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조선을 탈출하라-829화 (829/850)

#829

“음? 자네 둘이 함께 방문한 것을 보니...무슨 일이 터진 건가?”

정성국은 함께 집무실을 방문한 조용한 곰과 음흉한 여우를 보고 들고 있던 보고서를 내려놓으며 질문을 던졌고.

정성국의 질문에 조용한 곰이 음흉한 여우를 바라보며 눈짓하자, 음흉한 여우가 입을 열었다.

“누에바 에스파냐에서 대규모 반란이 일어났습니다.”

“으음...”

예상했던 일이었지만, 막상 누에바 에스파냐에서 반란이 일어났다고 하니, 정성국은 자신도 모르게 신음을 흘렸다.

특히, 북미왕국은 이번 누에바 에스파냐의 반란에 개입할 예정이니만큼, 그리고 일이 잘 풀리면 모를까, 잘 풀리지 않는다면 북미왕국의 발전에 제동이 걸릴 수도 있다는 생각 때문에 정성국은 음흉한 여우의 보고에 부담을 느낄 수밖에 없었고.

해서 정성국이 심란한 표정을 짓고 있을 때, 음흉한 여우의 목소리가 들려왔고, 이에 정성국은 잡념을 털어내고 음흉한 여우를 바라보았다.

“5일 전, 과나후아토에서 감독관과 부역에 동원된 이들 간에 큰 충돌이 발생했다고 합니다.”

“뭐? 과나후아토? 멕시코 중부 지역의 도시를 말하는 건가?”

“그렇습니다.”

과나후아토는 누에바 에스파냐의 수도인 멕시코시티에서 북서쪽으로 약 270km가량 떨어진 곳에 위치한 도시로, 원래는 원주민들이 거주하던 작은 마을에 불과했지만, 1548년 과나후아토 인근에서 은이 발견되면서 누에바 에스파냐로 이주한 에스파냐인들이 몰리며 커다란 도시로 발전했다.

여기에 과나후아토 인근 마을에서도 각종 광맥이 발견되면서, 과나후아토의 가치가 높아지자 에스파냐에서는 이 지역의 치안 확보를 위해 요새를 건설하고 병력을 주둔시켰고.

이곳에서 캐내는 광물들은 대부분 북미왕국에서 수입하고 있기에, 정성국 역시 과나후아토의 사정을 어느 정도 알고 있었고, 이 때문에 정성국은 과나후아토에서는 별다른 충돌이 벌어지지 않을 거라 판단했다.

과나후아토 주민들이 식민지 정부에 반기를 들어봐야 순식간에 제압당할 것이 뻔했고, 정성국도 아는 사실을 과나후아토 주민들이 모를 리 없는 만큼, 어느 정도 몸을 사릴 것으로 여긴 것이다.

헌데 예상과는 달리 이 과나후아토에서 먼저 충돌이 발생했다고 하니 정성국은 살짝 당황했고.

이런 정성국의 반응에 음흉한 여우가 자세한 상황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아시다시피 누에바 에스파냐 식민지 정부는 세금뿐만 아니라 부역을 늘리지 않았습니까. 그러니 부역에 동원되어 과나후아토 인근 광산에서 일하고 있던 이들은 자연히 작업 기간이 몇 배로 늘어난 셈이고요.”

“음? 그것 때문에 충돌이 일어났다고?”

물론, 부역에 동원되어 과나후아토 인근 광산에서 일하고 있던 누에바 에스파냐 주민들로서는 불만이 팽배할 수밖에 없긴 했다.

원래였다면 45일 동안 광산에서 일하며 노동력을 제공하면 그만인데, 식민지 정부에서 갑작스레 부역을 늘리면서 무려 150일 가까이 광산에서 일해야 했으니, 어찌 불만을 품지 않겠는가.

다만, 부역의 기간이 늘어난 것에 불만을 품고 들고 일어날 거였다면, 진작에 들고 일어났어야 했다.

그런데 부역에 동원된 누에바 에스파냐 주민들이 식민지 정부의 정책에 반발하여 봉기하는 것보다 침묵을 선택한 것은 역시 들고 일어나봐야 과나후아토 인근에 주둔한 병력이 자신들을 곧바로 진압할 거라는 두려움 때문일 것이 뻔해 보였고.

헌데 인제 와서 그 문제 때문에 감독관과 충돌했다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아 보였기에 정성국이 고개를 갸웃하자 음흉한 여우가 고개를 저었다.

“물론 그건 아닙니다. 다만, 그렇게 작업 기간이 3배 가까이 늘어나면서 가뜩이나 불만이 팽배해 있는 상황이었는데, 감독관이 캐내는 광물의 양이 적다는 이유로 작업량마저 늘리라는 명령을 내렸다고 합니다.”

“뭐? 작업량까지?”

