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31
누에바 에스파냐 서해안에 있는 여러 항구 중 하나인 푸에르토 바야르타 항에 삼태극기를 휘날리는 북미왕국의 수송선 3척이 천천히 입항했다.
그리고 북미왕국의 수송선들이 하나둘 선착장에 정박하자, 북미왕국의 수송 선단이 보인다는 보고에 급히 선착장으로 나와 기다리고 있던 정보국 소속 유철승은 맨 처음으로 정박한 북미왕국의 수송선에 올랐고.
이에 북미왕국 수송선의 갑판 위에 있던 정보국 소속 공작원이자 이번 군사 고문단의 지휘관인 이서빈이 수송선에 올라탄 유철승을 살짝 경계했지만, 대화를 통해 암구호를 주고받으면서 유철승이 정보국 소속의 현지 요원이라는 사실을 확인한 이서빈은 유철승과 통성명을 나눈 후 갑판에서 고개를 돌려 푸에르토 바야르타 항을 바라보며 물었다.
“헌데 무슨 일 있습니까? 어째 항구의 분위기가 많이 어수선한 것 같은데...”
“그럴 겁니다. 며칠 전 과나후아토에서 혁명이 일어났거든요.”
에스파냐 입장에서야 누에바 에스파냐 주민들이 식민지 정부에 반발해 들고 일어난 것이 반란이겠지만, 누에바 에스파냐 주민들 입장에서는 반란이 아닌 혁명이었다.
그렇기에 누에바 에스파냐 주민들을 돕는 유철승은 과나후아토의 일을 혁명이라 언급했고.
이 대답에 이서빈은 움찔했다.
이서빈이 새김포에서 배에 오를 때까지만 하더라도, 누에바 에스파냐에서는 분위기만 흉흉할 뿐, 아직 식민지 정부와 누에바 에스파냐 주민들 간의 충돌은 없었으니 말이다.
“그게 정말입니까? 과나후아토면 중부에 있는 광산 도시 아닙니까.”
이서빈은 이번 군사 고문단의 지휘관으로 꽤 오랫동안 누에바 에스파냐인들을 도와 이곳에서 활동해야 하는 만큼, 지휘관으로 낙점되었을 때부터 정보국에서 내어준 누에바 에스파냐와 관련된 보고서와 지도들을 질리도록 보았기에, 머릿속에서 누에바 에스파냐의 지도를 떠올리며 질문하자, 유철승이 고개를 끄덕였다.
“정말입니다. 그러니까 그게 어떻게 된 일이냐면...”
유철승은 이서빈이 수송선을 타고 이곳으로 오는 사이 누에바 에스파냐에서 벌어진 일들을 자세히 설명하기 시작했고.
이서빈은 이를 유심히 듣다가 유철승의 설명이 모두 끝나자 입을 열었다.
“흐음...과나후아토의 소식이 알려지면서 다른 지역의 누에바 에스파냐인들도 들고 일어났다면, 이곳도?”
“그렇습니다. 아시겠지만, 누에바 에스파냐 서부 해안 도시 가운데 아카풀코 항을 제외하면, 다른 항구들은 누에바 에스파냐 식민지 정부의 영향력이 강하지 않습니다. 그렇기에 과나후아토에서의 일이 알려지고, 다른 지역의 주민들도 하나둘 식민지 정부에 대항해 들고 일어났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이 푸에르토 바야르타의 주민들 역시 모두 들고 일어났지요. 바로 그저께 말입니다.”
누에바 에스파냐의 서부 해안 도시들 가운데 아카풀코 항은 여전히 누에바 에스파냐 서해안의 중심이었다.
북미왕국의 등장으로 아시아 무역의 중요성이 떨어지긴 했지만, 차나 향신료의 경우는 아시아 무역을 통해서 얻을 수 있는 만큼, 아시아 무역의 중심지인 아카풀코 항의 중요성은 여전했고.
북미왕국이 동남아시아에 진출하고, 7함대를 창설해 동남아시아 해역을 안정시키면서, 북미왕국도 이득을 보았지만, 필리핀 총독부 역시 이를 통해 막대한 이득을 취했다.
동남아시아 해역에 들끓던 해적들이 점차 사라지면서, 필리핀 총독부는 주변과의 교역을 통해 더 많은 이득을 얻을 수 있었고, 이렇게 얻은 이득을 대부분 본국으로 보냈으니, 자연히 아시아 무역의 거점 항구인 아카풀코 항이 발전할 수밖에 없었달까.
