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9
정성국은 일리노이 지역의 세카고우 항이 보인다는 선원의 보고에 이미 식사를 끝낸 정성국은 아직 식사 중인 가족들에게는 식사를 마저 하고 천천히 나오라고 이야기한 후 먼저 자리에서 일어나 갑판으로 나왔고.
눈앞에 보이는 세카고우 항의 모습에 정성국은 자신도 모르게 감탄사를 토해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세카고우 항의 모습은 정성국이 예상했던 모습과는 전혀 달랐기 때문이다.
선착장과 이어진 거대한 대로를 따라 마치 북미 동해안 지역의 항구들 마냥, 유럽식 벽돌 건물들이 죽 늘어서 있는 세카고우 항은, 정성국이 예상했던 작은 항구 마을과는 거리가 멀었다.
또한, 대로를 따라 전신주가 세워져 있고, 이 전신주에 전선들이 연결되어 있는 모습을 보아하니, 세카고우 항에는 전기까지 공급되는 것 같아, 요 며칠 동안 둘러본 포타와토미 항이나 메노미니 항과는 너무 차이가 났기에, 정성국은 혀를 내두르며 중얼거렸다.
“와우. 이건 조금 예상외인데? 저 세카고우 항도 포타와토미 항이나 메노미니 항과 비슷한 시기에 건설된 것으로 기억하는데? 헌데 어떻게 세카고우 항만 저렇게 발전한 거지?”
이러한 정성국의 의문에 미리 갑판에 나와 있던 개발청장이 바로 대답했다.
“오지브와 지역이나 미시간 지역과는 달리, 일리노이 지역은 이전부터 내륙 항구인 타마로아 항을 중심으로 발전해오고 있었을뿐더러, 유럽 이주민들을 받아들이기 시작한 초창기에 미시시피 강의 지류인 일리노이 강을 따라 정착시킨 터라, 세카고우 항에서 가까운 곳에 조성된 마을들이 몇 있었고, 인구가 증가함에 따라 계속해서 마을을 확장 중이었습니다. 그렇기에...”
“아. 마을 확장에 투입된 인력과 자재들을 세카고우 항으로 돌린 건가?”
“그렇습니다. 일리노이 지방청에서는 수로 정비 사업 이후 세카고우 항이 타마로아 항과 비견될 정도로 커지리라는 것을 짐작하고, 당시 일리노이 지역에서 진행하고 있던 마을 확장 공사나 발전소 건설 공사 등을 모두 멈추고 세카고우 항 건설에 일리노이 지방청의 모든 역량을 투입했고, 덕분에 세카고우 항은 메노미니 항이나 포타와토미 항과는 달리, 3년 만에 거의 도시급으로 발전한 거지요.”
정성국이 북미왕국을 건국한 이후, 통신과 이동 수단의 발전에 무척이나 신경을 썼었다.
북미왕국의 광활한 영토를 원활히 통치하려면 무엇보다 중요한 것이 바로 더 빠른 통신 수단과 교통 체계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연구청은 정성국의 기대에 부응해 전화선만 연결되어 있다면, 아무리 멀리 떨어져 있어도 연락을 주고받을 수 있는 전화를 개발하기도 했고, 빠르게 관리를 파견할 수 있는 비행기를 개발하기도 했다.
동시에, 개발청과 통신국에서 열심히 활주로를 건설하고 전선을 설치한 덕분에, 북미왕국은 다른 나라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빠르게 정보를 전달하고 관리를 파견할 수 있게 되었고.
그러나 아무리 북미왕국의 통신과 교통 체계가 발전했다 하더라도, 북미왕국의 거대한 영토를 생각하면, 새한성의 본청에서 각 지역을 일일이 관리할 수는 없었다.
해서 지역마다 따로 각 청의 분청을 두고, 지역의 일은 이 분청에서 처리하고 있었고.
새한성의 본청에서는 이렇게 분청에서 올라오는 보고서들을 검토하고, 가끔 관리들을 파견해 보고서에 오류는 없는지 확인하거나, 분청을 돕는 것이 전부였다.
