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65
해남도는 원래 광동성에 속한 섬이었다.
다만 해남도는 섬이 크기는 해도 낙후된 섬이었기에, 광동성의 관리들은 해남도를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여기에 강서성이 반란군에 의해 점령되고 북경과의 연락이 끊기면서, 광동성의 관리들의 신경이 주변에 분산되다 보니, 해남도는 거의 방치되었고.
또한, 조청전쟁으로 절강성 이남의 청나라 수군 기지 대부분이 북미왕국의 3함대에 의해 파괴되고, 뒤이어 동녕국의 수군이 중국 대륙의 남해안 일대를 거침없이 드나들면서, 청나라 선박들을 보이는 족족 공격해 약탈하고 나포하면서 광동성과 해남도의 연락은 거의 끊겼고, 자연히 해남도의 청나라 관리들은 독자적으로 해남도를 통치하기 시작했다.
다만 이들도 언제까지 이렇게 독자적으로 행동할 수는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본토의 소식을 파악하기 위해 노력했고, 하구진에서 청나라, 주나라, 동녕국의 사신들이 모여 화친 협상을 시작했다는 소식과 청나라가 광동성을 동녕국에 넘길 거라는 소문이 퍼지자, 청나라 관리들은 앞으로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를 고민하기 시작했고.
이는 청나라 관리들뿐만 아니라, 해남도의 대지주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원래 해남도는 여족의 땅이었고, 아주 오래전에는 중국 대륙의 북중부에 국한된 전통적인 의미의 중원과는 너무나도 멀리 떨어져 있었기에, 일종의 유배지로 취급받았기에, 일부 한족을 제외하면 해남도에 거주하는 한족은 거의 없었다.
다만, 시간이 흐르며 장강 이남 지역이 개발되고, 그러면서 중국 왕조의 영향력이 점차 남쪽으로 확대되자, 해남도 역시 실질적인 중국 대륙의 강역으로 흡수되며 한족의 일부가 해남도에 정착하기 시작했고.
여기에 중국 대륙의 왕조가 명나라에서 청나라로 교체되는 시기에 한족들이 전란을 피해 대거 해남도로 이주하면서, 해남도에 거주하는 한족이 대폭 늘어났고, 그러다 보니 해남도에도 대지주가 생겨났으며, 이들은 관리들과 긴밀하게 관계를 맺어 자신들의 부를 유지하기 위해 애를 썼다.
그러니, 이들 역시 본토의 소식에 항상 귀를 기울였고, 동녕국이 광동성을 통치하기 시작하면, 자신들에게 어떤 영향이 있을지, 그리고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를 고민하기 시작했고.
헌데 갑작스럽게 상황이 바뀌었다.
청나라가 해남도를 따로 떼서 북미왕국에 넘겨버린 것이다.
이를 알게 된 해남도의 청나라 관리들은 당황하며, 일단 이 소식을 자신들과 친한 해남도의 대지주들에게도 전했고, 뒤늦게 이 소식을 접한 일부 해남도의 대지주들은 상황을 파악하고 앞으로 어떻게 행동할지를 정하기 위해 다른 대지주들과 대화를 나눠볼 필요가 있다고 여겼고, 이에 해남도의 대지주 가운데 가장 세력이 큰 조율생이 다른 대지주들을 자택으로 초대해 회합을 열었다.
* * *
“아니. 그게 정말입니까?”
해남도의 대지주들을 대부분 초대했기에, 그리고 대지주들 가운데는 소식에 어두운 자들도 많았기에, 조율생이 현 상황을 간략히 설명하자 일부 대지주들은 화들짝 놀라며 그게 정말이냐고 되물었고.
이에 조율생은 담담히 고개를 끄덕였다.
“예. 정말입니다. 청나라가 이 해남도를 북미왕국에 넘겼다고 하더군요.”
“허.”
“이것 참...”
“참으로 의외군요. 전 당연히 동녕국이나, 혹은 주나라가 이 해남도를 장악하리라고 봤는데 뜬금없이 북미왕국이라니...”
“그러게 말입니다.”
조율생의 대답에 상황을 모르던 대지주들이 혼란스러운 얼굴로 한마디씩 하기 시작하자, 방안은 순식간에 소란스러워졌고, 이 소란을 잠재울 필요성이 있다고 느낀 조율생은 헛기침하며 다시 입을 열었다.
