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조선을 탈출하라-759화 (759/850)

#759

북미신문은 세계에서 가장 잘 팔리는 신문이라고 할 수 있다.

북미왕국의 국력이 알려지면서, 상류층과 지식인들은 북미왕국을 더욱 알고자 했는데, 북미왕국은 입국을 제한하고 있으니 북미왕국의 정보를 손쉽게 획득할 수 있는 경로는 바로 북미신문을 읽는 것뿐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북미신문은 북미왕국뿐만 아니라, 유럽, 아시아 지역에도 흘러 들어갔고, 유럽 각국이 친선 사절단을 북미왕국에 보냈다는 사실과 북미왕국의 동맹국인 네덜란드, 덴마크, 스웨덴의 경우 국왕이 직접 친선 사절단을 이끌고 북미왕국을 방문해 정성국과 친분을 쌓고, 일부는 협정을 체결했다는 사실도 유럽과 아시아를 비롯해 북미왕국의 영향력이 닿는 지역 전체에 알려졌고.

이에 다른 나라들도 그랬지만, 특히 시베리아 부족 연합과 호주 연합, 앙골라 장가 같은 북미왕국의 동맹국들은 즉각 북미왕국과 협의해 친선 사절단을 파견하고자 했다.

비록 북미왕국이 동맹국들을 공평하게 대우하기 위해 노력한다고 해도, 북미왕국의 관심과 자원은 한정되어 있기에 모든 동맹국을 완벽히 똑같이 대우해줄 수 없다는 것은 북미왕국의 동맹국들이 더 잘 알고 있었기에, 네덜란드, 덴마크, 스웨덴의 국왕이 직접 북미왕국을 방문해 정성국과 친분을 쌓았다는 사실에 위기감을 느낀 것이다.

다만, 유럽 각국의 친선 사절단이 비슷한 시기에 북미왕국을 방문해, 무척이나 고생했던 정성국은 외무청에 따로 이야기해 북미왕국을 방문하려는 친선 사절단의 일정을 적당히 조절했고, 친선 사절단의 접대 역시 외무청에 일임했고.

덕분에, 여름 이후 계속해서 친선 사절단이 북미왕국을 방문했지만, 정성국은 크게 시간을 뺏기지 않을 수 있었다.

다만, 정성국이 북미왕국을 방문한 친선 사절단의 접대 업무는 외무청에 일임했더라도, 친선 사절단이 처음으로 새한성에 도착했을 때, 잠깐 얼굴은 비쳐야 했다.

해서 정성국은 이번에 시베리아 부족 연합에서 보낸 친선 사절단을 맞이하기 위해 공항에 나가, 비행기에서 내리는 친선 사절단의 대표 신분으로 북미왕국을 방문한 에벤시장인 투란과 인사도 나누고 북미신문에 실릴 사진도 몇 장 찍고 나서, 함께 자동차에 탑승했고.

정성국과 투란이 탑승한 자동차가 공항을 빠져나와 새한성 시내로 이동하는 동안 투란은 정성국과 친분을 쌓을 겸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소신은 예전부터 북미왕국 본토를 한 번쯤은 방문하고 싶었습니다. 아이누 탐사대장과 지내며 정말 많은 이야기를 들었거든요.”

“그랬습니까? 아. 그러고 보니...투란 경은 옛 에벤 족 족장이었으니 아이누 탐사대장과도 많은 이야기를 나누긴 했겠구려?”

자신의 이야기에 정성국이 바로 수긍하자 오히려 투란은 놀란 얼굴로 정성국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어? 소신이 옛 에벤 족 족장이었다는 것을 전하께서 어떻게 아십니까?”

“하하하. 그동안 시베리아 지역에서 올라온 보고서가 몇 갠데 그걸 모르겠습니까. 그리고 에벤 족은 알류트 족, 코랴크 족과 함께 처음으로 러시아 차르국의 지배에 반기를 들었잖습니까. 그에 관련된 보고서를 몇 차례 읽었으니 당연히 기억하고 있지요.”