그렇기에 각 지역의 개발은, 이 분청들을 총칭해 부르는 지방청의 역량에 따라 갈릴 수밖에 없었고, 일리노이 지역은 내륙 개발 초창기부터 개발이 진행되어 지방청의 역량이 오지브와 지역, 미주리 지역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라는 사실을 정성국도 잘 알고 있었기에, 상황을 이해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중얼거렸다.
“흠. 마을 확장을 멈추고 세카고우 항 건설에 집중한 일리노이 지방청의 판단은 꽤나 적절해 보이는군.”
“그렇지요? 특히, 세카고우 항이 건설되면서 주변에서 사람들이 몰리는 바람에, 일리노이 강을 따라 건설된 마을들의 성장이 정체되고 있으니, 일리노이 지방청에서 세카고우 항의 개발에 집중하지 않았다면, 꽤 혼란스러웠을 겁니다.”
일리노이 지방청의 판단을 칭찬한 정성국의 말에 개발청장이 이렇게 대꾸하자, 정성국은 조금 놀랍다는 표정으로 세카고우 항을 바라보며 말했다.
“허. 생각보다 건물이나 인구가 많아서 짐작은 했었지만...그건 조금 의외군. 그래도 세카고우 항보다는 일리노이 강을 따라 건설된 기존의 마을에서 사는 것이 당장은 더 편할 텐데 말이야.”
일리노이 강을 따라 이주민들이 정착하고 이들을 위한 마을이 건설된 지도 벌써 8년 가까이 흘렀다.
그러니 마을마다 관공서, 학교, 병원, 은행 같은 시설들이 들어와 있었고.
그에 반면 세카고우 항은 막 개발되기 시작한 만큼, 이러한 시설들이 부족했고, 이를 이용하려는 백성들은 불편을 감수할 수밖에 없었다.
헌데도, 백성들이 일리노이 강을 따라 건설된 각 마을이 아니라 세카고우 항으로 몰려들고 있다는 개발청장의 말에 정성국이 놀라자, 개발청장이 어깨를 으쓱했다.
“그렇긴 하지요. 다만, 일리노이 주민들도 아는 겁니다. 나이아가라 운하가 개통되고 나면, 세카고우 항이 급격히 발전할 거라는 것을요. 그러니 당장은 조금 불편하더라도 미리 정착해 자리를 잡아두겠다는 생각을 한 모양입니다.”
개발청장의 대답에 정성국은 자신이 간과한 것을 깨닫고 고개를 끄덕였다.
“아. 하긴...그들의 생각이 이해는 되는군. 이젠 북미왕국의 백성들도 도시에서의 생활이 작은 마을에서의 생활보다 낫다는 것을 알고 있을 테니까.”
“예. 물론, 전하께서 일전에 도시 집중화 현상이 심해지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고 말씀하셨기에, 저희가 나름 신경 써서 작은 마을에도 각종 편의 시설과 문화 시설 등을 건설하고는 있습니다만...”
개발청장이 말을 흐리자 정성국이 쓰게 웃으며 그 말을 받았다.
“도시보다야 부족하겠지. 거기에 규모에서도 차이가 날 테고.”
“예. 그렇다고 인구 천 명 정도의 작은 마을에 도시에나 세울 법한 시설들을 건설할 수도 없는 노릇이라...”
정성국 역시 도시 집중화 현상이 계속되면, 좋을 것이 없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거기에, 그가 휴가를 빌미로 북미왕국 곳곳을 돌아다니면서 옛 대추장들을 만날 때마다 항상 듣는 소리가 바로 부족원들이 도시에 가서 돌아오지 않아 옛 마을이 사라질 위기에 처했다는 하소연이었고.
그렇기에, 정성국은 나름대로 개발청장에게 이야기해, 작은 마을에도 각종 시설을 건설해, 굳이 도시에 가지 않더라도 큰 불편함이 없도록 조치하고는 있었지만, 여러모로 부족한 것이 사실이었다.
