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14
그동안 송림에서 짓고 있던 제철소가 완공되었다는 장계가 올라오자, 이연을 비롯한 여러 조정 신료들은 곧바로 기차를 타고 송림 제철소를 방문했다.
그리고 미리 송림 제철소에 도착해 있던 투로시노와 반갑게 인사를 나눈 후 미리 대기하고 있던 송림 제철소의 직원들과도 인사를 나누었고.
이때 이연이나 조정 신료들은 송림 제철소의 직원들을 꽤나 조심스럽게 대했는데,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지금 이 자리에 나온 송림 제철소의 관리를 맡은 이들은 모두 북미왕국인들이기 때문이다.
제철소를 제대로 운영하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었기에, 북미왕국에서는 어쩔 수 없이 새마포 제철소와 이로쿼이 제철소의 직원 중 일부를 파견해야 했고, 이들은 북미왕국이 아닌 열악한 환경의 조선에서 몇 년씩이나 근무해야 하는 것이 썩 내키지 않았지만, 외무청의 설득과 충분한 보상을 약속했기에 겨우 이곳에서 근무하는 것에 동의했다.
그리고 이러한 사실을 조선 조정에서도 알고 있었기에, 아무래도 조심스럽게 대할 수밖에 없었고.
아무튼, 그렇게 조심스러운 상견례가 끝난 후, 이연과 조정 신료들이 송림 제철소 안으로 들어갔고, 이연의 명령에 따라 제철소가 가동되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흥미롭게 바라보던 이들은 잠시 후 큼지막한 고로에서 시뻘건 쇳물이 홈을 타고 흘러나오는 모습에 다들 탄성을 터트렸다.
개중에는 조금 더 가까이서 보려다가 쇳물의 열기에 움찔하며 물러난 후 멋쩍게 웃기도 했고.
그리고 그런 이들 중에는 이연과 제철소가 처음으로 가동되며 강철을 대량생산한다는 이야기에 냉큼 따라온 세자 이순도 있었다.
“허어. 듣기는 했지만 정말 장관이기는 하구나.”
“과연 그렇사옵니다. 아바마마. 저 모습을 보아하니 왜 그동안 북미왕국을 방문한 이들이 한결같이 조선의 발전을 위해서 무엇보다 제철소 건설을 우선해야 한다고 주장했는지를 알겠사옵니다.”
그동안 조선 사절단의 신분으로 북미왕국을 방문했던 이들 가운데 새마포 제철소를 방문했던 이들은, 조선으로 돌아와 조선이 북미왕국처럼 발전하려면 무엇보다 제철소를 건설해야 한다고 주장했었다.
물론, 조정에서도 강철을 대량생산할 수 있는 시설인 제철소의 필요성은 절감했지만, 제철소 건설이 마음만 먹는다고 가능한 것이 아니었다.
아무런 기술도, 지식도 없는데 무슨 수로 제철소를 건설하겠는가.
해서 은근슬쩍 북미왕국에 도움을 요청했었지만, 당시 북미왕국은 한창 새마포 제철소, 이로쿼이 제철소를 확장하고 운영하는 것만으로 벅차기도 했고, 또 아무리 정성국이 조선을 각별하게 생각한다 해도, 증기기관 기술을 넘긴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제철소를 지어줄 수는 없는 노릇이라 거절할 수밖에 없었고.
해서 조선에서는 차선으로 기존의 방식을 개량해 조금이나마 더 질 좋은 철을 많이 생산하기 위한 연구를 시작했고, 약간의 성과를 거두기도 했다.
허나, 지금 눈앞의 광경을 보니, 장인들이 연구해 늘린 생산량은 아무런 의미가 없어 보였기에, 이순이 복잡미묘한 표정으로 중얼거리자, 이를 듣고 이연이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게 말이다. 개량한 쇠부리가마에서 뽑아내는 철의 양과는 차원이 다르니 원...”
