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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을 탈출하라-761화 (761/850)

#761

커다란 숙소에서 머물던 동녕국의 예부상서인 전굉은 수행원이 가져온 서찰의 내용을 확인한 후 심각한 표정으로 서찰의 내용을 읽고 또 읽었고.

수행원이 방에 들어오기 전에 미리 따라놓았던 차가 완전히 식을 때가 되어서야 겨우 생각을 정리하고 입을 열었다.

“이 정보. 확실한 건가?”

“그렇습니다. 그동안 청나라 상인과 밀무역을 해왔던 상인들이 모두 같은 이야기를 한 것을 보면...”

상인들의 정보는 생각보다 빠르다.

물론 밀무역 상인들이 건네준 정보를 과연 어디까지 믿을 수 있느냐가 관건이긴 한데, 그동안 밀무역 상인들을 통해 확보한 정보는 비교적 정확한 편이었기에 나름대로 신뢰할 수 있었고, 한둘도 아니고 여러 밀무역 상인들이 같은 정보를 전했다는 것을 보면, 충분히 믿을만한 소식이라 판단되었기에, 전굉은 들고 있던 서찰을 탁자 위에 올려놓으며 중얼거렸다.

“그동안 준가르와 대치하던 병력이 남하한다? 그것도 절강성으로?”

서찰에는 주로 북경에서 활동하는 청나라 상인들과 밀무역을 해왔던 상인들이 거래하면서 알게 된 북경의 소식이 적혀 있었는데, 그 내용 중에 북쪽에서 대규모의 청나라군이 내려와 북경 인근에서 잠시 머문 후, 다시 남쪽으로 내려갔다는 내용과 대규모 청나라군이 북경 인근에서 잠시 머물렀을 때 이들과 접촉한 상인들이 이야기하기를, 이 대규모 청나라군의 목적지가 바로 절강성이라는 내용이 적혀 있었고.

북쪽에서 내려온 대규모의 청나라군은 분명 그동안 북방에서 준가르와 전투를 치르던 병력일 것이 분명했는데, 이 병력이 절강성으로 이동한다는 것은 여러모로 의미심장했다.

이미 북미왕국과 유럽 나라들의 중재로 동녕국, 주나라는 청나라와 임시 휴전하고 협상을 진행하고 있기에, 청나라가 굳이 대규모 병력을 절강성까지 보낼 이유가 없던 탓이다.

특히, 현재 청나라는 계속된 전쟁으로 재정적으로 궁핍한 상태고, 이를 타개하기 위해 청나라가 과도한 세금을 거두면서, 각지에서 민란이 발생하고 있었기에.

여기에 대규모 병력은 이동하는 것만으로도 막대한 비용이 소모되는데, 청나라가 굳이 대규모 병력을 절강성으로 보내는 이유는 하나뿐이었고.

다만 전굉은 자신의 생각이 제발 틀렸으면 했기에, 수행원에게 청나라가 절강성으로 병력을 파견하는 이유를 말해 보라는 듯한 눈빛을 보내자, 수행원이 입을 열었다.

“아마 아국을 압박하고, 또 아국에 청나라의 뜻을 알리기 위함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리고 수행원의 대답은 전굉의 생각과도 같았기에, 전굉은 역시나 하는 얼굴로 탄식하듯 말했다.

“절대 장강을 국경으로 정할 생각이 없다? 그러니 괜히 협상을 질질 끌지 말아라?”

이에 수행원이 그렇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자, 전굉이 골치 아프다는 얼굴로 중얼거렸다.

“끙. 이거 예상 밖이군. 물론 준가르와 화친을 맺었으니, 병력 일부를 북방이 아닌 다른 곳으로 배치할 수 있다고는 여겼지만, 당연히 섬서성과 산동성으로 보낼 줄 알았더니...”

청나라 각지에서 민란, 반란이 일어나고 있었고, 개중에 심한 곳이 바로 섬서성과 산동성이었다.

특히 산동성은 북경과도 가까운 편이었기에, 전굉은 당연히 청나라가 산동성의 반란을 진압하는 데 중점을 둘 거라 여겼고, 그래서 북미왕국의 중재로 청나라와 준가르가 화친을 맺었다는 소식을 접했을 때도 크게 동요하지 않았었다.