“크흠. 아마 북미왕국이 적극적으로 중재에 나서지 않았다면, 결국 청나라는 망했을 겁니다. 그러니, 청나라 입장에선 북미왕국에 크게 보답해야 했고, 예전에 전쟁 배상금으로 동만주를 넘긴 적이 있으니, 이번엔 해남도를 넘긴 모양입니다.”
조율생의 설명에 납득한 대지주들이 하나둘 입을 닫으면서, 다시 방안은 조용해졌고.
그런 분위기가 마음에 든 조율생이 뭐라 입을 열려고 할 때, 누군가가 먼저 입을 열었다.
“헌데 이 해남도가 북미왕국의 영토가 된다면...이거 좋아해야 하는 겁니까? 아니면...”
이에 조율생은 다른 대지주들의 생각을 파악하기 위해 입을 꾹 다물었고, 대신 다른 대지주들이 한 명씩 입을 열기 시작했다.
“글쎄요. 북미왕국은 강력한 중앙 집권 국가로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북미왕국의 법도는 우리의 법도와는 조금 다른 것으로 알고 있고요. 그러니 이 해남도가 북미왕국의 영토가 되었다는 것을 우리가 반길 이유는 없어 보입니다만...”
“맞습니다. 다른 것은 몰라도 북미왕국의 모든 땅은 나라에 귀속된다고 들었습니다. 헌데 그걸 어찌 반기겠습니까.”
누군가가 북미왕국의 토지 정책을 거론하자, 이를 처음 듣는 대지주들이 눈을 휘둥그레 뜨며 급히 되물었다.
“뭐라고요?”
“어? 그게 정말입니까?”
“예. 그래서 북미왕국에는 대지주가 아예 없다고 하더군요. 유일한 대지주는 북미왕국의 국왕뿐이라고 들었습니다.”
이에 한 풍채 좋은 노인도 고개를 끄덕이며 아는체했다.
“아. 저도 그 말은 얼핏 들은 것 같군요. 북미왕국의 국왕은 대지주고, 북미왕국의 관리는 마름이며, 백성들은 소작농이라는 이야기가 있던데...”
그리고 북미왕국의 정보를 어느 정도 알고 있는 대지주들이 그 말이 맞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자, 북미왕국을 잘 모르기에 이들의 말에 귀를 기울이던 대지주들은 표정을 찌푸리거나 탄식을 터트렸다.
물론 나라가 바뀌면서 새로운 통치자가 등장하면, 새로운 통치자는 당장 필요한 재물을 확보하기 위해 재물이 많은 대지주를 건드리는 경우가 많았고, 그런 상황에서 굳이 맞서봐야 좋을 것이 없다는 것쯤은 이들도 잘 알고 있었기에, 누가 이 해남도를 장악하든 이들은 어지간하면 일단 바짝 엎드려 이를 따를 생각이었다.
당장은 손해를 보더라도, 나중에 만회하면 그만이라 여겼기에.
허나 북미왕국처럼 토지의 개인 소유를 인정하지 않는다면, 이들로선 손해도 막심했고, 이 손해를 만회할 수도 없었으니, 대지주들이 하나둘 북미왕국의 통치에 반감을 드러내기 시작했고.
“허. 그럼 북미왕국이 이 해남도에 관리를 파견하면, 우리의 땅을 모두 뺏긴다는 소리 아닙니까!”
“아마도 그렇겠지요.”
“그럼 북미왕국에 대항할 준비를 해야 하는 것 아닙니까?”
이에 아까도 입을 열었던 한 풍채 좋은 노인이 헛웃음을 흘리며 북미왕국에 대항해야 한다고 말한 대지주에게 타박하듯 이야기했다.
“허허허. 그게 가능하겠습니까? 청나라조차 북미왕국을 감당하지 못했는데, 우리가 대체 무슨 수로 북미왕국에 대항한단 말입니까...”
그 말에 한참 감정에 몸을 맡기고 북미왕국에 대한 불만을 쏟아내기 시작하던 대다수의 대지주들은 순간 움찔하며 다시 이성을 되찾았다.
풍채 좋은 노인의 말마따나, 아무리 소식에 어두운 이들이라도 북미왕국의 군사력이 대단하다는 사실 정도는 알고 있었기에.