이연은 계속해서 홈을 따라 계속해서 흘러나오고 있는 쇳물을 보고 조금 질린다는 표정을 짓고 있자, 이순은 슬쩍 기대 섞인 눈빛으로 아버지인 이연을 바라보면서 말했다.
“헌데 듣기로는 북미왕국의 제철소들은 이 송림 제철소와는 감히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거대하다지요? 정말 북미왕국을 한번 방문해보고 싶을 정도이옵니다.”
이에 이연은 쓰게 웃었다.
예전에 네덜란드, 스웨덴, 덴마크의 군주들이 새한성을 방문했다는 것이 북미신문에 실렸고, 이 북미신문을 이순이 본 이후, 이순은 몇 차례 이연에게 북미왕국을 방문하고 싶다고 요청했었다.
이순이 즐겨보는 것이 북미신문과 북미왕국의 서적들이었고, 조선 역시 북미왕국의 전폭적인 도움 아래 점차 발전하고 있었으니 이순이 북미왕국에 호감을 품고, 한 번쯤은 북미왕국을 방문하고 싶어하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했다.
다만, 이순은 조선의 세자라는 자신의 위치를 자각하고 있었기에 아무리 동맹국이라 한들 북미왕국을 방문하는 일은 거의 불가능하다고 여겼기에 딱히 이를 언급하지는 않았고.
헌데, 유럽의 군주나 왕족들이 친선 사절단의 대표로 직접 북미왕국을 방문하기 시작하자, 자신이 북미왕국을 방문하는 것이 별다른 문제가 될 것 같지는 않아 보였던 것이다.
해서 은근슬쩍 이연에게 북미왕국을 방문하고 싶다는 의사를 밝혔지만, 이연은 단호하게 거절했다.
물론 북미왕국은 믿을 수 있는 동맹국이고, 나중에 조선을 제대로 통치하고 발전시키기 위해서 세자인 이순이 북미왕국을 한 번쯤 방문해서 시야를 넓히는 것도 나쁘지는 않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다만, 이순은 이연의 유일한 아들이라, 혹여 잘못되기라도 하면 조선이 흔들릴 수밖에 없으니, 허락할 수가 없었다.
이연은 북미왕국의 비행기나 선박을 타면 안전하게 북미왕국을 방문할 수 있다고 말했지만, 이연이 보기엔 혹시나 하는 생각이 안 들 수가 없었다.
거기에 이연이 알기로 북미왕국의 비행기가 추락하는 일도 있었고, 북미왕국의 배가 바다에서 침몰하거나 실종되는 일도 있었으니, 어찌 이순이 먼 길을 떠나는 것을 허락할 수 있겠는가.
해서 이연은 자신이 죽기 전까지는 절대 불가능한 일이라며 단칼에 끊었고.
다만, 이순은 포기하지 않고, 이렇게 가끔씩 북미왕국을 방문하고 싶다는 의사를 밝혔기에, 이연은 이 집요한 아들 녀석의 뜻을 어찌 꺾어야 하나 고민하면서, 일부러 이순의 말을 못 들은 척했다.
그런 이연의 반응에 이순의 입이 슬쩍 삐져나왔지만, 여러 조정 신료들의 눈이 있기에 표정을 고치면서 홈을 따라 흘러가는 쇳물을 따라 천천히 이동하면서 송림 제철소에 대해 이런저런 설명을 해 주는 소장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고.
그러다 문득 이순은 화들짝 놀란 표정으로 소장의 설명을 막았다.
“음? 잠깐만. 대체 그게 무슨 소린가. 당분간 이 송림 제철소를 제대로 가동하기 힘들다니?”
이에 소장은 조금 난감하다는 표정으로 대답다.
“그게...원료가 몹시 부족해서 말입니다.”
“원료라면...철광석이 부족하다는 말인가?”
원료가 부족하다는 소장의 대답에 이순이 고개를 갸웃하며 되묻자, 소장이 고개를 저었다.
