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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을 탈출하라-828화 (828/850)

#828

한창 본국에서 보낸 지령문을 확인하고 있던 정보국 요원 유철승은 문밖에서 발걸음 소리가 들리자 슬쩍 긴장했고.

발걸음 소리가 점차 가까워지다 자신의 방문 앞에서 멈추고 누군가가 방문을 두드리자, 유철승은 바짝 긴장하면서 혹시나 하는 마음에 탁자 위에 놓여 있는 본국에서 보낸 지령문들을 급히 회수하며 입을 열었다.

“밖에 누군가.”

“접니다. 디에고.”

문밖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유철승은 동작을 멈추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디에고는 누에바 에스파냐 서부 지역의 정보를 관리하는 중간 관리자였으니까.

“아. 들어오게.”

유철승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방문이 열리며 작은 키와 까무잡잡한 피부가 인상적인 디에고가 방안으로 들어왔고.

유철승은 그런 디에고를 보며 품 안에 구겨 넣었던 지령문들을 다시 탁자 위에 올려놓으며 인사했다.

“오랜만이네.”

하지만 디에고는 유철승의 인사에 툴툴거리듯 대꾸했다.

“일주일 전에도 봤는데 오랜만은 무슨. 그보다 북미왕국에선 아직도 아무런 연락이 없는 겁니까?”

디에고의 반응에 유철승은 쓰게 웃었다.

디에고는 이번에 멜키오르 부왕이 일방적으로 세금을 올리고 과다한 부역을 백성들에게 부과하면서 무척이나 분노했었다.

물론 디에고는 정보국 소속의 정보원이기도 했지만, 본인과 가족, 친척, 친구들이 모두 누에바 에스파냐에서 사는 터라, 유철승 역시 그의 분노를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고.

헌데 디에고는 단순히 멜키오르 부왕의 정책에 분노하는 것을 넘어, 이 기회에 누에바 에스파냐인들이 에스파냐의 속박에서 벗어나 시베리아 부족 연합이나 앙골라 장가처럼 독자적으로 나라를 세우기를 바랐다.

그리고 디에고가 보기에 이게 아예 불가능할 것 같지는 않았다.

최소한 자신이 관리하고 있는 누에바 에스파냐 서부 지역의 경우, 주민 대부분이 멜키오르 부왕의 정책에 강하게 반발하면서 공공연히 들고 일어날 기미가 보였으니까.

다만, 디에고는 그 위치상 여러 정보를 접할 수 있었고, 그렇기에 누에바 에스파냐에 주둔해있는 에스파냐군의 전투력을 생각하면, 설사 누에바 에스파냐인들이 멜키오르 부왕의 강압적인 정책에 반발해 반란을 일으키더라도, 결국은 진압당할 거라고 보았고.

그렇기에 디에고는 북미왕국에 도움을 요청했다.

북미왕국이 무기와 물자를 충분히 지원해준다면, 자신들을 진압하려는 에스파냐군을 상대해 볼 만 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해서 디에고는 자신과 누에바 에스파냐의 정보를 총괄하는 자신의 상관을 연결해주는 유철승에게 자신의 뜻을 알리며 북미왕국에 도움을 요청했고.

하지만 디에고가 북미왕국에 도움을 요청한 지도 꽤 시간이 흘렀는데, 북미왕국에서는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기에 디에고는 점차 초조해졌다.

멜키오르 부왕이 누에바 에스파냐인들의 반발을 의도적으로 무시하면서, 현재 누에바 에스파냐의 분위기는 무척이나 험악했고, 약간의 불씨만 있어도 순식간에 반란의 불길이 타오를 것만 같은 분위기인데, 북미왕국의 도움이 없다면 이 반란의 불길은 결국 꺼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해서 디에고가 절박한 표정으로 유철승을 바라보자, 지금까지 항상 이 질문에는 고개를 젓던 유철승이 묘한 표정으로 디에고를 바라보다 입을 열었다.

“그렇지 않아도 자네를 부를 생각이었네.”

“예?! 그러면...드디어 북미왕국에서 답이 온 겁니까?”

디에고가 잔뜩 긴장한 표정으로 자신을 바라보자, 유철승은 빙긋 웃으며 디에고에게 말을 건넸다.

“그렇네. 본국에서는 비공식적으로 자네들을 지원하기로 했다는군. 축하하네.”

유철승은 자신의 대답에 디에고가 무척이나 기뻐하리라 여겼다.

다만, 이곳은 여관이라 디에고가 목소리를 높여 봐야 좋을 것 없는 만큼, 디에고가 호들갑을 떨면 바로 이를 말릴 생각이었고.

헌데, 의외로 디에고는 유철승의 대답에 복잡미묘한 표정을 지었고, 이에 유철승이 디에고에게 뭐가 문제냐는 시선을 보내자, 디에고가 조심스럽게 되물었다.

“비공식적으로요?”

이에 유철승은 디에고가 왜 복잡미묘한 표정을 지었는지를 짐작하고 피식 웃으며 입을 열었다.