에벤 족은 처음으로 러시아 차르국에 반기를 든 부족 중의 하나였고, 처음 시베리아 부족 연합이 결성되었을 때 합류한 부족 중 하나였다.

여기에 에벤 족의 규모는 시베리아 부족 연합에 속한 여러 부족 가운데 수위를 다투는 터라, 시베리아 부족 연합에서 에벤 족 족장이었던 투란의 위치도 꽤 높았으니 정성국이 투란의 이름을 모를 리 없었다.

또한, 에벤 족 영역에서 금맥이 발견된 후, 북미왕국에서 이 금광을 본격적으로 개발하면서 건설된 일종의 산업 도시인 에벤 시는 시베리아 부족 연합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중요한 도시 중 하나였는데, 투란이 족장 자리를 동생에게 넘긴 후 맡은 자리가 바로 에벤시장이었으니, 지금도 외무청을 통해 올라오는 시베리아 부족 연합 동향 보고서에는 투란의 이름이 간간이 보이기도 했고.

해서 정성국이 웃음을 터트리며 대답하자 투란은 무척 감격스럽다는 얼굴로 정성국을 바라보았다.

“허허허. 전하께선 먼 외지의 일도 세심하게 살피신다더니 역시 그렇군요.”

“아이누 탐사대장이 그런 말도 했습니까?”

“그럼요. 아. 아이누 탐사대장뿐만 아니라, 여러 북미왕국인들이 전하의 은덕을 칭송하곤 했지요.”

투란으로서는 북미왕국 덕분에 자신의 부족이 러시아 차르국의 지배에서 독립할 수 있었으니, 북미왕국의 국왕인 정성국의 호감도도 높았고, 그렇기에 정성국을 칭송하는 말을 꺼내는 것에 주저함이 없었지만, 이를 직접 듣는 정성국은 여러모로 낯간지러울 수밖에 없었다.

해서 정성국은 볼을 긁적이며 난처한 표정을 지었고, 한창 열심히 정성국의 덕을 칭송하던 투란은 이를 확인한 후, 정성국은 아부하는 이를 경계한다는 카무이 항 외무청 관리의 말을 떠올리고 바로 이야기의 주제를 틀었다.

“아무튼, 그동안은 북미왕국을 방문했던 제 친우나 동생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언제나 부러운 눈빛을 보내야 했는데, 이번에 북미왕국을 방문하면서 더는 부러운 눈빛을 보낼 필요가 없게 되었고, 오히려 이렇게 늦게 북미왕국을 방문한 덕분에 주변 사람들에게 자랑할 거리가 생겼으니, 참으로 기쁠 노릇입니다.”

“자랑할 거리라면?”

그리고 투란이 자신을 칭송하는 말을 계속 읊자 여러모로 거북했던 정성국은 투란이 이야기의 주제를 바꾸자 잘됐다 싶어 바로 호응하자 투란이 잔뜩 흥분한 얼굴로 목소리를 높였다.

“물론 비행기에 탑승한 일이지요! 아마 소신이 시베리아 부족 연합 사람 중에선 처음으로 하늘을 날았을 겁니다.”

“아...하하하. 그건 그렇겠군요.”

정성국은 투란이 갑자기 흥분하며 목소리를 높이자 처음엔 어리둥절했지만, 투란이 비행기를 언급하자 이해한다는 얼굴로 대꾸했고.

그런 정성국의 대꾸에 투란은 여전히 흥분을 가라앉히지 못하고 하늘을 날았던 경험을 떠들어댔다.

“정말이지 장관이었습니다. 하늘에서 내려다본 풍경은 아직도 두 눈에 훤하며, 구름보다 높이 날거나, 구름 사이로 비행할 때의 풍경은 정말이지...”

그리고 투란이 이렇게 열변을 토하는 사이, 정성국은 아주 익숙하게 호응해주었다.

