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조선을 탈출하라-769화 (769/850)

#769

하얀 들꽃과 이야기를 나눈 다음 날, 정성국은 자신을 찾아온 조용한 곰에게 이번에 열릴 울리카와 칼 11세의 결혼식에 참석할 생각이라는 것을 알리자, 조용한 곰은 공교롭다는 얼굴로 입을 열었다.

“아. 그렇지 않아도 덴마크에서 이번 결혼식에 전하를 초대하고 싶다는 의사를 밝히긴 했습니다만...”

“어? 그래?”

“예. 듣자니 이번 혼인 동맹은 전하께서 개입하지 않으셨다면 이뤄지지 않았을 거라고 들었습니다.”

그 말에 정성국은 급히 손을 내저었다.

조용한 곰은 마치 자신이 적극적으로 개입해 이번 혼인 동맹이 성사된 것처럼 이야기했기에.

“아. 뭐 거창하게 개입했다기보다는...살짝 중매를 선거지. 이를테면 칼 11세가 울리카의 남편감으로 괜찮아 보인다고 슬쩍 이야기하거나 혼인 동맹을 맺는 게 양국에 이득이 될 거라고 지나가듯 이야기하거나 말이야.”

하지만 정성국의 대답에 조용한 곰은 그를 빤히 바라보다가 반박하듯 말했다.

“...그 정도면 대놓고 개입하신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어? 그런가?”

그리고 그런 조용한 곰의 반응에 정성국이 조금 당황하며 반문하자, 조용한 곰이 자신의 말이 맞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요. 덴마크와 스웨덴의 관계를 생각한다면, 전하께서 이야기하지 않으셨다면 크리스티안 5세가 스웨덴과 혼인 동맹을 맺을 생각은 하지 않았을 테니 말입니다.”

“글쎄. 크리스티안 5세나 칼 11세나 감정에 휘둘릴 친구들은 아닌 것 같은데...”

정성국은 크리스티안 5세나 칼 11세와 직접 만나 여러 이야기를 나누었기에, 그들의 성격이나 됨됨이를 어느 정도 파악하고 있었고.

그렇기에 정성국은 크리스티안 5세나 칼 11세가 그동안의 원한 때문에 나라의 발전을 외면하지는 않으리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실제로 크리스티안 5세는 정성국이 혼인 동맹을 거론하자, 그동안의 편견을 벗어던지고, 객관적으로 칼 11세를 평가한 후 혼인 동맹을 진행하기도 했고.

해서 정성국이 이를 이야기했지만, 조용한 곰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그렇다면 새한성 조약을 체결한 직후나, 혹은 아국과 동맹을 맺은 후에 바로 혼인 동맹, 아니 최소한 외교 협상을 제의해서라도 양국의 관계를 개선하는 게 맞았습니다. 하지만 그러지 않았잖습니까.”

“큼. 그건 또 그렇군.”

새한성 조약을 체결하며 반프랑스 전쟁이 끝난 직후, 덴마크나 스웨덴 모두 전쟁으로 인해 피폐해진 나라를 재건하는 데 전력을 다하는 것이 맞았다.

헌데 덴마크와 스웨덴은 꾸준히 신경전을 벌여왔던 것이 사실이고.

이는 덴마크와 스웨덴 모두 어쩔 수 없이 새한성 조약에 서명하긴 했지만, 조약의 결과가 썩 만족스럽지 않았기에 서로를 비방하는 것을 멈추지 않았기에 벌어진 일이었다.

그리고 북미왕국이 개입해야 할 정도로 큰 문제가 일어난 것은 아니고, 그 덕분에 오히려 북미왕국은 외교적으로 이득을 본 일도 있긴 하지만, 앙숙인 두 나라와 각각 동맹을 맺으면서 이들의 관계 때문에 외무청은 꽤 골치를 썩이기도 했고, 또 이 신경전 때문에 덴마크와 스웨덴 모두 손해를 본 경우도 많았던 것은 사실이었고.

이를 외무청의 보고서를 통해 어느 정도 파악하고 있는 정성국이 결국 조용한 곰의 말에 수긍하며 항복하듯 두 손을 들자, 조용한 곰은 빙긋 웃으며 다시 이야기의 방향을 돌렸다.

“아무튼, 그래서인지 덴마크에서는 전하께서 직접 결혼식장에 참석하셔서 자리를 빛내주기를 바란다는 의사를 밝히긴 했습니다만...솔직히 예의상 그런 말을 전한 것이니만큼, 전하께서 직접 방문하신다고 하면 덴마크나 스웨덴에서 기겁하겠군요.”

