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63
다음 날 비행기를 통해 투로시노가 작성한 보고서가 새한성에 도착하자 정성국은 곧바로 청장들을 소집했고.
청장들은 보고서를 확인한 후 당황한 기색으로 한마디씩 하기 시작했다.
“해남도? 중재의 대가로 해남도를 받았다고요?”
“그거 엄청 큰 섬 아닙니까?”
“그걸 내주었다고요? 청나라가?”
이에 조용한 곰이 뭐 그리 대수냐는 얼굴을 하며 대답했다.
“이미 남해안의 영토를 모두 잃은 청나라로서는 해남도를 제대로 관리하긴 어렵고, 그렇다고 주나라나 동녕국에 넘기긴 아쉬우니 겸사겸사 넘긴 겁니다.”
조용한 곰의 말에 상황을 대충 이해한 청장들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중얼거렸다.
“허어. 고작 중재의 대가로 그 큰 섬을 할양받을 수 있을 줄은 몰랐군요.”
“그러게 말입니다. 허허허.”
그때, 행정청장이 무척 떨떠름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뭐 영토가 늘어난 것은 좋은데, 솔직히 이거 관리하기가 쉽지 않아 보이는데요?”
이에 군사청장이 동의하듯 고개를 끄덕이며 끼어들었다.
“그러게 말입니다. 청나라가 강서성을 잃은 이후, 광동성과의 연락이 끊겼으니, 해남도도 마찬가지일 듯한데요?”
해남도를 확보했기에, 주나라와의 무역이 더 수월해지겠거니 하는 생각에 기뻐하던 관리청장이 군사청장의 이야기에 아차 하는 얼굴로 조용한 곰을 바라보았다.
“어? 강서성이 점령된 이후, 광동성은 거의 독자적인 세력으로 변모하지 않았습니까?”
주나라가 강서성을 점령하면서, 그리고 이를 동녕국에 넘겨준 이후, 광동성은 북경과의 연락이 완전히 끊겼고.
처음에는 청나라에 충성했던 청나라 관리들과 병사들이었지만, 시간이 흐르며 독자적인 세력으로 변모했다.
여기에 일부 지역은 민란이 일어나 떨어져 나가기도 했고.
이를 알고 있는 관리청장이 조용한 곰에게 묻자 조용한 곰은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그렇습니다. 그래서 청나라가 이번 협정으로 광동성을 동녕국에 넘겨주었고, 광동성에 있는 모든 관리와 병사들에게 철수 명령을 내렸지만, 과연 그들이 청나라의 명령을 받아들일지 의문이고, 덕분에 동녕국이 광동성을 완전히 장악하기가 쉽지 않을 거라 예상하고 있지요.”
“끙. 그럼 해남도도 비슷한 상황이라는 것 아닙니까.”
“아마 그럴 것으로 추측됩니다. 다만 정확한 해남도의 사정은 청나라도 모르고, 아국도 모르기에 자세한 해남도의 사정을 파악할 겸, 그리고 해남도의 통제를 위해 3함대를 파견하는 것이 어떻겠냐는 투로시노의 의견이 있었고요.”
조용한 곰의 말에 그때까지 가만히 있던 정성국이 질문을 던졌다.
“3함대를?”
“예. 그것도 가용할 수 있는 모든 전선을 총동원해서 말입니다.”
이에 정성국이 피식 웃으며 중얼거렸다.
“청나라 관리들의 기를 꺾자?”
“그렇습니다. 물론 그들도 아국의 강력함을 모르지는 않을 것 같긴 합니다만...권력에 대한 욕심은 귀를 막고 눈을 가리기도 하지 않습니까.”
조용한 곰이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이렇게 이야기하자 행정청장이 동의했다.
“괜찮군요. 후에 해남도를 안정적으로 통치하려면, 청나라 관리들뿐만 아니라, 지역 유지들의 기를 눌러줄 필요도 있으니 말입니다.”
