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15
외무청에서 신성로마제국, 폴란드-리투아니아에 이어 청나라도 설득해 90만 명에 달하는 외국인 노동자를 확보하게 되었고, 이들이 단기간에 북미왕국으로 유입될 거란 소식이 전해지자, 각 청과 국은 비상이 걸릴 수밖에 없었다.
정성국이 외국인 노동자들이 제공하는 노동력을 이용해 더 빠르게 북미왕국을 발전시키려 한다는 것은 알지만, 단기간에 북미왕국으로 유입되는 외국인 노동자들의 수가 너무 많아서 이들을 제대로 관리하지 못한다면 오히려 북미왕국에 악영향을 끼칠 것이 분명해 보였기 때문이다.
특히, 올해 초 북미왕국의 인구가 대략 1500만 명으로 집계되었고, 현재 북미왕국에서 한창 일하고 있는 외국인 노동자만 50만 명에 달했으니 이들까지 계산하면 총 140만 명에 달하는 외국인 노동자가 북미왕국에 유입되는 셈인데, 이는 북미왕국 인구의 1할에 해당하는 셈이었으니 북미왕국의 관리들은 여러모로 불안할 수밖에 없었고.
물론, 현재 북미왕국에서 일하고 있는 기존의 외국인 노동자들은 북미왕국의 통제에 별다른 불만 없이 고분고분 따랐기에 자잘한 문제들이 일부 발생했을지언정 심각한 문제는 없었다.
해서 그동안 직접 외국인 노동자들을 관리해 온 청장, 국장들은 외국인 노동자의 수가 더 늘어나도 완벽하게 이들을 통제, 관리할 수 있다고 자신했지만, 다른 청장들은 은근히 불안해했다.
지금까지야 충분한 숫자의 관리 인력이 외국인 노동자들을 철저히 통제하고 있었기에 별다른 문제가 없었지만, 외국인 노동자가 대폭 늘어나면 자연히 통제가 느슨해질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 북미왕국에서 신성로마제국, 폴란드-리투아니아, 청나라와 협상해 조만간 더 많은 외국인 노동자가 북미왕국에 도착한다는 사실이 언론을 통해 알려지자, 북미왕국의 백성 중 일부도 이 외국인 노동자들이 혹여 문제를 일으키지는 않을지 우려하는 분위기였고.
이러한 사실을 접한 정성국은 매달 열리는 청장 회의에 참석해 이 문제를 거론하며 대책을 논의했고, 청장들의 이야기를 듣다가 신음을 흘리며 중얼거렸다.
“흐음. 결국, 관리 인력을 늘리는 것만으로는 백성들이 안심하기 어려우니, 백성들이 안심할 수 있도록 탐사대원과 경비대원, 치안관들을 대거 늘리는 게 최선이라는 소린가?”
이에 행정청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습니다. 전하. 물론 개발청장이 이야기한 것처럼, 그동안 아국의 통제에 고분고분 따르고 협조적인 태도를 보인 이들을 잘만 이용한다면 추가로 유입되는 외국인 노동자들을 손쉽게 관리할 수는 있을 겁니다. 다만, 백성들이 보기에는 오히려 외국인 노동자들이 조직을 이룬 것처럼 보이니 아무래도 불안해할 수밖에 없지 않겠습니까. 그러니 이러한 백성들의 불안을 해소하려면 탐사대원과 경비대원, 치안관들을 대거 늘려 각 지역, 각 도시, 각 마을에 배치하고 이전보다 더 자주 순찰 간격을 줄이는 것이 최선입니다.”
“쩝...”
행정청장의 대답에 다른 청장들은 고개를 끄덕였지만, 정성국은 묘하게 아쉽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그가 타국에 이런저런 이권까지 넘겨주면서 외국인 노동자를 고용한 이유가 바로 노동력 부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인데, 이 때문에 한창 노동력을 제공할 수 있는 청년들을 탐사대원, 경비대원, 치안관으로 모집해야 한다는 것이 아이러니했던 탓이다.
그리고 이런 정성국의 반응에 법무청장은 정성국의 속내를 어느 정도 눈치채고 입을 열었다.