다만, 이 문제는 장기적으로 접근해야 하는 문제였지, 당장 어떻게 해결할 방법은 없었기에 정성국이 어깨를 으쓱하며 대답했다.
“뭐 그 부분은 계속 고민해봐야겠지. 그보다 저렇게 잘 발전된 세카고우 항을 보니 미시간 지역과 오지브와 지역의 상황이 얼마나 열악한지를 새삼 깨닫게 되는구만.”
“송구합니다. 전하.”
정성국의 말에 개발청장은 면목 없다는 듯 다시 고개를 숙였고.
그런 개발청장의 반응에 정성국이 손을 내저었다.
“아닐세. 대신 내가 포타와토미와 메노미니의 주민들과 약속한 내용을 지킬 수 있도록 두 항구의 개발에 최대한 신경을 써주게.”
“그야 물론입니다. 전하.”
* * *
정성국은 가족들과 함께 세카고우 항을 둘러보고 자신을 반기는 세카고우의 주민들을 적당히 위무한 후, 호위대장이 준비한 자동차를 타고 도로를 따라 남쪽으로 이동했고.
거점 공항이 있는 타마로아 항에 도착해 비행기를 타고 새한성으로 복귀했다.
그리고 잠깐의 휴식을 취한 후 곧바로 잠시 새한성을 비운 사이 쌓이기 시작한 보고서를 처리하기 위해 집무실로 향했고.
집무실에 도착한 정성국이 한창 밀린 보고서를 처리하고 있을 때, 조용한 곰이 집무실 안으로 들어와 정성국에게 인사했다.
“찾으셨습니까. 전하.”
정성국이 집무실에 도착해 밀린 보고서를 처리하기 전에 호출했던 조용한 곰이 도착하자, 정성국은 들고 있던 보고서를 내려놓고 그를 반겼다.
“오. 왔나. 자. 여기 앉게. 이것도 좀 들고.”
정성국은 슬슬 여름이었기에, 냉장고에서 냉차를 꺼내 조용한 곰에게 따라주었고.
“감사합니다. 전하.”
정성국이 따라준 냉차를 마시며 갈증을 해소한 조용한 곰은 정성국을 바라보고 질문을 던졌다.
“헌데 새한성에 돌아오시자마자 갑자기 저를 부르신 연유가 궁금합니다만...”
이에 정성국은 냉차가 담긴 주전자를 내려놓으며 입을 열었다.
“아. 자네도 알겠지만, 이번에 나이아가라 운하 개통식에 참석한 후, 포타와토미 항, 메노미니 항, 세카고우 항을 들렀었네.”
“예. 알고 있습니다. 북미신문에 전하를 보고 환호하는 주민들의 사진이 대문짝만하게 실렸거든요.”
정성국을 따라 다녔던 북미신문의 기자들이, 정성국의 방문을 열렬히 환호하는 현지 주민들의 사진을 1면에 실은 것은 그도 알고 있었기에, 피식 웃으며 계속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아무튼, 그렇게 직접 세 곳의 항구를 둘러보았는데...일리노이 지역의 세카고우 항은 나름대로 잘 개발되어있었지만, 포타와토미 항이나 메노미니 항은 기대 이하였네.”
“그렇겠지요. 아무래도 개발청은 나이아가라 운하 공사를 비롯해 굵직한 일에 집중해야 하는 터라, 세 항구의 개발은 결국 각 지역의 지방청에서 도맡아야 하는데, 내륙 지역에서 세 손가락 안에 들 정도로 발전된 일리노이 지역의 지방청의 역량과 인구도 적고 낙후된 미주리, 오지브와 지역의 지방청의 역량은 차이가 크니까요.”
따로 설명하지 않아도, 돌아가는 사정을 훤히 짐작하고 있는 조용한 곰의 대답에 정성국은 시시콜콜하게 설명할 필요가 없어 잘 되었다는 표정으로, 말을 이어나갔다.