“그래. 비공식적으로. 자네도 바깥소식을 어느 정도 알고 있으니, 아국이 공식적으로 자네들을 돕기는 어렵다는 것쯤은 알고 있지 않나.”

물론 디에고 역시 이러한 사실을 모르지는 않았다.

북미왕국이 시베리아 지역에 개입했을 때는 러시아 차르국과 마찰을 빚은 상태였고, 브라질 지역에 개입했을 때는 포르투갈과 외교 관계를 끊은 상태였지만, 누에바 에스파냐의 경우는 사정이 완전히 달랐으니까.

다만, 디에고는 북미왕국과 관련해 이런저런 정보를 파악하고 있었기에 혹시나 하는 마음을 품고 있었고.

해서 디에고가 유철승의 눈치를 보다가 슬쩍 이를 털어놓았다.

“...그렇기야 하지요. 다만 북미왕국 국왕 전하의 성정을 생각하면, 그리고 북미왕국의 국력을 생각하면 공식적으로 저희를 도와줄 수도 있다고 생각했습니다만...”

디에고의 말에 유철승은 바로 고개를 저었다.

“물론 아국의 국력이 다른 나라보다 월등히 강력하기는 해. 그러나 아국이 공식적으로 자네들을 돕는다면, 식민지를 보유한 유럽의 다른 나라들이 아국을 무척 경계할 테니, 현실적으로는 무리지. 그리고 아국의 국왕 전하의 성향을 생각하면, 자네 말대로 누에바 에스파냐인들의 처지를 안타까워하시며 이번 일에 공식적으로 개입하는 방안을 검토하셨을 것 같기는 한데, 마찬가지의 이유로 결국은 비공식적으로 지원하기로 결론을 내리신 거겠지.”

“...그렇습니까.”

유철승의 말에 디에고는 북미왕국의 결정에 아쉬움을 감추지 못했지만, 그래도 비공식적으로나마 북미왕국의 지원을 받게 되어 에스파냐군에 대항할 수 있게 되었으니 이것만 해도 어디냐는 생각을 하며 아쉬움을 털어냈고.

그런 디에고의 귓가에 자신만만한 유철승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래도 아국이 자네들을 비공식적으로 지원하는 대신, 자네들에게 제공할 무기와 물자의 양은 자네 생각보다 많을 걸세.”

“어? 그렇습니까?”

유철승의 말에 디에고가 고개를 들며 기대 섞인 눈초리로 유철승을 바라보자, 유철승이 씩 웃으며 대답했다.

“그래. 일단 순차적으로 들어오긴 하겠지만, 2만 명을 무장시킬 수 있는 머스킷과 이들이 사용할 물자들을 보내줄 걸세.”

“오! 2만 명이나요?!”

유철승의 대답에 디에고는 나직하게 탄성을 질렀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이전에 안토니오 부왕이 누에바 에스파냐를 안정적으로 통치하면서, 누에바 에스파냐에 주둔한 병력은 점차 줄어들어, 현재 누베아 에스파냐에 배치된 정규군은 2만 명이 채 안 되었으니, 북미왕국에서 2만 명을 무장시킬 수 있는 무기와 물자를 보내준다면, 충분히 해볼 만하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

해서 디에고가 기뻐 어쩔 줄 모르고 있을 때, 유철승이 덧붙여 말했다.

“그래. 더불어 본국에서는 200명 규모의 군사 고문단도 파견하기로 했고.”

“군사 고문단을요? 비공식적이라면서요?”

유철승의 말에 디에고는 기쁘면서도 의아한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비공식적으로 지원한다기에, 디에고는 북미왕국의 지원이 당연히 물자 지원에서 끝날 줄 알았다.

그래서 디에고가 아쉬워한 것이고.

특히, 디에고가 생각하기에 이번 봉기가 성공하려면, 결국 에스파냐군을 격파해야 했는데, 누에바 에스파냐인들 가운데 군사적인 지식이 있는 이들이 거의 없다 보니, 에스파냐군의 격파가 생각보다 쉽지 않아 보였다.

물론 현재 누에바 에스파냐의 분위기를 생각하면, 에스파냐에 불만을 품고 봉기할 이들만 최소 수십만에 달할 테지만, 에스파냐군이 전투 경험이 많은 정예군이라는 것을 생각해보면, 이들이 에스파냐군을 격파할 수 있을 거라는 확신이 들지 않았고.

헌데 북미왕국에서 무기와 물자뿐만 아니라 200명 규모의 군사 고문단을 보내준다면, 군사 고문단의 도움으로 에스파냐군에 맞설 수 있는 제대로 된 군대를 조직할 수 있을 테고, 그럼 에스파냐군을 확실히 격파할 수 있을 테니, 디에고는 기뻐할 수밖에 없었다.

다만, 북미왕국에서 군사 고문단을 파견한다면, 당연히 말이 퍼질 수밖에 없었다.

특히, 북미왕국인들과 자신들은 피부색이나 생김새가 미묘하게 달랐기에.

