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64
새한성에 주재하던 포르투갈 대사는 보좌관이 전해 준 소식을 접하고 바로 잉글랜드 대사관으로 향했고.
잉글랜드 대사는 갑작스러운 포르투갈 대사의 방문에 의아해하면서도, 일단 그를 반기며 용건을 묻자 포르투갈 대사는 잉글랜드 대사가 건네준 커피를 한 모금 마시며 바로 질문을 던졌다.
“혹시 그 소문이 사실입니까?”
“예? 무슨 소문 말입니까?”
잉글랜드 대사는 도대체 무슨 소문을 듣고 이렇게 찾아온 거냐는 시선으로 포르투갈 대사를 바라보자, 포르투갈 대사가 커피잔을 내려놓고 말했다.
“이번에 중국 대륙에서 체결된 평화 조약을 중재한 북미왕국을 비롯한 여러 유럽 나라들이 청나라, 주나라, 동녕국에서 여러 이권을 챙겼다는 이야기가 돌아서 말입니다.”
이에 잉글랜드 대사는 포르투갈 대사가 왜 급히 자신을 찾아왔는지 대충 눈치챘다.
포르투갈은 명나라 시절 마카오를 통해 교역하며 이득을 챙겼는데, 청나라가 들어서면서 해금령을 선언하고 포르투갈 선박을 모두 내쫓으면서, 중국 대륙과의 교역이 대폭 축소되었으며, 그러한 상황이 계속 유지되고 있었고.
그런데 이번에 청나라, 주나라 동녕국 삼국이 화친을 맺었다는 소식이 들려오고, 북미왕국을 비롯한 유럽 나라들이 이 협상을 중재한 대가로 여러 이권을 챙겼으며, 덕분에 유럽 나라들이 삼국과 정식으로 교역한다는 소문마저 새한성 외교가에 떠도니, 포르투갈 대사로서는 잘못하면 대중국 무역에서 포르투갈이 소외될 수 있다는 위기감에 정확한 상황을 파악하고자 자신을 찾은 것이리라.
그리고 어차피 알려질 일이기도 하고, 포르투갈과는 무척 우호적인 관계인 만큼, 잉글랜드 대사는 바로 입을 열었다.
“아. 맞습니다. 이번에 삼국 협상을 중재한 대가로 약간의 이득을 챙기긴 했지요.”
“약간의 이득이라면?”
“정식으로 대등한 외교 관계를 맺고, 자유롭게 교역할 수 있는 권리와 삼국을 합쳐 총 6곳의 항구를 개항하기로 했습니다. 그리고 영토를 일부 할양받았고요.”
“헉! 그게 정말입니까?”
포르투갈 대사는 잉글랜드 대사의 말에 화들짝 놀랐다.
대등한 외교 관계를 맺었다니.
포르투갈은 오래전 명나라 시절부터 교류를 해왔기에, 중국의 왕조가 얼마나 자부심이 강한지, 그리고 중국의 왕조가 주변의 다른 나라와 어떤 관계로 외교 관계를 맺는지 잘 알고 있었다.
물론 최근에 북미왕국이나 조선, 시베리아 부족 연합 등은 청나라의 조공 체계에서 벗어났지만, 그건 북미왕국의 강력함 덕분에 가능한 일이었고.
그렇기에, 포르투갈 대사는 삼국 중 그나마 규모가 작은 동녕국이나, 청나라에 밀리지 않겠다고 황제국임을 천명한 주나라라면 몰라도, 청나라마저 유럽 나라들과 대등한 외교 관계를 맺었다는 사실에 무척이나 놀랐다.
또한, 중국 대륙의 삼국이 자유롭게 교역할 수 있는 권리와 6곳의 항구를 개항했다는 사실도 충격적이었다.
물론 유럽 나라들에 도움을 받았던 동녕국과 주나라라면 충분히 이를 허용할 수 있다고 생각했지만, 그동안 유럽 나라들과의 교역에 부정적이던 청나라마저 개항했으니 말이다.
또한, 삼국이 유럽 나라들에 영토를 할양했고, 덕분에 유럽 나라들은 개항장 인근에 상관을 비롯해 외국인들이 체류할 수 있는 공간을 얻어냈다는 잉글랜드 대사의 설명에는, 마카오를 인정받고 유지하기 위해 그동안 명나라, 청나라 관리들에 쏟아부었던 뇌물이 생각나 포르투갈 대사는 배가 아플 정도였고.
“허어. 그럼 다른 나라들도...”
“예. 네덜란드, 덴마크, 에스파냐 역시 우리 잉글랜드와 비슷하게 약간의 이득을 챙겼지요.”
잉글랜드 대사의 대답에 포르투갈 대사는 눈을 질끈 감았다.
네덜란드, 덴마크, 에스파냐도 잉글랜드와 비슷하게 여러 곳의 개항장을 확보하고 상관을 개설할 땅마저 할양받았다면, 대중국 무역에서 포르투갈의 입지는 사라진 것이나 마찬가지였기에.
