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81
전차의 포격 이후, 정성국은 포탄의 위력에 귀족들이 감탄하고, 또 좋은 구경거리를 보았다는 생각에 열광할 거라 여겼다.
헌데, 간단한 사격 시범 이후에 전차와 장갑차가 다시 공터를 빠져나갈 때까지 귀족들은 작게 웅성거릴 뿐, 정성국이 예상한 반응은 없었고.
해서 정성국은 조금 당황하며 고개를 돌려, 자신과 함께 사격 시범을 관람한 크리스티안 5세와 칼 11세를 바라보았는데, 이들 역시 저기 있는 귀족들처럼 별다른 반응 없이 그저 멍하거나, 심각한 표정으로 사격 시범이 있었던 공터를 응시할 뿐이었고, 이에 정성국은 고개를 갸웃하며 팔로 슬쩍 크리스티안 5세를 치며 말했다.
“어이. 반응이 왜 그래?”
정성국의 목소리가 들리자, 그제야 정신을 차린 듯한 크리스티안 5세와 칼 11세였고.
“...어? 음...”
다만 크리스티안 5세는 정성국의 질문에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조금 고민스러운 표정이었고, 그때 옆에 있던 칼 11세가 포격으로 엉망이 되어 버린 공터를 응시하며 입을 열었다.
“아...그게...뭐랄까. 그냥 저 광경을 보니 말문이 턱 막히네요.”
“맞아. 맞아.”
칼 11세의 말에 크리스티안 5세가 바로 그렇다는 듯 손가락을 튕기며 공감하자, 정성국은 의아한 표정으로 엉망이 되어버린 공터를 바라보고 중얼거렸다.
“음? 그 정도는 아닌 것 같은데...”
방금의 사격 시범은 정말 별 것 아니라는 것처럼 이야기하는 정성국을 보고 크리스티안 5세가 쓰게 웃으며 말했다.
“너야 익숙하니까 그럴 테지만, 우린 아니니까.”
이에 칼 11세 역시 크리스티안 5세와 비슷한 표정을 지으며 간단히 말한 크리스티안 5세의 말을 보충하듯 자신이 방금의 사격 시범에 왜 말문이 막혔는지 풀어서 설명하기 시작했다.
“예. 뭐랄까...북미왕국에 대한 정보를 많이 파악하고 있고, 그래서 나름대로 기관총이나 북미왕국의 작열탄의 위력 등은 충분히 예상하고 있었지요. 헌데 방금 본 광경은...”
“우리의 예상과는 너무 동떨어진 광경이었어. 너무 강력하달까?”
“그래?”
크리스티안 5세와 칼 11세의 대답에 정성국은 의외라는 표정을 지었다.
다른 이들이라면 모를까 이들은 새한성에 주재하는 외교관들이 보내는 북미왕국의 정보를 대부분 파악하고 있었으니 방금의 광경을 충분히 예상했을 거라고 여겼기에.
물론, 스웨덴의 경우는 정식으로 외교 관계를 맺은 것이 그렇게 오래되지 않았으니, 칼 11세의 반응은 어느 정도 이해한다 하더라도, 덴마크의 경우는 정식으로 외교 관계를 맺고 덴마크 대사가 새한성에 주재한 지도 꽤나 되었고, 특히 덴마크 대사는 기관총의 사격 시범을 참관한 적도 있었으니 지금 크리스티안 5세의 반응은 확실히 의외였다.
그리고 이런 정성국의 시선에 크리스티안 5세는 어깨를 으쓱하며 대답했다.
“물론 덴마크 대사가 북미왕국의 훈련이나 사격 시범에 참관한 후 보고서를 보냈고, 그걸 읽어보긴 했어. 다만, 보고서를 읽고 내가 생각한 것과 방금 본 광경은 다르더라고.”
이에 칼 11세가 고개를 끄덕이며 끼어들었다.
“예. 기관총은 그저 계속해서 총알을 발사하는 신식 소총 정도로 예상했는데, 순식간에 수많은 파편으로 분쇄되어 버린 나무 표적판을 보면 위력도 강한 모양이더군요.”
“그리고 작열탄이 위력적인 것은 알고 있었어. 다만...나는 이 작열탄을 주로 해군이 쓰기에 위력적이라고 생각했거든. 아무래도 북미왕국의 선박을 제외하면 목조선이고, 또 불이 붙기 쉬운 돛이나 화약통 등이 있으니까 말이야. 헌데 이렇게 보니 지상에서도 무척이나 위력적이네.”
크리스티안 5세의 이야기에 정성국은 떨떠름한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아니. 포탄 안의 화약이 폭발하는데 당연히 저 정도 위력은 나와야지...”
