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조선을 탈출하라-817화 (817/850)

#817

정성국의 집무실에 동생 정평국이 찾아오자, 한창 보고서를 살펴보던 정성국은 정평국을 반기며 잠깐 사적인 이야기를 나눈 뒤 자신을 찾아온 용건을 물었고.

이에 정평국은 들고 온 보고서를 정성국에게 건네며 일전에 정성국이 지시했던, 학문의 발전에 이바지한 이들에게 수여할 상을 만들었다는 이야기에 정성국이 흥미를 보이며 보고서를 펴다가, 문득 정평국이 이번에 제정한 상의 이름을 언급하자 급히 고개를 들었다.

“잠깐. 상의 이름이 뭐라고? 제국상?”

“예. 형님.”

담담하게 대답하는 정평국을 보고 정성국이 무척 황당하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아니. 상 이름이 왜 뜬금없이 제국상이야? 왕국상도 아니고?”

정성국의 존재로 전생의 역사와는 많이 달라졌고, 이 때문에 훗날 태어날 노벨이 다이너마이트를 만들어 큰돈을 버는 것은 완전히 불가능해졌다.

이미 북미왕국은 다이너마이트를 개발해 사용하고 있었기에.

물론, 노벨이 뛰어난 인물이라 뒤바뀐 환경에서도 큰돈을 벌 수도 있긴 했지만, 노벨이 자신의 전 재산의 대부분을 기부해 노벨상을 만든 것은 자신이 발명한 다이너마이트가 군사적으로 이용되는 것에 회의감을 느껴서라고 알려진 만큼, 설사 노벨이 대단한 무언가를 발명해 사업적인 성공을 거둔다 하더라도, 전생처럼 노벨상을 만들 일은 없을 것 같았고.

해서 정성국은 자신이 노벨상과 비슷한 상을 만드는 것이 맞다고 생각했지만, 그렇다고 노벨상처럼 상에 자신의 이름을 붙일 생각은 없었다.

자신이 죽고 나서 후대에 상을 제정하면서 자신의 이름을 붙이는 것이라면야 상관없지만, 이 상은 당분간 정성국 자신이 직접 수여해야 하는 터라, 자신의 이름을 붙이기가 아무래도 꺼려졌던 것이다.

그렇기에 정성국은 정평국에게 일을 맡기면서, 상의 이름에 절대 자신의 이름을 붙이지 말라고 당부했었고.

이에 정평국은 조금 아쉬워했지만, 지엄한 형님의 명령을 어길 수도 없는 노릇이라 어쩔 수 없이 수긍했었고, 그런 정평국의 반응에 정성국이 안도하고 있었는데, 뜬금없이 상의 이름을 제국상으로 정하자 정성국은 황당해했고, 이런 정성국의 반응에 정평국이 상의 이름을 제국상으로 정한 이유를 설명하기 위해 입을 열었다.

“청장들은 아주 오래전부터 형님께서 황제의 자리에 오르셔야 한다고 주장해왔었지요. 허나 형님께서는 실질적인 국력이 중요하지 그런 호칭 따위가 뭐가 중요하냐고 일축하셨기에, 그동안 청장들은 이에 관해 따로 이야기하지는 않았고요.”

원래 북미왕국의 건국은 무척 얼렁뚱땅하게 이루어졌다.

당시 새김포를 거점으로 두고, 주변 원주민 부족을 하나둘 흡수하면서 점차 세력이 커지기 시작하자 제대로 된 이름이 필요했고, 어차피 세력이 커지면 남쪽에 있는 에스파냐에게도 정보가 흘러 들어갈 수 있으니, 조선 부족, 혹은 조선 연맹으로 알려지는 것보다는 제대로 된 원주민 국가로 알려지는 것이 낫다고 판단해 정성국이 청장들과 상의해서 북미왕국을 건국했다.

그리고 이 당시엔 이주 초창기라 북미왕국의 인구도 얼마 안 되었고, 관리들도 부족해 과중한 업무에 시달리던 시절이라, 제대로 된 예식을 치르기는커녕, 백성들에게 식량과 술을 풀어 가벼운 축제를 열어 북미왕국의 건국을 알린 것이 전부였고.

당시에는 워낙 업무에 치여 바쁘기도 하고, 원주민 출신들은 축제를 열었으면 충분하다고 생각했기에 별말을 하지 않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타국의 정보를 접하게 되자, 제대로 된 예식조차 치르지 않은 것에 아쉬움을 표하는 청장들이 생기기 시작했다.