그때 비교적 젊은 한 대지주가 퉁명스럽게 말했다.
“물론 북미왕국의 국력이 대단하다는 것은 압니다. 허나 이 해남도는 북미왕국 본토와 엄청 떨어져 있지 않습니까. 그러니 충분히 대항해 볼 만 하지 않습니까?”
“어? 그렇군요. 아무리 북미왕국이 대단하다 해도 이렇게 먼 곳까지 대규모 병력을 파견하지는 못할 것 아닙니까. 그러니 소작농들을 모두 동원하면...”
젊은 대지주의 말에 일부 대지주들이 관심을 보이자, 풍채 좋은 노인이 그들을 한심스럽다는 눈빛으로 바라보며 다시 입을 열었다.
“거참...정말 그렇게 생각하는 겁니까? 예전에 조청전쟁 당시, 북미왕국은 대규모 해군 함대를 광동성까지 파견한 적이 있지 않습니까. 헌데 이 해남도까지 대규모 해군 함대를 파견하지 못할 까닭이 어디 있습니까.”
“아...”
풍채 좋은 노인의 타박에 대다수의 대지주들이 동의하듯 고개를 끄덕이자, 젊은 대지주가 욱하는 얼굴로 반박하듯 말했다.
“그래도 저들은 이곳의 지리도 잘 모르고, 기후도 생소할 테니, 우리가 똘똘 뭉치면 충분히 대항할 수 있을 겁니다!”
하지만 풍채 좋은 노인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젊은 대지주의 말에 조목조목 반박했다.
“물론 북미왕국이 이곳의 지리를 우리보다 모르기야 하겠지. 하지만, 이 해남도의 지리를 잘 아는 이는 우리가 아닐세. 여족이지, 그러니 북미왕국이 여족과 접촉하면 지리의 이점은 사라지는 셈일세. 그리고 기후? 북미왕국은 무척 넓은 영토를 보유하고 있네. 그 드넓은 영토 가운데 이곳과 비슷한 기후가 과연 없을까?”
이에 젊은 대지주가 제대로 답을 하지 못하고 있을 때, 누군가가 끼어들었다.
“아. 그러고 보면 저 대만 섬 남쪽의 비율빈에도 북미왕국의 영토가 있다고 들었는데...”
“그렇지요. 그리고 비율빈의 기후에 익숙한 북미왕국인들이 이곳의 기후에 적응하지 못할 것 같지는 않군요. 그러니 북미왕국에 맞서는 것은 현명한 선택이 아닐 거외다.”
이들도 대만 섬 남쪽의 필리핀을 알고 있었고, 필리핀은 이곳보다 남쪽에 있으니 더 더우리라고 생각했기에 대지주들은 그 말이 맞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고.
그때 풍채 좋은 노인의 반박에 제대로 두드려 맞은 젊은 대지주가 겨우 입을 열었다.
“하지만 다른 나라에 도움을 요청한다면...”
이에 풍채 좋은 노인은 콧방귀를 뀌며 한마디 했다.
“북미왕국과의 마찰을 감수하고 누가 우리를 도우려 하겠나. 그것도 이 해남도를 차지하겠다고.”
풍채 좋은 노인의 말마따나, 이 해남도를 차지한다고 막대한 이득을 얻을 수 있는 것도 아닌데, 과연 어느 나라가 북미왕국과 전쟁까지 치르겠는가.
그렇기에 다른 대지주들은 풍채 좋은 노인의 말에 수긍하며, 북미왕국과 대항하겠다는 생각을 버렸고, 그런 분위기를 깨달은 젊은 대지주는 힘없이 의자에 등을 기대며 이 논쟁에서 졌다는 것을 온몸으로 표현했고, 이 항복 선언에 풍채 좋은 노인이 빙긋 웃었을 때, 한 중년 남성이 끼어들었다.
“그보다 현령은 어쩐답니까?”
이에 그때까지 풍채 좋은 노인과 젊은 대지주의 논쟁을 지켜보던 조율생이 대답했다.
“아. 일단 청나라에서 해남도의 관리들과 병사들에게 철수 명령을 내리긴 했는데, 이를 따를지 말지 고민하고 있더군요.”
“고민이라...?”
