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조선을 탈출하라-787화 (787/850)

#787

원래 이 시대에 구경거리는 많지 않았다.

그러니 런던의 주민들은, 정성국이 대규모 호위 병력을 대동하고 런던에 입성한다는 사실이 전해지자, 좋은 구경거리라고 생각해 너도나도 정성국과 강군으로 이름난 북미왕국군을 보기 위해 웨스트민스트 사원과 연결된 큰길로 몰려들었고.

멀리서 정성국과 대규모 호위 병력의 행진을 보면서 수많은 감탄사를 토해내며, 구경하러 나오길 잘했다고 감탄했다.

북미왕국군은 자로 잰 것처럼 오와 열을 맞추어 행군했기에, 군기가 엄정한 정예병이라는 것을 한눈에 알 수 있었고.

소문만 무성했던 북미왕국의 전차와 장갑차, 그리고 자동차 등의 기물이 움직이는 모습을 직접 볼 수 있었으니 말이다.

그리고, 이렇게 정성국과 호위 병력의 행진을 구경하며 감탄하는 것은 일반 주민뿐만 아니라 귀족들도 마찬가지였다.

특히, 군사적인 지식이 풍부한 이들일수록, 지금 저기 보이는 북미왕국군의 전투력이 얼마나 대단할지를 짐작했기에 감탄을 넘어 경악을 금치 못했고, 당연히 예전에 수많은 전투에 참여하고, 그 공으로 잉글랜드 총사령관 자리를 역임했던 몬머스 공작 역시 마찬가지였다.

몬머스 공작은 정성국이 대규모 호위 병력과 함께 런던 근교에서 웨스트민스트 사원으로 이동한다는 소식을 접하고, 곧바로 아무런 표식이 없는 마차를 타고 웨스트민스트 사원의 입구가 잘 보이는 길목에 대기하고 있었고.

마침내 저 멀리서 정성국과 대규모 호위 병력이 천천히 다가오자 몬머스 공작은 그 모습을 보고 탄식을 토하면서도, 미리 가져왔던 망원경을 통해 호위 병력의 무장 상태나, 전차, 장갑차 등을 세세히 살폈고, 정성국이 입구에서 미리 기다리고 있던 제임스 2세와 함께 웨스트민스트 사원 안으로 들어갈 때까지 멈추지 않고 계속해서 살폈다.

그러다, 관찰을 통해 알아낼 수 있는 것은 다 알아냈다는 생각이 든 몬머스 공작은 망원경을 눈에서 떼면서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중얼거렸다.

“허. 정말 엄청나군. 저게 단순한 호위 병력이라고? 지금 저기 보이는 부대만으로 충분히 런던을 함락시킬 수 있어 보이는데?”

이에 마차에 함께 타고 있던, 날카로운 인상의 보좌관이 고개를 끄덕이며 몬머스 공작의 말에 대꾸했다.

“확실히 그럴 겁니다. 저기서 대기하고 있는 기병들의 무장만 보더라도 엄청나고, 특히 저 전차와 장갑차는...”

“그래. 칼 11세의 결혼식에 참석했던 이들의 말에 따르면 정말 엄청났다지?”

“그렇습니다. 북미왕국의 작열탄은, 최근 유럽 국가들이 만들고 있는 작열탄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의 위력을 보였고, 기관총 역시 머스킷 수백 자루 이상의 위력을 발휘했다고 하니...”

칼 11세의 요청을 받아, 피로연 당시 진행했던 사격 시범은 결혼식에 참석한 수많은 귀족들에게 깊은 인상을 넘어 충격을 주었고.

당연히, 이들은 자국에 돌아와, 당시에 보았던 것을 쉬지 않고 이야기했다.

그러니 몬머스 공작이나 날카로운 인상의 보좌관 역시 이를 모르지 않았고.

그때 맞은 편에 앉아 있던, 몬머스 공작과 함께 전장을 누볐던 측근 귀족이 손으로 웨스트민스트 사원 주변에 배치된 전차와 장갑차를 가리키며 끼어들었다.

“전차와 장갑차의 무서움은 단순히 저기 장착된 무기뿐만이 아닙니다. 저 육중한 동체를 막을 길이 없다는 거지요. 그냥 보기에도 엄청나게 두꺼워 보이는 강철 장갑을 두르고 있으니...”

그 의견에 보좌관이 고개를 끄덕이며 측근 귀족의 말에 동의했다.

“그렇습니다. 얼핏 보아도 우리가 보유한 기존의 대포로는 깨부수기 어려워 보이는군요. 그러니 저들이 무기를 사용하지 않더라도, 전차와 장갑차를 앞세우고 그냥 밀고 들어오면, 못 막을 겁니다. 미리 해자라도 깊게 파지 않는 한은.”