해서 포르투갈 대사는 깊은 한숨을 내쉬다 문득 잉글랜드 대사가 계속 약간의 이득을 챙겼다고 이야기하는 것이 꼭 자신을 놀리기 위함인 것 같아 약간은 까칠한 얼굴로 반박했다.
“큼. 그 정도면 약간의 이득이 아닌 것 같습니다만...”
이에 잉글랜드 대사는 쓴웃음을 머금으며 고개를 저었다.
“아니요. 그 정도면 약간의 이득이 맞습니다. 북미왕국은 중재의 대가로 삼국을 엄청나게 뜯어냈으니까요.”
“어? 그렇습니까?”
포르투갈 대사가 보기엔 잉글랜드를 비롯해 유럽 각국이 확보한 이권만 해도 대단한데, 이걸 약간으로 치부할 정도면 북미왕국은 중재의 대가로 대체 어떤 이권을 뜯어냈나 싶어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잉글랜드 대사를 바라보았고.
“예. 북미왕국은 장강 항행권을 확보하고 내륙의 항구 도시들을 개항시켜, 내륙으로 진출할 수 있는 길을 열었으니까요.”
잉글랜드 대사의 대답에 포르투갈 대사는 허를 찔린 표정으로 잉글랜드 대사를 바라보며 급히 물었다.
“장강 항행권이요? 설마 북미왕국의 선박은 자유로이 장강을 드나들 수 있다는 겁니까?”
“그렇다더군요. 그러니 북미왕국이 마음만 먹는다면, 장강의 내륙 수운을 장악할 수도 있게 된 거지요.”
“맙소사...”
포르투갈 대사는 잉글랜드 대사의 말을 인정했다.
장강을 자유롭게 항행할 수 있는 권리라면, 잉글랜드를 비롯한 유럽 나라들이 챙긴 이권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대단한 이권이었기에.
특히 북미왕국의 배들은 기관으로 움직이는 만큼, 강에서도 자유롭게 항해할 수 있으니, 북미왕국이 정말 마음만 먹는다면, 잉글랜드 대사가 이야기한 것처럼 장강의 내륙 수운을 모두 장악할 수 있을 것이 분명했고.
물론, 장강을 통해 이동하는 물류를 생각하면, 과연 북미왕국이 장강의 내륙 수운을 장악하겠다고 나설까 싶긴 했지만, 그 가능성만으로도 대단했기에 포르투갈 대사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고 있을 때, 잉글랜드 대사가 덧붙여 말했다.
“그뿐만 아니라, 북미왕국은 중재의 대가로 해남도로 할양받았습니다. 아국을 비롯한 유럽 국가들이 개항장의 땅 일부를 할양받는 것과는 차원이 다르지요.”
“헉! 해남도를요?”
해남도는 마카오와 가까웠기에, 포르투갈 대사도 해남도를 잘 알고 있었고, 그렇기에 그 거대한 섬을 할양받았다는 이야기에 기겁하자 잉글랜드 대사가 어깨를 으쓱했다.
“그렇습니다. 아. 물론, 우리나 다른 유럽 나라들과는 달리 북미왕국은 동녕국, 주나라뿐만 아니라 준가르와 청나라 사이를 중재하기도 했고, 당시 청나라 북방의 상황은 청나라가 밀리고 있었다는 것을 생각해보면 북미왕국이 우리보다 더 많은 이득을 취하는 것에 불만은 없습니다만, 조금 배 아프기는 하더군요.”
이에 포르투갈 대사는 잉글랜드 대사의 심정을 이해는 하면서도, 내심으론 투덜거렸다.
지금 이 상황에서 가장 배가 아픈 것은 바로 포르투갈 대사였기에.
특히, 잉글랜드를 비롯한 유럽 나라들이 연합해 청나라 내전에 개입한 것은 새한성에 주재하는 유럽 대사들의 결정이라는 것과, 만약 예정대로 포르투갈과 북미왕국이 정식으로 외교 관계를 맺었거나, 북미왕국이 노예무역의 금지를 천명했을 때 이를 바로 따랐다면, 유럽 대사들이 청나라 문제에 관심을 보일 때 자신도 그 자리에 있었을 거라는 생각까지 들자 더욱 속이 쓰렸고.
‘노예 상인들에 빌붙은 빌어먹을 귀족들 때문에 손해가 정말 막심하구만...’
그렇게 속으로 노예무역을 찬성했던 귀족들을 자근자근 씹으며 화를 조금 푼 포르투갈 대사는 어차피 지나간 일이라 이제 와서 후회해봐야 무엇하겠냐는 생각에 이를 애써 털어버리고, 커피를 홀짝거리는 잉글랜드 대사를 보고 축하의 인사를 건넸다.
“아무튼, 중국 대륙의 삼국과 정식으로 교역할 수 있게 되었으니 축하드립니다. 이거 정말 부럽군요.”