“물론 당장 철광석도 부족하긴 한데...이 송림 제철소에서 사용할 철광석을 확보하기 위해 이미 황해도에 광산을 개발 중이니만큼, 철광석 부족 문제는 곧 해결되리라 여기고 있습니다.”
송림 제철소의 규모는 북미왕국에 지어진 제철소들에 비하면 무척 작았다.
허나, 이것만으로도 조선의 강철 생산량은 이전보다 수십 배 가까이 증가할 것으로 예측되었고.
물론, 조선은 직접 강철을 생산해 철도를 만들어, 새로운 노선을 부설할 생각이니만큼, 이전보다 월등히 많은 강철을 생산하더라도, 수요는 충분했다.
문제라면 강철을 생산하기 위한 원료가 몹시 부족하다는 것.
해서 북미왕국에서는 송림 제철소에서 가까운 황해도의 철을 캐는 기존의 광산들을 유럽의 광산처럼 개발하기 시작했고.
그렇기에 이 광산 개발이 끝나면 철광석 부족 문제는 해결될 거라는 소장의 설명에 이순이 알겠다는 듯 그럼 뭐가 문제냐는 표정을 지었다.
“허면?”
“문제는 석탄입니다. 원래 계획은 가까운 청나라 산동성에서 제철소에서 필요한 석탄을 전량 수입하기로 했는데, 하필 청나라 곳곳에서 반란이 일어나면서 석탄의 확보가 어려워져서 말입니다.”
이에 소장의 말에 집중하고 있던 이연이나 이순, 그리고 조정 신료들은 탄식을 토해냈다.
“허어. 이것 참...”
원래 주변에 강대한 국가가 있으면 피곤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기에 조선에서는 청나라가 셋으로 쪼개져 열심히 싸우는 것을 내심 반기고 있었고, 이러한 상황이 오랫동안 유지되길 바랐다.
헌데 북미왕국이 개입하면서 서로 화친을 맺게 되자 조금 떨떠름하긴 했지만, 전쟁이 계속되어 어느 한 세력이 다시 중원을 통일하는 것보다, 저렇게 셋으로 나뉜 것이 차라리 나은 것 아니냐는 말이 나오자 확실히 나쁠 것 없다고 여겼고.
여기에 화친을 맺은 후 청나라도, 주나라도, 동녕국도 이런저런 문제로 내부가 어수선하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조정 신료들은, 특히 개화파 관리들은 내심 쾌재를 질렀다.
중국의 세 나라가 나라를 안정시키기 위해 시간을 낭비하는 사이 빠르게 조선을 발전시킨다면, 더는 중국의 나라에 고개를 숙일 이유가 없었으니 말이다.
해서 조선의 조정 신료들은 이러한 혼란이 계속되길 무척이나 바랐다.
헌데, 이 때문에 이전보다 엄청나게 많은 강철을 생산해서 조선의 발달을 앞당길 것으로 기대한 제철소가 제대로 가동하기 어렵다고 하니, 이들은 난감할 수밖에 없었고,
그때 병조판서가 의아한 표정으로 소장에게 물었다.
“헌데 청나라에서 석탄을 수입하기 어려우면, 직접 캐면 그만 아닙니까? 아국에도 석탄이 꽤 묻혀 있잖습니까.”
“그럼요. 이미 아국 곳곳에서 석탄을 채굴하고 있는 만큼, 청나라의 반란 때문에 석탄을 수입해오지 못한다면 직접 캐면 그만 아니겠습니까.”
“아. 그건 그렇지요. 특히 강원도에 석탄이 무척 많이 매장되어 있다고 들었으니, 강원도에 탄광을 개발하면 되는 문제 같습니다만...”
병조판서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한마디씩 보태는 조정 신료들의 말에 소장이 난감한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그게...석탄의 종류가 다릅니다. 겉으로는 다 같은 석탄으로 부르지만, 조선에 매장되어 있는 석탄은 무연탄이고, 제철소에서 필요한 석탄의 종류는 유연탄이라서 말입니다.”