이에 다른 청장들도 고개를 끄덕이자 정성국은 결정을 내렸다.
“그럼 가용할 수 있는 모든 3함대의 전선을 해남도에 파견하도록 하지. 군사청장.”
“바로 명령서를 보내겠습니다.”
군사청장의 대답에 정성국은 고개를 끄덕인 후 청장들을 바라보며 다시 입을 열었다.
“그리고 일단 투로시노가 보내온 보고서를 통해 해남도를 어떻게 통치해야 할지, 그리고 어떻게 개발해야 할지 등을 논의하도록 하자고.”
“끙...”
정성국의 말에 회의가 길어질 것을 직감한 청장들은 한숨을 내쉬며, 하나둘 보고서를 살피며 의견을 제시하기 시작했다.
* * *
오전에는 새한성 곳곳을 돌아다니고, 오후에는 철도국 관리들과 시베리아 철도 부설을 위한 협상을 진행해오던 투란은, 모든 일정을 마무리하고 귀환하기 전 정성국과의 알현을 청했고.
한창 업무를 보고 있던 정성국은 기꺼이 투란의 요청을 받아들였다.
그리고 정성국의 집무실을 방문한 투란은 정성국을 보자마자 몇 번이고 허리를 숙이며 감사의 뜻을 표했다.
“정말로 감사드립니다. 전하.”
정중한 투란의 인사에 정성국은 바로 자리에서 일어나 그에게 다가가 일으켜 세우며 말했다.
“감사는요.”
“아닙니다. 전하께서 배려해주신 덕분에, 정말 좋은 조건으로 철도를 부설할 수 있게 되었으니, 이 은혜를 어떻게 갚아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애초에 시베리아 지역에 철도를 부설하려는 것은 시베리아 지역을 발전시키기 위함이지, 시베리아 부족 연합을 경제적으로 수탈하려는 목적이 아니었다.
그렇기에 조선과 계약한 것처럼, 시베리아 지역의 철도 부설에 들어가는 비용은 모두 북미왕국에서 투자하고, 북미왕국에서 시베리아 철도를 운영하면서 철도 부설에 들어간 비용을 모두 회수하면, 시베리아 부족 연합에 시베리아 지역의 철도 운영권을 돌려주는 조건으로 계약했고.
이런 계약 조건은 북미왕국 입장에선 별다른 이득이 없고, 시베리아 부족 연합 입장에선 엄청나게 유리한 계약이었으니, 투란은 철도국 관리들과 협상하면서도 정말 이 조건이 맞느냐며 물어볼 정도였고, 협상에 참여한 철도국 관리들은 정성국의 명령으로 이러한 계약을 맺는 거라고 이야기하며 계약서에 서명했으니.
투란으로서는 정성국이 시베리아 부족 연합에 베푼 은혜에 감격해 계속해서 감사의 인사를 전했고.
정성국은 투란이 잔뜩 흥분해 계속 감사의 뜻을 표하자 그를 조금 진정시킬 필요가 있다고 여겨, 그를 티테이블에 앉히고 직접 커피를 내려 건네주었고, 투란은 정성국이 건넨 커피를 한 모금 마시고 나서야 조금 진정한 얼굴로 정성국을 보며 다시 고개를 숙였다.
“크흠. 죄송합니다. 어떻게든 감사의 뜻을 표해야 한다는 생각에 그만 무례를 저질렀습니다. 전하.”
“하하하. 괜찮습니다. 그보다...철도국장의 보고를 들어보니, 철도 부설에 필요한 인력을 시베리아 부족 연합에서 책임지기로 했는데, 그게 가능하겠습니까?”
북미왕국에서 건설 노동자까지 시베리아 지역에 파견할 수야 없었고, 그렇기에 건설 노동자의 모집은 시베리아 부족 연합이 맡을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이번 시베리아 철도 부설은 여러 구간에서 동시에 진행하는 것이 아니라, 순차적으로 진행할 예정이기에, 그리 많은 건설 노동자가 필요하지도 않았고.