이에 잉글랜드 대사는 손사래를 쳤다.
“에이, 부러울 것이 뭐 있습니까. 예전이라면 모를까, 지금은 청나라, 아니 중국산 물품보다 북미왕국산 물품을 더욱 높이 평가하잖습니까. 거기에 중국 대륙의 수출품 상당수가 북미왕국과 겹치는 터라, 중국 무역의 가치가 꽤 떨어진 상태인 것을요.”
그건 그랬다.
예전부터 대표적인 중국 대륙의 수출품은 비단, 도자기 등이었는데, 이것들은 모두 북미왕국에서도 생산했고, 또 유럽의 상류층도 중국산보다는 북미왕국산 비단, 도자기 등을 더 선호했으니.
다만, 그렇다고 북미왕국이 중국 대륙의 모든 수출품을 생산하는 것은 아니었기에, 그리고 잉글랜드 대사 역시 이를 모르지 않을 텐데 저런 말을 하니 포르투갈 대사는 다시 속이 뒤집힘을 느끼면서도, 애써 내색하지 않고 말했다.
“그래도, 유일하게 북미왕국에서 생산하지 않는 품목이 하나 있잖습니까.”
“아. 차를 말씀하시는군요.”
잉글랜드 대사의 대답에 포르투갈 대사가 고개를 끄덕였다.
“예. 북미왕국은 농업 연구소가 있으니, 차 나무를 재배해 더 질 좋은 차를 대량으로 생산할 수 있을 것도 같은데, 영 관심이 없는 눈치라...”
포르투갈은 처음으로 아시아 무역을 시작했기에, 포르투갈의 귀족들은 커피보다는 차를 즐겨 마셨다.
그리고 주앙 4세의 딸인 캐서린이 잉글랜드의 찰스 2세와 혼인하면서, 잉글랜드에 차를 가져왔고, 덕분에 잉글랜드의 상류층에서는 커피뿐만 아니라 차도 함께 즐겼고.
다만, 이 차는 아시아에서 가져와야 하는 터라 무척 비싼 편인데, 비슷하게 값비싼 음료인 커피의 경우, 북미왕국이 본격적으로 대량 재배하기 시작하면서 수확량이 계속 늘어나며 커피 가격은 조금씩 가격이 내려가고 있었기에, 마찬가지로 북미왕국이 본격적으로 차 나무를 대량 재배해 차를 생산하면, 지금보다 저렴하게 차를 수입할 수 있을 것 같아 포르투갈 대사가 조금 아쉽다는 기색으로 말을 흐리자, 잉글랜드 대사가 어쩔 수 없다는 얼굴로 입을 열었다.
“북미왕국에서 차를 마시는 사람이 거의 없으니 농업 연구소에서 뭐하러 관심을 두겠습니까. 농업 연구소의 연구원들이 일에 치여 산다는 건 유명하잖습니까.”
“하긴...”
포르투갈 대사는 잉글랜드 대사의 말에 피식 웃은 후 다시 커피를 마시며 잉글랜드 대사를 통해 삼국, 정확히는 동녕국의 정보를 파악하기 위해 잡담을 가장한 질문을 던지기 시작했고.
그러다 포르투갈 대사가 눈을 빛내며 물었다.
“흐음. 그렇습니까? 동녕국은 바로 광동성을 장악할 생각이 없다고요?”
“예. 보고에 따르면, 청나라가 광동성에 파견했던 청나라 관리, 병사들에게 귀환 명령을 내리기도 한 터라, 일단은 상황을 지켜볼 생각이라고 하더군요.”
“그러다 반응이 없으면 그때 병력을 동원하고요?”
“아마 그렇지 않겠습니까?”
잉글랜드 대사의 대답에 포르투갈 대사는 확인차 질문을 던졌다.
“그럼 귀국은 동녕국을 지원하겠지요?”
“그야 물론이지요. 그리고 그건 북미왕국을 비롯한 다른 나라들도 마찬가지일 겁니다. 다들 광동성에 동녕국이 보장한 이권을 갖고 있으니, 동녕국이 광동성을 장악하는 것을 훼방 놓을 이유가 전혀 없잖습니까.”
잉글랜드 대사의 말대로, 청나라가 광동성의 영토를 동녕국에게 넘긴 이상, 일단 광동성은 동녕국의 영토였고, 그렇기에 동녕국은 중국 대륙의 남해안 곳곳에 개항장을 원하는 북미왕국을 비롯한 유럽 나라들에 광동성의 항구들을 개항장으로 내어주었다.
그러니 북미왕국을 비롯해 광동성에 이권을 확보한 각국이 동녕국을 지원하지 않겠느냐는 잉글랜드 대사의 말에 포르투갈 대사는 속으로 생각했다.
‘흠. 그럼 마카오를 확보할 방법은 이들이 동녕국을 지원하기 전에, 먼저 동녕국과 접촉해 지원을 약속해서라도 마카오를 얻어야 한다는 거군. 바로 움직여야겠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