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71
1686년 새해가 지나고 가족들과 함께 잠깐의 휴식을 취한 정성국은 바로 86년에 처음으로 열린 청장 회의에 참석했다.
그리고 청장 회의에서 청장들의 보고를 듣던 정성국은 행정청장의 보고에 탄성을 질렀다.
“오! 그게 정말인가?”
이에 행정청장은 빙긋 웃으며 대답했다.
“그렇습니다. 전하. 작년 12월 기준으로 아국의 인구는 1512만 명으로 집계되었습니다.”
“하하하. 그거 정말 기쁜 소식이로군!”
북미왕국을 건국할 때만 하더라도, 100만도 채 되지 않는 인구에 한숨을 쉬어야 했고, 그 후로도 다른 나라들이 북미왕국을 얕보지 못하도록 정보기관을 통해 정보공작까지 해가며 열심히 인구수를 뻥튀기하기도 했다.
헌데 어느덧 북미왕국의 인구가 1000만을 돌파하고, 인구 1000만을 돌파한 지 그리 오래되지도 않았는데 벌써 인구 1500만을 돌파했다고 하니 정성국은 북미왕국의 인구 증가세에 감탄과 기쁨을 감추지 못했고.
물론 이렇게 북미왕국의 인구가 빠르게 증가한 것은 여러 가지 요인이 겹친 덕분이었다.
먼저 북미왕국은 항상 사람이 부족하지 일자리가 부족한 것이 아니기에, 북미왕국의 백성들은 경제적으로 안정되어 있고, 이 때문에 아이를 갖는 것을 마다하지 않았다.
여기에 출산을 장려하기 위해 북미왕국에서는 임산부들에게 출산 지원금을 지원하고, 다자녀 가구엔 연금마저 지급해 육아로 인해 생기는 경제적인 부담을 최소화하기 위해 노력했고.
또한, 북미왕국의 의학이 급속도로 발전하면서 영유아 사망률이 무척 줄어들고, 예전이었다면 치료하기 어려웠던 질병들도 일부 치료할 수 있게 되면서 사망률이 점차 줄어들다 보니, 인구는 자연스레 증가하게 되었다.
그리고 여기까지가 북미왕국의 인구가 빠르게 증가한 내부적인 요인이라면, 북미왕국의 인구가 빠르게 증가한 외부적인 요인은 크게 두 가지였다.
하나는 유럽에서 전쟁이 계속되어 무척 혼란스럽다는 점이다.
그나마 대프랑스 전쟁은 끝나 서유럽은 조금 안정되었지만, 동유럽에서 벌어지는 신성동맹과 오스만 제국과의 전쟁은 여전히 치열하다 보니, 중부유럽, 동유럽의 평민 중 일부는 현 상황에 불안감을 느끼고 안전한 곳으로 떠나려 했고.
자연히 그 대상으로 북미왕국을 택했다.
북미왕국의 국력은 널리 알려져 있었고, 이미 북미왕국이 북미 대륙 전체를 장악했기에, 최소한 전화에 휘말릴 가능성은 무척 낮았으니 말이다.
여기에 소문에 불과하지만, 북미왕국은 세금이 낮은 편이라 백성들이 모두 부유해, 매일 고기를 먹거나, 혹은 값비싼 커피를 즐기고, 설탕이 듬뿍 들어간 디저트를 먹는다는 이야기까지 있으니, 새로운 곳으로 이주하려는 유럽인들은 자연히 북미왕국을 선택했고.
그리고 북미왕국은 공식적으로 외교 관계를 맺은 나라의 백성들은 이주하더라도 그 나라와의 관계를 고려해 돌려보내는 편이었지만, 중부유럽, 동유럽 국가와는 정식으로 외교 관계를 맺지 않았기에 이런 제약이 없어 북미왕국에서는 대놓고 이주민을 받아들였어도 다른 나라가 뭐라고 하지도 못했다.
