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3
드디어 기다리고 있던 항생제 공방이 돌아가며, 항생제를 생산하기 시작했다는 보건청장의 보고에, 정성국은 곧바로 새한성 외곽에 있는 항생제 공방으로 향했다.
“흠. 내 생각보다 공방의 규모가 무척 크네? 거기에 공방 건물도 그리 오래된 것 같지 않고. 이게 정말 빈 공방이었다고?”
북미왕국의 산업, 경제는 날이 갈수록 발전했고, 여기에 약점인 인구수마저 계속해서 증가하면서 내수 시장의 규모는 급격히 커졌다.
그러다 보니, 이 내수 시장을 잡기 위해 수많은 이들이 상계에 뛰어들어 상단을 창설했고.
보통의 경우라면, 이렇게 창설한 상단 중 상당수는 망할 수밖에 없었다.
상단을 창설한 이들이 모두 철저히 준비한 이들은 아니니 말이다.
다만, 지금 북미왕국의 경제는 매년 급격히 발전하고 있었고, 정성국은 성장만큼 분배에도 신경 써서 튼튼한 내수 시장을 만들고 있었기에, 망하는 경우가 생각보다 드물었다.
그러니, 정성국은 처음 보건청에서 항생제를 생산하기 위해, 남는 공방을 매입해 항생제 생산 공방을 만들었다고 했을 때, 조그마한 공방을 생각하고 있었고.
헌데 보건청장과 함께 자동차에서 내린 정성국의 눈앞에 보이는 공방은 어지간한 대형 공방과 비견될 정도로 거대했고, 거기에 갓 지은 건물처럼 보여 정성국이 의아하다는 표정으로 묻자, 막 자동차에서 내린 보건청장이 빙긋 웃으며 대답했다.
“그렇습니다. 원래는 국영 상단에서 라디오를 추가 생산하기 위해 미리 지어둔 공방 건물이었습니다. 연구청 산하 공방에서 공방에 들어갈 설비가 만들어지기만을 기다리고 있었지요.”
그 말에 정성국은 돌아가는 사정을 파악하고 웃음을 터트렸다.
“하하하. 잘했네. 라디오보다는 항생제가 더 중요하니까.”
물론 정보를 전달하는 라디오도 중요하긴 했다.
특히, 라디오 방송국이 북미왕국 곳곳에 설립되면서, 라디오 수요는 폭증했고, 이 때문에 최근엔 지역 라디오 방송국의 설립을 늦추고 있었으니.
그러나, 라디오보다 중요한 것은 역시 세균성 질환을 치료할 수 있는 항생제였기에 정성국이 보건청장에게 잘 했다고 칭찬하자 보건청장은 다시 빙긋 웃었을 뿐이었고.
그때 정성국이 방문했다는 소식을 들은 항생제 공방의 책임자들이 기겁하며 정성국을 맞이하고자 달려 나왔고, 정성국은 이들과 인사를 나눈 후, 공방의 최종 책임자를 따라 항생제 공방을 둘러보기 시작했다.
푸른곰팡이를 배양하는 데 필요한 배양액 생산 설비부터, 푸른곰팡이를 배양하는 거대한 발효조, 그리고 이를 통해 페니실린을 생산하는 수많은 설비까지.
최종 책임자의 설명을 들으며 공방을 전부 둘러본 정성국은 감탄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생각보다 설비들이 많네?”
물론 지금 정성국이 본 공방의 수준은 전생과 비교하면 보잘것없는 수준이긴 했다.
다만, 정성국은 북미왕국에서 수많은 공방을 돌아다녔는데, 지금 이 항생제 공방만큼 설비가 많고 반쯤은 자동화된 곳이 없었기에 정성국이 감탄하자, 옆에 있던 보건청장이 웃으며 대답했다.
“하하하. 아무래도 항생제를 대량 생산하려면, 최대한 기계의 힘을 이용하는 것이 최선이잖습니까. 그러다 보니 설비들이 조금 많은 편입니다.”