해서 계속해서 장강을 국경으로 하자고 주장했고, 그 때문에 협상은 지지부진했고.

헌데 전굉의 예상과는 달리, 북방에 배치된 병력을 추스른 청나라는 이 병력을 산동성이나, 혹은 섬서성에 배치하지 않고, 바로 절강성으로 배치했기에 전굉이 한 방 맞은듯한 얼굴을 하자 수행원이 답했다.

“설사 섬서성과 산동성의 민란, 반란이 커져 잠시 통제권을 잃는다 하더라도, 결국엔 이를 진압할 수 있다는 자신감 때문이겠지요.”

“자신감이라...”

청나라는 삼번의 반란으로 인해 결국 영토가 대폭 축소된 셈이었기에, 청나라 각지에서 일어난 반란을 청나라 조정에서는 반란이 더 커지지 않게 즉각 조처하리라 여겼던 전굉이었다.

하지만 전굉이 수행원의 이야기를 듣고 생각해보니, 삼번의 경우는 지방의 군벌로 해당 지역을 완벽히 장악하고 있던 반면, 지금 섬서성, 산동성의 반란은 일부 신사층이 개입해있다고는 하지만, 민란에 가까운 형태였고, 청나라에 봉기한 이들이 한 세력으로 뭉친 것도 아니었으며, 조선제 조총으로 무장한 정예 병력마저 대거 보유하고 있으니, 청나라가 반란 진압에 자신감을 보일만하다는 생각이 들어 결국 고개를 끄덕였고.

이런 전굉의 반응에 수행원이 슬쩍 덧붙여 말했다.

“그에 반해, 이번 화친 협상은 북미왕국을 비롯한 여러 유럽 나라들이 함께 중재에 나선 상황이기에, 이번 화친 협상에서 영토의 경계가 확정되면, 그것으로 끝이라는 것을 청나라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니...”

이번 화친 협상은 여러 나라가 개입해있었기에, 협상이 끝나면 청나라든, 주나라든, 동녕국이든, 함부로 타국을 공격하기는 여러모로 어려웠다.

화친을 먼저 깨면 다른 나라들이 개입할 여지를 주는 셈이니까.

그러니 이번 화친 협상을 통해 국경이 정해지면, 그 국경이 계속 유지될 가능성이 컸고, 그렇기에 청나라가 반란 진압보다 이번 협상을 더 중히 여긴 것 같다는 수행원의 설명에 전굉도 수긍했기에 아쉬운 기색으로 입을 열었다.

“쩝. 결국, 국경을 장강으로 확정하는 것은 포기할 수밖에 없나?”

“그러셔야 할 것 같습니다. 특히, 기대와는 달리 주나라도 중립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으니...”

수행원이 주나라를 거론하자 전굉이 무척 불쾌하다는 얼굴로 혀를 차며 말했다.

“쯧. 예전에 아국과 협상할 때는 아국이 최소한 절강성까지 확보할 수 있도록 물심양면으로 돕겠다고 해놓고, 이제 와서 딴소리라니...”

오삼계를 제외한 다른 두 번이 모두 청나라에 항복하면서, 오삼계는 이대로라면 청나라에 당할 거라는 위기감에 동녕국을 끌어들였다.

청나라가 자신들마저 토벌하고 나면, 그다음 차례는 분명 동녕국이 될 거라고 협박도 하고, 적극적으로 청나라를 공격해 병력을 일부라도 분산시켜준다면, 추후에 동녕국이 최소한 절강성, 복건성, 강서성, 광동성까지는 확보할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돕겠다고 약속하기도 했고.

그렇기에 동녕국에서는 이번 협상에서 주나라가 자신들을 적극적으로 지원할 거라고 여겼다.

물론 이미 죽은 오삼계의 약속을 믿는 것이 아니라, 동녕국이 주장하는 것처럼 장강으로 국경을 정하게 되면, 청나라는 장강 이남의 주요 도시이자 막대한 부로 인해 청나라의 재정을 일정 부분 책임지는 남경, 항주, 소주 등의 주요 도시를 모두 잃게 되니, 그만큼 청나라의 국력은 약해질 수밖에 없게 되고, 이건 주나라로서도 환영할만한 일이기 때문이다.