그렇기에 북미왕국으로 이주하는 유럽인들의 수는 꾸준히 증가했고, 이들이 북미왕국 곳곳에 정착하면서 북미왕국의 인구는 증가했다.
그리고 북미왕국의 인구가 빠르게 증가한 또 다른 외부적인 요인은 바로 북미왕국이 본격적으로 아프리카, 동남아시아 등에 진출하면서 해외 영토를 확보했다는 점이다.
물론, 유럽과의 협상을 통해 확보한 아프리카, 동남아시아의 북미왕국 해외 영토는 기껏해야 항구 도시 정도에 불과했고, 그렇기에 처음에만 하더라도 이 해외 영토에 속한 주민들이 많은 편은 아니긴 했다.
다만, 북미왕국에서 이들 도시를 개발하기 위해 좋은 조건을 내걸며 일꾼을 모집하면서, 주변의 주민들이 북미왕국의 해외 영토로 몰려와, 그대로 눌러앉으면서 북미왕국의 백성이 되었고.
여기에 이번에 청나라가 해남도를 할양하면서, 북미왕국의 인구는 단숨에 40만이 증가하기도 했고 말이다.
이런 여러 가지 요인이 겹치면서 북미왕국의 인구가 빠르게 증가해, 결국 1000만 명의 벽을 넘은 지 채 10년도 되지 않아 1500만 명에 도달하게 되었고, 이 정도 인구라면 인구가 많은 아시아에서는 어려워도 인구가 비교적 적은 유럽에서는 어깨를 펴고 다닐 만했기에 정성국은 행정청장의 보고에 미소를 감추지 못했고.
그런 정성국의 반응에 다른 청장들도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기 시작했다.
“그렇습니다. 전하. 그동안 아국의 인구를 증가시키기 위해 수많은 이들이 노력한 것이 헛되지 않았다는 뜻이니까요.”
“그리고 더 기쁜 사실은, 인구가 증가하는 속도가 더 가속화될 거라는 점입니다. 그것도 올해부터 말입니다.”
행정청장의 말에 옆에 있던 관리청장이 고개를 끄덕이며 끼어들었다.
“그렇습니다. 약 15년 전 조선에서 발생한 이상 기후로 인해 정식으로 조선과 외교 관계를 맺고, 조선의 허락하에 조선인들을 대거 아국으로 이주시켰고, 이렇게 이주한 조선인들이 아국에 정착하고 낳은 아이들이 올해 성인이 되었으니까요.”
“또한, 북미 동해안 지역의 인구 증가 역시 기대되는 상황입니다. 잉글랜드가 아국과의 영토 협상 끝에 북미 동해안 지역에서 철수하고, 아국의 백성이 되기 위해 북미 동해안 지역에 남은 잉글랜드인들이 낳은 아이들 역시 올해부터 성인이 되기 시작했으니 말입니다.”
행정청장의 이야기에 정성국은 새삼스럽다는 얼굴로 중얼거렸다.
“아. 벌써 그때부터 15년이 흐른 건가? 시간 참 빠르군.”
“하하하.”
그동안 북미왕국의 발전을 위해 정신없이 일에 매달린 사이에 시간은 빠르게 흘렀기에, 청장들은 정성국의 말을 듣고 묘한 표정으로 웃음을 흘렸고.
그렇게 웃는 청장들을 보고 정성국은 묘한 감정이 들었다.
어느덧 청장들의 머리는 반백이 되었고 얼굴에는 주름이 가득했기에.
다만, 청장들은 오랫동안 각 청을 맡아 운영해왔기에, 당장 이들의 은퇴를 허락할 수도 없는 노릇이라 정성국은 속으로 한숨을 쉬며 일단 이 문제는 나중에 고민하기로 하고, 입을 열었다.
“아무튼, 자네들 말마따나 올해부터는 정말 무서울 정도로 인구가 증가하겠는데?”
이에 행정청장이 동의했다.