다만, 이미 지나간 일이라 후회해봐야 바뀌는 것은 없었기에, 청장들은 대신 그다음을 노렸다.

북미왕국이 발전하고, 외국에 북미왕국의 국력이 알려지면서 점차 북미왕국의 위상이 오르기 시작하자, 청장들은 가까운 시일 내에 정성국이 황제의 자리에 오르는 것을 기정사실로 생각하고, 정성국이 황제에 등극했을 때, 이전과는 달리 제대로 된 예식을 치러야 한다고 주장할 생각이었던 것이다.

해서, 프랑스와의 전쟁을 끝으로 북미 대륙에 진출해 식민지를 건설했던 나라들을 내쫓고, 북미 대륙 전체를 확고히 북미왕국의 영토로 만들었을 때, 청장들은 은근히 정성국에게 칭제를 권했었고.

다만, 정성국은 이러한 요청을 단칼에 거절했다.

당시 프랑스와의 전쟁에서 승리해 북미 대륙 전역을 북미왕국의 영토로 만들기는 했지만, 영토만 넓다뿐이지 북미왕국의 인구는 채 400만 명도 되지 않았는데 황제의 자리에 오른다면 타국에서 비웃을 것이 분명했기에.

물론, 당시에야 다른 나라들은 조작된 정보를 통해 북미왕국의 인구나 국력을 사실보다 더 과하게 판단하고 있었기에, 정성국이 청장들의 요청을 받아들여 황제의 자리에 오른다 하더라도 정성국의 생각처럼 타국에서 비웃을 리는 없긴 했다.

다만, 정성국은 후대를 위해 제대로 된 기록물들을 꽤 많이 남겨놓았기에, 여러모로 신경이 쓰일 수밖에 없었다.

또한, 당시에만 하더라도 북미왕국 경제에서 대청무역이 차지하는 비중이 무척 큰 편이었는데, 정성국이 칭제하면 청나라와의 관계가 어그러질 수도 있고, 청나라와의 관계가 어그러지면 대청무역에도 영향을 끼칠 것이 우려되어 이러한 이유를 들며 거절했고.

이에 정성국이 황제가 되기를 원하는 청장들은 일단 수긍하면서도, 계속 기회를 보고 있었다.

그리고 후에 조청전쟁이 발발하면서, 더는 청나라와의 관계에 신경을 쓰지 않아도 되고, 청나라가 자신들의 발원지라 할 수 있는 만주까지 절반을 떼어 전쟁배상금으로 넘기면서까지 조청전쟁을 마무리 짓자, 북미왕국의 위상이 수직으로 올라가면서 청장들은 다시 한번 은근슬쩍 정성국에게 칭제를 권했었다.

다만, 이때도 정성국은 아직 북미왕국의 국력을 생각하면 아직 황제에 즉위할 정도는 아니라고 여겨 거절했고.

이러한 정성국의 거절에 청장들은 당황했다.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국가로 알려진 청나라를 북미왕국이 꺾은 셈이니, 이 정도면 충분하다고 생각했는데, 정성국은 이에 만족하지 않은 눈치였기에.

다만, 청장들은 그만큼 정성국의 기준이 높은 것이라 생각해 그의 뜻을 존중하며 다시 침묵하며 기회를 살피고 있었고.

이러한 사실을 정평국이 언급하자 정성국이 물론 잘 알고 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고, 이에 정평국이 다시 입을 열었다.

“헌데, 형님께서 유럽을 방문하신 이후 호칭에 불편함을 느끼시고, 외무청장을 불러 이를 논의하셨다면서요?”

“아. 그랬지. 제임스 2세와 처음 만났을 때, 호칭 문제로 골치가 좀 아팠거든.”

유럽에서는 신성로마제국의 카를 5세가 마제스티라는 호칭을 사용한 이후, 프랑스나 영국도 뒤따라 군주에게 마제스티라는 호칭을 붙였는데, 이 마제스티라는 호칭이 북미왕국말로는 폐하에 해당하는 단어이다 보니, 이를 그대로 번역해 사용하면 제임스 2세가 정성국보다 격이 높아지게 된다.

해서 제임스 2세와 정성국, 그리고 외교관들은 서로 곤란해하다가, 결국 아쉬운 것이 많은 제임스 2세가 어차피 대부분의 대화는 북미왕국말로 할 터이니 북미왕국말로 대화할 때는 자신의 호칭을 정성국과 같은 전하로 내려 격을 맞추면서 이 문제를 해결했었다.