“맞아. 그걸 알긴 했는데...방금의 광경은 내가 생각한 것 이상이었어. 그래서 조금...충격을 받았던 거고.”
크리스티안 5세의 말과 표정을 보고 정성국은 그제야 상황을 이해했다.
생각해보면, 이 시대의 보고서는 글이 대부분이었으니, 이런 유형의 정보를 제대로 파악하기 어려운 것은 어쩔 수 없었으니까.
‘하긴. 생각해보면, 나도 처음엔 그랬구나. 분명 전생의 기억이 있는데도, 처음 작열탄을 개발한 후 그 위력에 놀랐었으니...’
특히, 정성국의 경우 전생에서 수많은 매체를 통해 포탄의 위력을 어느 정도 파악하고 있었음에도 처음 작열탄을 개발하고, 작열탄이 폭발하는 모습을 멀리서 참관했을 때, 수류탄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강력한 위력에 무척 놀랐었고, 또 기관총의 경우도 비슷했었기에 이들의 심정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여기에, 이 시대의 대부분의 군주들이 그렇듯, 크리스티안 5세나 칼 11세는 직접 전쟁터에 나간 경험도 있으니, 기관총이나 작열탄이 실제 전장에서 얼마나 위력적인지도, 그리고 화포와 기관총을 장착한 전차와 장갑차가 얼마나 가공할지도 충분히 짐작할 수 있을 테고, 당연히 충격을 받을 수밖에 없으리라.
해서 정성국이 이들이 사격 시범의 참관을 통해 받았을 충격을 이해하고 고개를 끄덕이자, 칼 11세가 손을 들어 아직도 충격이 가시지 않은 얼굴로 공터를 바라보거나, 혹은 두려운 시선으로 곳곳에 배치된 전차와 장갑차를 바라보는 귀족들을 가리키며 말했다.
“그리고 저 귀족들도 저희와 아마 비슷한 심정이겠지요. 그래서 분위기가 이런 거고요.”
이에 크리스티안 5세가 피식 웃으며 끼어들었다.
“비슷하다기보다는 더 심할걸? 저들 중에 상당수는 북미왕국과 제대로 된 교류가 없었던 나라의 귀족들이잖아?”
일단 크리스티안 5세도 예전만 못하더라도 이 북유럽에서 나름대로 영향력 있는 덴마크-노르웨이 왕국의 국왕이고, 최근에 북미왕국과 동맹을 맺고 경제를 부흥시키고, 나라를 개혁하고, 발전시키고 있었기에, 나름대로 명망 있는 군주였다.
그러니 당연히 여러 귀족들이 크리스티안 5세에게도 인사하며 친분을 쌓으려 들었고, 그렇기에 크리스티안 5세도 이번 결혼식에 참석한 귀족 중 상당수가 신성로마제국, 폴란드-리투아니아 출신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고.
해서 이렇게 이야기하자 칼 11세가 동의하듯 고개를 끄덕였다.
“예. 절반 정도는 그렇더군요. 그리고 저들은 북미왕국의 소문 중 상당수는 과장되었다고 여겼기에...아마 충격은 더욱 클 겁니다.”
“그렇지. 그래서 다들 뒤통수를 얻어맞은 얼굴들인 거고. 그리고 피로연이 끝나면 다들 자국으로 돌아가서 오늘 보았던 일을 열심히 떠들어 댈 테니...”
아마 많은 것이 바뀌리라.
가깝게는 북미왕국의 위상과 영향력이 이전과는 전혀 달라질 것이 분명했다.
물론, 이전까지도 북미왕국은 서유럽의 강국인 에스파냐, 프랑스와의 전쟁에서 승리를 거두었고, 또 아시아에서 가장 강력한 국가로 여겨졌던 청나라와의 전쟁 마저 승리를 거두었기에, 북미왕국의 위상과 영향력은 무척 대단했다.
다만, 이는 서유럽 국가에 한정되었을 뿐이고, 동유럽 국가들은 이 북미왕국의 강력함을 제대로 실감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저 서유럽 출신 지식인들이 하도 북미왕국의 군사력이 대단하다, 기술력이 대단하다 칭송하니, 막연히 북미왕국이 꽤 대단한 나라인가보다 하고 인식했었을 뿐.
그렇기에 이들은 북미왕국의 정보를 자기 생각과 편견으로 재단하고 가공해 받아들였었고, 이 때문에 이들은 북미왕국의 소문 중 상당수를 과장되었다고 여기기도 했다.
허나. 이번 사격 시범을 통해 그들이 갖고 있던 편견이 모두 부수어졌으니, 동유럽 국가들도 북미왕국의 강력함을 인식할 것이 분명했다.
그것도 일반적인 수준이 아니라 차원이 다른 수준이라는 것을 말이다.
