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12
정성국의 중얼거림에 조용한 곰이 고개를 갸웃했다.
“예? 뭐라고 말씀하셨습니까?”
“아. 아닐세. 그보다 아시아에서는 별다른 연락이 없나?”
현재 북미왕국에는 50만 명에 달하는 외국인 노동자가 곳곳에서 일하고 있었고, 여기에 오늘 신성로마제국과 폴란드-리투아니아 왕국과 정식으로 조약을 체결함에 따라 추가로 40만 명에 달하는 외국인 노동자를 확보할 수 있었다.
그러니 이 정도의 노동력이라면, 그동안 소홀했던 지역들이나 인력이 부족해 손을 놓고 있었던 각종 개발 계획들을 충분히 진행할 수 있을 것 같았고.
다만, 정성국은 기왕 북미왕국 전체를 공사판으로 만든 김에, 더 많은 노동력을 확보해 빠르게 각 지역을 개발하는 것이 낫겠다 싶었다.
특히, 조용한 곰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개발청에서는 그동안 개발에서 소외당한 낙후된 ‘본토‘ 지역의 개발에만 집중한 모양인데, 정성국은 기왕이면 인구가 적거나 노동력이 부족해 제대로 개발하지 못했던 해외 영토까지 개발하는 것이 낫지 않을까 싶었고.
더불어 북미왕국의 출산 장려 정책 때문인지, 인구가 무섭도록 증가하고 있었고, 이렇게 인구가 급증하니 기본적인 생필품의 수요가 폭증하면서, 물가가 급격히 오를 조짐이 보였기에, 이를 진정시키기 위해서는 더 많은 공방과 더불어, 이 공방에서 일할 사람들이 필요한 상황이었다.
물론, 북미왕국은 워낙 인구가 부족한 터라, 주로 사람보다는 기계의 힘을 이용해 공방을 운영하고 있었지만, 아무리 북미왕국의 기술력이 대단하다 하더라도, 완벽한 자동화 설비를 구축하는 것은 현재로서는 불가능했으니 말이다.
그렇기에 정성국은 더 많은 노동력을 확보해, 더 많은 공방을 짓고, 단순한 작업의 경우는 외국인 노동자들에게 맡길 생각이었고.
해서 정성국이 더 많은 외국인 노동자를 확보하기 위해 중국 대륙의 일을 묻자 조용한 곰이 빙긋 웃으며 대답했다.
“아. 그렇지 않아도, 신성로마제국 대사와 조약을 체결했을 때, 포로나이에서 연락이 왔었습니다.”
“그래? 뭐라고 하던가?”
정성국이 무척 기대하는 표정으로 조용한 곰을 바라보자, 조용한 곰이 씩 웃으며 말했다.
“청나라와의 협상이 대략적으로 끝났다고 하더군요.”
“오. 그게 정말인가? 생각보다 빠른데?”
유럽과는 달리, 중국 대륙의 사정은 조금 달랐기에, 외국인 노동자를 고용하는 문제를 빠르게 해결하기는 어렵지 않을까 싶었던 정성국은 이렇게 이른 시일 내에 협상을 마친 투로시노의 수완에 놀라움을 금치 못하자, 조용한 곰이 슬쩍 미소지으며 정성국의 놀라움을 풀어주기 위해 입을 열었다.
“예. 전하께서 신경 쓰시는 일이라 투로시노가 직접 움직여 그동안 구축해 둔 인맥을 최대한 이용해 저들을 압박하기도 했을 테고...아시다시피 청나라의 사정이 조금 복잡하지 않습니까. 그래서인지 아국의 제안을 마다하지 못한 모양입니다. 당장 군수물자와 군자금이 생기니까요.”
이에 정성국은 각종 보고서를 통해 보고받았던, 청나라의 내부 사정을 떠올리면서 조금 떨떠름한 표정을 지었다.
“아. 청나라의 사정은 여전한가보지?”
“그렇습니다. 여전히 각지에서 반란이 계속되고 있지요.”