“큭큭큭. 그렇겠지.”

확실히 아무리 북미왕국이 덴마크나 스웨덴과 동맹이고, 또 울리카가 정성국과 친한 크리스티안 5세의 동생이고, 칼 11세가 이번에 북미왕국을 방문해 정성국과 약간의 친분을 쌓기는 했지만, 울리카와 칼 11세의 결혼을 축하하기 위해 정성국이 직접 유럽까지 방문할 거라고 생각한 이들은 없을 것이 분명했다.

특히 정성국은 거대한 북미왕국을 다스리느라 무척 바쁘다는 사실은 널리 알려졌으니 말이다.

해서 정성국이 키득거리고 있을 때 조용한 곰은 조금 떨떠름한 얼굴로 정성국을 바라보며 말했다.

“그리고...전하께서 직접 행차하시는 만큼, 전하의 안전을 위해 호위대도 함께 움직여야 하니, 스웨덴과 협상할 것이 정말 많겠군요. 거기에 군사청장, 그리고 호위대장과도 논의할 것도 많겠고요.”

생각해보면 이번 정성국의 유럽 방문으로 외무청, 군사청은 막대한 일 폭탄이 터진 것과도 같았다.

물론 덴마크, 스웨덴 모두 북미왕국의 동맹국이긴 했지만, 만약을 대비해야 했으니 말이다.

그리고 조용한 곰의 말로 이를 깨달은 정성국은 슬며시 그의 시선을 피하며 바로 이야기의 주제를 돌리기 위해 급히 질문을 던졌다.

“크흠. 그보다 결혼식은 언제야?”

그런 정성국의 행동에 조용한 곰은 피식 웃으며 대답했다.

“내년 2월 말입니다.”

“어라? 생각보다 빠르게 하네? 그래도 국혼이면 준비할 것이 많지 않나?”

지금이 12월 중순이니, 기껏해야 2달 좀 넘게 남은 셈이라 정성국은 이상하다는 듯 고개를 갸웃하자 조용한 곰이 쓰게 웃으며 답했다.

“그게...아무래도 혼인하는 당사자들이 나이가 있다 보니, 최대한 일정을 앞당긴 겁니다.”

“아. 빨리 결혼해서 후계자를 생산했으면 하는 마음에?”

“그렇지요.”

칼 11세나 울리카나 둘 다 결혼 적령기를 놓쳤을뿐더러, 노산이 위험하다는 사실은 양국 모두 알고 있었다.

그러니 크리스티안 5세나 칼 11세 모두 하루라도 빨리 결혼해 조금이라도 젊었을 때 아이를 낳았으면 하는 마음에, 급히 결혼식 일정을 잡았다는 것을 짐작한 정성국은 피식 웃다가, 결혼식이 얼마 안 남았으니 외무청이나 군사청은 일정을 맞추기 위해 고생하리라는 것을 직감하고 무척 미안해하는 얼굴로 입을 열었다.

“흠. 그럼 얼마 안 남았으니, 외무청에서 빠르게 덴마크, 스웨덴 측과 협상을 진행하도록 하게. 그리고 나야 비행기로 빠르게 스톡홀름까지 방문할 수 있다지만, 호위대원들까지 모두 비행기를 이용하긴 어려울...아니지. 가능하려나?”

이에 조용한 곰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답했다.

“글쎄요. 가능이야 하겠지만, 굳이 그럴 필요가 있겠습니까. 호위대원들을 비행기로 이동시키려면 그동안 생산한 신형 비행기 전부를 투입해야 할 텐데 그건 너무 비효율적이지요. 그리고 어차피 호위 함대를 유럽에 파견해야 하니...”

조용한 곰의 말에 정성국은 당황하며 일단 그 말을 끊었다.

“잠깐만. 내가 생각하는 호위의 규모와 자네가 생각하는 호위의 규모가 조금 많이 다른 것 같은데?”

어차피 결혼식이야 스웨덴에서 열릴 테고, 스웨덴은 동맹국이니만큼, 정성국은 기껏해야 200명 정도의 호위대원을 대동하면 충분하다고 여겼다.

다만, 비행기에 탑승할 수 있는 인원은 겨우 12명에 불과했기에, 호위대원에 왕실 가족, 그리고 수행원들까지 합하면 넉넉잡고 25대에서 30대는 필요하지 않을까 싶었고.