다만, 처음으로 시베리아 지역에 철도를 부설할 아무르 강 유역은 인구가 워낙 적은 편이라 정성국이 걱정스럽다는 얼굴로 묻자, 의외로 투란은 자신감이 가득한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
“물론 가능합니다.”
그리고 이런 투란의 반응이 의외였던 정성국은 들고 있던 커피잔을 내려놓고 말했다.
“호오. 그래요? 아무르 강 유역에 사람이 그리 많지 않은 것으로 아는데...”
“원래는 그랬었지요. 허나 최근엔 아무르 강 유역에 사람이 꽤 몰리고 있어서 말입니다.”
“어? 그랬나요?”
“예. 시베리아 부족 연합의 영토가 아무르강 유역까지 확대된 후, 기존의 교역 경로가 아무르강을 이용하는 것으로 바뀌지 않았습니까.”
투란의 대답에 정성국은 상황을 눈치채고 탄성을 질렀다.
“아. 물자가 몰리니 사람이 모여든 거겠군요?”
“그렇습니다. 물론 원체 인구가 적은 지역이긴 합니다만, 그래도 아무르 지역에 퍼져 살던 소규모 부족들이 하나둘 아무르강 유역에 정착하면서 상황이 조금 나아졌습니다. 거기에 아무르강 유역에서 일부 작물을 재배할 수 있다는 것이 알려지면서 다른 지역에서 아무르 지역으로 이주하려는 이들이 점차 늘어나고 있어서 말입니다. 아. 이것도 다 북미왕국의 도움 덕분이지요.”
청나라에 뜯어낸 동만주를 아무르강을 따라 남쪽은 조선에, 북쪽은 시베리아 부족 연합에 넘긴 북미왕국은 이 지역들의 개발을 위해 개발청 산하의 자원 관리 부서의 직원들과 농업 연구소의 연구원들을 파견했었다.
그리고 농업 연구소의 연구원들은, 이 아무르 지역의 중부와 남부에서 밀, 보리, 콩 같은 작물을 충분히 재배할 수 있음을 파악하고 북미왕국이 도와준다면, 충분히 이 지역을 개척할 수 있다는 결론을 내렸다.
해서 아무르 지역의 중부와 남부만 잘 개발해도, 시베리아 부족 연합이 필요로 하는 곡물을 모두 확보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된 시베리아 부족 연합은, 이를 전 지역에 적극적으로 알리며 정착해 농사를 짓고 싶어 하는 백성들의 아무르 지역으로의 이주를 독려했고, 덕분에 최근엔 다른 지역에서 아무르 지역으로 이주하려는 사람들이 점차 늘어나고 있다는 투란의 설명에 정성국은 흐뭇한 표정으로 웃었고.
그때 투란이 정성국의 두 눈을 번쩍 뜨게 만드는 이야기를 해 주었다.
“여기에 금맥마저 발견해서 말입니다.”
“금맥이요? 아무르 지역에?”
물론 시베리아 지역은 워낙 넓고, 또 수많은 광물이 묻혀 있다는 사실을 아는 정성국이었지만, 아무르 지역에도 금이 발견될 줄은 몰랐기에 정성국이 놀란 표정을 짓자, 투란이 빙긋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예. 아무르 강을 따라 개척촌이 늘어나는 와중에, 아무르 강과 그 지류인 제야 강이 만나는 지역에 정착한 이들이 사금을 발견했습니다. 해서 주변을 열심히 뒤졌고, 덕분에 금이 묻혀 있는 장소를 발견하게 되었지요.”
“오! 금맥이라! 이거 축하드립니다.”
투란의 설명에 정성국은 진심으로 축하해주었다.
이번에 발견한 아무르 지역의 금광은 현재 아무르 지역의 개발에 집중하고 있는 시베리아 부족 연합에 큰 도움이 될 테니 말이다.