조용한 곰의 대답에 정성국이 당최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얼굴로 매끈한 턱을 매만지며 중얼거렸다.
“흠...솔직히 조금 예상외긴 해. 그동안 청나라에 넘긴 머스킷만 해도 꽤 많잖아? 헌데 기껏해야 냉병기로 무장한 반란군 때문에 아직도 골치를 썩인다는 것이...”
그동안 북미왕국에서 청나라에 판매한 머스킷, 정확히는 조선제 조총만 하더라도 5만 자루에 달했다.
그리고 청나라는 이 조선제 조총으로 무장한 병력을 이용해 당시 반란 세력이었던 주나라의 정예군을 모조리 격파하며 밀어붙이기도 했고, 준가르의 정예병을 막아내기도 했다.
헌데, 그런 청나라가 고작 반란군을 제압하는 데 애를 먹고 있다는 것은 이해하기 어려웠다.
특히, 지금 청나라의 황제인 강희제의 수완이 보통이 아니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기에.
‘설마 나라가 쪼개져서 낙담해 매일 같이 술을 퍼마시기라도 하나? 그런 보고는 못 들은 것 같은데?’
이렇게 정성국이 잡생각을 하고 있을 때, 조용한 곰이 입을 열었다.
“아. 그게...전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조선제 조총으로 무장한 청나라군이 5만 명에 달하긴 합니다. 허나, 계속해서 청나라 각지에서 반란이 일어나고 있다 보니, 청나라 황제나 북경의 대신들은 무엇보다 수도인 북경의 안전을 우선시할 수밖에 없다는 점입니다.”
북경의 분위기를 설명해주는 조용한 곰의 말에 정성국은 오히려 어처구니없다는 반응을 보였다.
“허. 그럼 그나마 청나라군에서 가장 정예병이라 할 수 있는 머스킷으로 무장한 5만 명의 병력 전체를 북경에 묶어두고 있다는 소린가? 청나라 각지에서 계속해서 반란이 일어나고 있는 상황에서?”
물론 수도의 방어는 무척이나 중요했다.
특히, 청나라의 경우 수도인 북경이 반란군에 의해 함락된다면, 그것으로 끝이나 마찬가지였으니까.
다만, 기존에 수도를 방어하는 병력이 아예 없는 것도 아닌데, 5만 명에 달하는 정예병을 북경 인근에 배치한 것은 과하다는 생각이 들 수밖에 없었다.
물론, 겁이 많거나 자신의 안위가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여기는 군주라면야 어느 정도 이해라도 하겠지만, 그 강희제가 그런 결정을 내릴 줄은 미처 몰랐기에 정성국은 더욱 어처구니없다는 반응을 보일 수밖에 없었고.
그러나 조용한 곰의 생각은 조금 다른지, 오히려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결정이 아니냐는 표정으로 대답했다.
“청나라 각지에서 계속 반란이 일어나고 있으니, 북경의 안전을 최우선으로 생각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 아니겠습니까.”
“끙. 물론 그렇기야 하지만...그래도 기존에 북경을 방어하던 병력이 있는 만큼, 머스킷으로 무장한 병력은 반란 토벌에 투입하는 것이 맞지 않나 싶은데? 특히 이들은 그동안 여러 전장을 전전했기에 전투 경험도 풍부할 테고 말이야.”
아무리 불안하다고 해도, 각지에서 반란이 커지고 있는데 최정예군을 수도에 묶어놓는다는 발상이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은 정성국이 이렇게 토로하자, 조용한 곰이 수긍하듯 고개를 끄덕인 후 자세한 설명을 시작했다.
“물론 그렇지요. 해서 처음에는 북경에서도 하구진 조약 이후 주나라, 동녕국과의 전쟁이 종결되면서, 국경에 배치되었던 조선제 조총으로 무장한 5만 명의 정예 병력을 가까운 섬서성으로 움직여 빠르게 반란을 진압하려 했고요. 헌데 섬서성의 반란을 채 진압하기도 전에, 북경에서 가까운 산동성의 반란이 크게 번지고, 산동성의 도지휘사가 이끄는 병력이 반란군에 패하면서, 상황이 완전히 바뀌었습니다.”
