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조선을 탈출하라-827화 (827/850)

#827

“대사님!”

늦게 일어났기에 집무실에서 샌드위치를 먹으며 배를 채우고 있던 북미왕국 주재 에스파냐 대사는 집무실의 문을 벌컥 열고 호들갑을 떠는 보좌관의 행동에 한숨을 내쉬며 반쯤 먹은 샌드위치를 접시에 내려놓고 질문을 던졌다.

“후우. 아침부터 대체 무슨 일이길래 그리 호들갑인가.”

“이 신문들 좀 보십시오.”

그러면서 보좌관은 꽤 많은 숫자의 신문을 탁자 위에 올려두었지만, 에스파냐 대사는 신문들을 흘깃 바라보기만 할 뿐, 제대로 살펴보지도 않고 입을 열었다.

“또 우리 에스파냐를 비난하는 기사가 실린 건가?”

약 3주 전, 처음 애리조나 지역 신문에서 누에바 에스파냐에서 세금과 부역을 대폭 늘려 누에바 에스파냐인들이 고통받고 있다는 내용의 기사가 나간 후, 다른 신문들도 하나둘 비슷한 내용의 기사를 내보냈다.

그리고 그러한 기사의 내용은 점차 수위가 강해져서, 어느덧 누에바 에스파냐의 멜키오르 부왕의 탐욕을 비난하기 시작했고, 더 나아가 그런 멜키오르 부왕을 누에바 에스파냐 부왕으로 임명한 에스파냐 본국까지 비난하는 기사가 실렸고.

이에 에스파냐 대사는 외무청의 조용한 곰이나 친분이 깊은 푸른 안개에게 도움을 요청했지만, 둘 다 펄쩍 뛰었다.

신문사들이 외무청 산하 기관도 아닌데 무슨 수로 기사를 막거나 기사 내용에 간섭하느냐면서.

물론, 에스파냐 대사가 보기엔 그럴듯한 변명에 불과했다.

북미신문은 왕실에서 좌지우지할 수 있는 신문사였고, 다른 신문사들도 설립 당시 왕실의 자본이 흘러 들어갔다는 소문이 있을뿐더러, 설사 그 소문이 거짓이더라도 나라에서 직접 협조를 요청한다면, 그 어느 신문사가 협조 요청에 따르지 않겠는가 싶었기에.

해서 에스파냐 대사는 조용한 곰이나 푸른 안개의 말을 듣자마자 바로 따지고 싶었지만, 결국 침묵을 선택했다.

멜키오르 부왕이 누에바 에스파냐의 정책을 변경하자, 생각지도 않게 북미왕국이 나서서 우려를 표하면서, 최근 북미왕국과 에스파냐의 관계가 조금 심상치 않다 보니, 잘못하면 일이 커질 수도 있다고 여긴 탓이다.

그리고 에스파냐 대사가 조용한 곰과 푸른 안개의 설득에 실패했기에, 신문사들은 이전처럼 계속해서 에스파냐를 비난하는 기사를 내보냈었고, 그렇기에 에스파냐 대사는 보좌관이 신문들을 탁자에 내려놓자 보좌관이 호들갑을 떤 이유가 에스파냐를 비난하는 기사 때문이라고 지레짐작하고 대수롭지 않다는 듯 질문을 던진 것이고.

허나 에스파냐 대사의 예상과는 달리 보좌관이 손을 내저었다.

“아닙니다. 아. 물론 저 신문들에 우리 에스파냐를 비난하는 기사가 실린 것은 맞는데, 제가 이렇게 아침부터 신문들을 가지고 온 것은 단순히 기사 때문이 아닙니다.”

그러면서 어차피 거의 매일같이 실리는 에스파냐를 비난하는 기사 때문에 자신이 호들갑을 떨었겠느냐는 시선을 보내는 보좌관의 말에 에스파냐 대사가 고개를 갸웃했다.

“기사 때문이 아니라고? 그럼 무엇 때문에...”

“여기. 이 광고 좀 보시지요.”

그러면서 보좌관은 맨 위에 놓인 신문을 펴서 신문 하단에 실린 1면 광고를 가리켰고.

에스파냐 대사는 자연스레 보좌관이 가리키고 있는 광고에 눈길을 주었다가, 광고에 쓰여 있는 커다란 글자 내용에 움찔했다.

