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조선을 탈출하라-770화 (770/850)

#770

조용한 곰에게서 대평원 지역의 원주민들이 북미왕국에 합류했다는 보고를 받은 정성국은 이 미주리 강 중류 지역의 원활한 통치를 위해 청장들을 소집했고.

며칠 후 청장들이 회의실에 모이자 정성국의 손짓에 조용한 곰이 상황을 설명했고 청장들은 조용한 곰의 설명에 쓴웃음을 지었다.

북미왕국의 영향력이 내륙 깊숙이 확장되고, 직접 통치하는 영역이 넓어지는 것은 분명 반길 일이지만, 연금 제도나 출산 지원금 같은 정책 덕분에 북미왕국의 인구가 폭증하고 있었고, 인구가 폭증하는 만큼 업무도 폭증하고 있는 상황에서 추가로 업무가 늘어난 셈이었으니 마냥 반길 수는 없었던 탓이다.

다만, 그렇다고 해서 그동안 북미왕국을 경계하고 은근히 거리를 두던 대평원 지역의 원주민들이 고민 끝에 북미왕국으로 합류했는데, 이들을 홀대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거기에 이번에 북미왕국에 합류한 대평원 지역의 원주민들은 대평원 지역의 여러 원주민 부족 가운데 일부에 불과했기에, 이들을 홀대했다간 자연히 그 소문이 주변으로 퍼질 테고, 차후 대평원 지역을 확보하기가 더욱 어려워질 테니 말이다.

해서 청장들은 속으로 한숨을 삼킨 후 미주리 강 중류 지역의 원활한 통치를 위해 그동안의 경험을 살려 하나둘 의견을 제시하기 시작했고.

그러나 유일하게 개발청장은 곤혹스러운 얼굴로 외무청에서 작성한 보고서를 살펴보기만 할 뿐이었고, 다른 청장들의 이야기를 듣던 정성국이 그런 개발청장의 얼굴을 확인하고 의아한 얼굴로 말을 건넸다.

“개발청장. 무슨 문제라도 있나?”

“끙. 대평원 지역의 원주민들이 아국에 합류한 것은 반길 일이긴 한데...이 지역을 어떻게 개발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이는 그동안 수많은 지역을 개발하면서도 항상 자신만만하던 개발청장답지 않았기에 정성국은 조금 당황스러운 표정으로 개발청장을 바라보다가, 곧 그가 무엇 때문에 이렇게 곤혹스러워하는지를 깨닫고 입을 열었다.

“아. 들소 때문에?”

“예. 보통 지역 개발은 거점 도시를 먼저 건설하고, 거점 도시 인근에 경작지를 다수 조성하고, 이를 따라 다시 마을을 건설해 영역을 넓히는데, 대평원 지역은 들소가 떼로 몰려다니다 보니...”

“경작지 조성이 어렵다?”

개발청장이 그렇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고.

그때, 법무청장이 의아하다는 얼굴로 개발청장을 보며 끼어들었다.

“그거야 그냥 울타리를 쳐서 들소 떼를 막으면 되는 문제 아닙니까?”

이에 일부 청장들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고, 그런 청장들의 반응에 법무청장이 고개를 갸웃할 때, 개발청장이 대답했다.

“글쎄요. 들소 떼를 막을 정도의 울타리를 치는 게 그리 만만한 일은 아니라서 말입니다.”

“거기에 경작지 전체를 울타리로 두르는 것도 만만한 일은 아닐 테고요.”

개발청장의 말에 관리청장이 동의하며 이렇게 덧붙여 말하자 법무청장이 조금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얼굴로 반박했다.

“흠. 그냥 목재로 간단하게 울타리를 치면 되는 것 아닙니까? 아무리 미물이라 해도, 울타리가 쳐져 있으면 그걸 장애물이라 인식하고 피해갈 것 같은데...”

이에 옆에 앉아 있던 군사청장이 쓰게 웃으며 이전 일을 거론했다.

“일전에 들소 떼가 흥분해서 마을을 덮쳤던 것을 생각해보시지요. 물론 당시에는 들소 떼의 이동을 막으려는 탐사대 덕분에 더 흥분해 앞뒤 가리지 않고 달려든 것이기야 하지만...”