“아? 그건 나도 기억 나네만...결국, 천진에서 산동성의 반란군을 막아내지 않았나?”
산동성의 도지휘사가 이끄는 병력을 격파한 산동성의 반란 세력은 그 기세를 타고 북경을 공략하고자 했다.
물론 북경을 향해 진군하는 것이 무척이나 위험하다는 사실은 산동성의 반란 세력 역시 인지하고 있었다.
다만, 예전처럼 청나라가 주나라, 동녕국과 전쟁 중이면 모를까, 화친을 맺은 상황이라 위험을 무릅쓸 수밖에 없었다.
이미 국경에 배치되어 있던 청나라군이 반란을 진압하기 위해 가까운 섬서성으로 이동했다는 소식을 접했고, 이 청나라군이 섬서성의 반란을 진압하고 나면, 그다음에는 자신들을 박살 내기 위해 산동성으로 이동할 것이 뻔했기에, 청나라의 정예군이 섬서성의 반란을 완전히 진압하기 전에 죽기 살기로 북경을 공격해 청나라를 멸망시키는 것 외에는 살 방법이 없어 보였던 것이다.
해서 산동성의 반란 세력은 산동성에 배치되어 있던 청나라군을 격파한 후, 그 기세를 몰아 황하강을 넘어 북경의 남쪽에 있는 천진으로 진격했지만, 천진은 북경의 외항 역할을 하는 만큼, 방어를 위해 다수의 병력이 배치되어 있었고.
여기에 청나라 수군마저 다수 배치되어 있었기에, 이들이 힘을 합해 보급 물자를 노리고 천진을 공격한 산동성의 방어 세력을 막아냈다.
그리고 반란 세력들은 대부분 잘나갈 때는 무섭게 세력이 커지지만, 한 번 패배하면 순식간에 세력이 와해되고는 하는데, 산동성의 반란군들 역시 이러한 법칙을 벗어나지 못했고.
해서 산동성의 반란 세력의 규모는 급격히 쪼그라들었고, 그러니 상황은 끝난 것 아니냐는 정성국의 물음에 조용한 곰이 고개를 저었다.
“그랬지요. 다만, 잠시나마 수도가 위협받았던 것은 사실이잖습니까. 거기에 북경에서는 가까운 산동성에서 반란이 일어났다고 한들, 반란군이 산동성에 배치된 병력을 격파하리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고, 설사 반란군이 산동성에 배치된 병력을 격파하더라도 산동성의 장악에 힘쓸 거라고 여겼지 감히 북경을 공격하리라고는 생각도 못 했었기에, 그 일로 청나라 황제와 대신들이 받은 충격이 무척 컸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인지 산동성의 반란군이 북경으로 진격한다는 소식을 듣고 급히 섬서성에서 철수한 5만의 정예 병력이 뒤늦게 북경에 도착하자 그대로 북경에 배치해버린 거지요.”
“그것 참...”
조용한 곰의 설명에 북경의 분위기를 어느 정도 짐작한 정성국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더불어 하구진 조약을 중재하면서 청나라에서 여러 이권을 획득했기에, 북미왕국의 경제적인 이득을 위해서라면 청나라의 내부 사정이 안정되는 것이 좋은데, 돌아가는 꼴을 보아하니 그러기까지는 시간이 꽤나 걸릴 것 같았기에 골치가 아팠고.
그나마 북미왕국에서 청나라에 수출하는 품목들은 대부분 청나라 귀족들을 위한 사치품이고, 각지에서 반란이 일어나는 것과 청나라 귀족들의 사치는 별개였기에 북미왕국이 크게 손해를 보지는 않기에 다행이긴 하지만, 여러모로 입맛이 씁쓸할 수밖에 없어 정성국이 찝찝한 표정을 지었을 때, 조용한 곰이 다시 입을 열었다.