그렇게 되면 당연히 북미왕국의 위상과 영향력은 완전히 달라질 것이 분명했다.
그리고, 어쩌면 유럽은 북미왕국을 경외하면서도 내심 두려워하고 부러워하며, 어떻게든 북미왕국의 기술을, 발전을 따라잡기 위해 노력할 테고, 그러다 보면, 걸핏하면 전쟁이 터졌던 유럽의 분위기도 바뀌리라.
크리스티안 5세가 실제로 북미왕국을 따라 나라를 개혁하고 발전시키려고 해 보니, 나라를 개혁하고 발전시키는 데는 정말 막대한 재정이 소모되는 터라, 대규모 병력과 물자를 소모해야 하는 전쟁은 꿈도 꿀 수 없었으니 말이다.
다만, 크리스티안 5세는 정성국 앞에서 북미왕국을 대놓고 찬양하는 것이 쑥스럽기도 하고, 껄끄럽기도 해서 슬쩍 말을 흐렸다.
허나, 이 자리에 있는 칼 11세나 정성국은 크리스티안 5세가 무슨 말을 하려고 했는지, 그리고 크리스티안 5세가 왜 말을 흐린 것인지 짐작하고 있었고, 정성국은 굳이 크리스티안 5세에게 찬사를 받고 싶은 생각은 없었기에 바로 주제를 돌려버렸다.
“크흠. 그보다 피로연의 여흥을 돋우기 위해 사격 시범을 진행한 건데, 이래서야...”
분위기가 너무 가라앉은 것 같다는 말을 삼키며 칼 11세를 보고 조금 미안하다는 표정을 짓자 칼 11세는 빙긋 웃으며 대꾸했다.
“괜찮습니다. 어차피 시간이 지나고 방금의 충격에서 회복되면 분위기는 더 좋아질 테니까요.”
“하하하. 그럼. 덕분에 무척 진귀한 구경을 한 셈이니까. 그러니 너무 걱정할 필요 없어.”
“그렇다면야 다행이고...”
칼 11세와 크리스티안 5세의 말처럼, 시간이 흐르자 충격에서 회복된 귀족들은 방금의 일을 떠올리고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고. 자연스레 목소리가 열기에 휩싸이며 분위기가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이에 정성국은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을 때, 크리스티안 5세가 정성국을 보고 질문했다.
“그보다, 북미왕국은 훈련을 실탄까지 사용하면서 무척 진지하게 한다고 들었는데...맞아?”
그리고 정성국은 크리스티안 5세의 질문에 선선히 대답했다.
“아무래도 아국의 사정상 실전을 경험하긴 어려우니, 최대한 실전처럼 훈련하려고 노력하기는 해. 헌데 그건 왜?”
이에 크리스티안 5세는 턱으로 결혼식장 외곽에 배치된 전차와 장갑차들을 가리키며 말했다.
“아니. 문득 저기 배치된 전차, 장갑차들이 일제히 사격하는 모습이 꽤 장관일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말이야.”
고작 전차와 장갑차가 1대가 보여준 광경조차 충격적이었던 것을 생각해보면, 저기 보이는 수십 대의 전차, 장갑차가 일제히 사격하는 것은 정말 장관일 것이 분명했다.
해서 칼 11세는 크리스티안 5세의 말에 혹하는 표정으로 전차와 장갑차를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어? 으음...확실히 장관은 장관일 것 같은데...”
그리고 칼 11세는 무언가를 원하는 시선으로 정성국을 바라보았고, 이에 크리스티안 5세마저 칼 11세와 같은 시선으로 정성국을 바라보았지만, 정성국은 단호히 대답했다.
“안돼. 그런 대규모 훈련은 확실히 통제된 훈련장에서 하는 것이 아니면 위험해.”
“아...”
정성국이 단칼에 끊어버리자 칼 11세는 납득하면서도 무척이나 아쉬운 표정을 지었고.
그때, 이번 사격 시범을 보고, 일전에 북미왕국을 방문했을 때, 북미왕국군의 훈련에 참관하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쉬웠던 크리스티안 5세가 다시 질문을 던졌다.
“흠. 그럼 나중에 북미왕국을 다시 방문하면, 그런 훈련을 볼 수 있는 거야?”
“시기가 맞으면 가능할 수도 있고. 아니면 어렵지.”
정성국의 대답에 크리스티안 5세가 투덜거렸다.
“이거 대접이 영 박하구만. 동맹국의 군주가 방문했으면, 그런 끝내주는 볼거리를 제공해야 하는 것 아니야?”
하지만 정성국은 퉁명스럽게 대답할 뿐이었다.
“뭐래. 그런 대규모 훈련을 한 번 하는데 얼마나 신경 써야 할 것이 많은데. 거기에 비용도 엄청 깨지고.”
“쳇.”