“예. 듣자니 감독관이 명령한 작업량을 맞추려면, 휴식 시간과 잠자는 시간까지 줄여가면서 일해야 한다고 하더군요. 그뿐만 아니라, 감독관이 정한 하루 작업량을 채우지 못한 이들은 제대로 노동력을 제공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벌금마저 부과한다고 선언했답니다. 그러니 누에바 에스파냐 주민들이 가만히 있을 수 있겠습니까.”

음흉한 여우의 설명에 정성국은 혀를 찼다.

물론 누에바 에스파냐 주민들로서는 인근에 주둔한 에스파냐군이 두려웠을 것이다.

허나 인근에 주둔한 에스파냐군이 두려워 가만히 있다가는 부역이 끝나더라도 집으로 돌아가기보다는 광산에서 노예처럼 일해야 할 거라는 것쯤은 충분히 짐작할 수 있었을 테고.

작업량을 채우지 못했다는 이유로 벌금을 부과했을 때, 이 벌금을 바로 낼 수 있는 이들이 몇이나 되겠는가.

자연히 이 벌금은 빚이 될 텐데, 감독관이 이 빚에 이자라도 매기는 순간, 영원히 광산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될 것은 뻔했으니.

그러니 부역에 동원되어 광산에서 일하던 누에바 에스파냐 주민들은 두려움을 이겨내고 감독관에게 덤볐으리라.

이러한 상황을 대충 짐작한 정성국이 혀를 차고 있을 때, 음흉한 여우가 설명을 계속했다.

“해서 광산에서 일하던 이들이 곡괭이를 들고 감독관을 공격하면서 충돌이 발생했고, 광산을 경비하는 경비병이 이들을 막으려 했지만, 고작 수십 명이 분노해 곡괭이를 휘두르는 수천 명의 광부를 상대하긴 불가능했지요.”

“그렇겠지. 하지만 과나후아토에는 에스파냐군이 주둔해 있잖아? 그들이 출동했을 텐데?”

“예. 광산에서 소요 사태가 벌어졌다는 보고에 과나후아토에 주둔하고 있던 에스파냐군은 즉각 이를 진압하기 위해 나섰답니다. 헌데 전하께서도 아시다시피 과나후아토 인근에는 광산이 참으로 많지 않습니까.”

음흉한 여우가 씩 웃으며 이렇게 대답하자, 정성국은 일이 어떻게 흘러간 것인지 대충 짐작하고 중얼거렸다.

“아. 소문을 듣고 주변 광산에서 일하던 이들도 일제히 봉기한 모양이군.”

“그렇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세금과 부역 문제로 식민지 정부에 불만을 품고 있던 과나후아토 주민들까지 봉기했고, 사태가 이렇게 흘러가자 광산의 소요 사태를 진압하기 위해 나선 에스파냐군은 일단 요새를 지키고 에스파냐인들을 보호하기 위해 회군했고, 덕분에 식민지 정부의 정책에 반발해 봉기를 일으킨 누에바 에스파냐 주민들은 시간을 확보할 수 있었지요.”

“과나후아토의 일을 주변에 알릴 시간 말이지?”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정성국이 음흉한 여우를 바라보며 묻자, 음흉한 여우가 빙긋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맞습니다. 그리고 과나후아토의 주민들이 모두 들고일어났다는 사실이 주변에 알려지면서, 다른 도시의 주민들도 하나둘 식민지 정부에 반기를 들고 일어나기 시작했고, 덕분에 최근 올라온 보고에 따르면 누에바 에스파냐 식민지 정부는 수도인 멕시코시티를 기준으로 북쪽 지역의 경우 통제력을 거의 잃었다고 봐도 될 겁니다.”

“허. 그래?”

멕시코시티를 기준으로 북쪽의 통제력을 잃었다는 뜻은, 최소한 멕시코 중부까지는 반란세력들에 의해 넘어갔다는 소리였기에 정성국은 생각보다 거센 반란의 불길에 탄성을 터트렸고.

그런 정성국의 반응에 음흉한 여우가 덧붙여 말했다.

“예. 그리고 시간이 흐를수록 식민지 정부의 통제력은 더욱 악화되겠지요.”

“음...하지만 멕시코시티나 베라크루즈에 주둔해있는 병력이 반란을 진압하기 위해 움직인다면, 상황이 달라질 것 같은데?”

누에바 에스파냐에 배치된 에스파냐군 중 대부분은 수도인 멕시코시티와 누에바 에스파냐와 에스파냐 본국을 연결해주는 항구인 베라크루즈에 배치되어 있었다.

그러니 이들이 움직이기 시작한다면, 반란의 불길이 계속 번지기만 할 것 같지는 않아 정성국이 이를 지적하자 음흉한 여우가 말했다.

“괜찮습니다. 2일 후면, 아국이 보낸 군사 고문단과 무기를 비롯한 각종 물자가 푸에르토바야르타 항에 도착할 테니, 반란세력도 제대로 된 조직을 갖출 테고, 누에바 에스파냐군을 상대할 제대로 된 병력 또한 확보할 수 있을 테니까요.”

