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조선을 탈출하라-808화 (808/850)

#808

나이아가라 운하를 통과한 여객선은 운하 북쪽 출입구의 옆에 조성된 항구에 정박했고.

정성국은 가족들과 함께 여객선에서 내려, 미리 준비된 숙소에서 휴식을 취한 후, 일정에 따라 나이아가라 폭포를 구경하러 떠난 각국 대사들과는 달리, 자동차를 타고 운하를 따라 이동해, 어제 나이아가라 운하 개통식이 열렸던 운하 남쪽 출입구 인근에 조성된 항구로 되돌아갔다.

어제 개발청장의 말을 듣고 결정한 대로, 미시간 지역의 포타와토미 항, 오지브와 지역의 메노미니 항, 일리노이 지역의 세카고우 항을 방문하기 위해서였다.

다만, 정성국은 혼자 움직일 생각이었다.

개발청장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그가 방문할 세 지역의 항구들은 막 개발 중이라 딱히 구경할 것이 없어 보였기에.

해서 가족들에겐 자신이 세 지역의 항구를 둘러보는 동안, 나이아가라 폭포를 구경하고, 휴식을 취하라고 권했다.

예전에 가족들과 함께 나이아가라 폭포를 방문했을 때와는 달리, 개발청에서 나이아가라 폭포 인근에 관광객들이 편히 폭포를 관람하고, 휴식할 수 있도록 각종 시설을 건설해두었다고 하니, 기왕 여기까지 온 김에 다시 나이아가라 폭포도 구경하고, 편히 휴식을 취하는 것이 나아 보였던 것이다.

그러나 전아라와 하얀 들꽃은 정성국과 함께 시간을 보내고 싶어했기에 나이아가라 운하 개통식에 참석한 것이었던 만큼, 정성국과 헤어지기보다는 함께 움직이길 원했다.

특히, 비행기가 아닌 배로 움직이는 만큼, 느긋하게 정성국과 시간을 보낼 수 있을 테니 나쁠 것도 없고.

해서 전아라와 하얀 들꽃은, 정성국이 세 곳의 항구를 방문하는 이유가 그동안 소외당했던 미시간 지역, 오지브와 지역의 주민들을 위무하기 위함인데, 어찌 왕비인 자신들이 빠질 수 있겠느냐며 정성국과 함께 세 항구를 방문하겠다고 주장했고, 정나리 역시 예전에 한 번 방문했었던 나이아가라 폭포를 방문하는 것보다는, 가보지 못했던 곳을 처음 방문하는 것이 더 끌렸기에 조용히 어머니들의 주장을 따랐다.

이러한 가족들의 반응에 정성국은 어쩔 수 없이 가족들과 함께 출항 준비가 끝난 조그마한 여객선에 올라탔고.

이튿날, 미시간 지역의 포타와토미 항이 보인다는 선원의 보고에 정성국은 가족들과 함께 갑판 위로 나와, 강 왼쪽에 보이는 활기찬 항구 마을을 자세히 살펴보고 떨떠름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허. 이거 생각과는 너무 다른데...?”

나이아가라 운하 공사를 제외한 수로 정비 사업이 대부분 끝나, 온타리오 호를 제외한 오대호가 미시시피 강과 연결된 지도 거의 3년 가까이 흘렀다.

그리고 정성국이 개발청장과 행정청장에게 이곳 포타와토미 항에 관해 보고 받았던 것도 3년 전쯤이었고.

그렇기에 정성국은 아무리 인력이 부족하더라도, 이곳 포타와토미 항이 어느 정도는 개발되어있을 줄 알았다.

헌데 지금 정성국의 눈앞에 보이는 포타와토미 항은, 선착장과 창고를 제외하면, 제대로 된 건물 자체가 많지 않았다.

기껏해야 선착장과 창고 부근의 포타와토미 항의 도심지라 부를 수 있는 위치에 존재하는 관공서나 상점들로 보이는 일부 목조 건물들을 제외하면, 대부분은 천막이나 티피만 가득했달까.

그러니 정성국은 포타와토미 항의 모습에 당황했고, 함께 갑판에 나와 포타와토미 항을 바라보던 전아라나 하얀 들꽃, 정나리도 정성국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한마디씩 했다.

“그러게요. 환경이 너무 열악한 것 같은데요?”

“맞아요. 잘못하면 전염병이 돌 수도 있을 텐데 걱정이네요.”

“그렇기도 하고, 여기도 고위도라 겨울엔 무척 춥지 않나요? 천막이나 티피에서 겨울을 나기는 힘들 것 같은데...”

이에 정성국이 고개를 끄덕이며, 정성국을 따라 여객선에 탑승한 개발청장을 바라보자, 개발청장은 쓰게 웃으며 대답했다.

“일단, 겉으로 보기엔 천막과 티피가 대부분이라, 무척 열악한 환경으로 보이시겠지만, 그 정도까지는 아닙니다.”

“그게...정말인가요?”

개발청장의 말에 전아라가 다시 한번 천막생활을 하는 포타와토미의 주민들을 보고 못 미더운 표정으로 묻자, 개발청장이 바로 입을 열었다.