“에스파냐의 압제에 시달리는 누에바 에스파냐인들을 도와주세요? 설마 이거...”

“맞습니다. 돈을 모금하는 겁니다.”

보좌관의 대답에 에스파냐 대사가 기겁하며 급히 신문을 들어 광고에 적힌 작은 글자까지 모두 읽은 후 신문을 내던지며 소리쳤다.

“이런 미친! 모금한 돈으로 누에바 에스파냐인들 위한 무기를 사서 건네주겠다고?! 이건 누에바 에스파냐인들의 반란을 부추기겠다는 소리잖아!”

“그렇습니다. 그래서 저도 이 광고를 보고 기겁해서 급히 다른 신문들을 찾아보았고, 대다수의 신문 1면에 이러한 광고가 실린 것을 확인하고 급히 보고하러 온 겁니다.”

“허. 대다수의 신문 1면이라고?”

에스파냐 대사는 보좌관의 말에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물론 에스파냐 대사가 정확한 신문 광고의 단가를 알고 있지는 않지만, 신문의 1면 광고가 무척이나 비싸다는 사실은 잘 알고 있었다.

헌데 대다수의 신문 1면 광고에 이러한 모금 광고가 실렸다고 하니, 에스파냐 대사로서는 이게 말이 되나 싶었고.

해서 에스파냐 대사가 다른 신문들의 1면 광고도 살핀 후, 중얼거렸다.

“모금 광고를 낸 단체가 멕시코인 연합회? 단체의 이름을 보아하니...”

“맞습니다. 아무래도 누에바 에스파냐, 정확히는 멕시코 북부 지역에 살다 북미왕국으로 이주한 이들이 만든 단체 같습니다.”

이에 에스파냐 대사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젠장. 그렇지 않아도 멕시코 출신 이주민들 때문에 북미왕국 남부 지역의 분위기가 무척 안 좋아서 걱정했는데, 이런 일이 발생할 줄은...”

“그러게 말입니다. 그리고 북미왕국으로 이주한 멕시코 출신 원주민들이 꽤 많으니, 이들이 이 모금 광고를 보고 기부하기 시작한다면...생각보다 많은 금액이 모일 것 같아, 그것이 걱정스럽습니다.”

보좌관의 지적에 에스파냐 대사가 탄식하며 중얼거렸다.

“젠장. 그럼 지금 이럴 때가 아니군.”

“그렇습니다. 어떻게든 이 광고는 내리게 만들어야 합니다. 더불어, 저 멕시코인 연합회에서 모금 광고로 모은 돈으로 무기를 비롯한 물자를 누에바 에스파냐로 보내지 못하도록 막아야 하고요.”

보좌관의 말이 틀리지 않았기에, 에스파냐 대사는 즉각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알겠네. 일단 나는 외무청으로 가 조용한 곰과 이야기를 나눠볼 테니, 자네는 일단 이 광고를 낸 신문사들에게 연락해, 광고를 내려 달라고 부탁하게.”

이에 보좌관의 안색은 어두워졌다.

처음 애리조나 지역 신문에서 누에바 에스파냐의 정책을 비난하는 기사가 처음 나오고, 다른 신문들도 그 뒤를 따라 누에바 에스파냐는 비판하는 기사를 싣기 시작하자, 당연히 보좌관은 신문사에 전화해 강하게 항의했지만, 신문사들은 에스파냐 대사관의 항의를 전혀 신경 쓰지 않았었다.

이 때문에 결국 에스파냐 대사가 기사를 막기 위해 조용한 곰, 그리고 푸른 안개와 만난 것이고 말이다.

물론, 성과야 전혀 없었지만.

아무튼, 그런 과거가 있다 보니, 자신이 신문사에 전화한다 하더라도, 과연 신문사들이 광고를 내리겠는가 하는 생각이 들 수밖에 없었고.

해서 보좌관은 회의적인 어조로 입을 열었다.

“신문사들이 과연 저희의 부탁을 들어주겠습니까. 특히, 기사도 아니고 광고라면, 돈까지 걸린 문제인데...”

보좌관의 지적에도 일리가 있었기에, 에스파냐 대사는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고.

그러다 에스파냐 대사는 무슨 좋은 생각이라도 떠올랐는지 보좌관을 보고 질문을 던졌다.

“대사관 운영비가 얼마나 남았지?”

이에 보좌관은 에스파냐 대사의 생각을 눈치채고 눈을 크게 떴다.