이에 그동안 침묵해 있던 조용한 곰이 이 대화에 끼어들었다.

“하지만, 제가 보고받기로 이번에 누에바 에스파냐로 보낸 머스킷은 고작 3천 자루가 전부 아닙니까. 그걸로 당장 2만 명에 달하는 에스파냐군을 상대하긴 쉽지 않을 것 같은데...”

“그야 그렇습니다만, 각지에서 봉기가 일어나고 있기에, 식민지 정부는 병력을 쪼개서 각지에 파견할 수밖에 없을 겁니다. 그러니 이를 잘만 이용한다면, 아국에서 추가로 무기와 물자를 지원해줄 때까지는, 충분히 버틸 수 있으리라 판단합니다.”

음흉한 여우의 대답에 조용한 곰은 일리가 있다고 여겨 수긍했지만, 오히려 정성국이 조금 걱정스럽다는 얼굴로 끼어들었다.

“멜키오르 부왕은 전쟁터를 전전했으니, 오히려 과감하게 나설 수도 있을 것 같은데?”

“오히려 경험 많은 멜키오르 부왕이기에 병력을 쪼개서 운용하리라 판단하고 있습니다.”

“응? 그게 무슨 소린가.”

음흉한 여우의 대답에 정성국이 의아한 얼굴로 음흉한 여우를 바라보자, 음흉한 여우가 빙긋 웃으며 대답했다.

“그동안 수많은 전쟁터를 전전하며, 전투에 이골이 난 용병, 그리고 무장이 충실한 타국의 병력과 상대해 온 멜키오르 부왕이, 제대로 된 무기도 없이 농기구로 무장한 반란군을 경계할 리가 없지 않습니까.”

“아...”

분명 멕시코 중부의 누에바 에스파냐 주민들 대부분이 반란에 가담한 만큼, 에스파냐군이 상대해야 할 병력 규모는 어마어마할 것이다.

그렇기에 전투 경험이 부족한 이라면 이 숫자에 두려움을 느낄 테지만, 멜키오르 부왕은 전투 경험이 많은 만큼, 반란군의 전투력이 별 볼 일 없다는 것을 알고 있을 테니, 반란군의 규모에 현혹되지 않고 빠르게 반란을 진압하기 위해 병력을 쪼개 각 지역으로 파견할 거라는 음흉한 여우의 예측에도 일리가 있었고.

해서 정성국은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열었다.

“일리가 있는 말이군. 다만, 우리가 전해준 머스킷으로 무장한 반란군이 에스파냐군 중 일부를 격파하는 순간, 상황이 바뀔 수도 있네. 멜키오르 부왕은 꽤 뛰어난 지휘관 같으니까.”

“흠. 확실히...그럴 가능성이 있지요.”

“그러니, 최대한 빠르게 더 많은 지원 물자들을 보내는 데 힘써주게.”

“알겠습니다. 전하.”

음흉한 여우가 정성국의 명령에 수긍하자, 정성국은 고개를 돌려 조용한 곰을 바라보고 말했다.

“그리고 누에바 에스파냐에서 반란이 발생한 만큼, 에스파냐 대사가 더 난리를 칠 것 같은데...”

북미왕국의 신문들에 누에바 에스파냐인들을 돕자는 모금 광고가 나간 이후, 에스파냐 대사관에서는 신문사들과 접촉해 이 모금 광고를 내리기 위해 노력하고 있었고, 에스파냐 대사는 매일같이 외무청을 방문해 북미왕국의 신문에 이러한 광고가 실린 것을 항의하면서, 정보국이 신분을 가리기 위해 내세운 단체인 멕시코인 연합회가 누에바 에스파냐의 반란을 조장하고 있으니 무언가 조치를 취해 달라고 요구하는 것을 잘 알고 있는 정성국이었다.

그렇기에 누에바 에스파냐에서 반란이 발생했다는 것이 알려지는 순간, 에스파냐 대사는 더욱 난리를 칠 것이 분명했고.

특히, 이번 모금 광고를 통해 상당수의 자금이 모였다는 것을 아는 에스파냐 대사였으니, 이 자금이 누에바 에스파냐의 반란 세력에게로 흘러 들어가는 것을 어떻게든 막으려 들 것이 분명했고, 해서 정성국이 이 부분을 걱정하자 조용한 곰이 대수롭지 않은 표정으로 말했다.

“분명 그렇겠지요. 다만, 어차피 에스파냐 대사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으니, 전하께서 신경 쓰실 필요는 없을 것 같습니다.”

“그래? 나는 에스파냐 대사가 식민지를 보유한 잉글랜드, 프랑스, 포르투갈을 끌어들일 수도 있으리라 생각하는데...”

정성국의 지적에 조용한 곰이 씩 웃으며 대답했다.

“이미 잉글랜드, 프랑스, 포르투갈 대사와 만나 사전 작업을 해 두었습니다. 그러니 에스파냐 대사는 절대로 저들을 끌어들이지 못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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