이에 정성국은 고개를 끄덕이며 이 공방을 둘러보며 정말 궁금했던 부분을 물었다.
“허면 이 공방에서 한 해에 생산할 수 있는 항생제의 양은?”
“대략 50만 개 수준입니다.”
“50만 개? 으음...”
1년에 생산할 수 있는 항생제가 대략 50만 개 정도라는 보건청장의 대답에 정성국은 신음을 흘렸다.
물론, 대단한 숫자이긴 했다.
처음 항생제를 개발한 이후, 보건청에서 수많은 연구원들을 투입해 항생제를 생산하려 했지만, 수율이 너무 낮아서, 생산량이라 봐야 1년에 1천 개 내외에 불과했고, 그렇기에 새한성의 백성들만 운이 좋을 경우에 한해서 항생제의 혜택을 받을 수 있었으니 말이다.
다만, 북미왕국의 인구는 1500만이 넘었고, 북미왕국의 수많은 동맹국, 우호국들을 생각해보면, 아무래도 부족해 보이는 것이 사실이라 정성국이 슬쩍 입을 열었다.
“물론 엄청난 생산량이기는 하지만, 이 공방의 규모를 생각하면 내 예상보다 적은 것 같은데? 3교대로 계속해서 공방을 가동하면?”
당장 상황이 급하니 3교대로 24시간 공방을 돌려 항생제를 생산하는 것이 어떻겠냐는 정성국의 말에 보건청장이 고개를 저었다.
“그건 크게 의미 없습니다. 항생제 생산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원료가 되는 푸른곰팡이이잖습니까.”
보건청장의 지적에 정성국은 아차 하는 표정으로 자신이 간과한 것이 있음을 인정했다.
“아. 공방을 계속 가동하더라도 푸른곰팡이를 배양하는 데 걸리는 시간이 줄어들지는 않는다?”
“그렇습니다. 더 많은 푸른곰팡이를 배양하기 위한 설비가 필요할 뿐이지요.”
보건청장의 말에 정성국은 이 거대한 공방을 둘러보았지만, 수많은 설비로 가득한 공방에 추가로 설비를 설치할 공간은 없었기에 팔짱을 끼며 중얼거렸다.
“흠. 개발청이 새양주에 짓고 있는 항생제 생산 공방이 완공되려면 시간이 꽤 걸릴 텐데...”
항생제 공방은 새양주에 짓기로 결정했다.
정성국은 제약 산업이 얼마나 중요한 산업인지를 잘 알고 있는 만큼, 보안이 확실한 새양주에 항생제 생산 공방을 짓는 것이 낫다고 판단한 것이다.
해서 개발청은 정성국의 명령을 받자마자, 모든 일을 제쳐두고 항생제 생산 공방을 건설에 집중하고 있었고.
다만, 이 공방의 규모가 규모라, 몇 달 안에 뚝딱 짓기는 어렵다는 사실을 아는 정성국이 곤란하다는 표정을 짓고 있을 때, 보건청장이 말했다.
“아. 그 부분은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연구청 산하 공방에서 항생제 공방에 필요한 설비들을 생산하는 대로, 국영 상단과 왕실 상단의 공방에 설치해 계속 생산량을 늘릴 생각이니까요.”
“응? 이 공방처럼 미리 건설한 남는 공방이 더 있대?”
보건청장의 대답에 정성국이 의아하다는 표정으로 묻자, 보건청장이 빙긋 웃으며 대답했다.
“전하께서 말씀하신 대로, 항생제가 무엇보다 중요하지 않습니까. 해서, 현재 개발청에서 짓고 있는 새양주의 공방이 완공되기 전까지는, 몇몇 공방을 폐쇄하고 설비를 교체한 후, 항생제부터 생산하기로 했습니다.”
그 말에 정성국은 탄성을 질렀다.