“하하하. 아닙니다. 아쉽게도 에벤시 인근의 금광처럼 매장량이 많은 것 같지는 않다고 하니까요.”
“에이. 그래도 금광을 개발하고 운영하면 아무르강 유역을 발전시키는 데 큰 도움이 될 것 아닙니까.”
묘하게 아쉬워하는 투란을 보고 정성국이 타박하자, 투란은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했다.
“그렇긴 하지요. 에벤 족 영역의 금광 덕분에 에벤시를 건설한 것처럼, 이 아무르강 유역의 금광을 잘만 개발하면, 아무르 강 유역에 제대로 된 도시를 만들 수 있을 테니까요. 솔직히 알바진 요새는 너무 작아서...”
투란의 말마따나, 알바진 요새는 러시아 차르국이 청나라군을 상대하기 위해 건설한 자그마한 요새이고, 주변은 산이 많아 방어하기엔 좋아도, 도시로 성장시키기엔 썩 좋지 않은 입지를 지녔다.
그렇기에 알바진 요새를 키워 아무르 지역의 거점 도시로 삼기보다는 새로운 도시를 건설하는 편이 낫고.
이를 이해한 정성국이 고개를 끄덕이자, 투란이 빙긋 웃으며 말했다.
“다만, 이 계획은 조금 미룰 생각입니다.”
“아. 설마 금광 개발을 미루고, 이곳에 투입될 인력을 철도 부설에 투입하려는 겁니까?”
“그럴 계획입니다. 아쉽게도 금광 개발과 시베리아 철도 부설을 동시에 진행할 역량은 없으니까요.”
투란의 대답에 정성국은 역시나 하는 얼굴로 중얼거렸다.
“확실히 인구가 적은 것이 문제긴 하군요.”
정성국은 시베리아 부족 연합의 인구가 적은 것이 못내 아쉬웠다.
인구만 많다면 아무르 지역에 철도를 부설하고, 금광을 개발하고, 중부, 남부 지역을 모두 개척해 순식간에 발전시켜 경제 규모를 대폭 키울 수 있을 것 같았기에.
그리고 정성국의 목소리에서 그가 아쉬워한다는 것을 깨달은 투란은 정성국을 보고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그렇지요. 다만, 이는 결국 시간이 해결해줄 문제 아니겠습니까. 북미왕국의 도움으로 독립하면서 더는 러시아 차르국에 수탈당하지 않게 되었고, 덕분에 시베리아 부족 연합의 백성들은 더는 굶주리지 않게 되었고, 더는 질병을 겁낼 이유가 없어졌으니까요.”
그래서 최근엔 시베리아 부족 연합의 인구가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고 덧붙이자, 정성국은 무척 기쁜 얼굴을 했다.
인구가 빠르게 증가한다는 뜻은 그만큼 시베리아 부족 연합의 내부 사정이 좋다는 것을 의미했고, 전생에서 러시아 차르국의 개입으로 시베리아 지역의 원주민들이 거의 몰살 당했다는 것을 기억하는 정성국으로서는 현 상황이 무척 만족스러웠기에.
“하하하. 그렇군요. 다만, 인구가 많아지면 많아질수록, 통치하기도 쉽지 않을 겁니다. 그러니 미리미리 준비하는 것이 좋을 거예요.”
이에 투란은 꽤 자신만만한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
“물론 그래야지요. 그리고 다행히 이번에 북미왕국을 방문해 여러 청사를 방문하며 많은 것을 느꼈기에, 돌아가서 더 많은 관리를 육성해 지금보다 인구가 늘어나더라도 북미왕국처럼 큰 혼란 없이 통치할 수 있도록 연합의 체제를 정비할 생각입니다.”
“하하하. 좋은 생각이로군요. 그래요. 시베리아 부족 연합은 잘 해낼 거라 믿겠습니다.”
“전하의 믿음을 져버리지 않도록 신명을 다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