더불어, 동녕국의 주장대로 장강을 국경으로 정해야 동녕국이나 주나라 모두 장강을 자유로이 이용할 수 있기도 하고.

청나라의 주장대로 국경을 나누면, 장강 하구는 온전히 청나라가 통제할 수 있게 되니, 타국의 배는 쉬이 장강을 드나들기 어려웠고, 그렇게 되면 주나라도, 동녕국도 타격을 받을 수밖에 없다.

철도가 없는 상황에서 물류를 손쉽게 운반하는 방법은 배를 이용하는 방법 뿐이기에.

해서 동녕국은 당연히 주나라가 적극적으로 지원해줄 거라 여겼는데, 주나라는 장강으로 국경이 정해져 동녕국이 손쉽게 광동성, 절강성, 강소성 일부를 차지하는 것이 배가 아픈지, 자신들은 강서성을 동녕국에 넘겨준 것만으로 도리를 다했다고 이야기하며 협상에서 동녕국을 지원하지 않고 오히려 중립적인 모습을 보였고.

그렇기에 수행원이 주나라를 거론하자 전굉은 불쾌함을 감추지 못했고, 그런 전굉의 반응에 수행원이 맞장구쳤다.

“그러게 말입니다. 참으로 신용하지 못할 작자들입니다.”

그렇게 전굉과 수행원은 한참 동안 주나라에 관한 뒷담화를 나누며 정신적 피로를 풀었고, 그 후 전굉은 조금 개운해진 얼굴로 삼천포로 빠진 대화의 주제를 돌렸다.

“후우. 아무튼, 상황이 이러니 어쩔 수 없군. 아쉽지만 청나라의 제안대로 국경은 복건성과 절강성의 경계로 정하고, 대신 광동성을 확보하는 수밖에.”

“예. 청나라군이 절강성에 배치되기 시작하면, 아무래도 협상에서 불리해질 테니, 최대한 빠르게 협상을 진행하는 것이 나을 것 같습니다.”

물론 지금의 휴전은 이번 화친 협상을 중재한 북미왕국과 여러 유럽 나라들이 개입해있기에, 아무리 청나라라도 이를 깨긴 어렵고, 그러니 최대한 협상을 질질 끌며, 섬서성, 산동성의 반란이 확대되길 기다리는 것도 나름 괜찮은 협상 방법이긴 했다.

다만, 지금도 동녕국의 주장으로 협상이 지연되면서, 여러 유럽 나라들의 외교관들은 은근슬쩍 동녕국을 압박하고 있기도 했고, 지금 남하하는 청나라군이 북방에 배치된 병력 전체가 아니라, 준가르가 내몽골 지역에서 완전히 물러나면 청나라는 병력에 여유가 생기니, 크게 의미가 없다고 판단한 수행원이었고.

이에 전굉은 결정을 내리고 수행원에게 명령했다.

“흠. 허면 내일부터 다시 협상을 진행하자고 알리게나.”

“알겠습니다.”

* * *

강희제가 대전에서 청나라 대신들과 여러 가지를 논의하고 있는 도중에, 환관이 종종걸음으로 다가와 강희제에게 서찰을 건넸고.

화친 협상을 진행하기 위해 호북성에 나가 있던 예부상서 연목이 보낸 서찰이라는 것을 깨달은 강희제가 즉각 서찰의 내용을 확인하고 빙그레 웃으며 중얼거렸다.

“하. 드디어 화친 협상이 끝난 건가?”

화친 협상이 끝난다는 소리는, 삼번의 난을 시작으로 12년 넘게 끌어온 내전이 드디어 끝났다는 뜻이었기에, 대전에 있던 청나라 대신들은 일제히 강희제에게 부복하며 외쳤다.

“경하드리옵니다. 황상 폐하.”

이번 내전으로 주나라가 독립하고, 동녕국이 본토의 땅을 확보해 겨우 일통한 중국 대륙이 다시 3개로 쪼개진 셈이라 어떻게 보면 이번 전쟁의 결과는 패배에 가까웠다.