“아...그거 나쁘지 않군. 물론, 국영 상단이나 왕실 상단의 공방에서 생산하는 품목을 생각하면, 생필품들의 생산량이 줄어드는 셈이라 백성들이 조금 불편을 겪긴 하겠지만, 목숨보다 중요하진 않으니까. 알겠네. 자네는 항생제 생산량을 늘리는 데 최대한 신경 쓰도록 하게.”
정성국의 당부에 보건청장은 고개를 끄덕이며 항생제 생산 공방의 직원들이 열심히 포장한 항생제가 담긴 상자들이 자동차에 실리는 모습을 바라보며 말했다.
“알겠습니다. 전하. 그리고 이제 본격적으로 항생제를 생산하기 시작했으니 항생제의 존재를 알리도록 하겠습니다.”
항생제 생산이 원활하지 않은 상황에서 항생제의 존재를 대중에게 알려봐야 혼란만 가중될 거라 여겨 정성국의 명령에 따라 그동안 대중에게는 숨겨왔던 항생제였다.
그러나 항생제 생산 공방이 가동되어 본격적으로 항생제를 생산하고 있는 만큼, 더는 숨길 이유가 없다는 생각에 정성국은 보건청장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도록 하게. 아. 그리고 조용한 곰에게는 미리 말을 해두게. 마음의 준비를 하라고.”
“예?”
뜬금없이 조용한 곰을 언급한 정성국의 말에 보건청장의 의아한 기색으로 정성국을 바라보자, 정성국이 빙긋 웃으며 답했다.
“세균성 질환을 제대로 치료하기는 쉽지 않고, 그러니 항생제는 기적의 약이나 다름없지. 그러니 신문이나 라디오 방송을 통해 그 존재를 알리는 순간, 조용한 곰은 각국 대사들에게 미친 듯이 시달릴 것 아닌가.”
“아? 하하하. 그렇군요. 꼭 미리 말해둬야겠어요.”
* * *
“대사님!”
막 아침을 먹으려던 잉글랜드 대사는, 갑자기 문을 벌컥 열고 등장한 보좌관의 행동에 의아한 표정으로 질문을 던졌다.
“대체 아침부터 무슨 일인가.”
“이것 좀 보십시오!”
잉글랜드 대사의 물음에 보좌관이 들고 온 북미신문을 건네주자, 잉글랜드 대사는 대체 무슨 소식이 실려 있길래 보좌관이 아침부터 저러나 싶어 북미신문의 1면에 대문짝만하게 실린 기사 제목을 읽었고.
“항생제 개발 성공? 항생제가 대체 뭔데?”
처음 보는 단어에 잉글랜드 대사가 고개를 갸웃하자 보좌관이 소리쳤다.
“모든 병을 치료할 수 있는 기적의 약이나 다름없습니다!”
“뭐?! 그게 말이 돼?”
이에 잉글랜드 대사는 황당하다는 표정으로 자신의 보좌관을 바라보았다.
새한성에서 오랫동안 머물렀기에, 잉글랜드 대사는 다른 북미왕국인들처럼 과학적 사고방식에 익숙해졌고, 그렇기에 기적의 약 따위가 존재할 수 없음을 잘 알고 있었다.
헌데, 모든 병을 치료할 수 있는 기적의 약이라니.
물론 북미왕국의 의학 수준이 자신들과는 훨씬 대단하다는 사실은 인정하지만, 이건 결코 불가능하다고 여겼고.
해서 잉글랜드 대사가 보좌관의 말에 황당하다는 표정을 감추지 못하자, 보좌관이 답답하다는 듯 잉글랜드 대사가 들고 있는 북미신문의 기사 중 한 문장을 가리키며 말했다.
“정말입니다! 이것 좀 보십시오!”
“항생제를 이용하면 세균성 질환을 치료할 수 있다?”
보좌관이 가리킨 문장을 읽은 잉글랜드 대사가 그 내용의 의미를 생각하며 미간을 좁혔을 때, 옆에 있던 보좌관이 목소리를 높였다.