“아...”

예전에 대평원 지역을 이동하던 들소 떼가 북미왕국의 마을 방향으로 돌진한 일이 있었고, 이때, 탐사대에서 이를 막으려고 발포했다가 총성에 더욱 흥분한 들소 떼가 마을로 돌진해, 이를 저지하려던 탐사대원들이 크게 다친 적이 있었다는 것을 떠올린 법무청장이 군사청장의 말에 아차 하는 얼굴로 탄성을 지르며 수긍했고.

그렇게 상황이 정리되자 그때까지 생각에 잠겨 있던 정성국이 입을 열었다.

“흠. 굳이 주변에 경작지를 조성할 필요 있나? 거점 마을에서 필요로 하는 식량은 미주리 강을 이용해 수송하면 그만이잖아? 어차피 경작지가 부족한 것도 아니고.”

정성국이 북미 대륙에 정착하고 북미왕국을 세우면서 가장 신경 쓴 것이 바로 경작지 조성과 식량 생산이었다.

아무리 소빙하기라 이상 기후가 만연하더라도, 식량이 부족해 사람이 굶어 죽는 것을 보고 싶진 않았기에.

그리고 농업 연구소에서 계속 종자를 개량하고, 구아노를 대거 수입하고, 여기에 본격적으로 경운차를 비롯한 건설 장비들을 생산하면서 식량 생산량은 폭발적으로 증가해, 현재는 북미왕국에서 생산한 식량을 아시아와 유럽에 저렴하게 판매해 소빙하기나 전쟁으로 인해 유럽의 식량 생산량이 대폭 줄어들었음에도, 식량 가격은 꽤 안정적으로 유지될 정도였고.

그러니 정성국은 굳이 이 대평원 지역에 경작지를 조성할 필요가 있나 싶었다.

특히, 미주리 강 중류에 정착한 대평원 지역의 원주민 부족들은 아리카라 족을 제외한 다른 부족들은 부족 전체가 정착한 것도 아니었고, 그저 북미왕국과 상시적으로 교역하기 위한 거점을 만든 것뿐이니 말이다.

그리고 정성국의 의견에 행정청장이 동의하듯 끼어들었다.

“예. 제 생각도 그렇습니다. 어차피 대평원 지역의 원주민들은 농사에 익숙하지도 않고, 대다수는 들소를 따라 다니며 사냥에 집중하기에 경작지를 조성해봐야 크게 의미가 없을 것 같으니까요.”

이에 개발청장의 안색이 밝아졌다.

마을 주변에 경작지를 조성할 필요가 없다면, 미주리 강에 정착한 원주민들의 마을만 재개발하면 그만이었고, 기껏해야 수천 명이 사는 원주민 마을을 재개발하는 것은 일도 아니었기에.

해서 개발청장은 점차 올라가는 입꼬리를 애써 가라앉히며 말했다.

“크흠. 그럼 대평원 지역의 원주민들이 정착한 마을만 재개발할까요?”

“그래. 그러는 편이...”

그리고 개발청장의 말에 정성국이 동의할 때, 그동안 가만히 있던 관리청장이 끼어들었다.

“그게 그리 간단히 결정할 문제는 아닙니다. 전하. 물론 보관이 쉬운 밀, 쌀 같은 작물이야 가까운 미주리 지역이나 일리노이 지역에서 운반하면 그만인데, 신선함이 생명인 채소나 과일 같은 경우는 다른 지역에서 운반해오기가 조금...”

“아. 비용이 많이 들어간다는 소린가?”

“예. 그러니 자연히 가격도 오를 테고, 다른 지역에 사는 주민들처럼 마음껏 채소나 과일을 먹기도 어려울 겁니다. 경작지를 완전히 포기한다면요.”

관리청장의 지적에 정성국은 아차 하는 얼굴을 했다.

생각해보면, 대평원 지역에 사는 원주민들을 들소를 사냥해 그 부산물을 팔아 생계를 꾸려나갔고, 물론 북미왕국에서 들소 가죽을 비롯한 일부 부산물의 가격을 좋게 쳐주기는 하는데, 들소의 남획을 막기 위해 매입하는 수량에 제한을 두기에 그렇게 풍족한 편이라고 보긴 어려웠다.