또한, 파나마 운하가 개통되면서 유럽의 배들이 파나마 운하를 통해 아시아로 향했는데, 바람과 상관없이 바다를 누빌 수 있는 북미왕국의 선박들과는 달리, 유럽의 선박들은 범선이라 바람을 이용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기에 파나마 운하를 통해 대서양에서 태평양으로 이동한 유럽의 선박들은 바로 태평양을 횡단하기보다는 일단 해안가를 따라 북상해 아카풀코 항에서 물자를 가득 싣고 태평양을 횡단하는 만큼, 아카풀코는 점차 발전할 수밖에 없었고.
여기에 북미왕국과 누에바 에스파냐가 교류하다 보니, 태평양 방면의 연안 무역이 활발해지면서, 자연스레 누에바 에스파냐 서해안 도시들이 발전하기 시작하자 아카풀코는 누에바 에스파냐 서해안의 중심 항구가 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아카풀코 항이 그렇게 누에바 에스파냐 서해안의 중심 항구로 계속 발전하다 보니, 식민지 정부에서는 가장 중요한 아카풀코 항의 관리에 더욱 신경 쓸 수밖에 없었고, 자연히 다른 항구들의 관리는 조금씩 소홀해지면서, 누에바 에스파냐 서해안 항구 도시들에 식민지 정부의 영향력이 줄어들고 있다는 사실은 정보국이 건네준 보고서에도 쓰여 있었기에, 이서빈이 유철승의 설명에 이곳의 상황을 완전히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서 이렇게 어수선한 거로군요.”
“그렇습니다.”
“헌데, 나름 질서가 유지되는 것을 보면, 정보국에서 개입한 겁니까?”
유철승의 설명에 따르면, 이미 이 푸에르토 바야르타 항을 통치하던 식민지 정부의 관리들은 이곳의 주민들에게 쫓겨난 후였으니, 이곳은 혼란스러워야 했다.
헌데, 항구의 분위기가 어수선하기는 했어도, 나름대로 질서가 유지되는 모습이 보였고, 북미왕국의 수송선이 선착장에 정박하자, 수송선에 실린 물자를 하역하기 위한 일꾼들이 대기하고 있는 모습에 이서빈이 유철승에게 묻자, 유철승이 빙긋 웃으며 대답했다.
“그렇습니다. 이 푸에르토 바야르타 항은 멕시코 서부 주요 도시 중 하나이자 정보국에서 개입해 만들어진 혁명 조직의 거점인 과달라하라와 육로로 연결되어 있으니, 본국의 지원 물자로 혁명 조직을 키우려면 이 푸에르토 바야르타 항의 확보가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판단했습니다. 해서 이곳에서 아국에 정보를 보내주던 정보원들을 모두 움직였고, 덕분에 이 푸에르토 바야르타 항을 장악한 혁명 세력의 지휘부에 정보원 몇 명을 끼워 넣을 수 있었고요.”
원래 정보국에서는 멕시코 서부의 주요 도시 중 한 곳인 과달라하라를 혁명의 거점으로 점찍어두고 있었다.
이 과달라하라는 누에바 에스파냐의 수도인 멕시코시티에서 북서쪽으로 약 460km 떨어진 곳에 위치한 도시로, 도시 주민들이 식민지 정부에 강한 불만을 품고 있기도 했고, 정보국 소속의 정보원들을 관리하는 중간 관리자인 디에고가 이 과달라하라에서 나름대로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는 인물이라, 디에고를 움직여 과달라하라에서 처음으로 혁명의 불꽃을 일으킬 계획이었던 것이다.
물론 과나후아토에서 한발 먼저 충돌이 일어나면서 계획이 조금 틀어졌지만, 디에고는 과나후아토의 주민들이 식민지 정부와 충돌했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곧바로 준비해 둔 혁명 조직을 움직여 과달라하라를 장악했고.
그런 만큼, 정보국으로서는 디에고가 지휘하는 과달라하라 혁명 조직을 우선할 수밖에 없었고, 그러다 보니 북미왕국으로서는 과달라하라에서 가장 가까운 항구인 푸에르토 바야르타 항의 확보가 무엇보다 중요할 수밖에 없었다.
해서 유철승은 푸에르토 바야르타항에서 과달라하라로 보낼 물자들을 실은 북미왕국 수송선이 오기만을 기다리고 있다가, 상황이 변하자 즉각 이곳에서 정보를 수집하던 정보원들을 움직여 푸에르토 바야르타 혁명 세력의 지휘부에 약간의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게 되었고.