이에 몬머스 공작 역시 비슷한 생각이었기에, 고개를 끄덕이며 무척 탐내는 눈빛으로 전차와 장갑차를 바라보며 나직이 중얼거렸다.

“그러니, 북미왕국에게 도움을 받을 수만 있다면, 숙부에게 빼앗긴 왕위를 찾을 수 있다는 건데...”

몬머스 공작은 자신의 숙부인 제임스 2세가 자신이 마땅히 물려받아야 하는 왕위를 빼앗았다고 생각했다.

물론 왕위 계승법에 따르면, 사생아인 그는 아무런 권리가 없긴 했다.

다만, 그는 자신을 사생아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의 어머니는 분명 자신에게 이렇게 이야기했었다.

아버지인 찰스 2세가 어머니인 자신을 진심으로 사랑했고, 그렇기에 훗날 정식으로 혼인하겠다는 약속을 했었다고 말이다.

그러니 몬머스 공작은 자신이 찰스 2세의 정식 자식이라고 내심 여기고 있었고.

여기에, 보통 사생아들은 부모가 그 사생아의 존재를 인정하고, 가족의 일원으로 받아들인다 하더라도, 은연중에 손가락질을 받고 무시당했기에, 자신이 사생아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지만, 몬머스 공작은 조금 달랐다.

일단, 그는 왕의 장남이었기에, 잉글랜드 귀족들은 그를 어느 정도 존중해주었고, 군 복무 이후에는 수많은 귀족들이 그에게 관심을 보이고 그가 세운 공적에 찬사를 보내며 역시 왕의 아들이라고 수없이 이야기하며 추켜세웠으니.

또한, 찰스 2세의 왕위 계승권자인 제임스 2세가 가톨릭 신자라는 것에 불만을 품은 귀족들이 은연중에 몬머스 공작에게 모여들고, 찰스 2세의 후계자는 당연히 몬머스 공작이 되어야 한다고 계속해서 이야기하니, 몬머스 공작은 어느 순간 자식이 없다면 모를까 멀쩡히 자식이 있는데, 단순히 그 어머니가 정식 부인이 아니라는 이유로, 아버지의 재산에 아무런 권리도 행사하지 못하는 것이 무척 불합리하다고 생각하기 시작했고.

특히, 아버지가 먼저 어머니와 한 약속을 어겼기에, 자신이 아무런 법적 지위가 없는 사생아가 되었다는 생각이 들자, 어떠한 수단을 써서라도 잃어버린 자신의 권리를 찾아야겠다는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

그 때문에 여러 일이 있었고, 아버지와의 관계도 악화되었지만, 그럴수록 몬머스 공작은 더욱 자신이 마땅히 받아야 하는 것들을 포기할 수 없었고.

찰스 2세가 병으로 거동이 불편해지자, 가톨릭 신자인 요크 공작 제임스가 왕위를 이어받을 것으로 예상되면서, 더 많은 귀족들이 그의 신앙을 문제 삼으며 몬머스 공작에게 접근해 지원을 약속하니 몬머스 공작으로서는 곧 왕위를 손에 얻을 수 있을 것 같았다.

헌데, 갑자기 왕실에서 일부 부대에 배치했던 신식 소총을 전격적으로 회수하면서 상황이 변했다.

몬머스 공작 역시 신식 소총의 강력함을 알았기에, 신식 소총이 배치된 부대의 지휘관들을 회유하고 있었는데, 발 빠른 왕실의 조치로 이러한 노력이 허사가 된 것이다.

물론, 이는 왕실에서 자신들의 충성을 의심한다는 뜻과도 같았기에, 해당 지휘관들은 이러한 왕실의 처사에 분노하며 몬머스 공작을 돕겠다고 약조하기야 했지만, 신식 소총이 없는 상황에서는 큰 의미는 없었고.

그러니 몬머스 공작은 신식 소총으로 무장한 왕실 근위대를 상대할 방법을 찾아야 했고, 지금 보아하니 정성국이 끌고 온 호위 병력의 일부만 있어도, 왕실 근위대를 격파하기는 충분해 보였다.

해서 몬머스 공작이 이를 언급하며 중얼거리자, 측근 귀족이 조심스럽게 대답했다.

“문제는 북미왕국을 설득하기가 어렵다는 점입니다.”

이에 몬머스 공작은 마차 밖을 바라보던 시선을 거두고, 맞은 편에 앉아 있는 측근 귀족을 바라보며 질문을 던졌다.

“북미왕국 대사와 꽤 친분을 쌓았다고 하지 않았나?”