“그렇습니다. 아국으로 이주한 조선인이나, 잉글랜드인, 프랑스인, 아일랜드인들이 북미왕국에 정착한 이후, 생활이 안정되면서 가정을 꾸리는 데 적극적으로 움직였고, 덕분에 연금제도 시행 전이었지만 많은 신생아들이 태어났었으니 말입니다.”
북미왕국에서의 삶은 고통스러웠던 고향에서의 삶과는 매우 달랐다.
그리고 이런 안정적인 생활이 계속될 거라는 확신이 들자, 북미왕국에 정착한 이주민들은 가정을 꾸리고 아이를 갖는 데 주저하지 않았고.
그렇기에 북미 동해안 지역의 경우 잉글랜드 식민지 시절보다 북미왕국이 통치하기 시작했을 때, 태어나는 신생아들의 수가 급격히 증가했고, 이는 다른 지역들도 다 비슷한 상황이었다.
그리고 이때 태어난 아이들이 올해부터 성인이 되어 대부분은 직업을 갖고 일을 해서 경제적으로 자립하고, 가정을 꾸릴 것으로 기대되는 만큼, 다시 인구가 폭증할 것은 뻔해 보였고.
다만, 이렇게 인구가 폭발적으로 증가하는 것을 감당하지 못한다면, 재앙이나 다름없다는 것을 알기에 정성국이 이를 지적하려 할 때, 보건청장이 먼저 입을 열어 이 문제를 거론했다.
“다만, 한 가지 걸리는 점이라면, 이렇게 계속 인구가 증가하는 것을 다른 청에서 감당할 수 있느냐 하는 것이지요. 특히, 아이들의 교육을 책임진 교육청이 걱정됩니다만...”
그 말에 교육청장이 깊은 한숨을 내쉬며 대꾸했다.
“휴우. 솔직히 지금도 많이 버겁긴 합니다.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는 학교에 배치할 선생들을 도저히 감당하기 어려운 실정이니까요.”
“끙. 역시 그런가?”
교육청에서 올라오는 보고를 통해, 현재 교육청이 한계에 도달했다는 인상을 받았던 정성국이 역시나 하는 얼굴로 대꾸하자, 교육청장이 하소연하듯 현 상황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예. 그리고 선생이 부족하기에, 학교에 충분한 수의 선생을 배치하지 못하다 보니, 선생들이 과도한 업무에 시달리고 있고요. 그리고...”
정성국은 교육청장의 설명을 들으며 열악한 환경에서 아이들을 어떻게든 제대로 가르쳐 나라의 동량으로 키워내겠다고 분투하는 선생들의 상황에 미처 이를 신경 쓰지 못한 것을 자책하고 또 기겁했다.
“허. 한 반에 80명? 원래 한 반의 정원은 40명 정도였잖나?!”
이에 교육청장이 씁쓸한 미소와 함께 대답했다.
“그렇기야 하지만...어쩌겠습니까. 초등학교는 의무교육이라, 아이들이 7살이 되면 무조건 가까운 초등학교에 배정해야 하는데요.”
“하. 헌데 선생들의 수는 그대로이니 한 반의 정원을 계속 늘린 건가?”
“그렇습니다. 전하.”
이에 다른 청장들을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고.
법무청장이 조금 당황한 얼굴로 교육청장에게 질문을 던졌다.
“저...한 교실에 그 많은 인원이 들어가 지긴 합니까?”
교육청장은 어깨를 으쓱하며 대답했다.
“개발청에서 교실을 꽤 크게 지었기에, 어떻게 들어가긴 합니다. 다만, 학생들이 워낙 많다 보니, 조금 어수선한 감은 있지요.”
“어수선한 수준이 아닐 것 같은데? 선생 한 명이 애들 80명을....통제할 수 있나? 특히, 저학년의 경우는...”
정성국은 초등학교 1학년이라 봐야 고작 7살에 불과하다는 사실이 떠올라, 이런 아이 80명을 한 교실에 두고 과연 수업을 진행할 수 있나 싶어 떨떠름한 표정으로 묻자 교육청장이 의외로 웃음을 터트리며 답했다.