“...설마 신문사들과 거래를 하라는 말씀입니까?”

“그래. 물론 신문사들의 깐깐한 태도를 생각하면, 우리가 돈을 주는 대신 이 모금 광고를 내려달라고 요청해봐야 무시하겠지. 다만, 우리가 급히 1면 광고를 내고 싶다고 제안한다면, 이야기는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에스파냐 대사의 말에 보좌관은 잠깐 생각에 잠겼다가 중얼거렸다.

“흠. 기존의 광고 단가보다 높은 금액으로 계약을 체결하는 대신, 멕시코인 연합회가 내보낸 모금 광고를 아예 내리고, 차후에도 받지 말아 달라고 협상하라는 거군요.”

“그렇지. 가능할까?”

이에 보좌관은 대사관 운영비를 계산해보다가 떨떠름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남은 대사관 운영비와 예비비를 모두 털어 넣는다면, 불가능할 것 같지는 않은데...차후에 본국에서 따로 운영비를 지원해주지 않는다면, 내년까지 대사관을 운영하는 것이 무척 힘들 겁니다. 거기에 신문사들이 저희의 제안을 모두 받아들일 것 같지도 않고요. 그럼 들인 돈에 비해 효과는 별로일 텐데...그래도 진행해 볼까요?”

“후우. 그래도 아예 손 놓고 있는 것보다야 낫겠지. 바로 신문사들과 협상해보도록 하게.”

“알겠습니다. 아. 헌데 신문사와 협상해 1면 광고 자리를 확보한다 해도, 무슨 광고를 내야할지...”

보좌관의 질문에 에스파냐 대사는 뭘 그런 것을 묻느냐는 얼굴로 대답했다.

“당연히 현재 누에바 에스파냐와 관련한 기사들은 사실을 과장한 기사라는 내용의 광고를 내야 하지 않겠나.”

신문사들의 주요 수입원은 역시 광고였다.

물론 초창기에는 나라에서 나오는 보조금과 신문 판매 대금이 주를 차지했지만, 점차 광고의 효과가 대단하다는 것이 알려지면서 광고 단가가 오르기 시작했고, 덕분에 최근에는 광고로 벌어들이는 수입은 생각보다 컸다.

그리고 이 사실을 보고받은 정성국은 조금 이색적인 법을 만들었다.

바로 신문사에서 내보낸 기사가 잘못된 기사로 판명 날 경우, 기사의 경중과 잘못된 기사를 내보낸 횟수에 따라 최소 일주일에서 최대 6개월까지 1면 광고에 상업적인 광고 대신, 잘못된 기사를 실은 것을 사죄하는 내용과 정정 기사를 실어야 하는 법을 만든 것이다.

이는 전생에서 신문사들이 여론을 조작하기 위해 거짓 기사를 만들거나, 혹은 특종을 위해 제대로 알아보지도 않고 일단 기사부터 내보내고, 후에 이것이 잘못된 내용의 기사라는 것이 밝혀지더라도 나중에 작게 정정 기사를 내보내면 끝이라, 신문사들이 거짓 기사나 잘못된 기사를 내보내는 것을 크게 두려워하지 않는 경향이 있다는 것을 기억하는 정성국이 북미왕국의 신문사들이 그렇게 변질되는 것을 막기 위해 고민하다, 이런 법을 만들면 신문사의 재정에도 큰 손해가 가니, 조금 자제하지 않을까 싶어 만든 법이었고.

이 법이 제정된 후, 몇몇 신문들은 잘못된 기사를 실어 1면 광고에 상업적인 광고 대신, 사과 광고를 실었던 적이 있었기에, 에스파냐 대사는 에스파냐 대사관의 돈으로 그와 비슷한 유형의 기사를 실어, 현재 북미왕국 전역에 들끓고 있는 에스파냐에 대한 반감을 줄이려 했고, 이러한 에스파냐 대사의 대답에 보좌관이 수긍했다.

“하긴...알겠습니다. 허면 바로 움직이도록 하겠습니다.”

* * *

같은 시각.

정성국은 집무실을 찾아온 정보국장인 음흉한 여우의 보고에 눈을 크게 뜨고 되물었다.

“얼마라고? 2천만 원?”

“그렇습니다.”

정성국의 반응에 음흉한 여우가 씩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자, 정성국은 혀를 내둘렀다.