다만, 당장 호칭 문제는 임시방편으로 해결했어도, 이 일로 서로 불편했던 것은 사실이었다.

그리고 북미왕국말에 익숙한 유럽의 귀족들은 분명 북미왕국말에는 전하라는 경칭보다 한 단계 격이 높은 폐하라는 단어가 있는데도 정성국이 전하라는 경칭을 쓰는 이유를 궁금해하며 질문을 던지기도 했고, 일부는 정성국에게 아부하기 위해 아예 폐하라는 경칭으로 정성국을 부르니 정성국도 슬슬 호칭을 정리할 필요성을 느끼기는 했다.

해서 유럽에서 돌아온 후, 조용한 곰을 불러 이 문제를 논의했었던 것이 사실이라 정성국이 고개를 끄덕이자 정평국이 말했다.

“해서 조용한 곰이 청장들에게 형님의 생각이 바뀌었다는 것을 이야기하자, 그동안 형님을 황제로 추대하고 싶어했던 청장들은 무척이나 환호했고, 그 후로 정말 제대로 된, 그리고 성대한 대관식을 열기 위해 만반의 준비를 하는 것을 보면, 형님께서 곧 황제의 자리에 오르시는 것은 기정사실이고, 그러니 상의 이름 역시 왕실상보다는 제국상이 맞는 것 아니겠습니까.”

이에 정성국은 조금 곤란하다는 표정으로 머리를 긁적이며 입을 열었다.

“뭐 틀린 말이 아니기는 한데...너도 청장들과 소통을 하는 만큼 대충 알지 않냐? 청장들이 준비하는 것을 보면 한두 해 안에 내가 황제로 즉위하는 것은 어렵다는 것을?”

정성국의 말에 정평국이 쓰게 웃었다.

정성국의 말처럼 청장들은 정성국이 현재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국력을 지닌 북미왕국의 위상에 걸맞은 다른 나라의 즉위식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성대하고 화려한 즉위식을 치르길 원했다.

해서 청장들은 따로 모여 정성국의 즉위식을 위해 각종 계획을 세우기 시작했고, 그러다 보니 즉위식의 규모가 어마어마해졌다.

즉위식을 치르려면 최소 2, 3년은 준비해야 할 정도로 말이다.

뒤늦게 이러한 사실을 접한 정성국은 청장들에게 슬쩍 너무 과한 것 아니냐는 말을 건넸지만, 청장들은 이 정도 규모는 되어야 북미왕국의 위상에 걸맞다고 주장하면서, 다른 나라의 즉위식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성대한 즉위식을 통해 북미왕국 백성들에게 자부심을 심어주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말했다.

그리고 이런 자부심을 통해 북미왕국 백성들이 하나로 통합될 수 있다고 주장했고.

이에 정성국은 잠깐 고민하다 결국은 고개를 끄덕이고 돌아갈 수밖에 없었는데, 북미왕국의 백성 중 절반 가까이가 이주민 출신이기도 했고, 정말 다양한 인종들이 혼재된 터라, 여러 문제가 발생할 가능성이 존재하는 만큼, 이러한 행사를 통해 이들이 스스로 북미왕국에 자부심을 품도록 하는 것이 북미왕국의 통합에 도움이 될 거라 여긴 것이다.

해서 정성국이 별다른 말 없이 돌아가자, 청장들은 환호하며 더욱 즉위식의 규모를 키우고 있었고.

덕분에 즉위식을 비롯해 각종 국가적인 행사가 있을 때 사용할 거대한 건축물마저 건설할 계획이니 정성국의 말처럼 한두 해 안에 이러한 공사가 끝날 것 같지는 않다는 사실을 아는 정평국이 어깨를 으쓱했다.

“뭐 상관없지 않습니까? 당장 상을 제정해야 하는 것도 아니고 말입니다.”

“흠. 그래도 하루라도 빨리 상을 제정해 학자들의 의욕을 고취하고 싶으니...일단 상의 이름은 바꾸도록 하자.”

정성국의 말에 정평국이 고개를 끄덕이며 대꾸했다.

“그럼 일단은 왕실상으로요?”

“아니. 그럼 나중에 상 이름을 바꿔야 하기도 하고, 제국상이니 왕실상이니 썩 마음에 안 들어. 그러니...북미상으로 하자.”

이에 정평국은 짜게 식은 표정으로 정성국을 바라보며 투덜댔다.