“그래서 개발청장에게는 미주리 지역과 오지브와 지역의 개발에 더욱 신경 쓰라고 이야기해두긴 했네. 그리고 개발청장은 알겠다고 대답하기는 했고. 다만, 개발청장은 이후에 유입되는 유럽인들을 미주리 지역과 오지브와 지역에 정착시키고, 이들의 노동력으로 두 지역을 개발하겠다는데...내가 볼 땐 두 지역을 개발하기엔 조금 부족할 것 같아.”
동유럽 국가들과 정식으로 외교 관계를 맺은 이상, 유럽에서 유입되는 이주민의 숫자는 줄어들 수밖에 없었다.
거기에 그동안 내륙 지역 개발의 원동력이 되어 주었던 아일랜드인들 역시, 상당수가 북미왕국으로 이주해 왔기에, 이주민의 숫자가 조금씩 줄어들 수밖에 없었고.
이를 알고 있기에 정성국은 개발청장이 내세운 유럽 출신 이주민들을 미주리, 오지브와 지역에 정착시키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는 생각을 안 할 수가 없었다.
기껏해야 한 해에 2, 30만 명 정도의 이주민이 전부이고, 여기서 실제로 노동력을 제공할 수 있는 성인 남성은 5, 6만 명 정도로 추산되는 만큼.
그러니 무언가 대책이 필요했고, 자연스레 정성국은 외국인 노동자를 떠올릴 수밖에 없었다.
조용한 곰은 노동력 부족을 이야기하는 정성국의 말에서, 정성국이 자신을 부른 이유를 눈치채고 확인차 물었다.
“허면 전하께서는...더 많은 외국인 노동자를 고용하기 위해 협상해보라고 저를 부르신 겁니까?”
“정확하네.”
정성국이 바로 고개를 끄덕이자, 조용한 곰은 조금 난처한 얼굴로 말했다.
“흠. 지금도 많은 외국인 노동자를 고용하고 있기에, 쉽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만...”
조용한 곰의 말에 정성국은 고개를 갸웃했다.
“음? 아. 굳이 잉글랜드, 프랑스, 에스파냐 삼국과 협상할 필요 있나? 이번에 정식으로 외교 관계를 맺은 동유럽 국가들이 있잖나.”
정성국의 말에 조용한 곰은 쉽지 않다는 표정을 지으며 대답했다.
“흠. 중재의 대가로 북미왕국에 이주민들을 내어주는 상황에서, 더 많은 백성들이 자국을 빠져나가는 것을 쉽게 허락하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만...”
“저들이 원하는 것을 대가로 내어준다면 충분히 가능하지 않겠나.”
“대가라면?”
“증기기관 제작 기술 말일세. 어차피 동맹국들과 우호국에게 넘겼으니...”
기왕 유럽 일부 국가에 기초적인 증기기관 제작 기술을 넘긴 김에, 이 기술이 타국에 흘러나가기 전에 이를 이용해 이득을 취하라는 정성국의 말에 조용한 곰은 바로 대답했다.
“허. 그렇다면야 이야기가 다르지요. 다만...증기기관 제작 기술을 헐값에 넘길 수야 없는 노릇이니, 최대한 많은 외국인 노동자들을 확보하도록 하겠습니다.”
조용한 곰의 말에 정성국은 빙긋 웃으며 덧붙였다.
“그럼 좋겠지. 그리고...가능하다면 중국 대륙의 삼국과 협상해 외국인 노동자를 확보했으면 하네.”
“...청나라, 주나라, 동녕국과 인력 협상을요?”
의외의 말에 조용한 곰이 눈을 크게 뜨자 정성국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솔직히 유럽 대륙의 인구보다 중국 대륙의 인구가 훨씬 많지 않은가. 그러니 중국 대륙의 삼국과 잘만 협상한다면...수십 만에 달하는 건설 노동자를 확보할 수 있겠지.”
“흐음...알겠습니다. 일단 투로시노에게 말을 해두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