처음으로 비행기를 타본 외국인들은 항상 비슷한 반응을 보였고, 그들을 상대하다보니 무척이나 익숙해졌기에.

“거기에 더욱 놀라운 것은 카무이 항에서 고작 하루 만에 새한성까지 도착했다는 겁니다. 분명 예전에 북미왕국을 방문했던 제 동생들은 카무이 항에서 새김포까지 이동하는 데만 일주일 가까이 걸렸다고 했는데 말입니다!”

이 얼마나 놀라운 일이냐는 시선을 보내는 투란을 보고 정성국이 빙긋 웃으며 대답했다.

“뭐 비행기는 배보다 훨씬 빠르니까요. 그리고 시베리아 부족 연합의 친선 사절단이 이동할 때는 아국에서 미리 갈아탈 비행기를 준비해 두었기에 더욱 빠르게 이동할 수 있었던 거기도 하고요.”

이런 정성국의 대답에 투란은 조금 흥분을 가라앉힌 후, 정성국의 슬쩍 살피며 다시 입을 열었다.

“아무튼, 먼 거리를 빠르게 이동할 수 있는 비행기는 영토가 넓을수록 요긴하게 사용할 수 있을 것 같더군요.”

“그렇긴 합니다. 해서 아국에서도 더 많은 비행기를 생산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고요.”

“오오! 그렇습니까?”

“예? 예. 그렇지요?”

정성국의 대답에 투란이 다시 흥분해 목소리를 높이자, 정성국은 투란이 왜 흥분한 건지 몰라 조금 당황한 얼굴로 적당히 대꾸했고.

이런 정성국의 반응에 투란이 조금 고민하다가 결정을 내린 듯 입술을 깨문 후 말했다.

“허면 저희 시베리아 부족 연합에서도 비행기를 이용할 수 있도록 도와주십시오. 전하.”

“엥...?”

예상치 못한 투란의 말에 정성국이 황당해하자 투란이 정성국을 설득하고자 입을 열었다.

“비록 북미왕국보다는 작지만, 저희 시베리아 부족 연합의 영토도 무척 넓습니다. 더불어, 전하께서도 잘 아시겠지만, 시베리아 지역은 도로를 깔고 정비하기도 썩 좋은 환경이 아니고, 시베리아 지역 전체를 관통하는 강이 없다 보니 수운을 이용하는 것도 한계가 있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교통이 불편하다 보니, 저희 시베리아 부족 연합의 발전은 더뎌질 수밖에 없지요.”

경제가 발전하려면 물류가 활발히 움직여야 하고, 물류가 활발히 움직이려면 교통이 편리해야 했다.

헌데 시베리아 지역은 교통이 무척이나 불편했다.

땅은 넓은데 인구가 워낙 적어 드넓은 땅에 제대로 된 도로를 깔기도 현실적으로 어려웠고, 여기에 봄과 가을에는 얼어붙은 땅이 녹으면서 도로가 엉망이 되어 버려, 먼 거리를 이동할 때는 차라리 추운 겨울에 이동하는 것이 낫다고 할 정도이니만큼.

그러니 투란은 이번에 타고 온 비행기가 불편한 시베리아 지역의 교통 문제를 해결할 유일한 방책이라고 여겼고, 투란이 시베리아 지역의 교통 문제를 입에 올리자 투란이 왜 이런 말을 꺼냈는지 짐작한 정성국이 생각이 많은 얼굴로 중얼거렸다.

“그래서 비행기가 필요하다?”

“그렇습니다. 저희 시베리아 부족 연합의 주요 도시들이 하늘길로 연결된다면, 각 도시들의 교류가 활발해질 테고, 자연스레 저희 연합은 더욱 발전하게 될 테니까요!”

“흐음...그게...”

이에 정성국이 난처한 얼굴로 투란에게 무어라 이야기하려 할 때, 투란이 먼저 입을 열었다.

“아. 물론 아무리 저희 연합이 북미왕국과 동맹이라고 해도, 비행기 같은 북미왕국의 기술이 집약된 기물을 팔아달라고 이야기하는 것은 아닙니다.”