“그렇습니다. 일단 원래 포타와토미 족이 거주하는 전통 가옥의 환경이나 지금 저기 보이는 천막의 환경이나 크게 다른 바 없습니다. 그러니 포타와토미의 주민들은 천막에서 지내는 것에 크게 불편함을 느끼지 못하지요.”

개발청장의 말처럼 포타와토미 족이 천막생활에 크게 불편함을 느끼지 못하더라도, 다른 지역의 주민들의 생활 환경보다는 열악하다고 볼 수 있기에, 전아라가 안타깝다는 표정으로 포타와토미 항을 바라보고 있을 때, 옆에 있던 하얀 들꽃이 끼어들었다.

“포타와토미의 주민들이 천막생활에 불편함을 느끼지 못한다 하더라도, 개발청에서 나서서 더 좋은 환경을 제공해주어야 했다고 보는데요? 아. 물론 건설 노동자가 무척 부족하다는 사실은 모르지 않지만...건축가 몇 명만 파견하고 이곳에서 일꾼을 모집해 간단히 건설할 수 있는 목조 건물들을 지으면 될 문제잖아요?”

“그게...”

정성국을 도와 수많은 서류를 섭렵한 하얀 들꽃이 날카롭게 지적하자, 개발청장은 식은땀을 흘리며 무어라 대답하려 할 때, 하얀 들꽃이 먼저 말했다.

“거기에 천막생활을 하다 보면 위생이 열악해질 수밖에 없어 전염병이 돌 위험이 크다는 사실은 개발청장님도 잘 아시잖아요?”

이에 정성국이나 전아라, 정나리가 고개를 끄덕이며 개발청장을 바라보자, 개발청장은 압박감에 다시 한번 식은땀을 흘리며 고개를 숙였다.

“죄송합니다. 원래는 개발청에서도 그럴 예정이었습니다만, 포타와토미 족이 천막생활에 크게 불편해하지 않아 했기에, 당장 급한 이주민 정착촌 건설에 집중하다 보니...”

개발청장의 대답에 정성국이 혀를 찼다.

물론, 정성국도 개발청장이 왜 그런 선택을 했는지는 짐작했다.

이주민들은 더 나은 삶을 위해 북미왕국으로 이주한 만큼, 당장 집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오랫동안 천막생활을 하게 되면, 이들이 품었던 북미왕국의 환상이 깨질 수밖에 없었다.

특히, 북미왕국으로 이주하는 일본 출신 이주민들은 대부분 별다른 재산이 없는 최하층 계급에 가깝지만, 유럽 출신 이주민들은 아일랜드인들을 제외하면, 종교의 자유라던가, 북미왕국의 백성들의 생활 수준이 유럽의 귀족에 버금간다는 소문에 재산을 처분하고 북미왕국으로의 이주를 결심한 중산층이 많았기에, 이들이 북미왕국의 생활에 불만을 터트리기 시작하면 여러모로 골치 아플 수밖에 없었으니.

그러나 정성국이 생각하기엔 이주민들을 대우해주기 위해 원주민들을 의도적으로 방치한 셈이고, 자신도 바쁘다는 이유로 이를 제대로 살피지 못했다는 생각에 입맛이 쓸 수밖에 없었다.

거기에 정성국이 생각하기엔 포타와토미 족을 비롯한 여러 원주민 부족들도 이주민과 마찬가지로 더 나은 삶을 살기 위해 북미왕국으로 합류한 것이니만큼, 지금 여객선에 걸려 있는 흰머리수리 깃발을 보고 선착장으로 나와 정성국의 방문을 무척 기뻐하며 열렬히 환호하고 있는 포타와토미 주민들의 행동에 무척이나 미안한 감정이 들 수밖에 없었고.

“쩝. 물론 워낙 인력이 부족하니, 선택과 집중을 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은 알지만, 원주민보다 이주민을 우선한 것은 자네 실수인 것 같네.”

“송구합니다. 전하.”

해서 정성국이 개발청장에게 한마디 하자, 개발청장은 다시 한번 고개를 숙였고.

그런 개발청장을 보고 정성국이 속으로 생각했다.

‘와보길 잘했네. 이러한 실태를 몰랐다면, 포타와토미 족을 비롯해 원주민들이 계속 차별받았을 테니까. 다만 개발청장이 고의로 원주민들을 차별했다기보다는, 북미 대륙 전체를 개발하다 보니 인력이 부족해 어쩔 수 없이 생긴 문제니만큼...이를 해결하려면 역시 더 많은 건설 노동자들이 필요하려나? 끙. 매년 성인이 되는 인구가 늘어나고 있으니, 조금만 버티면 숨통이 완전히 트일 것 같기는 한데...’

그렇게 정성국이 인력 부족 문제 때문에 한창 팔짱을 끼고 고민하고 있을 때, 하얀 들꽃이 개발청장에게 질문을 던졌다.

“헌데, 저렇게 많은 사람들이 천막생활을 하는데 용케 전염병이 돌지는 않았네요?”