조금 자세히 이야기해보라는 눈빛을 보내는 중년 남성을 보고 조율생이 다시 입을 열었다.
“이야기를 나눠보니 현령은 청나라의 귀환 명령을 따르는 것보다, 이곳에 남는 것이 더 낫지 않을까 싶은 모양입니다. 어차피 북미왕국의 영토는 넓기에, 이곳을 통치하는 데 많은 관리를 파견할 수 없을뿐더러, 북미왕국은 현지인들을 관리로 채용하는 데 적극적이니, 이곳에 남으면 북미왕국의 관리로 채용될 가능성이 크다고 생각해 고민하는 모양이더군요.”
“어? 북미왕국이 현지인들을 관리로 채용하는 데 적극적이라고요?”
이에 중년 남성이 흥미를 보이며 되묻자 조율생이 북미왕국에 대해 잘 아는 것 같은 풍채 좋은 노인을 바라보았고, 풍채 좋은 노인이 너털웃음을 지으며 조율생의 바람대로 대신 대답했다.
“저도 그렇다고 알고 있습니다. 북미왕국의 영토는 무척이나 넓은 반면, 인구는 적은 편이라, 현지인들을 차별하기보다는, 포용하기 위해 애를 쓰는 편이라고 하더이다. 그러다 보니 출신에 따라 차별하는 일도 엄격히 금지하고 있고요.”
“호오. 그게 정말입니까?”
“그럼요. 그리고 조 대인의 말처럼 북미왕국은 본토 개발에 우선하고 있기에, 이처럼 멀리 떨어진 영토에는 많은 관리를 파견하기도 현실적으로 어렵고요. 해서 보통은 현지인들을 가르쳐 관리로 채용하는데 무척 적극적이라고 들었습니다.”
“으음...”
풍채 좋은 노인의 설명에 다른 대지주들은 생각이 많은 눈치였다.
물론, 북미왕국의 통치를 받아들이게 되면, 손해가 막심할 것이 뻔히 보이기는 하는데, 잘만하면 관리가 되어 지배계층이 될 수 있어 보였기에.
다만 북미왕국에 순순히 땅을 내주고 싶지 않은 대지주들은 북미왕국이 해남도에 도착하기 전에, 소작농에게 땅을 비싸게 팔아 치우고 이 해남도를 떠나야겠다고 생각했고.
그렇게 대지주들의 의견과 생각이 갈리자 조율생 역시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가 고민이 깊어졌을 때, 회합이 진행되던 방의 출입문이 벌컥 열리며 한 하인이 허겁지겁 방안으로 들어왔다.
이에 일부는 불쾌감을, 그리고 일부는 무슨 일이 벌어졌길래, 하인이 저러나 싶어 시선을 고정했을 때, 하인이 조율생에게 다가가 보고했다.
“어르신. 북미왕국의 함대가 선착장으로 접근하고 있습니다!”
“뭐?! 북미왕국의 함대가?”
“예. 누각에서도 북미왕국의 함대가 보입니다요.”
“그래?”
하인의 대답에 조율생이 다른 대지주들을 바라보니, 대지주들은 그동안 이야기로만 들어왔던 북미왕국의 함대를 구경하고 싶은 모양인지 엉덩이를 들썩거렸고, 이에 조율생이 입을 열었다.
“분위기가 많이 가열되었으니, 잠시 휴식을 취할 겸 누각에서 바람을 쐬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오. 그거 좋군요.”
“찬성입니다.”
“바로 가시지요.”
그리고 조율생의 말에 다른 대지주들은 동의하며 하나둘 자리에서 일어나 하인의 안내를 받아 조율생의 장원 한쪽에 자리한 누각으로 이동했고.
누각에 올라 저 멀리서 대형을 이루고 빠르게 선착장으로 다가오고 있는 북미왕국 함대의 위용을 확인하고, 말문이 막혀 멍하니 쳐다볼 뿐이었다.
그리고 한쪽에서 풍채 좋은 노인은 북미왕국의 함대를 보고 역시나 하는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며, 옆에서 멍하니 북미왕국 함대를 보고 있는 젊은 대지주가 들을 수 있도록 중얼거렸다.
“허어. 역시 젊음의 패기는 좋구만. 저런 함대를 운용하는 북미왕국을 만만히 볼 수 있다니...”
“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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