투란의 대답에 고개를 갸웃한 정성국은 곧 투란의 속내를 눈치채고 말했다.

“음? 아. 그래서 비행기를 이용할 수 있게 해달라고 이야기한 거군요? 우리가 시베리아 지역에 직접 항공 항로를 개설하고, 유지해달라?”

이에 투란이 정성국을 볼 면목이 없다는 얼굴로 슬쩍 고개를 숙이며 대답했다.

“염치불구하지만...그렇습니다. 설령 북미왕국에서 비행기를 판매한다고 해도 제대로 운영하기도 어려울 테니까요.”

그랬다.

어차피 비행기를 시베리아 부족 연합에 넘긴다 하더라도, 시베리아 부족 연합이 비행기를 운영하려면 조종사나 정비사 같은 인력을 자체적으로 키워야 하는데, 그게 하루 이틀로 어디 가능하겠는가.

투란은 비행기를 타고 오면서 부조종사와 잠깐잠깐 대화를 나누며 이를 깨달을 수 있었고, 그렇기에 아예 북미왕국에서 항공 항로를 유지해주길 원한 것이다.

그리고 이런 투란의 제안은 정성국이 보기엔 나쁘지 않았다.

기술 유출의 우려도 없고, 항공사를 운영해 시베리아 지역의 항공 항로를 장악해 돈을 벌 수 있을 테니까.

다만 당장은 북미왕국에서 사용할 비행기조차 부족한 판국에 일부 비행기를 시베리아 지역으로 돌린다는 것은 어려웠다.

해서 정성국은 바로 대답했다.

“그렇기야 하지요. 다만 정말 미안하게도 시베리아 부족 연합의 요청은 현재로선 받아들이기 어렵습니다.”

“아. 역시 그렇습니까...”

투란은 비행기를 시베리아 지역의 교통 문제를 해결할 유일한 대안이라고 여겼기에 정성국의 대답에 안타까운 기색을 감추지 못했고.

정성국은 그런 투란을 보고 상황을 설명하고자 입을 열었다.

“물론 지금도 아국에서는 비행기 생산 공방을 확장하면서, 어떻게든 더 많은 비행기를 양산하려 노력하고 있지만, 비행기의 생산이 그리 만만한 일은 아니라서 말입니다.”

“그야...그렇겠지요. 하늘을 나는 기물을 어찌 쉽게 만들겠습니까.”

투란이 고개를 끄덕이자 정성국이 덧붙였다.

“그리고 지금의 기러기급, 두루미급 비행기의 수송량을 생각하면, 이 비행기를 시베리아 지역에 투입한다 해도 시베리아 지역의 발전엔 크게 도움이 되진 않을 겁니다. 기껏해야 마차 한 대 분량에 불과하니까요.”

“음...그건...그렇지요.”

“다만 투란 경의 말처럼 시베리아 지역의 발전을 위해서는 교통 환경을 개선할 필요가 있으니...철도를 부설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철도라...당장 부설하는 것은 어렵지 않습니까?”

철도의 효용성은 투란도 잘 알았다.

다만 당장은 이걸 부설하기도 어렵고, 관리하기도 어렵기에 비행기를 원했을 뿐.

헌데 정성국이 철도 부설을 권하자 투란이 눈을 반짝였고, 이에 정성국은 어느덧 보이는 고급 숙소를 보며 말했다.

“그렇긴 합니다. 허나 시베리아 지역의 발전을 위해선 언젠간 부설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러니 기왕 아국에 온 김에 시베리아 철도 부설에 관련된 협상을 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으음...그건 그렇군요. 물자를 수송하기엔 철도만한 것이 없고...언젠간 부설해야 하긴 하지요. 알겠습니다. 그리 하도록 하지요. 허면...”

“일단은 여독을 푼 후, 나중에 협상하도록 하지요.”

“아. 알겠습니다. 전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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