다만, 동녕국, 주나라, 준가르가 사방에서 청나라를 공격하고, 또, 각지에서 반란이 발생하고 있기에, 한때는 이대로 망하는 것이 아닌가 싶었던 청나라 대신들은 그래도 많은 영역을 확보한 채로 전쟁이 끝났기에 기뻐하며 강희제를 칭송했고.

“됐네. 전쟁이 끝난 것은 분명 축하할 일이지만...어떻게 보면 패전한 것이나 다름없으니까.”

그러나 강희제는 씁쓸한 얼굴로 손을 휘휘 내저었다.

어떻게 보면 자신의 부덕으로 아버지가 일통한 중국 대륙이 다시 쪼개진 셈이었기에.

“송구하옵니다. 황상 폐하.”

그러자 청나라 대신들은 강희제의 심기가 썩 좋은 것 같지 않다는 것을 깨닫고 다시 부복하며 은근슬쩍 강희제의 눈치를 살폈고.

이에 강희제는 그럴 필요 없다는 듯 다시 한번 손을 내저으며 대전의 분위기를 바꿀 겸 말했다.

“그보다 그동안 뻗대던 동녕국이 결국 굽힌 것은, 역시 5만에 달하는 병력을 남하시킨 것 때문이겠지?”

“아마 그렇지 않겠사옵니까.”

동녕국이 계속해서 장강을 국경으로 하자고 주장하자, 강희제는 동녕국을 압박하고, 또 동녕국에 청나라의 뜻을 제대로 전해야겠다는 생각에 준가르의 병력 일부가 철수하면서 조약에 따라 철수한 5만 명에 달하는 청나라군을 남하시켰고.

동시에 동녕국이 청나라군의 남하를 조금이라도 빨리 알게 하려고 일부러 병사들에게 목적지가 절강성이라는 것을 알리고, 또 상인들의 출입을 허락했다.

그리고 얼마 안 있어 화친을 맺었으니, 이러한 계책이 제대로 먹혔다는 뜻이었기에 청나라 대신들은 이런 계책을 생각해 낸 강희제를 칭송하자, 강희제는 씩 웃으며 병부상서를 보고 명령을 내렸다.

“흐. 그럼 현재 남하하고 있는 병력에 곧바로 전령을 보내, 계획대로 산동성으로 이동해 반란군을 철저히 토벌하라 전하게.”

물론 이번 화친 협상으로 국경이 전해지면, 꽤 오랫동안 그 국경이 유지될 것 같았기에 강희제나 청나라 대신들은 이번 화친 협상을 최우선으로 생각할 수밖에 없긴 했다.

다만, 계속해서 섬서성, 산동성에서 반란이 발생하고 있어 이 지역에선 제대로 세금도 거두지 못해 청나라의 재정은 더욱 악화되고 있었고.

해서 최대한 빠르게 섬서성, 산동성의 반란을 진압하는 것이 청나라의 입장에서는 이득이었기에, 동녕국, 주나라와 화친을 맺는 대로 지금 내려보낸 5만의 병력은 바로 산동성으로 재배치할 계획을 짜 두었다.

해서 강희제가 이를 명령하자 병부상서가 부복하며 대답했다.

“그리하겠사옵니다. 황상 폐하.”

“그리고 호북성엔 따로 전령을 보내지 않아도 되지?”

이에 병부상서가 바로 대답했다.

“그렇사옵니다. 황상 폐하. 이미 호북성에 명령서를 보낸 지 오래이니, 아마 호북성에 주둔한 병력 중 일부는 계획대로 섬서성으로 이동하고 있을 것이옵니다.”

강희제와 청나라 대신들은 미리 호북성에 주둔한 병력에도 명령서를 보내두었다.

화친 협상이 끝나는 대로, 호북성에 주둔한 5만의 병력은 섬서성으로 이동해 반란을 진압하라고 말이다.

그리고 협상은 호북성에서 진행되었으니, 바로 병력이 이동했을 거라는 병부상서의 보고에 강희제는 흡족한 얼굴로 중얼거렸다.

“좋아. 현재 이동하는 병력은 전쟁에 단련된 정예군들이니만큼, 오합지졸인 반란군이야 쉽게 진압할 수 있을 테니 이제부턴 오랜 전쟁으로 피폐해진 각 지역을 복구하는 데 전념하면 되겠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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