“어떻게 보면 귀중한 노동력을 낭비하는 셈으로 보일 수는 있습니다만, 이러한 상황을 그냥 내버려 두었다가는 북미왕국 백성들이 아국에 유입되는 외국인 노동자들을 계속해서 경계 어린 시선으로 바라볼 수밖에 없습니다. 그럼 문제가 커집니다.”
“맞습니다. 가는 말이 고와야 오는 말이 곱다고, 북미왕국 백성들이 자신들을 경계하는 시선을 보내는데 어찌 외국인 노동자들이 북미왕국 백성에게 호의적인 시선을 보내겠습니까.”
법무청장의 말을 교육청장이 동의하며 이렇게 덧붙이자, 정성국은 수긍했다.
“하긴...그건 그렇지.”
“예. 그리고 북미왕국 백성들이 외국인 노동자들을 경계하게 되면, 현재 아국에서 열심히 일하고 있는 외국인 노동자들에게도 영향이 갈 것이 조금 우려되긴 합니다.”
개발청장의 우려에 정성국이 무슨 소리인지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흠. 아국의 백성들에게는 아국에 협조적인 이들 역시 그저 외국인 노동자들에 불과하니, 잘못하다간 이들도 아국에 불만을 품을 수 있다는 건가?”
“그렇지요. 그러니 잘못하면 140만 명에 달하는 외국인 노동자들이 아국의 골칫거리가 될 수도 있습니다. 그럼 여러모로 곤란하지 않습니까.”
개발청장의 대답에 외무청장인 조용한 곰이 끼어들었다.
“그리고 전하께서 그동안 외국인 노동자들을 후하게 대접하신 이유가 바로 이들이 계약 기간이 끝난 후 조국으로 돌아갔을 때, 아국에 호의적인 여론을 조성해주길 바란 것 아니겠습니까. 헌데 잘못하면 전하께서 계획하신 것이 모두 흐트러질 수 있습니다.”
유럽의 백성들이 은연중에 북미왕국을 동경하고, 호의적인 시선으로 바라본다면, 그만큼 외교적으로나 경제적으로 이득이 크다는 것을 정성국은 잘 알고 있었다.
해서 정성국은 외국인 노동자들의 대우에 나름대로 신경 쓰고 있었고, 덕분에 그동안 딱딱하고 맛대가리 없는 호밀빵과 배를 불리기 위한 스튜 따위만 먹던 외국인 노동자들은, 매일 같이 부드러운 하얀 밀빵에 버터나 잼을 발라 먹고, 고기도 먹는 호사를 누릴 수 있었다.
그러다 보니 이들은 북미왕국을 내심 동경하면서 무척 호의적인 시선으로 바라보기 시작했고, 이들이 돌아가면 정성국의 생각대로 북미왕국의 우호 세력이 될 것은 뻔해 보였고.
헌데, 잘못하면 이러한 계획이 어그러질 수 있다는 조용한 곰의 말에 정성국은 결국 결정을 내렸다.
“흠. 그건 곤란하지. 알겠네. 자네들 말대로 군사청과 치안국의 규모를 대폭 확장하도록 하지. 먼저 군사청장.”
“말씀하시지요. 전하.”
“얼마나 더 모집하면 될 것 같나?”
정성국의 물음에 군사청장은 잠깐 생각에 잠겼다가 대답했다.
“탐사대원 1만 명과 경비대 2만 명 정도를 모집하면 될 것 같습니다.”
“총 3만 명이라...대략 치안국이 독립하기 전의 규모보다 커지는 셈이로군.”
“그렇습니다. 물론, 아국의 국력을 생각하면 여전히 육군 규모는 작은 편입니다만, 예전과 비교하면 병력 규모가 5할 가까이 늘어나는 셈이니 아국의 백성들도 충분히 만족하리라 생각됩니다.”
군사청에서 치안국을 따로 독립시키기 전까지, 북미왕국의 군사청은 약 7만 명가량의 육군을 보유하고 있었다.
그러다 치안국이 빠져나가면서 5만 명으로 확 줄어들었고.
이때, 일부 청장들은 치안국으로 빠져나간 인원은 충원해야 하지 않겠느냐고 건의했었지만, 정성국이 생각하기엔 북미왕국을 공격할만한 간 큰 나라는 없을 것 같았고, 가뜩이나 인력이 부족한데 노동력을 제공할 수 있는 성인 남성을 병사로 만드는 것이 꺼려져 이를 일축했었다.
