 문제가 발생하고, 더불어 과나후아토 주민들도 일제히 봉기해 식민지 정부의 관리들이나, 에스파냐인 지역 유지들을 공격하기 시작하자, 에스파냐군은 급히 회군해 과나후아토의 치안을 유지하려 했다.
허나, 과나후아토는 주변에 수많은 광산이 존재했기에 인구도 많은 편이었고, 그런 만큼 이미 혼란에 빠진 과나후아토의 치안을 확보하기는 어렵다고 판단한 에스파냐군의 지휘관이 겨우 몸을 빼낸 식민지 정부의 관리들과 에스파냐인들을 보호하기 위해 요새에 틀어박혔고.
이러한 사실을 떠올린 이서빈이 탄성을 질렀다.
“아. 참. 과나후아토 인근 요새에 에스파냐군이 틀어박혀 있었지요?”
“그렇습니다. 그리고 과나후아토를 장악한 혁명 세력은 요새에 틀어박힌 에스파냐군을 공격하기 위해 움직였지만, 방어가 단단해 섣불리 공격하지 못하고 포위만 한 상황이라고 합니다.”
“과나후아토 혁명 세력은 화약 무기가 아예 없을 테니까요.”
“예. 다만, 숫자에서 차이가 심한 터라, 에스파냐군도 섣불리 요새 밖을 나오지 못해 대치 상황인데, 이런 상황에서 멕시코시티에서 원군을 보내준다면...”
디에고가 어두운 얼굴로 말을 흐리자, 이서빈이 그 말을 받았다.
“과나후아토 혁명 세력은 에스파냐군에 의해 박살 나고, 과나후아토는 다시 식민지 정부의 영향력 아래로 들어가겠지요.”
“예. 그래서 가능하다면 이를 막고 싶습니다만...”
이에 이서빈은 잠시 고민하다 결국 고개를 끄덕였다.
“솔직히 위험하긴 한데...그렇다고 그냥 내버려둘 수도 없겠군요.”
“그렇습니다. 과나후아토가 넘어가면, 다음은 이곳 과달라하라일 테니까요.”
“알겠습니다. 그럼 훈련을 최대한 단축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