헌데, 정성국이 곰곰이 생각해보니, 왕실 가족들은 몰라도 호위대원이나 수행원들이야 미리 보내면 그만이라, 충분히 가능하다고 판단한 건데, 그간 생산한 신형 비행기를 전부 투입해야 한다는 말로 미루어 짐작하면 못해도 수천 명의 호위대원을 파견할 기세였고, 여기에 호위 함대마저 파견한다고 하니, 정성국은 고작 동맹국을 방문하는 데 뭐 이리 거창하냐는 시선을 보내자 조용한 곰이 씩 웃으며 답했다.

“어차피 전하께서 직접 유럽을 방문하시는 김에, 북미왕국의 위상을 더욱 높이는 것도 나쁘진 않잖습니까.”

“아국의 위상을?”

정성국은 외무청뿐만 아니라, 정보기관을 통해서도 유럽의 정보를 얻었고, 그렇기에 현재 유럽에서 북미왕국의 위상은 무척 높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조용한 곰을 보고 이 정도면 충분한 것 아니냐는 시선을 보내자 조용한 곰이 입을 열었다.

“예. 물론 유럽에서 아국의 위상은 대단합니다만...아쉽게도 서유럽과 동유럽의 분위기가 조금 다릅니다. 서유럽이야 그동안 아국과 오랫동안 교류해왔기에, 아국의 많은 정보를 입수했고, 그렇기에 무척 높이 평가하고 있습니다만 동유럽에서는 조금...”

“아. 서유럽에서 아국을 생각하는 것만큼은 아니다?”

“그렇습니다. 그리고 서유럽에 퍼진 아국의 이야기 중 상당수를 그저 과장된 소문으로 여기고 있기도 하고요. 그러니 이번 기회에 신형 전선을 대거 차출해 호위 함대를 구성하고, 이 호위 함대를 발트해에 진입시켜 아국의 국력을 유럽 전체에 과시한다면, 앞으로 동유럽 국가들과의 외교나 교역에 있어서 우위를 점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동안 북미왕국은 북미 대륙을 완전히 장악하기 위해 서유럽의 강국들과 전쟁을 치러왔고 항상 승리했다.

그렇기에 유럽에서 북미왕국의 국력이 대단하다는 사실이 널리 알려졌지만, 북미왕국과 교류하며 북미왕국의 실체를 확인한 서유럽 국가들과는 달리, 동유럽 국가들은 북미왕국의 강력함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했다.

그저 에스파냐, 프랑스와의 전쟁에서 승리했기에 북미왕국이 강하다고 막연히 생각할 뿐.

그리고 이런 동유럽 국가들의 인식은 향후 외교와 교역에도 영향을 끼칠 것이 분명했고.

해서 외무청에서는 기회를 봐서 이런 동유럽 국가들의 인식을 바꿀 생각이었다.

헌데 정성국이 유럽을 직접 방문한다고 이야기하니, 조용한 곰은 이것을 절호의 기회라고 여겼다.

정성국이 유럽을 방문한다면, 당연히 유럽의 시선이 정성국에게 쏠릴 것이 분명했기에.

그러니 기왕 정성국이 움직이면서 호위병력을 대동할 테니, 이 호위병력의 규모를 대폭 키워 정성국의 안전과 국력 과시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생각이었던 것이다.

더불어 스웨덴에 대규모 호위병력을 파견한다는 것은, 그만큼 북미왕국의 원정 능력이 뛰어나다는 것을 유럽에 알리는 셈이니, 유럽의 약소국들은 북미왕국의 동맹을 더욱 긍정적으로 고려할 테고, 그렇게 되면 정성국이 바란 유럽의 평화도 더 쉽게 찾아올 수도 있고.

이런 조용한 곰의 자세한 설명에 정성국은 자연스레 전생의 백색 함대를 떠올렸다.

전생의 미국은 20세기 초 전함 16척을 포함한 대규모 함대를 구성해 세계를 일주했다.

이는 청일 전쟁과 러일 전쟁에서 연달아 일본 제국이 승리한 이후, 일본 제국을 경계하고 내심 두려워하던 서부의 미국인들에게 자국의 힘을 보여주어, 이들을 안정시키고, 전 세계에 미국의 국력을 제대로 보여주기 위해 기획한 이벤트였고.