몬머스 공작은 이전부터 런던에 주재하는 북미왕국 대사에게 공을 들여왔다.

이미 잉글랜드에서 북미왕국의 영향력은 생각보다 강해졌고, 북미왕국을 우호적인 시선으로 보는 이들이 무척 많았기에, 북미왕국의 지지를 얻게 되면 세력을 더욱 키울 수 있었으니까.

해서 몬머스 공작 주변의 귀족들은 암암리에 북미왕국 대사와 선을 대기 위해 노력했고, 지금 맞은 편에 앉아 있는 측근 귀족 역시 북미왕국 대사와 어느 정도 친분을 쌓았고.

그렇기에 몬머스 공작이 묻자 측근 귀족이 대답했다.

“공작 각하의 명령으로 그동안 런던에 주재하는 북미왕국 대사에게 공을 들여 나름 친분을 쌓았다고 생각합니다만...문제는 북미왕국의 방침입니다. 북미왕국은 타국의 정치에 깊숙이 간섭하는 것을 금지하고 있으니, 북미왕국 대사는 우리 잉글랜드의 왕위 계승권과 관련된 문제에 휘말리는 것을 경계합니다. 그러니 설득이 어렵습니다.”

“끙. 그런가?”

“예. 거기에, 찰스 2세께서 승하하신 이후에는 이런저런 이유를 들어 만남마저 피하고 있고요.”

측근 귀족의 대답에 몬머스 공작은 탄식했다.

솔직히 몬머스 공작은 나름대로 북미왕국이 자신을 지지해주지 않을까 기대하고 있었다.

일단, 북미왕국의 왕실은 조선 출신인데, 동양의 경우 서자가 왕위를 계승하는 것이 낯설지 않을 일일뿐더러, 북미왕국에선 법으로 혼외자식의 법적 권리를 인정하고 있었기에, 자신을 지지하지는 않을까 싶었으니까.

여기에, 몬머스 공작은 지금껏 북미왕국에 관심을 두었기에, 현재 북미왕국의 약점은 인구 부족이고, 북미왕국은 인구를 늘리기 위해 출산 장려 정책이나, 이주 정책 등을 펼치고 있으니, 식민지나 잉글랜드 본토 백성들의 북미왕국 이주를 허용하는 조건이라면, 북미왕국이 관심을 보일 거라 여겼고.

헌데, 북미왕국의 반응이 예상과는 달랐기에, 몬머스 공작이 탄식하며, 고개를 돌려 다시 마차 밖을 바라보았고, 때마침, 조문을 끝낸 것인지 찰스 2세와 함께 웨스트민스터 사원에서 나오는 정성국이 보였기에 몬머스 공작이 중얼거렸다.

“그럼 북미왕국의 방침을 바꿀 수 있는 이를 직접 만나 설득해야 한다는 거겠군. 지금 저기 나오는 북미왕국의 국왕을 말이야.”

이에 측근 귀족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습니다. 만약 북미왕국 국왕을 설득해, 최소한 신식 소총이라도 확보할 수 있다면, 충분히 해볼 만하지요.”

물론 북미왕국이 전폭적으로 자신을 지원해 준다면 좋겠지만, 지금껏 북미왕국의 행동을 보면 그건 어려울 거라 여긴 측근 귀족이었고.

다만, 신식 소총만 있다면, 왕실 근위대를 충분히 상대할 수 있었기에, 측근 귀족이 이를 언급하자, 몬머스 공작이 웨스트민스터 사원 앞에서 대기하고 있던 자동차에 다시 올라타는 정성국과 그 부인을 보며 잠깐 생각에 잠겼다가 입을 열었다.

“흠. 북미왕국의 국왕을 설득하려면, 내가 직접 만나야 할 것 같은데...따로 자리를 만드는 것이 가능하겠나?”

일단 정성국은 북미왕국의 국왕인 만큼, 그를 설득해 그의 지지를 확보하려면 자신이 직접 움직이는 것이 맞다고 생각한 몬머스 공작이 질문을 던지자 옆에 있던 보좌관이 고개를 저었다.

“북미왕국 국왕은 떠날 때까지, 화이트홀 궁전에서 머문다고 하니, 그건 어려울 것 같습니다.”

“예. 저희가 북미왕국 국왕에게 접근하는 것을 제임스 2세가 허용할 리 없으니까요.”

숙부인 제임스 2세는 어리석은 이가 아니었고, 그런 만큼 무엇보다 자신이 정성국과 접촉하는 것을 경계할 것이 분명했다.

그러니, 비공식적으로 정성국과 접촉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는 것을 깨달은 몬머스 공작이 말을 흐렸다.