“아시다시피 세균은 병을 일으키는 주원인이지 않습니까! 그러니 어지간한 병에는 다 효과가 있지 않겠습니까!”
북미왕국의 의학 지식이 널리 퍼지면서, 병의 원인 중 하나가 눈으로는 보기 어려운 세균 때문이라는 것 정도는 잘 알려졌기에, 보좌관의 말에 잉글랜드 대사가 놀란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허어. 이게 사실이라면 정말 대단한 약이로군.”
“그렇지요! 그러니 어떻게든 이 항생제라는 약을 확보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보좌관의 재촉에 잉글랜드 대사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
다른 신문에 이런 내용이 실렸다면야, 허풍이라고 여기겠지만, 북미신문에 실린 내용이라면, 사실일 가능성이 무척 컸다.
북미신문은 왕실에서 직접 운영하기에, 다른 신문과는 달리 정확하지 않은 기사는 일절 싣지 않았으니까.
그렇다는 것은 정말 이 항생제만 있다면 어지간한 질병은 다 치료할 수 있다는 것이니, 어떻게든 이 항생제를 확보해 본국으로 보내야 한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
그러자 지금 아침을 먹고 있을 때가 아니라는 생각이 든 잉글랜드 대사는 바로 자리에서 일어나며 보좌관에게 명령했다.
“조용한 곰과 약속을 잡게! 바로!”
“알겠습니다!”
* * *
“자네. 괜찮나?”
정성국이 무척 피곤한 안색의 조용한 곰을 보고 묻자, 조용한 곰은 쓰게 웃으며 입을 열었다.
“버틸 만은 합니다.”
항생제의 존재가 알려진 후, 새한성에 있는 각국 대사들은 어떻게든 항생제를 확보하기 위해 조용한 곰을 졸라댔다.
물론, 조용한 곰의 설명이나 여러 신문, 라디오 방송 등을 통해, 이 항생제가 모든 병을 치료할 수 있는 기적의 약은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지만, 지금까지는 치료하는 것이 거의 불가능했던 여러 세균성 질환은 치료할 길이 열린 만큼, 항생제는 가히 기적의 약이라고 불릴 만했기에, 어떻게든 이 항생제를 확보하기 위해 조용한 곰에게 매달릴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사실을 대충 짐작한 정성국은 안쓰러운 얼굴로 조용한 곰을 바라보고 있을 때, 조용한 곰이 정성국을 보며 말했다.
“헌데 전하. 보건청장은 충분한 물량이 확보되기 전까지는, 외국에는 넘기지 않을 생각인 모양인데...이 부분을 전하께서 설득해주셨으면 합니다.”
이에 정성국은 매끈한 턱을 매만지며 중얼거렸다.
“각국과의 우호를 위해서, 항생제 물량의 일부를 돌려라?”
“그렇습니다. 특히 각국의 군주들이 만약을 생각해 이 항생제를 구하려 들 테니, 아주 소량이라도 넘겨 이들의 호감을 확고히 하는 편이 낫지 않겠습니까?”
이에 정성국은 조금 고민했다.
모든 생명이 소중한 법이라지만, 정성국에게 있어서는 북미왕국 백성들의 생명이 더욱 소중했다.
그렇기에, 외국에 항생제를 판매하는 것은 다른 공방이 가동된 후로 생각하고 있었고.
다만, 조용한 곰의 말에도 일리는 있었다.
특히, 북미왕국이 항생제를 몇 달 넘게 넘기지 않는다면, 이미 항생제의 존재를 알게 된 각국의 군주들이 무척 서운해하거나, 감정적으로 나올 수도 있을 것 같았달까.
해서 정성국이 결정을 내리고 조용한 곰에게 말했다.
“흐음...알겠네. 계속해서 공급하는 것은 어렵더라도, 비상시 쓸 수 있는 물량 정도는 내어주라고 보건청장에게 따로 이야기해두도록 하지. 그러니, 자네가 적당히 생색을 내도록 하게.”
“하하하. 알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