그리고 계획한 대로, 선체를 백색으로 칠한 미국의 대함대가 남미를 빙 돌아 서부에 도착하면서, 서부의 미국인들은 더는 일본 제국을 두려워하지 않았고, 그때까지만 해도, 미국과의 외교 분쟁으로 인해 미국과 전쟁을 시작해야 한다는 일본 내 여론은 완전히 사라졌으며, 백색 함대가 방문한 오스트레일리아, 뉴질랜드 등 여러 나라는 미국에 기대기 시작했고 말이다.

‘흠. 이번 호위 함대를 구성하면 우리도 선체를 백색으로 칠해볼까?’

정성국은 그런 실없는 생각을 잠깐 한 후, 곰곰이 조용한 곰의 제안을 생각해보았는데, 나쁘지 않았다.

어차피 정성국은 유럽을 방문하는 김에 유럽 내에서 북미왕국의 영향력을 확대할 생각이었으니, 대규모 호위병력을 대동함으로써 북미왕국의 영향력을 더욱 확대할 수 있다면 굳이 마다할 이유는 없었고.

물론 갑작스레 이를 준비해야 하는 외무청이나 군사청에선 죽어나가겠지만 말이다.

다만, 정성국은 한 가지 걸리는 점이 있어 이를 이야기했다.

“으음...헌데 아무리 아국과 스웨덴이 동맹이라 하더라도, 그저 내 호위를 위해 그 정도 규모의 호위를 파견한다고 하면, 스웨덴이 과연 받아들일까? 수도에 타국의 군대, 군함이 들어오는 것을 허용해야 하는데?”

정성국의 말에 조용한 곰이 잠시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다가 대답했다.

“예? 아. 방금 전하께서 스톡홀름을 이야기하셨기에 설마 했는데...이번 결혼식은 룬드에서 열립니다.”

이에 정성국은 당황한 얼굴로 중얼거렸다.

“응? 룬드면...스코네 지방의 도시 아닌가?”

“맞습니다. 저도 조금 의외긴 했는데, 아무래도 크리스티안 5세가 스웨덴의 수도인 스톡홀름을 방문하는 것이 불편하기에, 스웨덴의 영토이지만 덴마크와 가까운 룬드에서 결혼식을 올리는 것이 아닐까 싶더군요.”

“쩝. 이거 관광은 글렀군.”

결혼식에 참석하는 김에 스톡홀름을 구경할 생각이었던 정성국이 무척 아쉬워하자 조용한 곰이 웃었다.

“하하하. 정 유럽의 도시를 관광하시고 싶으시다면 차라리 가까운 코펜하겐을 방문하시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아. 그거 괜찮네. 그래야겠다.”

그렇게 정성국은 조용한 곰과 유럽 방문 일정과 관련해 이야기를 나누었고.

이야기가 어느 정도 마무리되었을 때 정성국이 물었다.

“헌데 자네는 이 일 때문에 온 것은 아니지 않나?”

그 말에 조용한 곰이 아차 하는 얼굴로 급히 대답했다.

“아. 맞습니다. 제가 전하를 찾아온 건 대평원 지역에서의 일 때문이지요.”

“대평원 지역?”

“예. 전에 들소를 따라 유목 생활을 하던 대평원 지역의 원주민 부족들이 하나둘 미주리 강 인근에 정착하기 시작했다고 보고하지 않았습니까.”

조용한 곰의 말에 정성국이 기억을 떠올리고 입을 열었다.

“아. 기억 나네. 정착 생활을 하던 아리카라 족이 아국과의 교역으로 세력이 커지고 부유해지면서, 인근의 다른 부족들도 하나둘 미주리 강에 정착하기 시작했다고 했었지?”

“그렇습니다. 그리고 전하의 명령에 따라 이들과 교류하면서 이들을 회유해왔고, 결국 이들 부족을 북미왕국에 합류시킬 수 있었습니다.”

“와. 이렇게 빨리?”

고작 1년도 채 되지 않았는데, 미주리 강 인근에 정착한 원주민 부족들을 모두 회유했다는 조용한 곰의 보고에 정성국이 감탄했고.

이에 조용한 곰은 자신만만한 미소와 함께 답했다.

“뭐 익숙하니까요.”

“하하하. 잘했네. 잘했어. 덕분에 아국이 직접 통치하는 영역이 대평원 지역까지 넓어진 셈이니...이번에 대평원 지역의 부족들을 설득한 외무청 관리들에게 포상을 내리도록 하게. 더불어 더 많은 대평원 부족들과 접촉하고 교류하는 데 집중하도록 하고.”

“알겠습니다. 전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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