“그렇다면...”

“예. 대관식 이후 열리는 축하연 때 기회를 봐서 잠깐 자리를 만들고, 그때 설득할 수밖에 없을 것 같습니다.”

보좌관의 말에 몬머스 공작은 난감한 얼굴로 중얼거렸다.

“후우. 이거 쉽지 않겠는데...”

분명 대관식 이후 열리는 축하연에는 수많은 귀족들이 참석할 테고, 이들은 어떻게든 정성국과 인사하고, 친분을 쌓으려 할 것이 분명했다.

북미왕국 왕실에서 운영하는 왕실 상단의 투자로, 일부 귀족들이 돈방석에 앉았다는 것을 모르는 이는 없었으니까.

헌데 그렇게 수많은 귀족들이 정성국에게 말을 걸려고 하는 상황에서, 그와 긴밀한 이야기를 나눌 수 있을까 싶어 난감한 얼굴을 하는 몬머스 공작이었고.

이에 보좌관이 송구하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숙이면서도 꼭 필요한 일이라는 듯 말했다.

“그래도, 북미왕국의 도움이 없다면, 제임스 2세에게서 왕위를 되찾는 것이 거의 불가능해지니...”

보좌관의 말이 틀리지 않았기에, 몬머스 공작은 혀를 차며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했고.

그때, 측근 귀족이 끼어들었다.

“아시겠지만, 북미왕국 국왕은 그림을 좋아한다고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 쪽의 귀족들 가운데 몇몇은 그림을 수집하는 이들이 있으니, 이들을 통해 북미왕국이 좋아할 만한 그림을 구해, 이를 빌미로 잠깐 자리를 만드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아. 그거 괜찮군. 그럼 바로 움직여 그림을 비롯한 예술품을 확보하도록 하게.”

“알겠습니다. 공작 각하.”

* * *

잉글랜드 왕실의 거처인 화이트홀 궁전 안에 들어온 이후, 하얀 들꽃은 자동차 안에서 궁 안의 풍경을 구경하다 탄성을 질렀다.

“와아. 잉글랜드의 왕궁은 덴마크와는 또 다르네요? 뭐랄까...마치 작은 마을 같아요.”

덴마크의 왕궁인 코펜하겐 성이 일종의 군사 요새 같았다면, 잉글랜드의 왕궁인 화이트홀 궁전은 여러 건물이 난립해 있어, 하얀 들꽃의 말마따나 작은 마을 같았다.

해서 정성국은 흥미롭다는 얼굴로 잉글랜드 특유의 고딕 양식의 건물들을 바라보며 말했다.

“그러게. 아마 오랜 시간에 걸쳐 필요에 따라 건물을 한두 채씩 건설하다 보니, 그런 것 같긴 한데...보통 이런 경우는 보통 주 건물의 건축 양식에 따라 건물을 추가하고, 또 전체적인 균형에 맞게 건물의 배치나 크기를 맞추어 통일감을 살리는데 그러지 않아서 그런지 마치 마을처럼 보이네.”

“다만, 그래서 그런지 궁전의 규모가 무척 큰 것 같은데요?”

“그럴 거야. 한때는 유럽에서 가장 규모가 큰 궁전이었으니까.”

베르사유 궁전의 건설로, 밀려나긴 했지만, 그 전까지는 유럽에서 가장 거대한 궁전이었던 화이트홀 궁전이었다.

물론, 전생에서야 화재로 잿더미가 되어버렸지만.

“어? 그래요?”

“응. 방만 1500개가 넘는다고 하던데?”

이에 하얀 들꽃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와...무슨 방이 그렇게 많아요?”

“그만큼 이런저런 이유로 궁전에서 머무는 이들이 많다는 소리지.”

북미왕국이야 시종들도 주로 출퇴근하기에, 굳이 그들이 머물 건물을 지을 필요가 없었지만, 유럽의 왕궁들은 상황이 달랐다.

거기에 호위 병사들이 머물고, 또 여러 귀족들이 머무르는 만큼, 방이 많이 필요할 수밖에 없었고.

이를 설명하자 하얀 들꽃이 물었다.

“그럼 무척 복잡하겠네요? 거기에 시끌벅적하고?”

조용한 새한성 궁과는 전혀 달랐기에 하얀 들꽃이 흥미롭다는 얼굴로 창밖을 바라보며 묻자 정성국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겠지. 거기에 우리도 이곳에 머무니 더욱 소란스러울 테고, 런던의 상황도 상황이니 더욱 그렇겠지. 그러니 마음 단단히 먹어. 알았지?”

“알았어요. 전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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