“뭐 청나라가 반란 토벌에 소극적인 모습을 보이는 것이 썩 나쁘지는 않습니다. 덕분에 약간의 군수물자와 군자금을 내어주는 것으로 50만 명에 달하는 외국인 노동자들을 고용할 수 있게 되었으니까요.”
그 말에 정성국은 눈이 번쩍 뜨여졌다.
“허. 50만 명? 역시 인구가 많은 청나라...아? 잠깐. 청나라 곳곳에서 반란이 일어나고 있는데, 50만 명에 달하는 일꾼을 모집할 수 있긴 해?”
청나라는 그동안 전비로 박대한 비용을 소모했고, 이 때문에 더 많은 세금을 거두다 보니 각지에서 불만이 터져 나왔다.
해서 산동성과 섬서성에서는 대규모로 반란이 일어났고.
여기에 청나라가 의외로 이 반란을 단숨에 진압하지 못하자, 청나라가 약해진 것을 깨달은 야심가들이 백성들은 선동하면서, 각지에서 반란이 일어나고 있었다.
그런 상황이니, 50만 명에 달하는 성인 남성을 무슨 수로 고용하겠나 싶어서 혹시 일단 협상을 체결한 후, 청나라의 사정이 안정되면 데려올 생각인가 싶어 중얼거리자, 조용한 곰이 자신만만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입니다. 북경 인근의 직례성과 아국이 확보한 개항장과 인근 지역은 평온하니까요.”
“아...”
북경 인근의 직례성은 당연히 수도 인근이기에 청나라가 철저히 관리하고 있었고, 그렇기에 다른 지역에 비해 평온했다.
그리고 북미왕국이 청나라에 확보한 개항장 역시 마찬가지였고.
이는 청나라에서 개항장을 방어하기 위해 병력을 배치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반란군들이 개항장 주변은 얼씬도 하지 않기 때문에 평온할 수밖에 없었다.
물론 개항장에는 각종 물자가 쌓여 있었기에, 세력을 키우려는 반란군으로서는 꽤 매력적인 목표이긴 했다.
그러나 개항장을 건드렸다가는 청나라뿐만 아니라 북미왕국이 개입할 수 있다는 사실 때문에 개항장 근처에는 얼씬도 하지 않았고.
다만, 그렇게 개항장 주변 마을이 반란의 불길에 살짝 벗어나 있기는 하지만, 북경에서는 개항장 주변 마을의 백성들이 반란 세력에 가담할 수도 있다고 생각했고, 그러니 북미왕국에서 이들을 데려가 일꾼으로 써먹는다고 하니, 오히려 나쁠 것 없다는 반응을 보였다는 조용한 곰의 설명에 정성국이 웃음을 터트렸다.
“하하하. 그래서 50만 명이나 되는 어마어마한 수의 백성을 고용할 수 있도록 허락한 거란 말이지?”
“그렇습니다. 거기에 북미왕국에서 외국인 노동자들에게 적절한 보수를 지급할 거라는 소문을 흘린다면, 반란에 가담한 백성들도 북미왕국에 고용되기 위해 반란 세력에서 빠져나올 수도 있다고 여긴 듯하고요. 해서 어지간하면 개항장 인근의 백성들을 고용해 달라고 하더군요.”
이에 정성국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중얼거렸다.
“그것 참...그래도 덕분에 50만 명에 달하는 외국인 노동자를 추가로 확보할 수 있었으니 나쁠 것은 없겠네?”
“맞습니다. 그리고 투로시노가 보고하길 이 50만 명에 달하는 청나라인들을 고용하고 수송하는 것만으로도 벅찰 것 같아, 일단 동녕국, 주나라와의 협상은 미루겠다고 알려왔습니다.”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이야기였기에 정성국이 고개를 끄덕이며 대꾸했다.
“아. 그래야겠지. 알겠네. 투로시노에게는 고생했다고 전하고, 각 청에 이야기해 청나라인들을 데려오고 배치하고 관리하는 문제도 다시 상의하도록 하게.”
“알겠습니다. 전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