“하하하. 뭐 저학년 아이들은 집중력이 낮아 조금 곤란하긴 한데...그래도 선생 말이라면 다들 깜빡 죽는 터라 괜찮습니다.”
“아...”
전생이라면야 선생들을 만만하게 보고 학부모들도 선생을 그리 대단하게 여기진 않겠지만, 북미왕국의 사정은 전생과는 다르다는 것을 떠올린 정성국이 수긍하듯 고개를 끄덕이고 있을 때, 연구청장이 근심 가득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그래도, 그런 수준이면 교육의 질적 저하가 발생할 것 같습니다만...”
이에 교육청장은 한숨을 내쉬고 고개를 끄덕였다.
“예. 그것 때문에 고민이긴 합니다. 해서 최근에 교육청에서는 중학교를 졸업한 이들을 초등학교 선생으로 채용하는 것이 어떻겠냐는 이야기가 나왔고 이 방안을 심각하게 검토 중이긴 합니다.”
교육청장의 대답에 정성국은 초창기 북미왕국 전 지역에 초등학교를 세우고 아이들에게 기초교육을 시행하던 때를 떠올리고 손가락을 튕겼다.
“아. 예전처럼?”
“그렇습니다. 물론 제대로 교육받지 않은 선생들을 대거 채용해 아이들의 교육을 맡기면 다시 교육의 질적 저하가 발생할 수도 있지만...”
교육청장이 말을 흐리자 잠깐 생각에 잠겼던 정성국이 고개를 저었다.
“글쎄. 오히려 지금보다는 상황이 나아질 것 같은데? 예전에야 북미왕국 말을 할 수 있다면 무조건 선생으로 채용했기에, 선생이 교과서의 내용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지만, 중학교까지 졸업한 이들이라면 최소한 초등학교에서 가르쳐야 하는 내용 정도는 모두 이해하고 있을 테니 말이야.”
정성국의 말대로 초창기에 급히 채용했던 선생들은, 북미왕국 학문에 대한 지식이 없었기에, 아이들을 제대로 가르치기 어려웠다.
물론 북미왕국의 말을 남들보다 빠르게 배울 정도로 똑똑한 이들이라, 교육청에서 추가로 보내주는 각종 자료와 책을 읽고 지식을 쌓아 나중에는 능숙하게 아이들을 가르치기는 했지만 말이다.
헌데, 중학생을 졸업한 이들이라면, 기본적인 지식은 있는 만큼, 아이들을 가르치는 데 크게 지장은 없을 테고, 이들을 대거 채용하면 선생 한 명이 관리하는 학생들의 수가 대폭 줄어들 테니, 오히려 교육의 질적 상승을 가져올 거라 여긴 정성국이었고.
이에 연구청장이 정성국의 의견에 동의하며 덧붙였다.
“예. 그리고 학교마다 사범 대학교를 졸업한 선생들이 여럿 있는 만큼, 아이들의 심리나 지도법 같은 부분만 배운다면 충분히 제 역할을 할 것 같은데요?”
“그렇지. 그리고 앞으로 폭발적으로 인구가 증가할 거라고 예상되는 만큼, 꾸준히 이런 식으로 선생을 채용하는 것도 나쁘진 않을 것 같고.”
임시방편에 불과하지만, 당장 사범 대학교를 졸업하는 선생들의 수를 대폭 늘릴 수 없다면, 차라리 이들은 중등 교육 시설에 집중적으로 배치하는 편이 낫다고 생각한 정성국이 이를 이야기하자 교육청장이 수긍했다.
“알겠습니다. 그럼 바로 조처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래. 그러도록 하게.”
그 후 정성국은 행정청장과 개발청장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그리고 행정청과 개발청에서도 인구가 폭증하면 업무도 폭증할 테니, 미리미리 대비하도록 하게. 관리도 대거 뽑고.”
“그리하겠습니다. 전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