“북미상이라니...차라리 나중에 이름을 바꾸더라도 왕실상이 더 괜찮아보이는데...”

그러자 정성국은 애써 동생의 불만을 못 들은 척하면서 정평국이 건넨 보고서를 빠르게 훑어보다 입을 열었다.

“흠. 시상 분야가 조금 애매한데? 인문학, 사회과학, 형식과학, 응용과학, 자연과학이라고?”

“예? 시상을 통해 학자들의 의욕을 고취기키기 위함이라, 일부러 다양한 학문 분야를 포함한 겁니다만...”

정평국의 대답에 정성국은 잠깐 생각에 잠겼다가 고개를 저었다.

“이건 아닌 것 같아. 시상 분야를 조금 세분화하고, 인문학, 사회과학 분야는 빼버리는 게 낫겠어. 물론, 인문학이나 사회과학을 무시하는 것은 아니지만, 두 분야의 경우 학문적 성과를 객관적으로 판단하기도 어렵고, 북미왕국은 과학 기술의 발전으로 이렇게 강국이 된 만큼, 자연과학, 그리고 응용과학 분야에만 집중하는 것이 맞을 것 같아.”

“허면...?”

“물리학, 화학, 지구과학, 생물학, 천문학, 공학, 의학, 수학, 이렇게 8분야에 한정해서 시상하도록 하지. 그러니까...북미 물리학상, 북미 화학상, 이런 식이 되는 거지.”

정성국은 노벨상처럼 물리학, 화학, 생리학 또는 의학, 문학, 평화, 경제학 분야에 시상할까 생각했지만, 아직 평화상이나 경제학상의 경우는 시기상조인 느낌이 컸다.

그리고 문학상의 경우는 북미왕국의 문학 발전을 위해 제정하고 싶긴 했지만, 인문학, 사회과학 분야를 모두 빼버리면서 문학상만 따로 제정하기도 애매했고.

해서 정성국은 자연과학의 5가지 분야에 공학, 의학, 수학을 추가해 정하자 정평국이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북미왕국의 발전은 정성국의 말처럼 타국보다 월등한 과학 기술 덕분에 가능한 일이니만큼, 이 분야에 집중하는 것이 맞아 보였던 것이다.

“흠. 알겠습니다. 인문학이나 사회과학 쪽 학자들이 조금 서운해하기야 하겠지만, 그동안 자연과학, 응용과학을 연구한 이들의 업적을 생각하면 별다른 말은 하지 못하겠지요. 그리고 이렇게 분야를 한정하고 세분화하면, 그만큼 더 많은 과학자들에게 수상 기회가 주어지는 셈이니...아국의 입장에서는 나쁠 것도 없고요.”

북미상은 노벨상처럼 국적에 상관없이 개인에게 수여된다.

다만, 북미왕국의 인문학, 사회과학 분야의 학문적 수준은 객관적으로 썩 대단하지 못했다.

그러니 처음 이렇게 분야를 정하면서, 인문학, 사회과학 분야는 아무래도 외국인들이 많이 수상하지 않을까 싶었고, 형식과학, 응용과학, 자연과학의 경우는 북미왕국인들 가운데 대단한 업적을 세운 이들이 한둘이 아니라 누구에게 상을 수여해야 할지 고민될 수밖에 없어 정평국 역시 조금 걸리기는 했었기에 정성국의 말에 바로 수긍했고.

“그렇지. 상금을 생각하면 솔직히 아국 출신이 많이 받는 것이 좋잖아?”

“하하하. 그건 그렇지요.”

수상자들은 특별히 제작한 메달과 상패, 그리고 상금을 받게 된다.

그리고 이 상금은 수상자들이 돈 걱정 없이 연구에만 전념할 수 있게 하려고 정성국의 뜻대로 무려 1만 원이라는 거금을 책정한 만큼, 정성국이나 정평국 모두 기왕이면 타국인보다는 북미왕국인들이 이 북미상을 수상해 부자가 되었으면 하는 마음에 웃음을 터트렸고.

그 이후 정성국은 누구에게 상을 수여해야 할지를 논의하는 위원회의 구성이나, 시상식이 열리는 장소, 일정 등을 일부 수정하거나 확정한 후 여러 수정 사항이 적힌 보고서를 다시 정평국에게 건네며 말했다.

“이렇게 하면 될 테니, 넌 바로 위원회들을 구성하는 데 최선을 다해.”

“알겠습니다. 바로 진행하도록 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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