“어...? 그 말은 아국에서 캐내는 석탄은 제철소에서는 사용하지 못한다는 뜻입니까?”
소장의 대답에 병조판서가 당황한 표정으로 다시 확인하자, 소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습니다. 난방용이나 증기기관을 돌리기 위한 연료로는 사용할 수 있지만, 제철소에서는...”
소장의 대답에 조정 신료들이 탄식했을 때, 호조판서가 물었다.
“허면, 지금 저렇게 강철을 생산하는 데 사용된 석탄은 어디서 가져온 겁니까?”
“북미왕국에서 가져온 겁니다.”
“어? 북미왕국에서요?”
“예. 당장 제철소를 돌려야 하는 만큼 북미왕국에 사정을 알리고 도움을 요청했고, 덕분에 당분간은 아이누 섬의 탄광에서 석탄을 공급받기로 했습니다만...다들 아시다시피 북미왕국의 광산은 규모가 작은 편이라 생산량 자체가 얼마 되지 않아서 말입니다.”
물론 북미왕국이 인력 부족으로 광물을 직접 캐기보다는 타국에서 수입하는 것으로 유명했지만, 그렇다고 광산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었고, 이를 깨달은 조정 신료들이 상황을 이해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골치 아픈 표정을 짓고 있을 때, 이조참판이 입을 열었다.
“허면, 청나라가 산동성을 완전히 안정시킬 때까지 기다려야만 하는 겁니까? 대체 언제쯤 안정시킬 줄 알고?”
“듣자니, 산동성의 반란 세력들이 북경으로 진격했다가 청나라군에 격파되면서, 반란 세력이 쪼개졌다고 하던데...그럼 조만간 산동성이 안정되지 않겠습니까?”
청나라 소식에 정통한 예조참판의 대답에 이조참판이 회의적인 표정으로 말했다.
“글쎄요. 과연 예상처럼 될지 모르겠습니다. 원래도 청나라가 주나라, 동녕국과 화친을 맺은 만큼, 바로 각지에서 일어나는 반란을 진압하고 내부를 안정시킬 거라 여겼는데, 지금 청나라의 꼴을 보면...”
“하긴...”
이조참판의 대답에 다른 조정 신료들이 일리가 있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자, 공조판서가 대신 대답했다.
“맞습니다. 해서 일단 내상을 통해 왜국의 석탄을 수입하는 방안을 검토 중입니다.”
“왜국...에서요?”
“예. 북미왕국이나 원상을 통해 동녕국에서 수입할 수도 있긴 한데, 수송 비용을 생각하면 왜국에서 수입하는 것이 낫다는 판단이 들어서요.”
그 말에 호조참판의 약간의 경계심이 섞인 얼굴로 물었다.
“왜국에서도 석탄을 사용합니까?”
“일단 왜국도 북미왕국과 공식적으로 외교 관계를 맺고 교류하고 있다 보니...자연히 석탄을 사용하고 있는 것으로 압니다.”
“허면 증기기관을?”
이에 예조판서는 슬쩍 왜국의 사정에 정통한 유철의 옆에 있는 투로시노를 바라보았고, 조정 신료들의 시선이 자신에게 집중되자 투로시노는 어쩔 수 없다는 표정으로 대답했다.
“번주들이 자체적으로 증기기관을 연구하고는 있습니다만, 조선이 걱정할 정도는 아니니 안심하셔도 될 겁니다.”
“흠. 그렇습니까?”
자신의 말에도 경계를 늦추지 못하는 조선의 조정 신료들을 보고 투로시노가 희미하게 웃으며 말했다.
“예. 그나마 유럽이야 이전부터 증기기관을 발명하고 연구한 학자들이 있지만, 일본은 그렇지 않으니까요. 그러니 너무 걱정하지 마시지요. 이 송림 제철소에서 본격적으로 강철을 생산하기 시작한다면 조선은 더욱 발전할 터이고, 일본이 감히 조선을 넘보지는 못할 테니 말입니다."
“하하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