대신 각종 무기를 추가로 도입해 화력을 늘려 숫자는 줄었어도 전투력은 이전과 비슷할 정도까지 끌어올렸고.
헌데 이번에 3만 명이나 되는 젊은이들을 다시 병사로 만든다는 사실에 정성국은 조금 불만스러웠지만, 생각해보면 북미왕국의 인구나 국력에 비해서 육군 규모가 워낙 작은 것은 사실이고, 이를 아쉬워하거나 불안해하는 백성들이 꽤 많았기에 불만을 털어버렸다.
“그 정도만 되어도 아국의 백성들이 외국인 노동자들 때문에 불안해하지는 않을 것 같다는 소리지? 알겠네. 그럼 그렇게 진행하도록 하고...치안국장?”
“저희는 4만 명 정도를 모집했으면 합니다.”
“...응? 4만 명?
치안국장의 말에 정성국은 조금 당황했다.
물론 군사청도, 치안국도 그 규모를 대폭 확장하는 것이 맞다고 생각하긴 했지만, 단번에 4만 명을 모집하겠다니.
이런 정성국의 반응에 치안국장은 정성국을 설득하기 위해 입을 열었다.
“그렇습니다. 아국의 인구가 계속해서 증가하면서, 기존의 도시, 마을의 규모가 계속 커지고, 또 수많은 마을이 생겨나는 터라, 현재의 치안관들로는 이를 감당하기가 벅찬 상황입니다.”
“허. 그래?”
“예. 오죽하면 치안관들의 업무가 너무 과해서 퇴직하려는 이들까지 나오겠습니까.”
“쩝...”
치안국장의 하소연에 정성국은 어쩔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물론 북미왕국의 관리들은 누구 하나 예외 없이 과다한 업무를 감당하고 있기는 했다.
다만, 다른 관리들과는 다르게 치안관은 24시간 근무해야 했다.
범죄자들에게 밤낮이 어디 있겠는가.
오히려 대낮보다는 어두운 밤을 선호할 가능성이 컸지.
그래서 치안관들은 24시간 치안국을 지키고, 또 주기적으로 마을을 순찰해야 하는 터라, 다른 관리들보다 더 고생할 수밖에 없긴 했다.
그리고 정성국이 기억하기로는 전생에서 선진국들의 경우 경찰 1명이 담당하는 국민이 대략 3, 400명 내외였으니, 현 치안관 2만 명에 추가로 4만 명을 더 모집하더라도, 너무 과한 것은 아닌 것 같았고.
해서 정성국은 결국 치안국장의 요청을 수락했다.
“알겠네. 예산을 대폭 늘려줄 테니 치안국도 4만 명의 인원을 충원하도록 하게.”
“감사합니다! 전하!”
정성국의 허락에 치안국장이 활짝 웃으며 고개를 숙이자 정성국은 피식 웃으며 손을 내저었다.
“감사는 무슨. 아. 그리고 이 사실을 언론을 통해 널리 알려야 한다는 것은 알지?”
“물론입니다.”
“준비가 끝나는 대로 기자들을 불러 알리도록 하겠습니다.”
군사청장과 치안국장의 대답에 정성국은 믿겠다는 시선을 보낸 후, 다시 회의에 집중하기 시작했고.
그러다 이전에 정성국이 명령한 상훈제도 개편안에 대한 보고가 시작되자 정성국은 흥미롭다는 표정으로 관리청장의 말에 귀를 기울이다가, 관리청장의 보고가 끝나자 말했다.
“흠. 총 30종류인가?”
“그렇습니다. 훈장의 등급을 5종류로 세분화하다 보니, 훈장의 종류가 늘어났습니다.”
“세세하게 나눈 것은 나쁘지 않아 보이는데...종류가 너무 많은 것 아닙니까?”
“허나, 공적에도 차이가 있는데 등급을 나누지 않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보니 어쩔 수 없었습니다.”
“그래도...”
법무청장과 관리청장의 이야기를 옆에서 듣던 정성국은 문득 전생이 떠올라 슬쩍 웃었다.
그가 기억하기로 대한민국의 훈장은 총 56종류에 달했으니, 이와 비교하면 30종류의 훈장은 많은 편은 아니었던 것이다.