그러니 관리청장의 지적처럼 대평원 지역의 원주민들은 값싼 식량만 섭취할 테고, 이는 전생의 미국에서 부유층, 중산층은 균형 잡힌 식사를 통해 건강을 유지하고, 빈곤층은 값싼 냉동식품이나 정크푸드만 먹으며 건강이 안 좋아지는 것이 떠올라 정성국은 자연스레 인상을 찌푸렸고.

그리고 정성국이 계속해서 경작지를 조성하는 것은 식량 생산이 중요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만큼 손쉽게 양질의 일자리를 만들 수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다른 나라의 농부들과는 달리 북미왕국의 농부들은 종자와 비료, 경운차 덕분에 월등히 높은 소득을 올리고 있었기에.

그러니 미주리 강 중류 지역의 마을들에 경작지를 조성하지 않는다면, 대평원 지역 원주민들은 계속해서 수렵 생활에만 매달려야 하기에 다른 지역보다 빈곤하게 살아갈 수밖에 없다는 것도 문제였다.

물론 이 지역에 각종 공방을 건설하면 양질의 일자리를 만들 수 있긴 하겠지만, 대평원 지역의 원주민들이 정착한 곳은 미주리 강 중류인 내륙 깊숙한 곳이다 보니, 이 지역에서 자체적으로 생산할 수 있는 무언가가 없다면 공방을 건설하기도 애매했다.

다른 곳에서 원료를 수송해 생산하는 공방이라면 수송 비용 때문에 그 내륙 깊숙한 곳에 공방을 세우는 것은 무척 비효율적이었으니까.

그리고 막 북미왕국에 합류한 원주민 부족들은 드넓은 대평원 지역에 사는 수많은 원주민 부족들의 극히 일부였고, 이들이 어떻게 살아가느냐에 따라 이 수많은 원주민 부족들이 이들처럼 북미왕국에 합류하느냐, 아니면 계속해서 북미왕국과 거리를 두고 독립적으로 살아가느냐가 결정될 것이 분명했기에, 정성국은 고민이 깊은 얼굴로 중얼거렸다.

“흠. 그건 곤란한데...”

이런 정성국의 반응에 다른 청장들도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하기 시작했을 때, 연구청장이 뭐 그리 어렵게 생각하느냐는 얼굴로 입을 열었다.

“굳이 들소 떼의 이동을 신경 쓰지 말고 마을 주변에 경작지를 조성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음? 그럼 들소들로 인해 피해가 발생할 텐데?”

정성국의 지적에 연구청장은 어깨를 으쓱하며 대답했다.

“뭐 들소 떼가 의도적으로 경작지만 골라서 파헤치지는 않을 테니, 들소 떼로 인한 작물 피해는 그리 크지 않을 것 같습니다만...”

이에 관리청장이 눈을 크게 뜨고 연구청장을 바라보고 입을 열었다.

“어? 듣고 보니 그렇군요. 들소 떼가 주로 이동하는 경로만 피해서 경작지를 조성하면 될 것 같은데요? 물론 완전 피해가 없지야 않겠지만, 그 정도라면 충분히 감당할 수 있어 보입니다.”

북미 대륙은 광활했고, 그 때문에 지금도 곳곳에서 이상 기후가 발생해 피해가 발생하고 있지만, 북미왕국의 부유함은 이를 충분히 감당할 수 있었다.

그러니, 이 대평원 남부 지역은 빈번하게 그리고 소소하게 이상 기후가 발생한다고 여기고, 들소 떼가 이동하다 작물이 훼손되더라도 이를 보상해주면 그만이라는 관리청장의 이야기에 청장들은 고개를 끄덕였고, 정성국 역시 손가락을 튕겼다.

광활한 지역에 울타리를 치고, 매년 이 울타리를 정비하고 보수하는 것보다는 들소 떼의 이동으로 인한 피해를 보상하는 것이 싸게 먹힐 것 같았기에.

그때 연구청장이 다시 입을 열었다.

“예. 그리고 만약을 대비해 경작지 곳곳에 일종의 피난처를 건설해두면, 혹시 모를 인명 피해도 발생하지 않을 테고요.”