만약 이곳에 전염병이 돌았다면, 즉각 새한성으로 보고가 올라왔을 테고, 그러면 하얀 들꽃이 모를 리 없었다.

헌데, 그녀가 그러한 보고를 접하지 못했다는 것을 보면 저렇게 열악한 환경에서도, 별다른 문제가 없었다는 소리였기에, 하얀 들꽃이 의외라는 듯 묻자, 개발청장이 정성국의 눈치를 보며 슬쩍 입을 열었다.

“그래도, 지금 저기 보이는 부지 전체에 기초적인 상하수도 시설은 설치해 두었습니다. 저기 보시면 주민들이 지내는 천막 중간중간에 목조 건물들이 있지요?”

개발청장이 손으로 몇몇 곳을 가리키자 하얀 들꽃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어? 설마?”

“예. 저게 공용 화장실과 목욕탕입니다. 이를 이용해 포타와토미의 주민들은 위생적으로 지낼 수 있고, 여기에 행정청과 보건청, 그리고 치안국에서, 더욱 신경 써서 관리하고 있기에 별다른 문제가 발생하지 않은 것이죠.”

그제야 전아라나 하얀 들꽃은, 그래도 포타와토미 주민들의 생활이 엄청나게 열악한 수준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아. 그래도 다행이네요. 많이 걱정했는데.”

전아라와 하얀 들꽃의 표정이 조금 밝아지자, 개발청장은 속으로 다행이라고 생각하며, 이들 옆에 있는 정나리의 지적이 떠올라 급히 덧붙여 말했다.

“그리고 저기 보이는 천막들은 국영 상단에서 무척 신경 써서 만든 천막들이라, 방수 처리도 되어 있을뿐더러, 무척 두꺼운 천으로 만들었기에 외풍을 막아주어 겨울에도 따뜻하게 지낼 수 있습니다.”

“어? 그래요?”

개발청장의 대답에 정나리가 의외라는 듯 이야기하자 개발청장이 바로 대답했다.

“그럼요. 천막 안에 설치된 난로의 열기가 천막 안의 공기를 데워주거든요. 거기에 겨울에는 저 천막의 겉에 또 다른 천막을 씌워 찬 공기를 일부 차단하기도 하고요.”

“아. 저기 천막 위에 보이는 것들이 단순한 지지대가 아니라 난로의 연통이었군요?”

“그렇습니다.”

“그럼...”

그렇게 세 여인이 개발청장과 포타와토미에 관해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고 있을 때, 옆에서 고민하면서 이들의 대화를 듣고 있던 정성국은, 어느덧 선착장에 가까워져서 자신을 보고 열렬히 환호하는 포타와토미 주민들의 반응에 고민을 멈추고 손을 몇 번 흔들어준 후 고개를 돌려 개발청장을 들들 볶고 있는 전아라, 하얀 들꽃, 정나리를 보고 말했다.

“백문이 불여일견이라고, 일단 내려서 마을을 둘러보자고.”

* * *

포타와토미를 전체적으로 둘러본 정성국은 개발청장의 말처럼, 겉으로 보이는 것과는 달리 지내는 것이 크게 불편하지 않음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정성국이 천막 주거지를 돌아다니며 포타와토미 주민들과 이야기를 나눠보니 정성국이나 왕실 가족들이 우려했던 것과는 달리, 포타와토미 주민들도 현 생활에 별다른 불만을 품지는 않았고.

다만, 전기를 이용하는 데 제한이 있다 보니, 다른 지역의 주민들보다는 불편할 수밖에 없는 것은 사실이라, 하루라도 빨리 포타와토미를 본격적으로 개발할 필요가 있음을 파악할 수 있었다.

해서 정성국은 자신의 방문에 급히 포타와토미로 달려온 미시간 지역의 옛 대추장들에게 나이아가라 운하 공사가 완전히 끝난 만큼, 본격적으로 미시간 지역을 개발해, 5년 안에 미시간 지역의 주민들도 다른 지역의 주민들처럼 전기를 비롯해 북미왕국의 문명을 누릴 수 있게 만들겠다고 약속했고.

정성국의 선언이 포타와토미 전체에 알려지자 포타와토미 주민들은 다시 한번 정성국의 이름을 연호하며 기쁨을 감추지 못했고, 그런 포타와토미 주민들의 반응에 정성국은 포타와토미 창고에 보관되어 있던 고기와 술을 풀어 축제를 열고 포타와토미 주민들을 위무한 후, 여객선에 올랐다.

그리고 오지브와 지역의 메노미니 항도, 포타와토미 항의 상황과 비슷했기에, 정성국은 메노미니 항을 둘러보며 주민들을 위무하고, 앞으로 오지브와 지역의 거점 항구로 메노미니 항을 개발하겠다는 뜻을 밝혔고, 포타와토미 주민들과 마찬가지로 자신을 연호하는 메노미니의 주민들을 위해 식량과 술 등을 풀어 축제를 연 후 마지막 목적지인 일리노이 지역의 세카고우 항으로 이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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