그리고 이러한 사실을 북미왕국이 모를 것 같지 않았는데 군사 고문단을 파견해준다고 하니, 디에고가 의아한 표정으로 유철승을 바라보았고.

이에 유철승이 슬쩍 미소지으며 입을 열었다.

“물론 비공식적이지. 그렇기에 북미왕국에서 파견해주는 군사 고문단은 일종의 의용군으로 알려질 걸세. 그러니 자네가 소문을 좀 내줘야겠어.”

“예? 의용군이요? 그리고 소문?”

“그러니까...”

* * *

디에고는 유철승과 이야기를 끝낸 후, 자신의 집으로 돌아와 자신과 뜻을 함께하는 친구들을 집으로 초대했고.

친구들이 도착하자 술을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뭐? 그게 정말이야? 정말 북미왕국에서 도와준대!?”

이미 디에고는 친구들에게 슬쩍 언질을 해 두었다.

북미왕국의 도움을 요청해보겠다고.

물론 자신이 북미왕국 정보국에 속한 정보원이라는 사실을 밝힌 것은 아니었다.

그저 장사하다 보니 북미왕국에 아는 사람이 몇 생겼는데, 이들 중에는 외무청 관리도 있으니, 한 번 도움을 요청해 보겠다고 적당히 꾸며서 이야기했었달까.

물론, 친구들은 디에고의 말에 회의적인 반응을 보였다.

과연 북미왕국이 자신들을 돕겠는가 하는 생각이 들었으니까.

다만, 이들도 디에고를 통해 다른 누에바 에스파냐인들보다는 북미왕국에 대해 어느 정도 알고 있었고, 북미왕국이 원주민들을 도와 유럽 세력을 몰아내고, 나라를 건국하는 데 도움을 주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에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기다리고 있었고.

헌데 디에고가 북미왕국에서 도움을 받을 수 있다고 이야기하자 디에고의 친구들은 잔뜩 상기된 표정으로 되물었고, 이에 디에고는 의뭉스러운 표정으로 대답했다.

“음. 정확히는 북미왕국에서 돕는다고 한 게 아니야. 북미왕국인들이 돕겠다고 나선 거지.”

“응? 그게 무슨 말이야? 북미왕국에서 돕는 게 아니라 북미왕국인들이 돕겠다고?”

같은 것 아니냐는 표정을 짓는 친구들의 반응에 디에고가 유철승에게 들었던 북미왕국의 상황을 자세히 설명하기 시작했고.

이를 유심히 듣던 디에고의 친구들은 디에고의 설명이 끝나자 무척 놀랍다는 듯 한마디씩 했다.

“허. 북미왕국은 신문과 라디오 방송이라는 것을 통해 정보를 전달한다고는 들었지만...”

“신문에 우리의 사정이 알려지자 북미왕국인들이 우리를 돕기 위해 돈을 보내고, 일부는 직접 우리를 돕겠다고 이곳을 오겠다고 했단 말이야?”

“의외이긴 한데...또 어떻게 생각해보면 전혀 이해 못 할 일은 아니네.”

“응? 그게 무슨 소리야?”

“그래. 너희들도 알잖아? 지금 멕시코 북부 지역은 텅 비었다는 것을.”

“아. 맞다. 멕시코 북부 지역에 살던 주민들이 대부분 북미왕국으로 이주했지? 그들이 현 누에바 에스파냐의 사정을 듣고 우리를 도우려 할 수는 있겠다 싶네.”

이에 디에고가 마지막으로 말한 뚱뚱한 친구의 말에 손가락을 튕기며 끼어들었다.

“정확해. 너희들도 알겠지만, 북미왕국은 부유한 나라로 알려져 있잖아? 그래서인지 북미왕국으로 이주해 정착한 멕시코 출신 이주민들도 북미왕국에서 돈을 꽤 벌었나 보더라고.”

그 말에 디에고의 친구들이 부러움이 섞인 한숨과 탄식을 내뱉었지만, 디에고는 의도적으로 이를 무시하고 계속 이야기했다.

“그러다 언론을 통해 고향의 사정이 무척이나 안 좋다는 것이 알려지면서, 이를 안타깝게 여기고 우리를 돕기 위해 돈을 모으기 시작했고, 일부는 우리를 직접 돕기 위해 이곳으로 오려고 한다고 하네.”

“허. 직접?”

“그래. 듣자니 우리를 돕기 위해 이곳으로 오려는 이들은 대부분 군인 출신이라 군사 훈련까지 받은 이들이라고 하니, 이들이 도와준다면, 충분히 승산이 있을 것 같아.”

디에고의 마지막 말에 친구들은 다들 긴장한 표정으로 디에고를 바라보았고.

뚱뚱한 친구가 떨리는 목소리로 디에고에게 질문을 던졌다.

“그러면...”

이에 디에고는 굳은 표정으로 술잔을 내려놓고 선언했다.

“그래. 슬슬 독립을 위한 준비를 시작하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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