혹시 모를 인명 피해를 우려해 대책까지 세운 연구청장이었고, 이에 다른 청장들이 괜찮은 생각이라는 듯 고개를 끄덕이자 정성국이 결정을 내렸다.

물론 가장 편한 방법은 전생의 미국처럼 들소 떼를 몰살시키고, 대평원 지역 전체를 농지로 만드는 것이긴 한데, 정성국은 굳이 그러고 싶은 생각이 없었기에 조금 피해를 보더라도 이를 감수하겠다는 생각이었다.

“흠. 그게 제일 나을 것 같네. 좋아. 그럼 그렇게 하도록 하지.”

이에 다른 지역의 개발과 비슷하게 하면 그만이었기에 개발청장은 한결 편한 얼굴로 대답했다.

“알겠습니다. 바로 미주리 강 중류 지역의 개발에 착수하겠습니다.”

“그래. 그리고...”

그 후로도 미주리 강 중류 지역의 개발과, 대평원 지역 원주민들의 통치, 관리, 교육 문제로 인해 청장들과 한참을 논의한 정성국이었고.

저녁 시간이 되어서야 겨우 회의를 끝내고 청장들이 하나둘 일어나기 정성국에게 인사한 후 회의실을 나갔을 때, 군사청장과 조용한 곰은 오히려 정성국에게 다가왔기에 정성국이 질문을 던졌다.

“음? 따로 보고할 거라도 있나?”

“아. 전하께서 유럽에 행차하실 때 호위할 병력의 규모가 대략적으로 정해져서 말입니다.”

“그래? 어떻게 정해졌나?”

정성국이 꽤나 궁금하다는 눈빛으로 군사청장을 바라보자, 군사청장이 즉각 대답했다.

“일단, 호위대의 경우 3천 명을 차출하기로 했습니다.”

“휘유. 그래?”

물론 조용한 곰의 이야기를 듣고 많이 차출할 거라 여기기는 했지만, 생각보다 많은 병력이었기에 정성국이 놀랐을 때 군사청장이 덧붙여 말했다.

“그리고 탐사대 5천 명도 차출해 전하의 외곽 호위를 맡길 생각이고요.”

“...탐사대까지 차출하겠다고? 내가 전쟁하러 가는 것도 아니고, 고작 동맹국의 결혼식에 참석하는 건데?”

군사청장의 대답에 정성국이 황당하다는 얼굴로 군사청장을 바라보자 군사청장은 당당히 대답했다.

“전하의 안전은 북미왕국의 안전과 직결된 문제이니 병력은 많으면 많을수록 좋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이번에 북미왕국의 위엄을 만방에 알릴 생각이니만큼, 이 정도 병력은 대동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조용한 곰이 군사청장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거들자 정성국은 기가 찬다는 얼굴로 둘을 바라보다 다시 물었다.

“그럼 지상 병력은 그렇다고 치고, 호위 함대는?”

“호위 함대는 각 함대에서 차출한 신형 전선 20척과 여객선, 수송선, 보급선을 합해 총 30척 규모로 편성했습니다.”

군사청장의 말에 정성국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물론 조용한 곰이 북미왕국의 위엄을 알리겠다며 호위병력의 규모를 대폭 키운다고 했을 때 어느 정도 짐작하긴 했지만, 이건 너무 과한 것 같았기에.

그러다 문득 정성국은 의아한 얼굴로 조용한 곰을 바라보았다.

“...헌데 이걸 스웨덴에서 허락하겠어?”

이에 조용한 곰은 씩 웃으며 답했다.

“물론입니다. 이미 유럽 내에서 스웨덴의 위상은 많이 내려앉은 만큼, 전하께서 직접 칼 11세의 결혼식에 참석한다는 것만으로도 스웨덴의 위상은 올라갈 테니 전하의 참석을 마다할 이유가 없지 않습니까.”

“허...”

조용한 곰의 대답에 정성국은 다시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다가 결국 마음대로 하라는 듯 손짓하며 말했다.

“...알겠네. 이 일은 자네들에게 맡겼으니 알아서 하도록 하게.”

“알겠습니다. 전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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