“허. 이거 의외인데? 애리조나, 텍사스 지역 신문들 말고, 다른 신문들에 광고를 실은 것은 오늘이 처음이니, 결국 저 2천만 원은 애리조나, 텍사스 지역에 정착한 멕시코 출신 이주민들이 낸 돈이라는 건데...모금액이 너무 큰 것 같은데?”

북미왕국에 멕시코 출신 이주민들은 약 50만 명에 달했지만, 이중 직접 경제활동을 하는 인원은 20만 명도 채 되지 않았다.

그러니 단순 계산으로는 멕시코 출신 이주민들이 100원씩 기부했다는 소리가 되는데, 보통 멕시코 출신 이주민들 대부분이 건설 노동자라는 것을 생각해보면, 그리고 건설 노동자들이 받는 월급이 20원이라는 것까지 고려하면, 생각보다 모금액이 컸다.

해서 정성국이 놀라움을 감추지 못하자, 음흉한 여우가 말했다.

“그게 그동안 누에바 에스파냐, 그리고 에스파냐를 비판하는 기사를 내보냈기에, 멕시코 출신 이주민뿐만 아니라, 다른 백성들마저 누에바 에스파냐인들을 안타까워하며 조금씩 기부했기에 그런 큰 모금액이 모인 겁니다.”

“다른 백성들도 기부에 동참했다고?”

“예. 북미 원주민들은 누에바 에스파냐의 원주민들에게 동질감을 느끼며 기부했고, 이주민들은 예전에 나라, 영주에 착취당한 것이 떠올랐는지, 누에바 에스파냐인들이 에스파냐의 압제에 대항할 수 있기를 바라며 기부하더군요. 해서 모금액의 일부를 사용해 북미왕국의 모든 신문에 광고를 냈으니, 더 많은 금액이 모일 것 같습니다. 아국에서 따로 지원하지 않더라도 누에바 에스파냐인들에게 무기를 쥐여줄 수 있을 정도로 말입니다.”

음흉한 여우의 말에 정성국 역시 고개를 끄덕였다.

고작 애리조나, 텍사스 지역의 신문들에만 광고를 내보냈는데도 2천만 원에 가까운 액수가 모였다면, 북미왕국의 모든 신문에 광고를 내보낸 이상 모금액은 기하급수적으로 커질 것 같았기에.

다만, 누에바 에스파냐인들을 지원하는 물자는 많으면 많을수록 좋을 것이 분명했기에 정성국이 말했다.

“그래도 지원 물자는 많으면 많을수록 도움이 될 테니, 기존에 지원하기로 한 물자들은 보내도록 하고.”

“알겠습니다. 전하.”

“그리고 무기는 확보했고?”

다른 물자의 확보는 큰 문제 없었지만, 누에바 에스파냐인들에게 쥐여줄 무기, 정확히는 머스킷의 확보가 가장 큰 문제였다.

북미왕국에서는 머스킷을 생산하지 않았으니까.

해서 음흉한 여우는 잉글랜드 상인과 접촉해 머스킷을 확보하겠다고 이야기했었기에, 정성국이 이를 묻자 음흉한 여우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습니다. 일단 3천 자루를 확보했고, 추가로 최대 2만 자루까지 사들이기로 계약을 맺었습니다.”

“2만 자루? 그게 가능하다고? 일개 상인이?”

“아시다시피 유럽에서 전쟁이 끝나기도 했고, 아국 덕분에 유럽에 평화가 찾아왔기에 생각보다 무기 확보가 쉽다더군요. 해서 충분히 가능하다고 주장하기에 일단 계약을 맺었습니다.”

음흉한 여우의 대답에 정성국은 고개를 끄덕이고 다시 질문을 던졌다.

“그리고 에스파냐로 파견될 정보국 요원들은 모두 선발했고?”

정성국이 에스파냐로 파견될 군사 고문단을 거론하자, 음흉한 여우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습니다. 일단 200명을 선발했고, 추후에 상황을 보아가면서 인원을 늘릴 생각입니다.”

생각보다 많은 인원에 정성국은 복잡한 표정으로 음흉한 여우가 건넨 보고서를 꼼꼼히 확인하다가 깊은 한숨을 내쉬며 명령을 내렸다.

“후우. 알겠네. 그럼 이 보고서에 적힌 계획대로 일을 진행하도록 하게.”

“알겠습니다. 전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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