이러한 유철승의 설명에 이서빈은 만족스럽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거 다행이군요. 이곳이 혼란스러웠다면, 수송선에 실린 물자를 하역하고 과달라하라까지 옮기기가 쉽지 않았을 테니 말입니다.”
물론, 이곳이 혼란스럽다 해도, 자신들에게는 큰 위협이 되지는 못할 것이다.
자신들은 북미왕국 상인으로 위장하고 있으니, 누에바 에스파냐인들이 미치지 않고서야 자신들을 공격할 리가 없었으니까.
그리고 공격한다 해도, 충분히 격퇴할 수 있었고.
다만, 그런 상황이면 북미왕국으로서는 귀찮을 수밖에 없었을뿐더러, 200명의 인원으로 이번에 가져온 수많은 물자를 이곳 푸에르토 바야르타 항에서 과달라하라까지 운반하려면 엄청나게 고생할 것이 뻔했는데, 유철승이 발 빠르게 움직인 덕분에 쉽게 물자를 운반할 수 있을 것 같아 이서빈이 기쁨을 감추지 못하자 유철승이 슬쩍 웃으며 대꾸했다.
“예. 그리고 정보원들을 통해, 물자를 신속히 옮길 수 있도록 마차까지 준비해두었으니까요.”
“호오. 그렇습니까? 허면 빠르게 과달라하라로 물자를 옮길 수 있겠군요?”
“예. 7일이면 충분할 겁니다.”
“그렇다면야...”
유철승의 대답에 이서빈은 무척 흡족한 표정을 지었다.
이미 누에바 에스파냐인들이 식민지 정부에 대항하기 시작한 만큼, 하루라도 빨리 과달라하라 혁명 조직과 접촉해야 했는데, 유철승의 준비 덕분에 이동 시간을 꽤나 단축할 수 있었으니.
그리고 이곳 푸에르토 바야르타에서 과달라하라까지 지형이 험한 편이었다.
중간에 산맥이 가로막고 있을뿐더러, 과달라하라는 고원 지대에 위치했으니, 물자들을 가지고 고원 지대로 이동해야 하는데 그게 어디 쉽겠는가.
헌데 유철승 덕분에 고생을 덜 수 있었기에 이서빈이 다행이라는 미소를 짓고 있을 때, 유철승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다만, 계속해서 이 푸에르토 바야르타 항을 저희가 이용할 생각이잖습니까. 그러니 정보국에서 이곳을 장악한 혁명 세력의 지휘부에 더 큰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일부 물자를 이곳에 풀었으면 합니다만...”
“아. 그러시지요. 그렇지 않아도, 도끼나 정글도 같은 철제 무기들도 엄청나게 가져왔으니까요.”
머스킷의 경우는 북미왕국에서 생산하지 않았기에 잉글랜드에서 사 올 수밖에 없었고, 그렇기에 숫자에 한계가 있었지만, 도끼나 정글도 같은 철제 무기들은 달랐다.
특히, 북미왕국은 여러 부족들과 교류하면서 철제 무기들도 하나의 교역품으로 사용하고 있는 터라, 생산량도 넘쳐났고.
또한, 철제 무기의 경우는 북미왕국에서 따로 관리하지 않는 품목이다 보니, 마음껏 넘겨도 별다른 부담이 없었다.
그렇기에 북미왕국에서는 철제 무기들을 왕창 실어 보냈고.
해서 이서빈이 이를 언급하자 유철승이 활짝 웃었다.
“오. 그렇습니까? 솔직히 일반 물자만 있어도 정보원들이 혁명 세력의 지휘부를 장악하는 것은 쉬울 텐데 당장 필요한 철제 무기라니...하하하. 이거 일이 쉬워지겠군요.”
“그럴 겁니다. 그리고 본국에서는 앞으로도 계속 물자들을 보내주기로 한 만큼, 이를 이용하면 손쉽게 이 푸에르토 바야르타 혁명 세력의 지휘부를 장악할 수 있을 겁니다.”
이서빈의 대답에 유철승이 고개를 끄덕였고.
그렇게 이서빈과 유철승이 대화하는 사이 2척의 수송선도 모두 선착장에 정박하자 유철승이 입을 열었다.
“수송선들이 모두 정박했으니, 일단 물자부터 하역하도록 하지요.”
“알겠습니다. 저희도 돕도록 하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