‘흠. 무공 훈장, 보국 훈장, 공무 훈장, 과학기술 훈장, 산업 훈장, 문화 훈장이라...’
관리청에서는 훈장을 받는 이에 따라 훈장의 종류를 나누었다.
우선 무공 훈장과 보국 훈장은 군인들에게 수여하는 훈장으로 무공 훈장은 전투에서 공을 세운 군인에게, 그리고 보국 훈장은 전투 외적으로 공을 세운 군인에게 수여하는 훈장이었다.
그리고 공무 훈장은 관리들 가운데 공을 세운 이들에게 수여하는 훈장이었고.
마지막으로 과학기술 훈장과 산업 훈장, 문화 훈장은 각각 북미왕국의 과학기술, 산업, 문화예술 발전에 크게 이바지한 과학자, 기술자, 상인, 예술가에게 수여하는 훈장이었다.
그러니 전생의 대한민국 훈장과 비교해보면 무궁화 대훈장, 건국 훈장, 국민 훈장, 수교 훈장, 체육 훈장 정도가 빠진 셈이었고.
이에 정성국은 잠깐 고민하다 열심히 서로의 의견을 반박하고 있는 관리청장과 법무청장의 설전에 끼어들었다.
“그만. 이 정도는 나쁘지 않아. 물론 훈장의 종류가 너무 많으면 그 가치가 떨어질 수 있다는 법무청장의 말도 일리는 있지만, 작은 공을 세운 이와 큰 공을 세운 이에게 같은 포상을 내릴 수도 없지 않은가.”
“그건...그렇지요. 알겠습니다. 전하.”
정성국의 말에 법무청장이 수긍하자, 정성국은 관리청장을 보고 말했다.
“다만, 여기에 훈장 하나만 더 추가하도록 하게.”
“어떤 훈장을 말입니까?”
“건국 훈장.”
정성국의 말에 관리청장이 미간을 좁히며 중얼거렸다.
“건국 훈장이라면...?”
“북미왕국의 건국에 크게 이바지한 이들에게 수여하는 훈장일세. 아국의 사정상 이런 종류의 훈장도 필요할 것 같아서 말일세.”
정성국의 말에 청장들은 조금 묘한 표정을 지었다.
확실히 정성국의 말마따나 북미왕국은 비교적 최근에 건국된 나라였기에 북미왕국의 건국에 이바지한 이들이 생존해 있었고, 그러니 건국 공신들을 위한 훈장이 필요하다는 정성국의 주장에도 일리가 있었다.
다만 훈장의 내용이나 정성국이 자신들을 보고 웃는 모습을 보아하니, 건국 훈장은 어찌 보면 자신들도 수여받는 훈장이라는 생각이 든 것이다.
거기에 의미를 들어보면 다른 훈장과는 다르게 후대에 이 훈장이 다시 수여될 일은 없어 보이는 터라, 어쩌면 다른 훈장보다 훨씬 영예로운 훈장이 될 것 같기도 했고.
그러니 어찌 보면 자신들이 수여받을 최고 훈장을 스스로 만드는 꼴이라 조금 민망하다는 생각이 들 수밖에 없어, 청장들이 헛기침만 하고 있을 때 관리청장이 곰곰이 생각해보다가 대답했다.
“...알겠습니다. 확실히 아국의 사정상, 그런 훈장이 필요하긴 하지요. 헌데 전하. 건국 훈장도 등급을 나눠야 할까요?”
“굳이 그럴 필요는...아. 아닐세. 나누도록 하지. 다만...다른 훈장과는 다르게 한 3등급으로 나누게.”
생각해보니 초창기에 북미 대륙을 발견하기 위해 탐사한 이들이나, 북미왕국 건국 전에 합류한 대추장들 역시 북미왕국 건국에 이바지한 것은 마찬가지였기에, 이들에게도 훈장을 수여하려면 등급을 나누는 것이 맞겠다 싶어 정성국이 건국 훈장 역시 등급을 나누라고 지시하자 관리청장은 고개를 끄덕였고.
이에 정성국이 말했다.
“그리고 상훈제도가 확정되면 바로 훈장을 심사하고 수여할 테니, 각 청장, 국장들은 훈장을 수여 받을만한 정도의 공을 세운 이들을 보고하도록 하게.”
“알겠습니다. 전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